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영산전 벽화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최광식)은 지난달 25일 영산전 벽화를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통도사 영산전은 석가모니가 ‘묘법연화경’을 설한 영산회상의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산회상도’를 모시기 위해 특별히 지은 전각으로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청은 영산전 벽화가 18세기 초 벽화의 기준자료이자 이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인 만큼 영산전과는 별로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보호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영산전 벽화가 우리나라 사찰벽화로서는
구제역 사태 이후 상북지역은 가축매몰지에서 나올 수 있는 침출수로 인해 마을 대부분이 이용하고 있는 간이상수원이 오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비단 상북지역의 간이상수원이 문제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북지역은 지하수와 양산천, 인근 계곡수 등을 활용한 간이상수도를 거의 모든 마을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축매몰지 외에도 이미 양계농가 밀집지역인
양산도서관(관장 조명숙)이 시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정해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도서관 한 책읽기’ 사업을 진행한다. 도서가 선정되면 해당 도서와 연계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열린다. 해당 도서의 작가와 독서전문가를 초청해 강연회와 시민과 독서회원이 함께 하는 공개독서토론회, 기관과 개인 대상 독서릴레이를 진행한다. 또한 도서관 홈페이지에 ‘한 책 읽고 한 줄 감상’ 이야기 나눔터를 개설해 시민들이 온라인으로도 독서토론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프로그램 내용은 문집으로 제작해 배부할 예정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남동부지도원(원장 이덕재)에 따르면 지난해 양산ㆍ김해ㆍ밀양의 산업재해자는 2천811명(1.08%)으로 2009년 2천851명(1.13%)에 비해 40명 줄었다.
뿐만 아니라 음료시장 내 점유율도 40%에 달하면서 음료시장 확고 부동의 1위를 구축하고 있으며, 국산위스키 ‘스카치블루’로 주류시장에서도 18%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최근 중국 현지법인들의 지분을 인수하는 등 중국음료시장에도 적극 진출하여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모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특히 고객만족을 위한 노력에도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빙기 계절적 요인에 의한 굴착공사 중 흙막이지보공 붕괴, 절성토 사면 붕괴사고 위험이 커짐에 따라 건설현장에 대한 안전점검이 실시된다. 점검대상은 ▶굴착공사ㆍ대형교량ㆍ터널ㆍ타워크레인 설치 현장 등 대형사고에 취약한 대규모 현장 ▶120억원(토목공사는 150억원) 미만 주상복합빌딩, 학교, 공장, 단지형 생활주택 개인발주 공사 ▶층고 4m 이상을 보유한 현장으로 콘크리트 타설 시 거푸집 동바리 붕괴사고 위험이 큰 현장 ▶터파기 작업장의 토사붕괴 예방시설 ▶층고 4m 이상 거푸집 동바리의 안전조치 여부 ▶거푸집 동바리 구조검토와 조립도 작성 여부
이집트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자 이제는 리비아를 비롯한 중동사태가 글로벌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석유 산유국들의 정세 불안으로 최근 국제 유가는 치솟았고 물가 불안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 증시도 연일 답답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외국인이 현물 매도공세를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기관의 지수 방어가 전개되고 있지만 역부족인 모습이다.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 관리기관인 농협중앙회가 최근 구제역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 농가와 도축장, 육가공 업체, 사료 업체 등에 대한 원활한 융자를 위해 최대 3억원까지 특례보증을 지원한다.
조용필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탄자니아령으로 적도에서 남쪽으로 약 330km 지점인 케냐와의 국경 부근에 위치한 세계 최대·최고의 휴화산이다. 산의 크기는 동서로 약 80km에 달하며 그 가운데 키보는 분화구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고 최고봉은 해발 5천895m의 우후르 피크(Uhure Peak)다. 적도 부근에 위치하면서도 만년설(萬年雪)에 덮여 있어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 또는 ‘위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1889년에 독일의 지리학자 한스 마이어(H. Mayer)와 오스트리아 등반가 프르트쉘러(Purtscheller)가 처음으로 키보 봉 등정에 성공하며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양산시청 볼링팀 김효겸(27, 사진 왼쪽), 김현석(31, 사진 오른쪽)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경기도 성남 탄천볼링장에서 열린 2011년도 볼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와 9위를 차지해 10위까지 선발되는 국가대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 이로써 양산시청은 현재 국가대표로 광저우아시안게임 금 1, 은 1개를 획득하고 아부다비 아시아볼링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을 차지한 조영선과 더불어 국내 실업팀 가운데 가장 많은 3명의 국가대표를 보유하게 되었다.
30여년을 전문 금융인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다 느지막한 나이인 60살에 돌연 동양화가의 길을 걷게 됐다. 우연히 잡은 붓은 운명처럼 그를 동양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화가의 길에 들어선 지 불과 5년 남짓. 중국과 일본에서 수학한 뒤 고향인 양산으로 돌아온 그는 짧은 기간에 중국과 일본 한국이 인정하는 동양화가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설파 안창수 화백 이야기다.
인터넷을 통해 양산지역 정보를 검색을 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을 방문했을 법한 블로그가 있다. 바로 양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양산의 인물, 양산의 문화’라는 이름의 블로그다. 양산시청에서 운영하는 것도, 지역기자가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양산의 평범한 시민 정영한(47, 다방동) 씨가 운영하는 이 블로그는 하루에 3~400명이 방문하는 양산의 파워 블로그로 이름나 있다.
경남지체장애인협회 양산시지회를 이끌어 나갈 새로운 회장으로 정해도(61) 회장이 선출돼 지난 15일 취임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정 회장은 지난 2002년부터 4년간 이미 지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베테랑 수장이다. 그는 10여년 전 허리부상으로 지체장애인 6급 판정을 받은 후 협회 활동을 통해 장애인들의 고난과 시련을 목격하고 이들과 함께 거친 인생을 항해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양산지역 내 1만2천여명이 넘는 장애인들과 함께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겠다는 새 지회장을 만나 본다.
삼성동 주민들의 힘을 한 곳에 모으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여가를 즐기는 곳이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첫 작품발표회를 가진 삼성문화의 집이 바로 그곳. 개관 이래부터 운영을 맡고 있는 김명희(사진) 운영자는 주민들이 단순한 문화센터로 느끼지 않고 언제든지 지나갈 때 들려서 쉴 수 있는 주변 이웃집 같은 곳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
[블로그에서 퍼왔어요] 양산 국민체육센터를 이용해보다
[재미로 보는 주간운세] 2월 22일~2월 28일
학년담임입니다. 우리 반에 한 아이 때문에 문의를 드립니다. 학교에 등교를 하기는 하지만 매시간 엎드려 자거나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얼굴에 표정이 없으며 늘 피곤해 보입니다. 무엇이던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도 없어합니다. 특별히 문제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착한 아이인 것 같은 데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요?
폐경이란 모든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생리가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폐경을 일종의 노화과정으로 여겨 치료보다는 당연히 겪고 살아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최근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폐경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삶의1/3 이상을 폐경 상태에서 살아가게 됨에 따라 보다 건강하고 즐거운 폐경 이후의 생활을 위해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폐경의 평균 연령은 50세 전후이며 40~45세에 폐경기가 오게 되면 이때 난소에서는 에스트로겐(난포호르몬)과 프로게스테론(여포호르몬)의 분비가 불규칙하게 되어
이들 9명에 대한 공통적인 죄목은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해 공공의 안녕질서와 치안을 방해했다’는 것. 9명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을 받을 당시 이들의 나이는 20세 전후에 불과해 독립을 향한 양산 젊은이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양산읍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시위하다가 체포되었다. 같은 해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했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후유증으로 1928년 28세에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