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는 국가경제정책 및 지역 경제개발계획 등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2003년 기준 사업체기초통계조사를 2월 11일부터 3월 11일까지 30일간 실시한다.
조사는 종사자 1인 이상의 관내 모든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며 공무원 및 조사원이 사업체를 직접 방문, 2003년 1년간의 사업량의 변동과 조직형태ㆍ종사자수ㆍ연간 총 매출액 등 10개항의 구조변동과 경영실태 등을 파악한다.
이번 조사와 관련 시 관계자는 "조사 내용은 통계법에 의해 비밀이 엄격히 보호된다"며 "특히 세무관계와는 상관이 없으므로 조사기간 중 공무원 및 조사원의 조사활동에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시는 이번 사업체기초통계조사에 참여하는 조사요원 41명을 대상으로 2월 10일 정보화교육장에서 교육을 실시했다.
농림부가 국내산 닭고기와 오리고기의 안전성을 알리기 위해 매주 수요일을 '닭고기ㆍ오리고기 먹는 날'로 정해 정부청사와 산하기관 구내식당에 닭ㆍ오리고기 메뉴를 제공하는가 하면 농협 울산본부도 수요일은 '삼계탕 데이'로 정하는 등 닭과 오리의 판매 촉진을 위해 안감힘을 쏟고 있다.
조류독감의 여파로 닭고기와 오리고기의 매출이 급감하자 국내산 닭고기나 오리고기를 먹은 사람이 조류독감에 걸릴 경우 2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겠다며 치킨외식산업협의회,계육협회,양계협회,오리협회 등 4개 유관단체도 현대해상화재에 보험을 가입했다.
부산의 한 유통업체는 자신들의 매장에서 구입한 닭고기에서 조류독감이 발병하면 1인당 1억원을 보상하는 생산물 배상책임보험에 가입 하고 국내산 닭과 오리의 안전성을 부각 하는 등 파매 촉진을 위한 다양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양산시와 영산대학교는 지역발전 및 시민복지 향상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신희범 시장권한대행과 부구욱 영산대학교총장은 2월 11일 오전 시청 상황실에서 시 공무원과 대학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호이해와 협력을 통해 국제화ㆍ정보화ㆍ지방화 시대에 부응하고 지역공동체 발전과 시민복지향상을 위해 행정과 교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상호협력하기로 하는 내용의 협약서를 체결했다.
시와 영산대는 협약서를 통해 △양 기관 상호이해와 협력증진을 위한 친선교류 △지역발전을 위한 공공정책개발 및 현안과제의 연구 △각종 지역현안 사항의 해소 및 지방자치발전방안 상호 모색 △기술혁신과 경영역량을 통한 지역산업육성 상호 모색 △학술정보교류 및 관련시설의 공동 활용 △기타 양 기관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호협력 사항을 중점적으로 수행하기로 했다.
한편 시는 지난 97년 양산대학과도 관ㆍ학 협약을 체결, 상호 협력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기경훈 기자
hun69@ysnews.co.kr
이것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유행어 중의 하나로 우스꽝스러운 어투와 표정에 웃음을 절로 자아낸다. 그러나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절로 난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1,300만 가구 중 408만 쌍의 부부가 적어도 1년에 1회 이상 폭력을 경험하며 남편 10명 중 3명 꼴인 31.4%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정폭력의 원인은 아내와 자녀를 개인 소유물로 보는 가부장적 의식구조,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이 심한 성 차별적 사회구조와 사회전반에 만연한 폭력문화 때문이다.
가정폭력의 잔인성과 이중적 성향에 대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재적 범죄 가능성을 간과한 채 가정폭력을 개인의 문제, 또는 집안문제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가해자를 오히려 두둔한다. 이처럼 남의 가정사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뿌리깊어 가정폭력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결코 ‘여성’만이 아니다. 가족 구성원 전체가 피해자이며 이는 곧 사회전체를 병들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어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 전반적인 대처방안과 지원체계가 요구된다.
상담소에 찾아온 한 내담자의 예를 들어보면,가정폭력으로 인하여 병원에 실려가기를 여러 차례,결국 내담자는 남편의 구타와 학대를 견디지 못해 어린 자녀를 두고 양산으로 도망쳐왔고,대학에서 유아교육학을 전공하여 유치원 교사였던 내담자는 양산지역에서 공사판을 떠돌며 일용직 일을 하면서 어린 자녀를 데려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자녀를 보기 위해 학원에 몰래 찾아가 숨어서 보며 고달픈 생활에 위안을 얻으며 생활했으며, 혹시나 남편이 찾아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친정 집에 행패를 부릴까봐 3년이 넘도록 친정 집에 연락도 못하며 인간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담자가 용기를 내어 상담소를 방문하게 된 계기는 딸과 통화를 하던 중 시부모님에게 학대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였다. 시부모님은 아들이 재혼을 하기 위해서는 자녀를 고아원에 버려야 한다는 얘기를 서슴치 않고 하면서,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에게 밥도 챙겨주지 않고 설거지와 집안 일을 시키며 종종 구타도 한다는 것이었다.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며 돈이 많이 들면 밥을 조금만 먹겠다는 딸의 간청에 숨어서 지내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 내담자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얻어 무료로 이혼을 준비하고 있으며, 심한 폭력과 집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자녀를 방임ㆍ학대하고 있는 남편에게 자녀를 맡길 수 없어 양육권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내담자는 왜 일찍 상담소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했으며, 가정폭력을 경험했던 자녀의 심리적 치료를 권유한 본 상담소의 의견에 따라 이후에 자녀에게 정신과적 치료를 받게 할 것을 약속했다.
위의 사례와 같이 가정폭력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녀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아동들의 행동장애를 유발하고 정서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게된다. 대부분의 가정폭력을 경험했던 자녀들은 가정폭력 가해자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학계의 연구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폭력의 대물림을 근절하고 그 자녀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가정폭력의 그늘 아래에 있는 자녀들을 보살펴야 하고 이들이 양지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적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의) 366-6666, 6670
양산가정폭력 상담소
시립예술단의 각 단을 이꿀 지휘자가 이미 선정된데 따라 개별 단원 구성을 위한 오디션을 지난 9일과 10일 이틀간 문화예술회관에서 가졌다. 심사결과에 따라 곧 단원 위촉을 마치게 될 시립예술단의 단원은 합창단 50명 이내, 관악단 47명 이내, 어린이합창단 50명 이내로 구성된다.
한편 시립예술단의 창단 공연은 일정한 연습기간을 거쳐 올 상반기 중으로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기경훈 기자
지난 1월 10일,웅상읍 이장협의회 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된 서근수(56) 회장을 만나봤다. 명곡 토박이인 그는 "마을 이장(里長)은 행정의 시ㆍ도ㆍ군ㆍ면ㆍ읍ㆍ리 중 최소 단위를 돌보는 사람으로 마을 주민들과 가장 가깝게 생활하며 주민과 행정기관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아서 하는 마을에 꼭 필요한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시에서는 시의 하급 심부름꾼쯤으로 여기고 주민들은 아파트 관리인보다 못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며 "앞으로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마을주민들의 문화와 복지증진에 힘쓰고 주민들의 뜻을 경청해 이를 상급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마을의 대변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웅상읍은 양산 전체 인구의 1/3이 거주하는 양산에서 큰 지역으로 울산과 부산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인구가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어느 지역보다 경제와 교육,환경 등을 보완 육성해 주민위주의 행정이 펼쳐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지역현안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회의원,시장,도의원,시의원,등 지역의 지도급 인사들을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열 계획 중"이라며 또한 "웅상읍의 5개 분과 중 유명무실했던 '복지봉사분과'를 활성화해서 이웃간의 화합과 내 고장의 단결을 위해 문화 행사와 마을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고 강한 열의를 보였다.
교동문제는 "물동량에 비해 도로가 협소한 관계로 시에 예산을 신청 중이며 상습 교통정체구관인 명곡 소방파출소 앞에서 덕계 평산주유소 앞까지 원할한 소통을 위해 경찰서와 교통봉사대의 지원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웅상읍의 산적한 지역현안문제들은 지역주민의 편에 서서 지역주민의 입장을 대변하겠다며 읍에서 동으로 전환문제 또한 농어촌지역 혜택,초등급식,의료 등 정부지원이 줄어드는 부분이 적잖아 지역민이 반대하다며 분동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 옛날 중국 진나라 때에 죽림칠현이 있었다했던가. 서로 친교를 맺고 죽림에 모여 음주ㆍ 탄금(彈琴)하며 청담(淸談)을 나누었던 7명의 사람들. 위(魏)와 진(晋)의 양 왕조 교체기로 정변(政變)이 계속되던 당시의 귀족사회에서는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정치에 관계하지 않고 은둔생활을 하는 풍조가 생겼는데 칠현은 그 대표적인 인물들. 그런데 이 땅, 양산에 칠현을 모신 사당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물론 양산의 칠현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고 시대를 넘어 문화 류(柳)씨의 계보를 이으며 충절을 지킨 류문(柳門)의 선조들이다.
칠현사(七賢祠)- 삼성동 산막마을에 있는 칠현사를 이 마을 통장 류세열 씨의 안내로 돌아봤다. 이 사당은 단종 절의신과 인종 절의신, 임진란 공신, 병자호란 공신 등 일곱 어른을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현종 을미(1835년)에 봉건하여 고종 무진(1868년)에 철했다가 1964년에 복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봉안되어 있는 칠현 한 분, 한 분을 살펴본다.
◆ 류자미
조선의 문신. 자는 원지, 호는 서산, 현감 함의 아들. 1451년(문종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사헌부감찰을 지냈다. 1456년(세조2) 사육신(死六臣) 사건이 일어나자 그 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딸을 데려다 숨겨 길러 자부로 삼았고, 상왕(上王)에 대한 절의를 지켜 일생을 은거하다 임종에 이르러 아들에게 “내가 임금을 위해 죽지 못했으니 내가 죽거든 선조의 무덤 곁에 장사하지 말 것이며, 장례는 불교식으로 하고 제사에는 산밤, 조밥, 미역 등으로 제물을 차리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글씨와 그림에 능했다.
◆ 류광선
자는 국빈, 호는 만풍정. 서산공의 손자이며 대사헌 진의 아들. 인종조에 형조참판을 지냈다. 을사사화 때, 인종이 승하하고 계모 소생인 명종이 등극하자 반대세력이 지나치게 강성하여 울산으로 유배되었다가 왜구의 움직임이 심상찮음을 예지하고 둘째 아들 송호와 전쟁준비에 급급하다 세상을 하직 함.
◆ 류 정
자는 여원, 호는 송호. 대사헌 류진의 손자이며 만풍정공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나라를 구하려는 한 마음으로 의병으로 나아가 곳곳에서 적과 싸워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정유재란 때는 대구의 팔공산으로 나아가서 창을 잡고 말달리며 적과 싸우다가 돌연 말이 쓰러지면서 적탄을 맞게 되었다. 공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옷을 벗어 찢어서 상처를 동여매고 적중으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적을 찔러 죽임이 수십이더니 힘이 다하여 정렬한 전사를 하고 말았다. 이때 같이 싸우던 조카 백춘이 고향으로 운구하여 장사 지냈다. 그의 벼슬은 선공감 부정이었으나 호판으로 증직되었다. 뒤에 경주부윤 윤인함이 그 공을 기록하여 객관에 걸었으며 경상좌병사 김응서가 감탄하여 노래를 지었다.
◆ 류백춘
자는 석향, 호는 재호. 만풍정공의 손자이며 동특랑지의 아들이다. 송호공의 장질인데 창의, 정신출진, 감포기풍, 대용암 작전에서 크게 전공을 세웠다. 귀경하던 중 경주훈련원판관에 임명, 영천, 창암 작전, 대구 팔공산금전에서 대첩을 거두고 돌아와 이듬해 전투에서의 상처가 덧나 37세에 명을 다했다. 가선대부,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증함.
◆ 류영춘
호는 나암. 송호공의 아들이다. 벼슬이 군수에 이르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적을 쳐서 싸우니 전공이 크게 많았다. 선조(宣祖) 27년(1594) 갑오년에 군사를 조련하여 군량을 운송 하다가 창암에서 전사하였다.
◆류득춘
송호공의 조카다. 임진왜란 때 숙부를 도와 전공을 세웠다. 특히 선조 29년(1596) 병신년에는 태화강에 몰려오는 적선의 떼를 보자 하늘에 큰 바람을 빌어 이들을 뒤집어 소탕하였다. 공의 전공은 선무원종공훈 3등이었고 벼슬은 수문장에 이르렀다
◆ 류태영
자는 자실, 호는 지헌. 송호공의 손자이며 나암공의 아들이다. 임진란 때, 임금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즉시 출전, 적장을 초멸하니 그 전공으로 증통정대부, 오위도총부사, 승가선대부, 호조참판에 봉해졌다. 그 후 46년 동안 슬픔의 나날을 보내던 중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역시 임금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때가 왔다하여 70노령에도 불구하고 노비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달려가 호군과 백병전으로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음.
이로써 삼대에 이은 구국충정의 일곱 넋이 이곳에 잠들고 있으니 이름하여 칠현사(七賢祠)인 것이다.
9일 오전 10시 30분에 '동무동무씨동무(어린이 전문 도서관)'에서는 '첫 아이 학교 보내기' 강좌가 열렸다. 양산 여성회 주최로 마련된 이번 강좌는 유승희(신기초등)교사의 강의로 첫 아이가 학교에 진학하는 학부모들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마련되었다.
아이들의 학습에서부터 학교 생활에 잘 적응시키기와 학교 밖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주제로 강의는 이루어졌다.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학부모가 걱정할 만한 사항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어 학부모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지난 12일 웅상초등학교 의 급식소 및 조리장 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웅상초등학교 학생들의 급식 환경이 훨씬 나아지게 되었다.
웅상초등학교의 급식소는 70년대부터 교사(校舍)로 사용하다가 95년부터 급식소로 개조해 사용해왔으며 건물이 낡아 빗물이 새고 나무로 된 바닥이 삐걱거리는 등 내부 시설이 급식소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었다.
작년 반삼홍 교장이 부임하면서 급식소와 조리장 시설 보수를 교육청에 지속적으로 요구,지난 9일 공사를 끝내고 새롭게 단장된 급식소에서 급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날 반삼홍 교장은 "급식소 보수공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교육청에 감사하다"고 말했으며 이귀숙 학부모 회장은 "학부모들의 숙원사업이 이루어져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10일 오전 삼성중학교 구내식당에서는 내ㆍ외빈, 동문, 교육관계자 및 교사와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40여 년간 교육 일선에서 활동한 김옥자 교장의 퇴임식을 가졌다..
양산시 교육청 허정광 교육장의 기념패 증정과 함께 교육관계자들의 감사패와 공로패 전달식을 가졌으며, 축사 및 축시 낭송에 이어 학교운영위원장의 송별사가 이어졌다.
이에 김 교장은 "교육을 천직으로, 교과서를 거울로 지난 세월 동안 아무 탈 없이 보내고,이 영광된 자리에 서게 된 것은 항상 아낌없이 지도편달을 주신 선후배 그리고 동료 여러분의 크신 은혜로 알고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며 퇴임사를 했다.
그리고 학교 특기적성교과목 담당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준비한 특별연주회와 전교생의 스승의 노래를 끝으로 식을 마쳤다.
- 영천초등학교 김남진 교장
- 화제초등학교 이규식 교장
- 소토초등학교 이봉주 교장
- 좌삼초등학교 김유철 교장
- 삼성중학교 김옥자 교장
- 그 동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양산 교육장을 끝으로 퇴임을 하게된 허정광 교육장을 만나 이 날까지 걸어왔던 그의 교육인생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 교육에 몸담게 된 계기는?
― 합천 삼각이 고향이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방송 통신대 2년제와 4년제를 거쳐 경성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학교 최고관리자 과정도 받았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군복을 입고 가르치기 시작했었다. 처음 맡았던 반이 5학년 3반이었는데… 의령을 시작으로 구 동래구를 거쳐 양산으로 와 교직 생활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으로 양산에서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 교육 발전을 위한 제언?
― 타지역에서 발령 받아 오는 교사들이 많다. 그 교사들이 양산의 뿌리에 대해 알고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삼조의혈단'이라든지 '통도사'라든지 양산에 대해 잘 알아야 학생들에게 올바르게 자기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멀리 내다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우고 사람됨과 맵시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결혼식 때 자주 쓰는 말 중에 얼굴이 예쁘면 3개월이고 마음이 따뜻하면 평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맵시 있는 남편 지혜 있는 부인이 된다면 그것은 3대라고 했다. 학생들이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 양산지역의 학생들이 인근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 사실 학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서 외지로 아이들을 위장전입을 시켜서라도 보내고 있다. 여기에 있다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 갈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양산 지역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좋은 4년제 대학 진학률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불안함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이루어 질 것이다. "내 고장 학교 보내기"와 같은 운동을 하였지만 사실 별 성과는 없었다. 그것은 학교나 교사들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좋은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학생들이 다 외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양산 신시가지가 완성되면 좋은 학교 시설과 함께 학생들이 돌아 올 것이다. 해운대가 그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학생들이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교단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과 아쉬웠던 적이 있다면?
― 신기 초등학교에 근무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3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시련도 많았지만 가장 보람되고 재미있었다. 그 당시 훈화록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초ㆍ중학교 중 유일하게 교육장 패를 수상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ㆍ군 종합체육대회에서 입장상과 응원상을 받은 일이다. 보고 배워서 카드섹션도 하였고 학부모들과 함께 하면서 학부모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전국 정책협의회 교총 전국회장패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힘든 적도 있었다.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 때, 학부모와의 신뢰 관계가 무너졌을 때,과도한 업무로 교사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교사로서 관리자로서 힘들었다.
▲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교육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게 선배들보다 후배들에게 잘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사랑도 그래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에게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다시 물려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해도 거지같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신 있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 퇴임식을 하지 않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퇴임 인사장도 안 하려고 했었다. 사실 잘 읽어보지도 않는데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인사장 마저 안 하기는 뭐 해서 아주 짧게 3줄 정도로 인사했다.
잠시 빌린 자리를 내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인데 뭐 거창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 퇴임 후 생활 계획은?
―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자리는 사실 잠시 빌렸던 자리이기에 이젠 다른 사람에게 주고 다시 동네 할아버지로 돌아갈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서 건강하고 즐겁게 신나게 남은 생활을 할 생각이다. 현직에 있을 때 해보지 못했던 등산이나 서예, 골프도 배우고 싶다. 사실 운전을 못하는데 이 참에 운전도 배울 생각이다. 그리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지난 10일 저녁 7시, 신도시에 있는 닭요리 전문점 '닭익는 마을'에 갑자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양산사랑참여시민모임 '양동이'의 회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이들의 초대를 받고 참여한 친구들. 모두 5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활짝 밝은 얼굴로 저마다 식탁을 둘러싸고 여기 저기 자리를 잡았다. 엄마 아빠를 따라온 어린이들까지…
사람들이 얼추 모였다 싶을 무렵, 아마도 그 자리의 최연장자인 듯한 노신사 한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 양산에 조류독감이 몰아치고 난 뒤로 양계농장의 농민들이나 닭, 오리 영업을 하는 분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새삼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입니다."
자신을 '좋은이웃'이라는 아이디로 소개한 그는 "오늘 우리가 소비하는 닭고기가 시름에 젖어있는 분들에게 무슨 그리 큰 도움이 될까만, 이렇게라도 이웃의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며 "이번 캠페인이 지역의 지도층 인사들은 물론 시민사회 전반에 두루 영향을 미쳐 피해 농가나 관련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닭고기,오리고기의 소비가 촉진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서 '너른바위'라는 아이디의 40대 남자가 "원래 닭고기 보다는 생선회나 육고기를 좋아해 닭고기는 잘 먹지 않았지만 고통 받고 있는 양계관련 업종의 이웃들을 외면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며 "아무쪼록 맛있게 많이들 들고 가자"고 했다.
'돌쇠'라는 분은 "부친이 농사를 짓고 계셔서 조류독감 피해 농민들의 아픔이 남의 일이 아닌 듯 해 참석하게 되었다"며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듯이 지금은 어려운 양계농가와 관련업종을 돕는 게 양산을 진정 사랑하는 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양산초이'라는 분은 "살처분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학생들이 몹시 시무룩해 있는 것을 보고 같이 마음이 언짢았다"며 "행여 그들이 닭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까 싶어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전교조 소속 고등학교 교사인 그는 "앞으로 닭고기에 대한 인식이 바로 잡아질 때까지 적극적으로 닭고기 전도사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는 이 업소 업주 오용식(46)씨는 "너무 힘들고 어려워 전업이나 폐업도 심각하게 고려해 봤다"며 "얼마 전 원주의 한 통닭집 주인의 자살 소식을 듣고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오늘 이처럼 여러분께서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시니 그나마 힘을 얻는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업주 오씨의 말에 따르면 평소 하루 매상이 8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는 되었는데 이번 파동 이후 거의 개문폐업상태라고 했다. "어제 매상이 얼마였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3만 6천원이었다"고 말해 좌중을 숙연케 했다.
마침 이 자리에 함께한 공무원노조 양산시지회장 김경훈씨는 "내가 바로 수많은 조류들을 살생한 장본인"이라며 웃음으로 애써 무거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고통 받는 분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참석했다"며 "다 같이 노력하고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조류독감 파동이 안정될 것"이라고 기대 섞인 전망을 했다.
이렇듯 한마음으로 사랑을 주고받는 가운데 겨울밤은 소리 없이 사위어 가고 있었다.
기경훈 기자
hun69@ysnews.co.kr
양산시는 시청 태권도팀의 본격적인 재 운영을 위해 최근 6명의 선수를 선발하여 새롭게 갖추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 2003년 12월 시는 공개모집을 통해 6체급 선수 1명씩을 선발하였다. 이번에 선발된 6명의 선수는 박형순(핀급)선수, 황원형(플라이급)선수, 문정훈(밴텀급)선수, 진우승(라이트급)선수 윤원중(웰터급), 현재호(헤비급)선수로 구성되었다. 올 1월부터 12월까지 1년 기간으로 선수임용 계약을 체결했음을 밝혔다.
시청 태권도팀 감독은 지난해 7월부터 무보수로 활동 중인 심우현 영산대학교 생활스포츠학부 교수가 계속 맡도록 했다. 심 감독은 "이번에 다시 시청 태권도팀을 만드는데 여러 분이 도움을 주었다. 태권도협회 김장백 회장과 신희범 부시장님께 감사 드린다. 태권도를 좋아하다 보니 이렇게 감독직까지 맡게 되었다. 양산관내에 여러 태권도팀이 운영되고 있는데 그것을 아우르는 태권도팀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올 한해 도체전이라든지 여러 전국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에는 국제대회에도 참가할 생각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경기도 성남에서 열리는 국가대표선발예선대회에 참가하였으나 아쉽게도 8강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을 새로운 기회로 삼고 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시는 선수 임용과 함께 양산종합운동장에 태권도실을 마련. 신도시 한 아파트를 임차하여 선수 합숙소로 활용토록 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건전한 취미 활동과 회원간의 친목 그리고 지역의 대표로서 실력 향상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양산시 볼링 협회 소속 회원 50여명이 북부동 소재 자이언트볼링장에서 '2004년 양산시 볼링 남ㆍ여 대표선수 선발전'을 가졌다.
지난 '89년부터 시작한 이 대회는 연초에 양산시 대표선수 선발대회에 신청한 선수들이 하루에 8게임씩 3일 동안 총 24게임을 치른 후 합산한 점수를 가지고 최고점으로부터 차점자 6명씩을 남ㆍ여 각각 선발하여 당해년도 양산시 볼링 대표 선수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해도 양산시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의 대표 선수들과 개인 50여명이 참가 신청을 하여 열띤 경쟁을 하였다.
남자부에서는 1위에 오른 권진성(스카치 소속)씨를 비롯하여 김도식(스피드),이제영(서창),정철주(개인),양희창,하영 씨 등 6명이 선발되었으며,여자부에서는 1위에 입상한 이신애(퍼펙트 소속)씨를 포함해 김현옥(썬레이디),김혜숙(GL),김윤자,허남숙,박선화씨 등 6명이 올해의 양산시 대표선수에 선발되었다.
양산시 볼링협회 김일권(양산시의회 부의장) 회장은 "볼링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좋은 취미를 갖고 건강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보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 끝까지 참여하고 같이 호흡 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이번 선발전을 통해 선발된 선수들은 앞으로 양산시를 대표해 본인은 물론 지역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어느 해 보다도 뛰어난 기량으로 선발된 2004년 양산시 볼링 대표 선수들은 앞으로 1년 동안 양산시를 대표해 각종 대회에 참가 할 예정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의 이해관계가 직결되거나 직접 체험하거나 최소한 제눈으로 보지 않은 일에 대하여는 냉담하거나 아예 무관심하여 한번쯤 생각조차도하려하지 않는다.
최근의 조류독감 문제가 그러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그렇게 떠들어도, 집에서 불과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우리 이웃의 양계농장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하여 그 난리가 났어도 나만 닭고기 안먹으면 되지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런데 10일 양산의 시민단체인 '양산사랑참여시민모임(양동이)'의 닭먹기 모임에 참석하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는 처음 나간 자리이기도 하고 조류독감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어 가만히 듣기만 했는데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기억나는 대로 쓰면 다음과 같다.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나 오리들은 모두 살처분 함으로 시중에 나오는 닭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 설사 조류독감에 걸린 닭이라 할지라도 익혀 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음식점의 경우 평소 8~90만원 정도의 매출이 조류독감 발생 이후로 1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심지어 전날의 매출은 30,000원 정도였다.
요 몇 년 사이 퇴직자들의 약 반수 정도가 손쉽다고 치킨 집 등을 개업하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퇴직금 다 날리고 자살하는 사람도 나왔다.
조류 살처분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공무원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학생은 살처분하는 현장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닭고기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닭고기 먹기를 적극 권장하겠다고 하였고, 평소에 닭고기는 먹지 않지만 오늘 모임의 뜻에 적극 동참하여 나오신 분도 있었다.
모두 좋은 이야기들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을 다시하게 된 것은 참석한 분들의 면면들이었다. 지역 언론관련 종사자, 공무원, 학교 교사, 자영업자, 회사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 자녀와 같이 나온 주부 등등 구태여 면면이라고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들이 자기와 무슨 이해관계가 있다고 닭고기를 먹자고 아니 팔아주자고 하루 저녁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나온 것일까. 이 분들이 하루 저녁 닭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당장 눈에 뜨이게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웃의 어려움에 심정적으로나마 동참하여 어려움을 나누고자하는 그 마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조그만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지탱케하고 사람들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흐름이 되지 않을까. 우선 나 자신이 어제의 모임에서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을 느낀다.
사실은 일부러 초대해주신 분의 면을 보아 마지못해 참석한 감도 없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푸근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4. 2. 11. 전대식
내원사 들머리 내원모텔을 지나는 길에 만나는 -구봉서각실-
거기에 서각가 구봉(丘峰) 최환학 선생이 있다.
얼핏 보아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60년생이란다. 불혹을 넘어 40대 중간 고개에 다다랐는데 얼굴은 동안이다.
나무가 좋아 나무 결을 매만지고 거기에 글자를 새긴 세월이 하마 10여년.
"한번 서각에 임하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미칩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아직도 홀몸이란다. 딸린 식솔이 없으니 스스로의 예술혼을 불태우기에는 제격이겠으나 70노모의 지청구가 이만저만 아니시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안의 장손에 장남이 그다지 돈도 안 되는 나무에 미쳐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으니 그 어머니의 속이 오죽 타셨을까?
"그래도 지금은 어머니도 아주 도통을 하셨습니다. 못난 자식 덕분에 아예 도사가 다 되신 셈이죠."
그런데 그는 무슨 곡절로 이 세계에 접어들었을까?
"처음에는 수석을 했습니다."
돌에 매화문양이 박힌 매화석이나 녹색 바탕에 보라색 포도알 모양을 이룬 포도석 같은 것을 캐내어 그것을 잘 다듬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시키는 일을 하기를 7년여… 끌로 돌을 깎고 다듬는 일에서부터 수석의 좌대를 만드는 공력이 어쩌면 오늘의 서각예술의 입문과정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그는 일찍이 아름다운 것을 보는 심미안과 무엇이든 매만지고 다듬는 손재주를 지녀왔던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여덟 자 나무병풍 앞에 앉아 있는 한 예인을 만나게 되고 병풍에 새겨진 글씨와 그 앞에 정좌해 있는 예인이 품어내는 뭔지 모를 분위기에 사로잡혀 그만 서각의 길에 빠져들고 말았단다. 그때의 그이가 바로 그의 첫 서각 스승인 목인선생. 지금은 인도 어딘가로 공부하러 떠났다는 것만 알뿐 소식이 끊겼다고.
물금읍 가촌이 안태고향인 그는 살림이 꽤 넉넉했던 어린 시절을 아무 거칠 것 없이 자랐다. 한창 힘이 팔팔하던 청년시절에는 넘치는 힘을 가누지 못해 힘께나 부리면서 더러 사고도 쳤지만 한편으론 흙이 좋아 흙에 묻혀 살겠다며 4H클럽 활동을 비롯해 초등학교 동문회 회장, 마을의 청년회와 정당활동 등 날마다 역동적으로 살았다. 그랬던 그에게 서각은 실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에는 토굴 속의 움막이나 들녘의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했는데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칼과 나무를 만지면서 성격도 점차 변해지더군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마음에 안정도 깃들고…"
더러는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을 치기도 하면서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에게 지금은 칼만 들면 온 세상이 내 것이다 싶은 내공이 쌓였다. 아픈 만큼 성숙해졌나 보다.
움막과 비닐하우스를 거쳐 지금의 대궐(?)같은 작업실을 마련하고부터는 또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따랐다.
"서각실이 내원사로 이르는 길목이라 수시로 찾아오는 방문객들 때문에 시달리는 일 또한 여간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절제된 공간에서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오로지 작품에만 정진할 수 있었는데 새삼 숱한 사람들과 접촉을 하려니 작품할 시간도 뺏기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아, 사람에게 시달리는 것도 공부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오더군요."
이제 그에게 세상의 부귀공명은 다 부질없다. 애오라지 서각에만 매달리는 이녁의 삶을 한없이 사랑하고 글을 새길 수 있는 좋은 나무와 조각칼이 있는 한 세상천지에 부러울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의 작품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고 더불어 이런저런 상도 수월찮게 받게 되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2회 △경남서예대전 입선 △부산서예대전 입선3회 △대한민국서화대전 특선 및 우수상, 동상 등을 수상하면서 이 대회의 초대작가로 위촉받고 △모악서예대전 특선2회의 영광을 안았다. 또 전시회도 △통도사 거사림에서의 불우아동돕기 선묵화전을 비롯, △국제각자연맹전 △문자와 만남전 △세 차례의 경남서각협회전 △네 차례의 통도사 성보예술제 △역시 네 차례의 양산미협 회원전을 두루 가졌다.
그래도 그에게 서각은 아직도 미완의 세계 배우고 배우고 또 배워도 다함이 없을 끝없는 길이다. 그래서 요사이도 통도사 성보박물관의 박물관대학 조형서예과정에 나가 배움의 켜를 쌓아가고 있는 일이 마냥 즐겁다. 스승은 한국서각협회 자문위원이며 대한민국서예협회 초대작가인 '화농 김진희 선생'으로 그가 화농 선생을 사사하고 있는 것은 더없는 복이란다.
"이제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젊은 신예들이 서각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어 기성 서각인들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서각계도 놀라운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올해는 제1회 '대한민국서각대전'이 열리는데 이는 서각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지난날에는 글을 모르고 글씨를 쓸 줄 몰라도 다만 손재주 하나로 서각을 하는 이들이 적잖았지만 지금은 자필자각(自筆自刻)- 즉 스스로 쓴 글로 각을 하는 사람이라야 서각인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단다. 서각을 서예, 서화, 전각, 입체서각, 공예를 다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라고 보고 있는 그는 서각입문생들에게 먼저 서예를 배워오라고 권한다.
"좋은 예술이나 좋은 삶은 다 자연에 가까워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서각의 매력 또한 가장 자연에 가까운 예술장르라는 점이죠."
스스로 택한 길을 이토록 만족해하니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싶은데 그런 그에게도 행여 남모르는 아픔이 있을까?
우리나라 초등학생 중 굴절이상으로 안경을 끼는 경우가 60-7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안경을 끼게 되는 원인은 대부분 굴절이상이다. 굴절이상은 근시, 원시, 난시로 나누어지며 그 중에서 근시가 가장 흔하다. 사람은 출생 시 대부분 원시 상태이며 8-10세부터 점차 근시 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 굴절이상은 많은 변화를 보일 수 있다.
근시는 망막 앞에 초점이 맺혀지는 상태로 먼 곳은 잘 안보이고 가까운 곳은 잘 보인다. 주로 초등학교 2-3학년부터 근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을 찡그리고 보거나, TV를 가까이서 보려하고, 혹은 얼굴을 옆으로 돌려서 보려한다. 근시는 대개 20대 초반까지 점점 진행한다. 근시진행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유전적 소인, 생활습관, 영양 등이 알려져 있다.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근시가 흔하며, 부모가 근시인 경우 자녀의 근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너무 가까이 오래보면 근시가 심해진다. 원숭이에게 TV, 컴퓨터 모니터를 많이 보게 하였더니 근시가 많이 진행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원시는 망막 뒤에 초점이 맺히는 상태이다. 원시가 있는 경우 눈이 많이 피로하거나 안통,두통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간혹 눈이 안으로 모이는 내사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증상이 가까운 곳을 볼 때 심해진다.
난시는 눈의 모양이 럭비공처럼 일그러져 각도에 따라 눈에 들어가는 빛의 굴절력이 달라진 상태이다.
시력교정은 안경, 콘택트렌즈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며 수술(엑시머, 라식)은 20세 이후에 가능하다. 최근에는 수술 없이 시력교정이 가능한 드림렌즈가 선택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학생들은 1년에 2번(6달 간격) 시력검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 유아의 경우 1에서5까지 정도의 숫자를 알 수 있으면 시력검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숫자를 모르더라도 검사를 통하여 심한 굴절이상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소아기에 기질적 안과질환이 없는데도 시력이 저하되어 있고, 안경을 껴도 좋아지지 않는 것을 약시라고 한다. 이는 시력발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나타나는 것인데 인구의 2-5%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약시의 경우, 시기를 놓치면 시력회복이 불가능하므로 만 5세 정도에 안과 검진을 반드시 받도록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굴절이상과 달리 안경을 반드시 착용해야하며 가림 치료, 안약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 안경을 언제부터 껴야하는가?
정상시력은 1.0 이다. 하지만 1.0 이하라고 안경을 모두 끼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이면(0.5-0.6 이하) 안경을 착용한다. 학생의 경우 칠판글씨가 보이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시력이 0.6 이더라도 칠판글씨가 보이면 안경 끼는 것을 보류할 수 있다.
◇ 안경을 낀다고 눈이 좋아지는가?
부모님들이 많이 궁금해 하는 사항 중 하나이다. 대답은 "아니다" 이다. 안경을 낀다고 눈이 좋아지지도 않고 나빠지는 것을 예방할 수도 없다. 반대로 안경을 낀다고 더 빨리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도수가 틀린, 특히 높은 도수의 안경을 끼는 경우를 제외하고 안경과 근시의 진행과는 상관이 없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약시의 경우는 예외이다.
◇ 시력을 좋게 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가?
눈 체조, 핀홀 안경, 지압, 침술, 초음파 치료기 등으로 눈을 좋게 하는 것은 효과가 없는 것으로 이미 확인이 되었다.
◇ 올바른 눈의 관리
- TV, 컴퓨터 사용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 독서는 1시간 이상 계속하지 않는다. 중간 중간 5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 눕거나 엎드려서 책을 보거나 흔들리는 차 속에서 보는 것을 피한다.
- 책은 눈 부시지 않을 정도의 조명 하에서 30-40cm 떨어져서 본다
- 적당한 운동, 휴식 및 영양을 섭취하여 건강을 지킨다.
부부가 되어 좋은 사이로 즐겁고 걱정 없이 함께 늙는 것이 백년해로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백년해로까지는 못하더라도 헤어지지 않고 한 평생 같이 살기도 힘든 모양이다. 2002년도의 이혼율이 47%를 넘어 세계 3위라고 한다. 요즘 결혼하는 사람들 두 쌍 중 한 쌍은 이혼할 것이라는 수치다. 아직 통계 수치가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2003년도의 이혼율은 이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다. 지금의 추세로 보면 세계 1위도 시간문제인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이렇게 이혼율이 높다고 떠들어도 실감으로 느끼지는 못했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이혼율이 단순한 통계 수치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쪽저쪽 사돈집, 직장 동료, 고향 친구, 학교 친구, 집안에 이혼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두 해 전 이혼한 질녀가 지난 설에도 고향집에 오지 않았다. 삼촌네들 다 가고 나야 살짝 집에 왔다 가는 모양이다. 이혼한 것이 죄지은 것 아니지만 아직은 부끄러운 것이다.
죽고 못 살 사랑이었기 때문에 그 사랑 식고 보니 더 못 사는 경우도 있을 터이고 사랑 없는 결혼을 해서 결국 사랑 길러내지 못해 헤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한다. 그 사랑의 유효기간이 남자보다 여자가 더 짧다고 한다. 게다가 사랑이 식고 나면 헤어지겠다는 사람이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는 발표다. 그렇다면 이혼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
산과 물을 셋씩이나 넘어 장가든 바보 신랑이 신부 데리러 간다 고리짝에 인절미 북어 닭찜을 지고 가며 이건 인절미 이건 북어 이건 닭찜 열심히 외며 가는데 개울 훌쩍 뛰어 건너다 이름 잊었네
이놈 이름이 뭘까 눌러보고 당겼다 놓았더니 늘었다가 준다 옳구나 '늘어옴지기'구나 아무래도 이름이 안 나와 뒤로 던졌더니 소매 걸려 등을 치니 이놈은 '소매걸어등치기' 이 녀석은 내던졌더니 비둘기가 놀라 구구 푸드드득 날아갔으니 '구구푸디디기'구나
제가 지은 이름이라 잊지 않고 산 넘어 물 건너 신부 동네까지 한 달음에 닿고 보니 때마침 개울가 빨래하는 수줍은 새댁이 낯익어 고리짝 진 채 새댁 대신 앞장 선 새댁네 북슬개 따라 동네 세 바퀴 반 돌아서 사립 개구멍으로 들어선 바보 신랑
장인 어른이 한 입 먹고 맛있다며 마저 먹으려는 인절미 반쪽 뺏으며
"맛만 보라니까요." 다섯 살 어린 아들 녀석이 스무 번도 더 들었던 다음 말을 낚아채며 깔깔깔 넘어간다
그래도 아들 낳고 딸 낳고 백년해로 잘 살았단다
졸시 <이혼>전문
질녀가 이혼을 심각히 생각할 무렵 쓴 시다. 질녀에게 보냈지만 이런 시시한 시로 무얼 움직일 수 있을까. 더구나 백년해로는 혼자 하는 것도 아닌데.
잡지에 실린 것을 읽고 후배가 "형님, 요새 형수님이랑 무슨 일 있는 것 아니죠?" 걱정하는 전화 두어 통 받았던 것이 떠오른다. 그 때 심각했던 것일까?
천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