“창의적인 아이로 키워요” 지난 25일 시 교육청은 초ㆍ중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어머니 창의성교실’을 개최했다.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는 자녀교육법, 발명 가족 만들기, 지금은 발명영재시대 등을 주제로 2시간씩 2회에 걸쳐 열띤 강의가 펼쳐졌다.
양산민중연대가 공무원노조를 지원하고 나섰다. 민중연대는 지난달 28일부터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시청입구에서 "김태호 도지사는 공무원노조탄압을 중단하라"며 1인 시위를 전개하며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경남 관광발전을 위한 워크샵이 지난달 30일 통도사관광호텔에서 경남도 및 시군 관광업무 관계자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참석자들은 관광진흥을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양산시 / 사진제공
시와 여성단체협의회(회장 김귀순)는 여름방학을 맞아 저소득 모자가정을 대상으로 지난달 24, 25일 양일간 원동면 팜스테이 마을에서 저소득 모자가정 여름방학 캠프를 실시했다.
양산민중연대는 지난달 27일 한미FTA 반대와 통일 열기 확산을 전하기 위한 통일축구ㆍ족구대회를 양산고에서 개최하고, 특히 한미FTA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적극 홍보하는 계기를 마련키로 했다.
영산대학교가 주최하고 (사)한국청소년문화원이 주관한 제5회 한ㆍ일 청소년 문화체험 행사가 지난달 26일~28일까지 관내 청소년 250여명과 일본 치쿠시노시의 청소년 20명이 참가한 가운데 영산대학교에서 열렸다. 한국청소년문화원 / 사진제공
8월말 정년퇴직으로 교단을 떠나는 양산지역 초·중등교원 9명이 훈·포장을 받았다. 근정훈장은 공무원으로서 직무에 충실하고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으로 도 교육청은 양산초 강홍희 교장 외 2명에게 황조근정훈장을, 신기초 조덕길 교장 외 4명에게 홍조근정훈장을, 삼성중 박선양 교사에게 옥조근정훈장을 각각 전수했다. 한편 양산지역 9명의 교원을 포함해 경남도 내 147명의 교원에게 수여되는 훈·포장 전수식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경남교육연수원에서 열렸다. ----------------------------------------------------황조근정훈장
▷삼성초 교사 정대견 ▷양산초 교장 강홍희 ▷오봉초 원로교사 강종환홍조근정훈장
▷동산초 교장 이희호 ▷신기초 교장 조덕길 ▷양산초 교사 박의정 ▷오봉초 교사 주무열 ▷양산초 교사 최한업옥조근정훈장
▷삼성중 교사 박선양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죠. 어려울 때일수록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이후에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됩니다”30여년 간 버섯재배 한 길 고집양산시 신지식인 1호, 제1회 경상남도 자랑스러운 농민상, 농업기술부문 대통령 표창, 세계 농업인 기술부문 특별상…. 이처럼 수많은 상을 수상한 주인공은 버섯 박사로 잘 알려진 망절일랑 씨다.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망절일랑 씨는 일본출신이지만 지난 1968년 자신을 키워준 한국이 좋아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국방의 의무까지 마친 어엿한 한국인이다.귀화 이후 김해, 진영, 진해, 부산 등에서 생활했지만 양산에 뿌리를 내린 이후 30년 세월 가까이 버섯농사 한 길만을 걷고 있다.“양산을 흔히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고 말하지만 양산은 울산과 부산 사이에 위치해 근교농업이 발전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양산을 제2의 고향으로 알고 뿌리내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필수 농산물이 아닌 기호식품으로써 버섯을 재배하기에 알맞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망절일랑 씨는 지난 1999년 양산시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됐으며, 2004년에는 강심제나 이뇨제 등으로 쓰이는 ‘사포닌’이 대량 함양된 ‘홍삼새송이버섯’을 생산해 특허 출원하는 데 성공했다. 2년 뒤 ‘홍상새송이버섯’은 천연조미료로 탈바꿈 돼 일본의 유명백화점과 서울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홍삼새송이버섯’의 개발과 상품화라는 사고(?)를 쳤던 망절일랑 씨는 조만간 다시 한 번 사고칠 준비를 하고 있다. 마그네슘, 칼슘, 칼륨, 철 등 일반버섯보다 미네랄 성분이 2~10배가량이나 높은 버섯개발에 거의 성공하고 특허출원 예정에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네랄이 대량 함유된 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망절일랑 씨는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4천여만원을 투자해 망절농장의 연구시설을 개선했다.“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죠. 어려울 때일수록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이후에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됩니다”
버섯농사를 짓는 농사꾼으로서가 아닌 망절농장을 운영하는 경영자로서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현재 농업이 전체적으로 큰 위기를 맡고 있다”며 “지역농산물을 살리기 위해서 지역민들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창간 3주년을 맞은 본지에 대한 덕담을 부탁했더니 신문이 내세운 초심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내일을 보는 정직한 눈’이라는 양산시문신문의 슬로건을 잘 지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초심을 잊지 말고 초지일관 나아간다면 분명히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성장해 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상 뭐가 더 있겠습니까?”버섯재배라는 한 길을 고집해온 망절일랑 씨의 말이기에 ‘초지일관’이라는 말의 의미가 더 와 닿는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떤 어른들보다도 순수해요. 단지 서투르게 포장해 야수처럼 보일 뿐이죠. 아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세요. 내가 다 열지 못하더라도 다른 선생님이 마저 열수 있도록 말이죠”“저의 첫 발령지가 산청에 한 분교였어요. 제사 때만 되면 신문지에 싸서 들고 오는 떡, 김장철 엄마 몰래 가져 오는 김치... 이게 아이들이 저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였어요. 요즘 교권이 상실되고 있다며 고민하는 일부 교사들은 아이들의 따뜻한 눈길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예요. 그런 현실이 안타깝죠”전교조 양산지회 이영욱 회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 회장은 지난 2004년 12월, 경쟁자 없이 단독 출마해 유효투표 96.9%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당선된 양산 최초의 여성 지회장으로 1년 8개월 동안 양산전교조를 책임져 왔다. 20년의 교직생활 중 10년 동안 전교조 활동을 해 온 이 회장은 바쁜 자신으로 인해 ‘혼자 도는 바람개비’라는 별명을 갖게 된 두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고 전했다. “어느날 큰 딸이 학교로 울면서 전화를 했더라구요. 준비물을 챙기지 못해 담임선생님께 꾸중을 많이 들었다며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저도 수업 중이라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방법을 배워라’며 거절했어요. 그 때가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현명한 아이로 성장했어요. 기특할 뿐이죠” 성적만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교육현실을 바꿔야 된다고 말하는 이 회장은 교육철학에 대해서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저는 교육을 모릅니다. 그저 이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생각하고 잘 보살핀다면 제 딸들도 저와 같은 교사 밑에서 올바른 교육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뿐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지치지 않고 즐겁게 교직생활을 할 수 있는 큰 힘이 됐죠”마지막으로 “아이들의 마음은 어떤 어른들보다도 순수해요. 단지 서투르게 포장해 야수처럼 보일 뿐이죠. 아이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세요. 내가 다 열지 못하더라도 다른 선생님이 마저 열 수 있도록 말이죠”라며 교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통학의 어려움으로 2년째 학업을 중단하고 있는 지체장애 1급 김정민씨.
얼른 학업을 마무리해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에게 통학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따뜻한 이웃이 나타나기를 바래본다.지체장애 1급 김정민씨 2년째 휴학
부친 별세, 통학여건 어려워 지난 2004년 5월 7일 한 시민이 ‘장한 어버이’로 선정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해 지역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네 살 때 갑작스런 뇌성마비로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고 밥숟가락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서른다섯 살인 큰 아들 김정민 씨를 35년 동안 수발한 손성자(66) 씨다.그로부터 2년. 지난 26일 만난 손 씨는 “지난 날 국무총리 상을 받은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말문을 연다. 사연인즉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남편 故김창록 씨가 국민 훈장 수상 바로 뒷날 사우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천청 벽력같은 일을 겪고, 초·중·고 검정고시를 치르고 2002년 부산 신라대학교 컴퓨터공학부를 다니던 아들마저도 아버지가 떠나자 통학을 도와줄 사람이 없어 2년째 휴학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아들의 학업을 위해 매일 남편과 함께 통학을 시키고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학과 수강 뒷바라지했던 시절이 힘들었지만 너무나 그립다는 그는 “올해 초에 복학을 했었지만 통학 도우미 아저씨 월급을 올려줄 여력이 못돼서 다시 휴학을 했다. 한달에 80만원이면 우리 생활비인데...중산층이라고 아무런 혜택도 못 받는 실정인데 기름값은 우리가 주더라도 일주일에 3번 통학만 이라도 도와줄 사람이 나타난다면 바랄게 없겠다”며 눈시울을 붉힌다.대학에서 성적장학금을 줄곧 받아온 김씨는 “어서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교육사업도 하고 싶고, 부전공인 행정학을 공부해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 대학원에도 빨리 진학하고 싶다”며 하고 싶은 공부는 너무 많은데 며칠 전 또 휴학계를 낸 그의 눈에는 슬픔의 눈물이 가득 고인다. 얼른 학업을 마무리하고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씨에게 통학 문제를 도와줄 수 있는 따뜻한 이웃이 나타나기를 바래본다.
“여자 운전기사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고 앞으로도 시민의 발이 되어 양산 전역을 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싶다”“늦은 밤 택시 타는 걸 무서워하는 여성이 많은데 같은 여자라 안심이 된데요”보통 여자들은 3개월도 채 못 버틴다는 운전기사 생활을 한지 3년이 넘은 김분임(44)씨의 말이다. 양산 전역에 여성 운전기사는 총 6명. 그중에도 김씨는 전국모범운전자 양산지회에 속해있는 홍일점이다. 처음 택시운전을 시작했을 때 여자라는 것을 대단해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여자라고 못할 것은 없다고 말한다.운전 경력만 15년인 그는 남편 몰래 택시기자자격증을 따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 운전대를 잡게 됐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일에 만족하고 시장을 보고 오는 노인들을 태워드리거나 분실물을 찾아줬을 때 등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그는 “장거리 가는 분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여자라 그런지 행여나 돌아가는 길을 모르진 않을까 알려주고 조심히 가라고 꼭 당부한다”며 “10여 년 전 까지는 부산에 살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참 순수하고 정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또한 “처음 기사생활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꽃길 조성도 하고 거리도 깨끗해지고 많이 변화했다. 그리고 공기도 좋고 시야가 탁 트이는 경치 좋은 곳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소 일이 힘들어 질 때가 있단다. 교대근무에다 매일 수익금을 채워야 하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유실된 도로 곳곳 때문에 운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며, 공사 중이라서 우회해야 하는 도로도 많아서 사고의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밤에 운전하기가 무섭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취객들이 여자 운전수라서 더 조심하려는 경우가 많다”며 “겁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럴 때 일이 더 만족스럽고 뒷받침을 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힘들 것도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여자 운전기사들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고 앞으로도 시민의 발이 되어 양산 전역을 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싶다”며 당차고 멋진 여성으로서의 각오를 전한다.
“주민들이 기다리는 편지와 소포를 전달하는 일이 너무 보람되고 항상 기뻐요. 우편물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갑니다”매일 아침 시작되는 분주한 손놀림에 이어 오토바이를 타고 주민들을 위해 이 동네 저 동네 바쁘게 돌아다니는 여성들이 있다. 바로 우편물이 있다면 어디라도 달려간다는 양산우체국의 김명숙(51), 곽선임(51), 최정련(47), 손진연(41), 최숙임(38) 집배원이 그 주인공.집배원이라면 흔히 남자를 떠올리기 일쑤지만 그들은 어느 남성들 못지않게 씩씩하게 맡은 바의 일을 척척해낸다. 매일 아침 8시까지 출근해 자신이 맡은 관할지역의 우편물을 우편번호별로 구분한 후 배달할 물량을 챙겨 오토바이나 차에 오르는 일이 다소 힘들지만 집배원이라는 직업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올해로 경력 11년차인 김명숙 씨는 “주민들이 기다리는 편지와 소포를 전하는 일이 너무 보람되고 항상 기쁘다”며 “무더운 여름 찬물 한잔 마시고 가라고 붙잡는 주민들을 통해서는 따뜻한 정을 느끼고 편지에 ‘집배원 아저씨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며 집배원이 천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동안 세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단다.
손수 적은 편지들이 많았던 시절 편지를 기다리며, 집배원이 지나간다 치면 집 앞으로 뛰어나와 반겼지만 이제는 고지서와 광고물이 많아서 집배원을 반기는 주민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전한다.곽선임 씨는 “등기업무는 고객의 집으로 개별 방문해야 하는데 소포가 왔다고 벨을 누르면 문은 열어주지 않고 어디서 온거냐, 내용물이 뭐냐, 일일이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경계부터 하는 주민들을 보면 씁쓸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하지만 시골은 아직까지 인심이 후덕하다는 상·하북의 우편물을 담당하고 있는 최정련 씨는 “오래 일하다 보니 모두가 가족처럼 반갑게 여기고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된다며 밥 먹고 가라고 많이 붙잡으신다. 아직까지는 따뜻하고 훈훈한 정이 많이 넘친다”고 말한다. 이야기의 꽃이 필 무렵 시간이 없다며 1년차인 막내 최숙임 씨부터 11년차인 김명숙 씨까지 서둘러 일어난다. 5명의 여성 집배원들은 오토바이와 차에 차곡차곡 우편물을 담고 그들을 기다리는 주민들을 향해 오늘도 행복하게 달려간다.
“그분들이 장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늙을 텐데 젊었을 때 노인 분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장구가 나와 함께 하는 한 언제나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릴 거예요”봉사란 시간이 있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짬을 내서 해야 한다는 장형이(47)씨. 4년 전 우연히 국악전문가를 알게 되어 그분의 어려운 처지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장구를 강습 받게 된 그는 이젠 장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길을 걷고 있다.우리의 것이 좋다는 그는 1년 넘는 시간동안 치매노인을 돌보는 보호시설에서 노인들을 위해 장단을 치면서 민요를 부르고 장구를 가르쳐 왔다. 몇 달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병원 치료를 받기 때문에 장구봉사를 잠시 쉬고 있지만 그 분들을 위해 장구를 연마하는 시간은 소홀히 하지 않는다. 노인들에게 보다 더 쉽고 재미나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는 현재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항상 자기발전을 해야 한다며, 아픈 몸을 이끌고 매주 평생교육원을 통해 장구를 배우고 있는 것이다.얼마 전 보호시설에 계시던 할머니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는데 너무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게 된 계기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장구가 좋고 원래 어르신들을 좋아한다”며 “그분들이 장래의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는 늙을 텐데 젊었을 때 노인 분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장구를 배우고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이 컸다는 그는 “항상 갈 때마다 사탕과 과자를 쥐어주시고 고이 모은 용돈을 한 푼 건네주시던 노인 분들을 얼른 찾아뵙고 싶다”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노인 분들에게 인사의 말을 건넨다.“할머님, 할아버님, 저 장구는 꾸준히 배우고 있고요. 곧 찾아뵐 테니 항상 건강하세요”라고.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어렵게 생활했던 어머니가 생각나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게 됐다는 이 씨는 종업원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따라줘 즐겁게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4년째 동네 어르신 초청
무료 점심 제공특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이웃 가운데는 작지만 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범어초등학교 옆 장수녹각삼계탕을 운영하는 이태건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씨가 동네 어르신들과 불우한 이웃들을 상대로 점심식사를 대접한 것이 벌써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5월 어버이날을 맞아 주공1차 어르신 63명을 초청해 삼계탕을 대접했고, 인근에 위치한 장애우 복지시설인 (사)무궁애학원에 삼계탕 80그릇을 배달하는 등 봉사의 손길을 늦추지 않고 있다. “범어는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특별히 해드릴 것은 없고 그저 점심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습니다”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어렵게 생활했던 어머니가 생각나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게 됐다는 이 씨는 종업원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뜻을 따라줘 즐겁게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베푸는 생활을 하다보면 얻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장사도 더 잘되는 것 같고… 앞으로도 수입이 느는 만큼 더 많이 베풀 생각입니다. 하하” 쑥스러운 듯 인터뷰에 응하는 이 씨의 모습에서 푸근한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이 씨는 앞으로 소년·소녀가장 등 정말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봉사를 펼치기 위해 시청 사회복지과 등 관계기관과 연계한 활동을 펼칠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한다.“막연히 ‘점심을 대접하니까 먹으러 오라’고 하면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나이인 아이들은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점심무료 쿠폰 등을 발행해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올 수 있도록 배려할 생각입니다”‘서로 나누며 사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정’이라고 말하는 이 씨는 창간 3주년을 맞은 본지에 대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지역의 풀뿌리 언론인 양산시민신문의 창간 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도 지역민의 가려운 곳을 찾아 시원하게 긁어주는 신문으로, 지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신문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합니다”
수없이 배우고 외웠지만 항상 문화재를 설명하고 난 후에는 ‘좀 더 많이 알려줄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우리 고장의 문화재에 대해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양산을 사랑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당찬 여성이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이옥희(47)씨는 5년째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의 얼굴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동료 이형분(47), 김윤숙(44), 이헌선(51) 문화관광해설자와 함께 고장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과 주민, 청소년들에게 지역의 사적지와 민속문화, 무형문화, 천연기념물 등의 문화재 및 유적에 대해 상세한 설명으로 안내를 하면서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해 보다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칫 잊혀 가거나 미처 몰랐던 문화재에 숨을 불어 넣어 생생하고 재미있게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한 법. 그는 “정말 고생 끝에 낙이 있다”며 말문을 연다.
진주전문대에서 가야권문화와 사찰 및 불교문화 등에 대한 1년의 교육을 받고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었다는 그는 통학시간만 해도 왕복 4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오로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양산을 좀 더 알리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다녔다고 한다.이 씨는 “지금 우리 지역에 문화관광해설사가 4명인데 모두다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니고 활동하고 있다”며 “수없이 배우고 외웠지만 항상 문화재를 설명하고 난 후에는 ‘좀 더 많이 알려줄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또한 설명을 들은 관람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문화재를 한번이라도 더 쳐다볼 때 정말 가슴 속에 끝도 없는 기쁨과 보람이 피어난다고. 그는 “우리 지역은 150여점이 넘는 문화재가 있어 곳곳에 조상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전통사찰과 국보, 보물, 기념물, 가야용신제 등 설명을 하려면 끝도 없다”며 양산을 자랑한다.언제나 조상들의 생활상,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알려주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게 봉사활동의 큰 목적 중의 하나라는 그가 바로 양산의 얼굴이 아닐까.
이들은 단순히 통행료를 받는 것이 아니다. 양산을 찾으면 가장 먼저 만나는 ‘양산의 얼굴’이자 양산의 구석구석을 안내해주는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큰 사무실로 옮겨서 좋겠는데요. 축하해요~”지난해 11월 양산 톨게이트가 상북면으로 이전하고 난 후 여직원들이 단골(?) 운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인사라고 한다. 지난해 여름, 본지가 만났던 한국도로공사 양산영업소 여직원들은 여전히 밝은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친절과 미소를 전하기 위해 매일같이 업무시작 30분간 전 ‘서비스 워밍업’을 하고 있는 모습은 1년 전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단순히 통행료를 받는 것이 아니다. 양산을 찾으면 가장 먼저 만나는 ‘양산의 얼굴’이자 양산의 구석구석을 안내해주는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에피소드도 각양각색이다. 박혜숙(43) 씨는 양산 톨게이트를 이전하고 정말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번호가 눈에 익은 자동차가 있었어요. 물론 매일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라 그러려니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날 운전자가 돈을 건네며 제 손뼉을 ‘짝’하고 치더라구요. 자세히 보니 25년전 중학교 때 가정선생님이더군요. 어찌나 반갑던지...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선생님을 찾은 것보다 더 감동적이지 않나요?(웃음)”6년 동안 일해 온 박순자(48) 씨는 베테랑답게 미소 전도사의 역할까지 하곤 했다.
“젊은 여성분인데 이쁜 용모와는 다르게 언제나 굳은 표정으로 톨게이트를 지나가더라구요. 그 사람에게 미소를 찾아주고 싶어 매일같이 말을 건네고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죠. 1년이 지나니까 정말 표정이 달라졌어요. 이젠 먼저 인사하고 어제는 사탕 한봉지 까지 건네주던걸요?”양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양산 사람으로 자리매김한 이들은 오늘처럼 내일도 변함없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길 것이다.
살기 좋은 남한이 북한보다 노인 복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지내기 편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비참하기 그지 없다는 것이 북에서 넘어온 노병의 말이다. 전향 거부하다
3년전 팔순 나이로 탈북3년전 6.25전쟁 당시 중공군에 포로가 된 뒤 전향을 거부해 북한에서 국군포로로 살아오다 팔순의 나이로 탈북해 53년만에 육군 하사로 전역식을 가져 화제가 된 이재학(83) 옹.지금은 남한에 남아 있던 아들 이부건(57) 전 시의원과 함께 탈출 당시 극박했던 상황을 뒤로 하고 평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노환으로 인해 몸이 약해진 나머지 울산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주위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병환이 있어 직접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3년간 이 옹의 한국살이를 이 전 시의원을 통해 들어보았다. 아들 이 전 시의원은 “병도 병이지만 3년전 함께 탈북을 시도했지만 중국에서 체포되어 북으로 송환된 딸의 안부가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부친의 안부를 묻는 기자에게 이 옹의 근황을 전했다. 이 옹은 27세 나이로 1950년 12월 5일 입대해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3년 탈북 직전에 생존 사실이 가족들에게 전해졌다. 무사히 탈북이 이루어져 가족의 품으로 안긴 이 옹은 고향에 돌아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아들 이 전 시의원은 “탈북 환영식 때 한바탕 요란을 떨고 난 이후에 안부조차 묻는 사람이 드물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매년 6.25와 현충일이 돌아오면 호국의식을 되살리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정비해야 한다는 구호가 넘치지만 정작 50여년 동안 전향을 거부해온 유공자인 부친에 대해 관련 보훈단체에서조차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 전 시의원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며 “잠시 반짝하는 관심보다 꾸준한 관심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관련 보훈단체 지도자나 지자체 지도자들이 1년 한 번 정도라도 안부를 물어보는 배려도 없어 아쉽다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 옹은 경로당을 들르고는 깜짝 놀랐다는 말을 이 전 시의원은 전한다. 살기 좋은 남한이 북한보다 노인 복지는 못하다는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지내기 편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비참하기 그지 없다는 것이 북에서 넘어온 노병의 말이다. 또한 남한에서 인심이 각박한 현실에 부딪칠 때 마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고향 땅이 세월에 변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곤 했단다.
행복한 결말이라는 섣부른 판단과 함께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렸던 진선이. 가려린 한 여중생은 또 다시 상처받으면 병마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진선이 투병,
아직 끝나지 않았다지난해 백혈병 진단을 받고 힘겨운 투병을 하고 있는 진선이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양산 곳곳에서는 ‘진선이 돕기’ 움직임이 우후죽순처럼 일었다. 학교와 시민단체 그리고 자치단체까지 나서 ‘진선이 1일 찻집’을 개최하는가 하면 학교 근처에 주거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전세금을 지원해 주고, 학교 친구들은 스스로 모금활동에 들어가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한 생명을 살리자는 취지의 이같은 움직임은 결국 진선이를 학교 품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있게 만들었고 모두가 ‘해피앤딩’의 만족감을 안은 채 진선이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갔다. 하지만 진선이가 다시 아프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이 재발해 3개월의 통근치료를 받아오다 얼마전 울산대학교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소아과 박상규 담당의사는 담담하게 진선이의 상황을 설명했다.
“진선이는 지난해 이식수술 없이 항암치료만으로 거의 완치까지 갔었던 비교적 운이 좋았던 경우였어요. 하지만 현재 다시 재발한 상황으로 9월초 재대혈(조혈모세포)이식수술을 받을 예정이니 좀 더 지켜봐야겠는데요”진선이 가족의 마음은 오죽하랴? 진선이 할머니는 전화를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이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벼락이 어디있소? 기자 양반, 지금은 진선이 상태가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니까 진선이 인터뷰는 완치되면 합시더” 행복한 결말이라는 섣부른 판단과 함께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지워버렸던 진선이. 가녀린 한 여중생은 또 다시 상처받으며 병마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다음에 커서 꼭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빨리 학교에 돌아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영어공부도 열심히 할 거예요’라며 해맑게 웃던 진선이의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힘내라! 진선아
도롱뇽 소송 판결 이후
열린 공간 ‘초록’ 개설유량 측정 계속, 도롱뇽 소송 과정 정리, 기록지난 3년여간 ‘지율’이라는 이름은 환경과 개발이라는 가치의 충돌 사이에서 한시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 6월 대법원이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구간에 대한 공사착공금지가처분신청, 일명 ‘도롱뇽 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이 내린 뒤 잠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이름, 지율.지율 스님은 최근 부산교대 근처에 가정집을 수리해 ‘열린 공간-초록’이라는 쉼터를 만들었다. 식당으로 사용해온 집을 개조한 ‘초록’은 도룡농 소송이 끝나고 난 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던 지율 스님의 바람이 이루어진 결과다. 지율은 ‘초록’에 대해 말하면서 먼저 “규모나 형식이 아닌 내용을 채우는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관리자를 별도로 두지 않는 ‘초록’에서는 찾는 이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이웃 주민들의 반상회도 열고, 아이들이 편하게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일부터 시민단체들이 회의를 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초록’은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다. 2년 8개월 동안 진행해 온 도룡농 소송은 비단 양산에 있는 천성산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새로운 고민을 대변하는 사건이었다. 물론 지율 스님은 그 고민의 가장 앞자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뜻하지 않은 오해의 말들로 한 비구니의 상처도 커져갔다. 오랜 단식으로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면서 지난 5월 기자에게 던진 첫 마디가 “아픔과 잘 사귀었다”는 말이었다. 세상 모든 것과 소통하고자 하는 종교인으로서, 생활인으로서 지율의 심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셈이다. 지율 스님이 연 ‘열린 공간-초록’은 자연과 사람, 삼라만상 모든 것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율 스님은 ‘초록’을 만들고 경북 영덕에 마련해둔 거처를 오가며 ‘도롱뇽 소송’에 대한 과정을 정리한 뒤 세상에 알릴 계획이다. 천성산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 모든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연이 결국 우리에게 또 다른 소식을 시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율 스님에게는 남아 있다. “불편한 것은 비참한 것이 아니다”
지율 스님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민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고 믿고 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과정에서 동의를 구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다소의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구도의 길 위에서 ‘소통’이라는 가치를 부여쥔 이 작은 승려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미래를 가늠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보육교사 역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연수기간이 필요하고 활력을 되찾는 휴식도 필요한데 4~5일의 방학도 갖지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방학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대체교사 인력 지원도 필요합니다”비영리 교사공동체
어린이집 운영“아이들에게 ‘자연’보다 더 좋은 선생님은 없어요”차별화된 바깥나들이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은 해맑은세상 어린이집은 교사공동체로 구성된 비영리 어린이집으로도 유명하다. 2001년 개원한 해맑은세상은 원장이 아닌 대표교사라는 이름으로 안미경 교사가 책임을 맡고 있다. “교사의 설명이나 책으로 배우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어요.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 생활속에서 알아가야 해요. 같은 체험이라도 아이들마다 모두 다르답니다. 이것이 바로 해맑은세상이 추구하는 교육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바깥나들이를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2년 전, 본지가 안 교사를 찾았을 때는 보육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인 부산보육교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제 이 단체가 1년 전 전국보육노동조합으로 전환해 보육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공보육실현 요구를 뼈대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10만에 이르는 보육교사들의 근무환경이 바닥을 친지 오래예요.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는 힘들어요. 결국 부모들도 마음 놓고 아이들을 맡길 수 없어요.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시점입니다”안 교사의 말처럼 실제 올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보육시설 종사자 직무 및 근로환경 실태분석’에 따르면 보육교사 하루 점심시간은 평균 11.1분, 휴식시간 평균 3.6분, 개인청결시간 평균 5.5분에 불과하며 이직을 생각하는 비율도 77.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이유로 보육노조는 ‘8시간 노동보장, 145만원 임금보장, 국·공립시설 확충’ 을 목표로 여성가족부와 맞서고 있다. 안 교사는 “힘없는 사람을 대변하고 소외계층의 힘이 돼 주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해요. 양산시민신문을 지켜보는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시구요”안 교사는 마지막으로 시설장이나 여성가족부나 보육교사나 모두가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아이들의 밝은 미래’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