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많이 내리는 달입니다.
11월은 창조 밭에서 아이들과 집짓기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겨울철에 맞는 여러형태의 집들 중 폭2미터, 길이3미터의 땅을 1미터 깊이로 파고 그 위를 뼈대로 완성하고 천이나 비닐로 지붕을 엮고 실내는 푹신한 짚이나 낙엽으로 바닥을 깔고 더욱 추운날을 대비하여 땅속 집안에 작은 연통을 세우고 불을 피울 수 있는 벽난로도 만드는 것이지요.
일단 땅에 금을 긋고 삽으로 땅파기 시작. 서로 땅을 파려고 달려드는 아이들과 조를 짜고 1시간 가량 땅을 파보았으나 깊이는 20센티 정도. 1학년이지만 씩씩거리며 제법 삽질을 합니다. 2시간 가량 삽질을 하고 3학년들 차례. 밑으로 갈수록 돌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땅파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던 중 겨울잠을 자려고 바위 밑에 있던 개구리 한 마리 발견. 다행히 상처는 나지 않았습니다. 잠에서 덜 깬 개구리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고,
“우와 야가 와 여기에 있노?” “자는 갑다.” “다시 묻어라.” “아이다 물에 넣어라.”...
결국 상처 안 나게 두 손안에 넣고 조금 떨어진 구석바위 밑으로 옮겨놓고 삽질을 재촉하였습니다. 나중에 가보니 개구리는 다른 보금자리로 간 듯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종일 우리의 친구들이 판 땅이 30센티를 넘지는 못했지만 올 겨울 집을 짓는다는 첫 삽은 뜬 셈입니다. 땅속 친구도 만나 보았고, 땅만 가지고 하루종일 논 하루였습니다.
겨울이 가기 전까지 시간 나는 대로 집을 지으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만의 집을 완성할 부푼 꿈을 키웁니다.
교동에 있는 협성아파트의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인근의 독거노인들과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연말연시에 소외된 이웃의 독거노인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려고 준비했다는 부녀회 김필강(45)회장은 3개월에 한번 지급되는 독거 노인위탁금 15만원에 쓰레기를 분리해서 폐품과 폐지을 모아 마련한 돈과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이날 행사를 준비했다며 어르신들이 자신을 이제 딸이라 부른다며 기뻐했다.
"지난달에는 40여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언양의 온천욕도 다녀왔다."며 신병식(마을이장)씨는 이를 칭찬하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박영석(72)씨는 "이웃간의 유대와 친목을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며 기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 부녀회는 내년에도 바자회 등 수익사업을 열어 지역 어르신들에게 더 많은 행사를 열어 드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경훈기자
17일 양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양산청년회의소 창립 24주년 기념식 및 전역식이 회장단 이ㆍ취임식을 겸해 열렸다.
올해 회장을 맡은 이강희 회장은 이임사에서 "'역동하는 청년, 변화하는 양산'이라는 슬로건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개인의 역량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말했으며 2004년도 양산청년회의소 홍순경회장은 취임사에서 “단합된 힘은 개척과 도전의 미래를 활짝 열어 줄 것이며 스스로 가슴을 열고 보람차고 밝은 미래를 향하여 한걸음씩 힘차게 나가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양산지역 고등학생에 대한 장학금 수여식도 함께 있었다.
경훈기자
해마다 성탄절기가 되면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이곳저곳으로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꿈 많은 아이들에게 고운 추억 하나를 심어주는 일이려니 싶어 그 며칠 동안은 열일 다 제쳐두고 오직 산타클로스 노릇에만 신명을 낸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들여다보며 신산한 삶에 시달린 내 고달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덤으로 얻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산타할아버지 노릇을 한 지도 어느새 스무 해가 훌쩍 넘었나보다.
세월이 흐른 만큼 가지가지 아름답고 소중한 사연들이 소복하게 쌓였다. 그 중에서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
한 15, 6년쯤 되었을까? 그 해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크게 소문내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어느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약속한 24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불교의 사찰에서 경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사찰의 주지이자 유치원 원장인 스님이 산타클로스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니… 불교 유치원에서도…."
내가 뒷말을 채 맺기도 전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고운 꿈을 심어주는 일인데 기독교면 어떻고 또 불교면 어떻습니까?"
다시 쳐다 본 스님의 가슴이 유난히 넓어 보였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자투리 시간에 스님과 몇 마디 따뜻한 얘기가 오갔다.
“나의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지요. 좋은 것은 남의 것이라도 존중해야지요.”
그래서 그 날 밤 그곳에서의 두 서너 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세상살이가 이만큼이라도 견딜만한 것은 넉넉한 마음을 지닌 좋은 이웃들 덕분이려니 하는 좋은 생각 하나를 얻은 그 날, 그 밤은 정말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전영준 편집인
지난 17일 원동면 사무실에서는 수재의연금 전달식이 있었다.
다소 늦은 수재의연금 전달식이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어린 여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 학교 학생회에서는 원동지역 수해 주민을 돕자는 학생회 결의에 따라 최종 1백 71만 1천5백원을 모금해 학교 내 태풍 피해자들에게 우선 61만 5천원을 전달하고 나머지 110만원으로 이날 원동면에서 전달식을 가졌다.
처음 학생들은 자체회의에서 성금을 언론사나 방송국에 기탁하기보다는 낙과 농가의 과실을 구매, 구입 낙과를 경로당에 기탁하는 것으로 계획했으나 구입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직접 원동지역 피해 농가에 성금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
이날 전달식에는 양산여중의 이보령(학생회장), 설지선(부회장), 조근혜(총무)학생과 류성춘, 이성훈 선생님이 참석했다.
“우리 학생들이 너무 기특하지 않느냐”며 시종 따뜻한 눈길을 주고 있는 류성춘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속에는 제자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듯 하다.
1942년생. 하마 인생 60고개를 넘어 선 이 양산 양반이 태어난 곳은 원동면 화제리 지나마을, 당시 다섯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조그마한 산골마을이란다.
교육부 고등교육실장을 끝으로 오랜 공직생활을 접고 지금은 또 다시 평생교육사업에 노익장을 불태우고 있는 신진기 이사장을 만나 본다.
“나의 유년시절은 참으로 암울한 시기였어요. 채 만 여섯 살이 안 된 때인 194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3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 하였고 전쟁 직후 내가 다니던 화제초등학교는 공비들이 불을 질러 불에 다 타버렸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은 피란살이를 하던 물금의 물금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의 가슴 아린 추억들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그러나 어린 ‘진기’가 겪은 유년의 아픔은 나중에 그를 큰 그릇으로 만드는 쓴 약이었다. 고등학교까지를 향리에서 보내고 소년 ‘진기’는 마침내 부산이라는 큰물로 나간다. 1964년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66년 7월, 육군 중위(ROTC 2기)로 제대한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사법고시에 두 번이나 도전 하였으나 실패한다.
그러던 끝에 1968년도에 4급 공무원시험(지금의 7급 공채)에 합격하면서 청년 신진기의 삶은 비로소 새로운 지평을 연다. 총무처 사무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과장과 총무과장, 문교부 과장 등을 거쳐 1991년부터 2년간 부산대학교사무국장을 지내고 그 후 문교부 산업교육정책관, 평생교육국장 등 주요 부서를 맡아 교육정책실무책임자로서의 열정을 다 바친 끝에 1998년도에는 일반직 공무원의 최고직위인 1급 관리관으로 승진하여 교육부 고등교육 실장으로 재직하다가 그해 5월에 퇴직한다.
공직생활 중인 1989년에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을 수료했고 1994년에는 국방대학원을 졸업했다. 해외연수 및 시찰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 벨기에, 헝가리, 중국, 일본 대만,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를 둘러보기도 했다.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1998년부터는 재단법인 한국교과서연구원 원장, 한성대학교 재단이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내고 서울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을 맡고 있는 가운데 2002년 7월에는 사단법인 한국평생교육평가원을 설립하여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공직생활 30여년 중 공교육분야에서 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평생교육분야의 연구와 개발을 통하여 학습사회 실현에 기여할까 합니다. 21세기는 개인의 개성과 창조력이 요구되는 정보화 사회로 새로운 지식을 익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으면 세계화 시대에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자기 능력 개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아울러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고장 양산을 위해서도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갈 각오입니다.”
형제들은 대부분 양산과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특히 바로 밑의 동생이 선산을 지키면서 농사를 지어 매년 일년 먹을 쌀이며 잡곡 등을 보내 주고 있어 지금까지도 이녁이 태어난 곳에서 농사지은 곡식으로 밥을 먹게 해주는 동생 내외가 고맙기 이를 데 없단다.
가족으로는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양산의 몇 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70년대 초 서울로 옮겨 1998년 까지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199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한 후 현재가사를 돌보고 있는 부인 김우자(58세) 씨와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해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외아들 종혁,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며느리가 있다고.
고대국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서 깊은 고장에 한강 이남에서 가장 우수한 부산대학교 제 2캠퍼스가 옮겨 오게 되니 바야흐로 양산이 교육과 문화의 고장으로 크게 발돋움 할 것으로 믿는다는 신 이사장은 양산을 자연과 환경이 보존되는 쾌적한 고장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본보에 당부하는 말로 “우리고장 양산이 교육과 문화도시로 발돋움 하는데 앞장서서 일해 주는 한편 부정적인 기사보다는 시민생활의 문화 창달과 긍정적인 소식을 많이 취급해 줌으로써 양산시민의 진정한 눈과 귀가 되어 달라”고 주문한다.
1982년에 녹조근정훈장을 받았고 1989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처음, 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무슨 내용으로 쓸까 망설였습니다. 글을 쓸 소재를 찾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저의 생활의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양산중학교에서 성적은 하위권의 학생이었고, 이른바 소문난 문제아였습니다. 지금은 어린 시절의 방황이라 생각하지만, 그때는 어린 나이에 술도 먹었었고 담배도 피는 등 나쁜 짓이라고는 다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는 가방을 매고 학원을 늦게 마치고 집으로 가는 학생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양산남부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학급의 반장이라는 것까지 해보았습니다. 반장이라는 책임감을 무기로 처음 해보는 공부였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반장에게 물어오는 학우들의 과제, 이런 과제들을 확실하게 대답해주는 반장.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많이 노력 했습니다.
지금은 달라진 내 모습에 한번씩 깜짝 놀랄 때도 있습니다. 어느 샌가 책상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철들은 건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제는 가방을 매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늦게 가는 학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부고에서 보낸 1년 동안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해주신 분들은 저희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신 남부고등학교 선생님들 이십니다.
세상에는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가르치시는 선생님들.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들.
이런 선생님들이 남부고등학교에 있으시기에 남부고가 살아있습니다.
아직은 시작이라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흡연문제, 학업성적 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문제를 과장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외부의 시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갓 옮겨 심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부고등학교 학생들은 패기와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일들에서 벗어나 모든 것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과 격려입니다.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새가 될 것입니다.
윤보석(1학년 5반)학생기자
“청원제”는 양산남부고등학교의 축제 이름입니다. 언제나 푸른 곳이라는 뜻의 “청원제”. 이름만큼이나 학생답고 즐거운 축제를 즐겼습니다. 11월 7일과 8일 양일에 걸쳐 이루어진 “청원제”는 비록 한 학년 밖에 없었지만 다른 학교에 못지않게 화려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축제의 첫 시작을 알린 풍물공연과 각반의 끼를 발견할 수 있는 반별 장기자랑,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각 동아리의 무대, 힘차보였던 태권도와 합기도 시범, 감미로운 플롯, 피아노, 재즈피아노 연주 등은 정말 같은 학교 친구이지만 알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외부에서 시간을 내어 와 주신 양산고의 “소나기 밴드”와 대구 카톨릭 대학의 재즈댄스 공연은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들이었기 때문에 매우 색다른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 사회자와 동아리, 반별 장기자랑을 병행하여 바쁘긴 했지만 준비하는 동안 평소 그냥 그저 그렇게 지내왔던 친구들과 더욱 친해졌고 하고 싶었던 역할을 스스로 노력하여 해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는 코스프레 동아리인 "ECDYSIS"의 일원으로 패션쇼에 나가기 위해 매일매일 옷도 수선하고 화장도 해보고 포즈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며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나의 작은 꿈을 이룬 것 같아 무대를 내려온 뒤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7일의 마지막을 장식한 클라이막스!! 역시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할 수 있었던 “양산남부가요제” 수업시간에 절대로 들을 수 없던 선생님들의 노래솜씨, 정말 지금까지 어떻게 감추고 계셨는지 너무너무 훌륭한 노래솜씨에 많은 학생들이 쓰러질 뻔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7일 강당 무대 위를 벗어난 후부터 8일까지 연장된 먹거리 장터와 바자회. 그리고 8일부터 시작된 축제의 또 다른 묘미 '전시마당', 1년간 우리 친구들이 미술시간에 만든 작품들을 전시한 교내미술전시회와 양초, 잎맥 등을 만들어서 판매한 과학 실험전시 그리고 친구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남부고”삼행시와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시화전. 새 학교의 장점을 살린 영상물 상영, 그리고 코스프레 패션쇼를 한 학생들이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준 코스프레 전시..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어가신 분은 얼마 안계셨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더욱 많은 분들이 찾아주실 거라고 믿으며 사진을 찍어가 주신 분들에 감사하며 짧은 듯 하면서도 긴 시간인 이틀이 지나갔습니다.
아직 많은 분들이 알지 못해 이 즐거운 시간들을 더욱 많은 분들과 보내지 못한 사실이 안타깝지만 시간이 흘러 양산 남부고등학교가 유명해지면 더 많은 분들이 저희 친구들과 함께 “청원제”라는 즐거운 축제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예지 학생기자
"언제나 함께하는 남부인의 방송 여기는 N.B.S.입니다."
올해 설립이 된 저희 방송부는 올해 막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남부고 교내 최고의 동아리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남부고등학교의 방송반인 N.B.S.를 소개하려 합니다. 저희 방송반 N.B.S.는 동아리활동은 아니지만 클럽활동반으로 조직이 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먼저 저희 방송반의 명칭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N.B.S.는 Nambu Broadcasting Station의 약자로 말 그대로 남부방송국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희 남부고등학교는 2003년 세워진 학교로 최첨단의 시설을 자랑합니다. 저희 N.B.S.의 방송실에는 최첨단의 시설들이 설비되어 있습니다. 방송실의 내부에는 모두 방음처리시설이 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방송에 필요한 시설들이 모두 겸비되어 있고 하나의 방송국이라고 말을 해도 못지 않은 방송장비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방송에 관한 기술만 있다면 다른 방송국처럼 다른 곳에 방영할 수도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N.B.S.는 올해 학교내의 여러 가지 행사가 있을 때 디지털캠코더로 촬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영상물을 편집기를 이용해서 편집을 한 후에 저희 축제영상물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에는 양산고등학교, 양주여자고등학교, 보광고등학교, 남부고등학교 등의 방송반의 연합으로 결성이 된 양산 방송부 연합의 활동에도 참가하여 11월 27일에 열린 방송제에서 저희 N.B.S.가 제작하였던 영상물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축제영상물 이외에도 양산 방송부 연합에서 제작하였던 공익광고와 CF패러디, 그리고 가정문제와 청소년문제를 다루었던 짧은 영화 등의 제작에도 참가하고 활동하여 방송제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N.B.S.는 학교의 중요한 행사나 여러 가지 일을 할 때 항상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우며 분주하게 활동을 합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이 맡은 분야라면 어떤 일이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합니다. 또한 부원들이 모두 손과 입을 맞춰가며, 서로의 정을 두텁게 쌓아가고, 스스로 기계를 만지며 배우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방송에 나가면서, 자신의 글이 방송에 나가면서, 모든 방송일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남부고 방송반 N.B.S.는 점점 더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좋은 방송을 위해서, 언제나 남부고를 위해서 앞장서서 나가는 N.B.S.가 될 것입니다.
오성혁 학생기자
양산시 남부동에 위치한 ‘양산남부고등학교’는 2003년도에 새로 만들어진 고등학교이다. 현재 1학년만으로 남자반 5반, 여자반 4반, 남녀합반 1반 총10반이고 각반 정원은 32~35명이다. “미래사회에 슬기롭게 대응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여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우리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7차 교육과정에 맞추어진 학교’라는 점이다.
학교 건물은 크게 본관(교실)과 별관(특별실), 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본관은 교과별 교육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고, 별관에는 교과별 특별활동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강당은 체육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며, 강당 1층에는 급식소가 있다. 전체 건물의 실수는 116개로, 학생중심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특별실들 중 가장 자랑할 만한 곳은 시청각실이다. 영화관을 연상시키는 시청각실은 200명 이상 수용 가능하며, 최첨단 멀티미디어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강당은 학생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간이 나면 베드민턴, 농구 등을 즐길 수 있다. 급식소는 쾌적하고 깔끔한 밥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매일 다양하고 영양가가 많은 식사가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
그리고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없는, 우리 양산남부고등학교만의 시설은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과 선풍기, 겨울에는 따뜻한 히터가 최적의 공부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 외 장애우를 위한 블록, 화장실 등이 있고, 엘리베이터와 강당과 별관을 잇는 아름다운 구름다리가 있다. 교실에는 쉴 수 있는 베란다가 있다. 교실 밖 복도에는 인조대리석이 깔려 있고 보통 사물함과는 다른 라커룸이 각각 학생들에게 주어져 있다. 학교 정원에는 많은 꽃과 나무들이 심어져있고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양산남부고등학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학교둘레에 담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담벼락 속의 틀에 박힌 공간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생각을 창의적이게 만들고, 열린 사고를 자연스럽게 갖도록 하는 교육적 배려가 담겨 있다.
우리 학교의 배병윤 교장선생님은 흔히 떠올리는 교장선생님 이미지와는 달리 컴퓨터 초고수시다. 그래서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안내해 주시는 친숙한 분이시다.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께서도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다.
'학생을 위한 학교', '학생이 원하는 학교', '학생이 이끄는 학교' 양산남부고등학교의 무한한 잠재력을 학생들이 마음껏 누려주었으면 한다.
박성근 학생회장
산막마을은 천성산 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산골 마을이다. 원래 이 마을 앞자락에 펼쳐져있던 너른 논, 밭에 공단이 들어서고 난 뒤로 마을은 점차 퇴락해 가고 있다. 18세대 5, 60명 정도가 아직도 남아 옛 자취를 지키고 있는 문화 류(柳)씨 집성촌이다.
“공단 소각장에서 일어나는 매연과 분진이 모두 이 골짜기로 올라옵니다. 마을 뒤에 산이 가로 막고 있으니 매연과 분진이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그동안 시에 몇 차례나 건의도 해 보고 공단 측에도 시정을 요구했지만 마이동풍입니다. 도리가 없는 일이죠. 이 작은 마을에서 아무리 용을 써봤자 힘이 있어야지요.”
오랜 선대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이 마을 토박이라는 마을 통장 류세열 씨의 푸념이다. 그렇기도 하겠다. 바로 마을 코앞에까지 공장들이 치고 올라와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어차피 조성되어 있는 공단에서 매연이나 분진이 안 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마을 전체를 이주시켜 달라는 것이 우리 마을 주민들의 요구사항입니다.” 오죽하면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을 떠나겠다는 생각까지 했겠느냐 싶다.
개발의 삽질에 역사의 흔적은 사위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산막마을에는 오랜 세월, 이 마을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마을 남쪽 산등성이를 넘으면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반고굴이 있으니 이곳이 곧 사랑 이야기의 근원이다. 옛날 원효대사를 찾아 이 마을까지 찾아온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요석공주. 이처럼 귀한 신분의 공주가 중을 찾아 머나먼 산골까지 온데는 그만한 깊은 사연이 있었으려니…
원효는 다른 스님들과 달리 불교를 대중화 하는데 힘쓴 승려다. 그러나 이러한 원효의 태도를 다른 스님들은 방탕한 것으로 오해하고 원효를 비난했다. 그러나 원효의 재능을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었으니 원효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가고 마침내 요석공주가 그를 사모하게 되었다. 원효는 오직 불도를 닦고 중생들을 보살피는 데만 전력했을 뿐 요석공주의 애타는 구애를 듣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가 다리를 건너는데 어떤 사람이 무례하게도 원효를 다리 아래로 밀어 넣어 옷을 젖게 한 다음 요석공주가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말려 입고 쉬어가게 하였다. 그 날 밤의 인연으로 생긴 아이가 바로 뒷날 신라의 위대한 학자였던 설총이었다.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인연을 맺은 다음날 홀연히 궁을 빠져나와 수도와 진리탐구에 더욱 매진하기 위해 이곳 반고굴에 왔던 것이다.
원효가 떠난 뒤 날마다 원효의 소식을 기다리다 애가 탄 요석공주는 원효를 만나기 위해 설총을 안고 여기까지 와서 산에 막을 치고 지냈다 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사람들은 요석공주가 산에 막을 치고 지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산막이라 불렀다 한다.
삼성동사무소를 찾았더니 김남탁 동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동면 출신의 양산 토박이. 올해 쉰다섯의 김 동장이 공직에 몸을 담은지도 어느새 35년을 넘어 40년 세월을 바라보고 있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급을(현재의 9급) 공채를 거쳐 한 행정구역의 지도자 자리에 이르기까지 줄곧 고향 땅 민초들과 등 부비며 살아왔다니 그로써 보람된 세월이었겠다 싶다.
“양산을 부산에 편입시키겠다고? 이건 양산의 자존심과 긍지를 짓밟는 발상입니다. 부산이야 근대에 와서 비로소 도시로서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우리 양산은 아득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얼과 혼이 면면히 이어져 온 곳입니다. 우리 민족의 거룩한 성지인 천성산이 똬리를 틀고 있고 옛 삽량주의 정신이 계승되어 오고 있는 고장이 양산아닙니까?”
최근 들어 양산 안팎에서 논의된 바 있는 양산의 부산편입론에 대한 일침이다. 양산을 사랑하는 양산사람다운 기백이 번득인다. 그러면서 또 덧붙이는 말.
“옛날에는 마을의 어른들이 헛기침만 해도 온 마을이 옷깃을 여몄지요. 그런데 지금은 어른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니…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윤리와 도덕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지렛대입니다.”
윤리와 도덕을 숭상하는 정신문화가 뿌리내리지 않고는 온전한 사회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김 동장은 양산이 날로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는 것이 반갑기는 하지만, 개발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아름답고 소중한 자연환경들이 많이 훼손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개발할 곳이 있고 애써 보존해야 할 곳이 있는데 그것을 잘 구별하는 안목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바쁜 공직생활 중에도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대를 졸업했을 만큼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김 동장에게는 부산대 화학과를 졸업(교직과정 이수)하고 임용고시 준비 중인 딸과 부산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다니다 군에 가 있는 아들 남매가 의젓하고 반듯하게 자라준 것이 무엇보다도 고맙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으뜸이라고 믿고 있는 그는 은퇴 후에 텃밭이라도 일구며 살았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간직한 채 이녁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에 감사한다.
◇ 북정리고분군 [北亭里古墳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93호로 지정되었으며 양산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면적은 25,994㎡로 오봉산 중심이 되는 산등성이 일대에 있는 무덤들이다. 대형 무덤은 산의 윗부분에 퍼져 있고, 소형 무덤은 비탈진 곳이나 산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무덤들 가운데 부부총(夫婦塚)과 금조총(金鳥塚)은 1920년에 조사되었고, 1990년에 내부구조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무덤들은 모두 관을 보관하는 돌방(석실)의 앞면이 트인 앞트기식굴방무덤인데, 부부총은 산 위쪽에 자리 잡은 대형무덤으로 돌방 내부의 벽면과 천장을 흰색으로 칠하여 장식하였다. 반면 금조총은 산의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소형 무덤인데, 무덤들이 자리 잡은 위치와 형태가 다른 것은 무덤 주인들의 신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두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 금제장식품을 비롯한 화려한 유물은 경주지방의 대형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과 비슷하다. 부부총의 경우는 추가장으로 남편이 5세기 중반 이후에 먼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 유물로 볼 때, 무덤의 주인은 신라의 중앙정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또는 그 친족에 해당하는 인물로 추측된다.
◇ 신기리고분군[新基里古墳群]
사적 제94호. 고분 50여기가 삼성동 남쪽 약 10만㎡의 산기슭 경사면에 있으며, 봉토(封土)가 거의 깎여 보이지 않는 것도 있다. 지금까지 정식으로 학술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의 고분들은 도굴, 파괴되었다.
고분의 구조 및 시기는 파괴된 상태의 모습으로 보아 고신라(古新羅)시대에 가야지역에 흔히 보이는 앞트기식(橫口式) 돌덧널무덤 또는 돌방무덤(石室墓)들로 보인다. 이러한 무덤은 인근의 중앙동에 있는 고분들과 같은 형식의 무덤이다.
삼성동ㆍ중앙동은 남해에서 경주 등지로 이르는 수륙교통의 요지로서 양산 신기리 산성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왜인(倭人)을 막는 군사적 요충으로서 기능했다고 보인다. 따라서 신기리고분군은 신기리산성과 관련하여 이 일대에 세력을 가지고 있던 지배자들의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중앙동에 있는 산성 및 고분군 등도 같은 시기에 같은 기능을 하던 유적들로 보인다.
◇ 신기리산성 [新基里山城]
사적 제97호. 양산시 중심부에서 북동쪽 1km의 거리에 있는 산성봉(山城峰:332m)의 정상부에 축성된 산성으로, 이 산을 성황산[城隍山] 또는 서낭산이라고도 부르므로 성황산성(城隍山城) 또는 서낭산성이라고도 한다. 성의 둘레는 약 2.6km로 성벽은 대체로 네모난 깬돌(割石)을 이용해 1m의 높이로 쌓았다.
대부분 무너졌으나 둘레 2,600m, 높이 1m 정도가 남아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가 낙동강을 통해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양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과 성 안에서 신라 토기조각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성의 남쪽에는 이 산성과 규모가 비슷한 북부동산성이 있어 쌍성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 양산이 신라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알게 한다.
◇ 신기리지석묘 [新基里支石墓]
1990년 12월 20일 경남도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으며 양산시에서 소유ㆍ관리하고 있다. 1기로 양산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이 지역 일대에 여러 고인돌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개발로 인하여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묘의 형태는 긴 사각형의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支石)을 갖춘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남방식 고인돌이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40㎝, 폭 155㎝, 높이 100∼130㎝이다.
편마암류의 단단한 돌로 되어 있으며 윗면은 편평하며 알구멍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은 둥근 냇돌로 덮개돌 아래에 고여져 있다. 하부 구조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하지 않으나 일반적인 고인돌과 같이 지하무덤방이 설치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호계리마애불 [虎溪里磨崖佛]
1979년 5월 2일 경남도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 호계동의 큰 바위 얼굴로 불려지고 있는 이 마애불은 호계리 월전마을 뒤 산중턱에 있는 큰 바위의 남쪽면에 새긴 것으로 불상 높이 220㎝, 대좌 높이 320㎝이다. 바위 아래에는 사람 10명 정도가 기거할 만한 동굴이 있는데, 온돌을 구축한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지역에서는 원효가 젊었을 때 수도하던 반고굴(磻高窟)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마애불로는 드물게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작은 머리묶음이 있다. 몸에 비해 큰 얼굴, 길게 감은 눈, 큰 코, 다문 입 등은 투박한 인상을 준다. 신체는 풍화가 심해 뚜렷하지 않은데, 양 어깨에 걸친 옷이 두툼하게 선각되었고, 손·발 역시 투박하게 표현되었다.
대좌(臺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평면형을 선으로 새겼고, 광배(光背)는 타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희미하게 선만 남아 있다.
면적 15.92㎢, 인구 22,855명(2003. 11월말 현재)이다. 북쪽은 상북면에 접하고, 북동쪽은 가지산(迦智山: 1240m) 도립공원에 속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북부동과 경계를 이루는 북부천과 북쪽의 호계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 양산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양산군 읍내면(邑內面)을 1918년에 양산면으로 바꾸었다. 1979년에 양산면이 읍(邑)이 되었고, 1996년에 양산읍이 시(市)로 승격함에 따라 중앙동ㆍ삼성동ㆍ강서동으로 나누어짐으로써 삼성동이 신설되었다. 행정동인 삼성동은 법정동인 신기동ㆍ북정동ㆍ산막동ㆍ호계동을 관할한다.
호계천 주위에 서륭산업, 대림합판, 롯데제과 공장이 있고, 양산천 주변에 동아타이어㈜, 한진공업, ㈜LG, 포항화성, 유진화학, 한남식품 등이 있다. 주요 도로는 경부고속도로와 35번 국도가 남북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양산인터체인지가 있다.
문화재로는 ◀북정리고분군(사적 93), ◀신기리고분군(사적 94), ◀신기리산성(사적 97), ◀신기리지석묘(경남도 기념물 103), ◀호계리마애불(경남유형문화재 96)이 있다.
현재 국회에는 열린우리당의 김성호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지난 10월 18일 정기 국회에 상정한 '지역신문발전지원법'과 그로부터 한 달 전인 9월 19일 한나라당의 고흥길 의원 등이 발의한 '지방언론지원특별법' 및 주간지역신문협회의 안을 목요상 의원이 발의한 법안 등 지역신문 관련 세 법안이 상정되어 있다.
비록 내용상에 차이는 있지만 지역신문 지원을 위한 유사 법안이 동시에 세 개나 상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매우 드문 일로 여야 모두가 공감하는 사안이라는 점 때문에 법안 통과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갖게하였으나, 법안 단일화를 위한 심사 소위와 공청회까지 개최되고 11월 22일의 상임위 통과만 남겨둔 상황에서 갑작스런 국회의 공전 사태로 임시국회로 그 처리가 미루어지게 되었다.
세 법안 모두가 경영이 어려운 지역신문을 지원하자는 취지는 비슷하지만 이에 대한 해법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는데, 우선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은 지극히 단순하게 지역신문의 경영이 어려우니까 지원하자는 것으로 지역일간신문만을 그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목요상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지역일간신문은 배제하고 주간지역신문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지역언론개혁연대에서 마련한 안을 토대로 열린우리당의 김성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일간과 주간 지역신문 모두를 대상으로 하되 지역신문의 건강성과 자생력 회복을 위한 개혁을 전제로 한 지원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어쩌면 현재 지역신문들이 처해있는 상황으로만 본다면 지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신문은 극소수에 불과할 수도 있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일간지에 비해 규모에서 열세인 주간지역신문사들 중에는 그 혜택이 과연 우리에게 올까? 또는 일간지 지원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적 시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정부의 지원에는 아직도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자칫 권력과 언론의 상호결탁으로 변질되거나, 건전한 시장경쟁 체제를 왜곡시키고, 오히려 지역언론의 경쟁력을 더욱 저하시킬 수 도 있으며, 퇴출되어야 할 지역신문이 계속 남아 지역사회 부조리를 배양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며, 지역신문을 개혁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지원이 되어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당장은 지원에 대한 전제 조건이 까롭지 않은 한나라당 측 법안이 더 좋아 보이겠지만 만약에 이 법안처럼 지역신문 스스로의 변화와 개혁 없이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귀중한 세금을 왜 사기업의 지원에 투입하느냐는 국민적 저항과 지원의 의도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 또는 언론의 독립성에 대한 시비에 부딪히게 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이미지의 실추로 인해 독자 및 광고주의 이탈로 약이 아닌 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바른지역언론연대의 회원 신문사들부터라도 최소한 이 법안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자율 개혁적 조치를 미리 갖춤으로써 주간지역신문 스스로 변화를 위해 정말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지역주민들에게 확고하게 심어주어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주간지역신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키려는 일부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줄 것을 당부한다.
김영호 교수
지역언론개혁연대 대표/우석대학교
올해 말 종료 예정인 농ㆍ축협의 조합예탁금 및 농어가목돈마련저축 이자 소득에 대한 비과세 시한이 3년 연장되었다. 국회는 9일 본회의를 열어 농업부문에 대한 조세감면 시한 연장을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중개정법률안'(대안)을 의결했다.
그 동안 지역농ㆍ축협의 2,000만원 이하 예탁금 및 농어가목돈마련저축에 대한 이자소득은 조세특례제한법 및 동시행령에 의거 2003년말 까지 비과세 되었으나, 지난 8월 정부가 세제개편방안 발표를 통해 농ㆍ수협, 새마을금고, 신협 등에서 취급하고 있는 비과세 예탁금제도를 금년말로 폐지하고 2004년은 5%, 2005년부터는 10%를 과세하는 저율과세안을 발표하자 농업인 및 농업단체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농업계의 주된 관심사항이 되었었다.
이번 법안의 통과로 농업인들은 예탁금 및 목돈마련 저축가입을 통해 농가부채 상환자금 및 재산형성 자금을 축적할 수 있어 농업인의 저축의욕 고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지로 비과세예탁금을 취급하는 상호금융기관의 총 예탁금 154조 6천억 중 비과세예탁금이 82조 1천억원으로 그 비율이 53.1%에 이르고 있다.
특히 DDA, FTA 협상등 농업시장 개방 확대에 따라 농업인 소득이 도시 근로자 소득의 70%대로 감소하고 농가부채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번 법률안 통과로 농어민들은 약 2,500억원의 이자소득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과세제도 폐지시 25조원의 자금이탈 및 5천3백억원(조합당약4억원) 정도의 수익감소를 예상했던 지역조합에서도 이번 법안통과로 사업기반을 확고히 함과 함께 금융시장 전면 개방에 대한 경쟁력 강화 준비기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며 반기고 있다.
아울러 조합들은 이번 법안 통과가 조합원에 대한 지도ㆍ경제 사업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지역농ㆍ축협이 신용사업의 수익으로 조합원과 지역민에 대한 지도ㆍ경제 사업을 충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신용사업의 붕괴는 곧 농업인 실익사업의 축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지로 2002년 기준 조합 신용사업 전체 순이익의 71%가 지도ㆍ경제 사업에 지원되고 있다.
※ 문의 : 농협중앙회 상호금융기획부 권용대 과장(☏2127-7706)
편집부
제 1회 국민생활체육 양산시 웅상검도지회장(김영준)기 "초청검도대회"가 웅상중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양산과 부산지역 검도인을 초청한 이날 시합은 전체 15개 단체, 2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생활체육으로서 검도의 활성화와 지역 검도 육성을 목적으로 개최된 이날 행사는 남ㆍ녀 일반부, 중등부, 초등부등이 단체전과 개인전으로 펼쳐졌다.
대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정재훈(진무관 관장)씨는 “이번 대회를 통해 검도가 누구나 즐기는 보편적인 생활 체육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회 운영위원장인 진검회 소속 김순옥씨는 “절도와 예절을 중시하는 검도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하기에 좋은 운동이다”며 성공적인 대회 운영에 고무된 표정이었다. 이번에 개최된 검도 대회는 지역의 검도 동아리인 진검회와 진무관(관장 정재훈)등이 기획한 대회로써 생활체육의 활성화 방안의 한 대안을 보여준 대회라 하겠다.
웅상지역에서 개최한 이번 검도 대회뿐만 아니라 다른 생활체육 단체에서도 이러한 시도를 계속함으로써 엘리트 중심의 체육에서 누구나 참여하는 생활체육 중심으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기경훈 기자
경기 침체로 예년에 비해 30%정도 우편물이 감소할 것이라는 정보 통신부 관계자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양산우체국에서는 성탄ㆍ연하카드, 각종 공과금 고지서 등의 통상 우편물이 한꺼번에 몰려 우편물 정시 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산우체국(국장 최일태) 집배실 박명숙(35)계장에 따르면 “이 달 들어 시내에 접수되는 소포 우편물이 폭증, 하루평균 최대 1,500개 까지 달해 우편물 적기 공급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워낙 물량이 폭주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올해 연말연시 우편물 접수 예상물량은 261만 통으로 지난해 180만4233통에 비해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우체국은 성탄ㆍ연하카드와 신년 선물 우송, 공과금 고지서 등이 한꺼번에 몰릴 이달 중순 이후를 대비해 장비 점검과 부족한 인력 확보 등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임시직은 10명 이상 더 늘였으며 타 부서 직원들이 집배실 업무에 지원하는 등 집배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있다.
집배실에서 우편물을 분류하던 한 직원은 “2시간 이상 연장 근무를 하는 것은 매년 겪어야 하는 연례행사이기도 하다”며 “연말 연시에는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지원해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올 연말도 학생들의 자원봉사를 기대 한다”고 말했다.
양산 우체국 관계자는 “우편물이 폭주하는 연말에는 정시 소통이 어려운 만큼 선물류, 소포우편물, 연하카드, 입학원서 등 시한성 우편물은 도착 기일에 늦지 않도록 미리 발송하고 기일이 촉박한 경우는 ‘특급이나 빠른우편’을 이용해 불편이 없기”를 당부했다.
기경훈기자
양산시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의 영향권에 들면서 전반적으로 보합세를 유지하면서 아파트 분양권의 소폭적인 하락으로 이어져 토지를 중심으로 신도시 주변의 경우 상승세가 멈추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풍부한 유동성 자금들이 투자수익과 안정성이 유지되는 부동산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공인중개사 과다 배출로 양산신도시 특수를 노리는 중개업소의 난립으로 인하여 양산의 부동산 시장은 방향을 잃고 중심없이 혼전하고 있는 상태이다.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되면서 문을 닫는 중개업소가 있는가 하면 신도시 특수를 기대하며 새로 개업하는 중개업소도 있는 실정이다. 향후 양산의 부동산 시장은 어떨까? 경기 침체 및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 등으로 전반적으로 안정보합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아파트시장은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이나 풍부한 유동자금의 영향으로 토지시장은 안정세를 유지하면서 소폭의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8일 양산 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2003년도 새마을운동 사업추진 성과보고와 함께 시상식이 있었다.
장복자 양산시 새마을 부녀회 회장은 국무총리상을, 상북면 새마을 지도자 김태원씨가 행자부장관상을 수상하는등 새마을운동 우수지도자에 대한 시상식이 있었다.
올해 새마을운동 양산지회(지회장 김경곤)는 <생활의식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읍ㆍ면ㆍ동별 새마을 문화센터를 개설 운영하고 있으며 <내고장 활력화 운동> <환경가꾸기 실천운동> <민간사회 안전망운동> <회원확충 및 지도력 개발운동> <자립기반 조성운동>등 여섯가지 역점 사업을 추진해 왔다.
기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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