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법원의 천성산 현장답사에서 원고와 피고간에 도롱뇽 서식여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바 있던 고속철 천성산 관통 반대 소송 2차 심리가 26일 울산지법 민사 10부(재판장 윤인태 수석부장판사)주재로 열렸다.
이날도 원고와 피고사이에 뜨거운 설전이 예상되었으나 심리는 10여분만에 끝나고 1월 16일 2차 심리를 계속하기로 했다.
급수인구에 비해 과대 시설로 방치될 우려가 높아 논란을 빚어 온 양산시 신도시 정수장이 1단계공사는 추진하고 2, 3단계는 인구 변화에 따라 추후 결정하는 방향으로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
시와 토공은 최근 건립중인 1단계사업은 현행대로 추진하고 나머지 2단계는 신도시 형성에 따른 인구변화 등 상황에 따라 추후 건립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대신 당초 투입 될 건립 예산 분은 토공이 양산시에 현금으로 지급, 시가 필요에 따라 2단계 건립을 추진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그러나 토공은 양산신도시 조성과정에서 발생한 6천억원의 적자 분을 줄이기 위해 시에 주려는 현금 분을 최대한 적게 주려해 80억원 정도가 거론되고 있고 양산시는 당초 예산안이 260억원을 모두 달라는 입장이어서 금액을 두고 양자간의 줄달리기가 계속 될 전망이다.
신도시 정수장은 신도시 조성에 맞춰 급수인구 22만명을 기준으로 하루 11만 4천t 생산 예정으로 1, 2단계로 나눠 건립을 추진해 왔다. 현재 건립중인 신도시 정수장 1단계는 하루 3만8천t 생산규모로 오는 2006년 1월 완공 예정으로 건립 중이다. 논란이 돼 온 신도시 정수장 2단계는 신도시 택지 2단계 입주민과 신도시지에 공급 예정으로 계획돼 있다.
그러나 최근 신도시 정수장 건립을 계획대로 추진하자는 양산시측과 부산대 제2캠퍼스 이전으로 사업지구 인구가 축소돼 정수장 규모를 축소하자는 토공측의 주장이 대립해 마찰을 빚어왔다. 토공측은 부산대 제2캠퍼스 유치로 당초 아파트 수용인구 19만명보다 4만6천여명이 줄어든 14만여명으로 추정돼 물 공급량도 11만4천t에서 8만6천으로 줄어 2단계 정수시설까지 건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밀양댐에서 공급하는 하루 8만t의 물이 양산 일부 지역에서 타 지역까지 확대될 경우 양산시의 전체 상수도 공급량이 인구예상치보다 초과해 신도시정수장 일부가 유휴시설로 방치 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반면 양산시는 부산대 유치로 병원 관련 시설, 임시 거주 학생 등 실 거주인구의 증가 요인이 발생해 오히려 아파트 수용 인구때 보다 물 수요량이 더욱 증가해 시설 용량 축소는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해 왔다.
앞으로 양산시의 신도시 정수장 문제는 시나 토공의 이익싸움이 아니라 양산시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검토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양산시는 웅상 정수장 하루 5만5천t, 범어 정수장 하루 5만t, 밀양댐에서 하루 8만t 의 수돗물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충부 음성에서 발생한 홍콩조류독감이 전국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도내에서 가장 많은 양계농가를 보유한 양산시도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양산시에는 240여 양계농가가 160만수를 기르고 있고 주 피해대상이 오리는 45농가에서 9천600두 정도에 불과하다.
이외 칠면조, 꿩, 메추리 사육농가도 다수 있어 조류독감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산시 농업기술센터는 방역차량 2대만으로 방역활동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이번 주부터 3천수이상을 양계하는 규모가 70여 대형양계 농가에 2천500만원을 들여 1천100kg의 소독약 저미사이드를 배포, 자체 소독을 강화시켰다.
방역활동이 미치지 못하는 170여 소규모 농가에는 6t분량의 생석회를 마련, 도포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양계농민들은 "양산에는 250여 양계농가가 160만수를 기르고 있지만 방역차량은 겨우 2대뿐이고 그나마 농가자체에서 할 수 있는 예방활동은 외부인 출입금지와 생석회나 도포하는 것에 불과해 불안하다"며 방역활동 강화를 요구했다.
양산시에는 260여 농가가 대부분 육계가 아닌 산란계로 오경농장이 120만수, 퓨리나사료가 30만수, 두례마을이 20만수를 계약해 계란을 생산하고 있으나 이들 업체 대부분은 시민들이 계란 먹기를 꺼려 출하량이 20%나 격감했다.
시는 현재까지 조류독감이 양산인근까지 전염이 안돼 통제초소나 차단방역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의심되는 닭과 오리가 발생 때는 신고토록 하고 있다.
양산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조류독감은 주로 육계에 전염이 많은데 양산에는 산란계가 대부분이어서 전염 가능성이 덜하지만 바이러스감염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매일 방역작업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농림부는 최근 국방부와 교육인적자원부, 경찰청 등에 등을 지속적으로 소비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며, 소비자단체와 농협에서도 닭ㆍ오리고기의 시식회를 여는등 가금류의 소비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양산시는 내년도 예산안을 2천742억원으로 확정했다.
이 같은 예산안은 올 초 예산 대비 2천990억원 보다 248억원 줄어든 것으로 일반회계는 2천193억원이며, 특별회계는 548억원이다.
내년 예산안에 반영된 주요 사업은 △도시계획도로 개설 210억원 △원동 지나~화제간 도로 등 지역 도로와 농어촌도로 확ㆍ포장 63억원 △국도35호선 확ㆍ포장 31억원 △하수처리장 증설 및 하수관로 사업, 화제 소규모 하수처리시설 391억원 △유산매립장 복구사업 및 지분인수 105억원 △유산매립장 조성 32억원이 투입된다.
또 △이원수기념사업 부지 매입 52억원 △북정고분군정비 10억원 △동경남문화체육센터 건립 28억원 △원동문화체육센터 건립 10억원 △가촌부대부지 매입 24억원 △청사광장 정비 10억원 등이 소요된다.
시는 이 같은 사업의 추진을 위해 △환경녹지분야 6백31억원 △도시개발분야 3백50억원 △사회보장분야 2백1억원 △문화ㆍ관광분야 1백3억원씩을 각각 투입키로 했다.
그러나 일반회계에서 시 청사 및 의회 보수공사비와 청사 광장 재정비 요구액이 각각 10억원씩 20억원이 삭감됐다.
또 중국에 화훼수출 전진단지조성 예산안 10억원도 삭감됐다.
박제상 유적지 정비 부지 매입비 7억2천만원과 문화예술회관 조형물 설치 3억원도 전액 삭감됐고 시내버스 지원금 3억3천여만원도 전액 삭감됐다.
.
.
13일 낮 12시, 양산 신도시 주공8단지 주민 400여명은 “언제까지 참고 사나 소음분진 못살겠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상록대아 아이투빌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과 대림아파트 건설 현장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지난 봄 부터 시작한 대아건설의 공무원 조합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의 8,500여개 파일을 박는 지반 공사로 인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 소음과 먼지, 분진의 다량 발생으로 아파트 주민들의 정신적, 물질적 손상에 대한 보상과 그동안 대아건설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항변하며 회사측 책임관리자의 성의 있는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서정택(주공8단지 입주자 대표)씨는 "기업윤리, 기업문화가 전혀 없는 대아건설 공사 책임자인 공사현장 소장의 불성실한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 주민들에게 자존심의 상처를 주고, 이로 인해 주민들의 기가 꺾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 주민은 대아건설 현장소장이 취중에 "임대아파트 사는 주제에 무슨 환경권이니, 보상이니 주장하느냐"는 말을 한 것은 주민들을 무시한 행동이 아니냐며 현장소장의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현장 소장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취중에 그런 말을 했다면 죄송하다."며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대아건설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 4월부터 아파트 입주를 시작하여 입주자 대표회의 구성이 늦어짐으로써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며 차후에 아파트 대책위와 협의 하에 일을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3시간 동안 가진 이날 시위는 대아건설 현장소장이 시위 주민들에게 사과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번에 처음으로 발생한 신도시 주민들의 항의 시위는 앞으로 계속될 양산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주민들과 건설 업체간의 대립을 예고하는 것이라 보여 지며, 이에 대한 양산시의 각별한 대책이 요구된다.
제목이 '가시고기'라 몸에 가시가 많이 난 고기 이야기인 줄 알았다.
백혈병에 걸린 10살짜리 아들을, 떠나고 없는 부인 대신, 2년 동안 혼자 간병을 했다는 줄거리다. 큰 부자가 아닌 이상, 장기입원을 하는 가족일원이 있다면, 쉽게 알거지가 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나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보다도 그 아빠가 더 불쌍했다. 너무 가여워서 엉엉 울고 싶었다. 병원비가 없어 신장기증을 하려니, 난데없이 간암 말기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오로지 아들만을 살리기 위해서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달려온 그 2년 동안 막상 자신은 그런 큰 병에 걸린 줄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가시고기는 작은 물고기인데, 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으면 달아나 버린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가 잠도 안 자고, 밥도 못 먹으면서 그 알들을 지킨다. 알에서 새끼가 나오면 아빠 가시고기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는다는 것이다.
백혈병에 걸린 아들은 아빠가, 행여나 아빠 가시고기가 될까 봐 걱정했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그는 아빠 가시고기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 죽음도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너무도 쓸쓸하게 죽어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건강함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렸고, 나도 자식을 위해서 과연 이런 희생을 감내할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부족한 부모 노릇에 부끄러운 마음이 한없이 밀려왔다.
최상의 도자기는 화려하고 품격 높은 그릇들과는 물론 옹졸하고 못난 것들 사이에서도 그 그릇들 기죽이지 않고 잘 어울리면서 은은히 그 존재를 드러낸다고 한다.
오늘은 스승의 날 / 오전 수업을 마친 뒤 / 육성회 회식 자리를 빠져나와 / 아이들과 복성 강가로 갔다 / 꼭 큰놈 하나 잡아 몸보신 시켜주겠다며 / 황소 별명을 가진 일우가 초망을 던져보지만 / 번번이 피래미만 올라온다 / 벤댕이 속 같은 니가 던지니 / 피래미만 올라오지 / 목소리 큰 상아가 핀잔을 준다 / 기죽은 녀석은 이번에야말로 하며 던지다가 / 그물과 함께 물에 빠지고 / 낮달도 함께 물에 빠지고 / 매운탕 대신 강둑에 자란 늦은 쑥을 캐어 / 여학생들과 함께 지짐을 부쳐 지친 배를 채워본다 / 남학생들은 개헤엄이지만 익숙한 솜씨로 / 물장구를 쳐대고 / 물보라 사이 / 오월의 그림자가 강 빛에 젖어든다
김복진 <스승의 날에>전문
전교생이 100명도 되지 않는 시골 중학교. 스승의 날이라고 육성회에서 모처럼 마련한 회식자리엔 마을 이장님도, 농협 조합장님도 양복 입고 머리 기름도 바르고 나왔을 텐데 회식자리 빠져 나올 때 아마 뒤통수가 제법 당겼을 것이다. 열 댓 명밖에 안 되는 교직원이라 한 명이라도 빠지면 곧바로 눈에 띄는 법인데 무슨 핑계 대고 나왔을까.
별명이 황소인 체구 좋은 일우 녀석이 좋아하는 선생님과 여학생 앞에서 솜씨를 보이겠다며 그물을 던지다가 그물과 함께 물에 빠지고 낮달도 함께 물에 빠진다. 배꼽잡고 웃는 아이들과 풍덩 빠진 몸으로 멋쩍게 일어나 머리 긁적이는 녀석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왕 젖은 몸 녀석은 개헤엄이지만 여학생 앞에서 폼을 잡아 본다. 몸보신은 벌써 물 건너갔다. 이미 웃자라 제 맛 나지 않는 늦은 쑥을 캐어 지짐을 부쳐 지친 배를 아이들과 같이 채운다.
아이들과 어울려 천진스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생활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시다. 훈훈하기가 어느 자리에 가져다 두어도 잘 어울리면서 빠지지 않을 한 폭의 민화 같다.
역사의 흐름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옛것을 찾아 오늘에 되살려 새롭게 하는 일- 도예가 신한균(44)의 삶이 바로 그렇다.
“전승도예가 단지 옛 것의 모방과 재현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예술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긴 지나친 상업주의로 흐르는 것도 경계할 일입니다만…”
그의 말에 따르자면 전승도예는 우리 조상들을 통해 오늘날에 전해 내려오는 전승기법을 발판으로 하여 새로운 도예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겠다.
그래, 그렇다면 그것은 또 다른 뜻에서의 창조이겠거늘…
“지금의 사기장 중에는 자기 작품을 ‘물건’이라고 부르는 작가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 사기장들은 사기장으로서의 자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죠. 물론 자만심을 가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부심 없이 도자기 작업에 임할 때는 명품을 만들기가 힘듭니다. 또한 자부심 없는 사기장의 행태는 일부 사람들에게 전승도예를 기능으로만 보이게끔 합니다.”
사기장? 도공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사기장은 다소 생경하다.
“도공(陶工)이라는 말은 원래 일본사람들이 쓰던 말입니다. 우리말로는 사기장(沙器匠)이 옳은 말이죠. 잘못 쓰이던 도공을 사기장으로 바로잡는데도 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쓰던 도공이라는 말은 단순히 그릇을 만들기만 하는 기능공을 이르는 말인데 도자기에 대한 연구와 이론이 겸비된 사람은 도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 도예가(陶藝家)라는 말도 아무에게나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도공으로서의 기능과 도사로서의 식견을 두루 갖춘 이에게 비로소 붙여줄 수 있는 이름이란다.
"도자기는 손가락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듭니다."
손가락으로 만드는 것은 조금만 기능을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음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려니 싶다.
“흔히 물레 앞에만 앉아 있어도 도예가라고 하는데 원래 도자기를 만드는 데는 각각의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가마에 불을 떼는 '불대장' 그림을 그려 넣는 '환쟁이' 성형(成形ㆍ그릇의 형체를 만드는 일)을 하는 ‘대장’ 유약을 바르는 ‘생질꾼’이 있어 각 분야에서 적게는 몇 년, 많게는 몇 십 년을 그 일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사람을 ‘변수’라고 하는데 ‘변수’가 곧 ‘도예가’인 셈입니다. 말하자면 ‘변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죠.”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예술의 어느 분야라고 쉽게 일가를 이루는 길이 있겠느냐만, 도자예술의 한 경지에 이르는 길이 이리도 멀고 힘겨워서야…
도예가 신한균에게 ‘언제 어찌하여 도예의 길에 들어섰느냐’고 묻는 것은 부질없는 질문이다. 그가 세상에 태어난 그날이 곧 도예입문의 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신정희 선생-일제 강점 말기에 출생해 전쟁의 혼동기를 거치면서도 애오라지 사발에만 매달려 국내 도예계의 일인자의 자리에 오른 신정희 선생이 바로 그의 부친인 것이다. 선생은 국내에서의 명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중앙방송과 황실에서 이도다완의 재현작가로 인정하는 그릇 세계의 실로 큰 그릇이다. 가족보다도 도자기가 더 우선이었던 그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 눈만 뜨면 옆에 있던 사금파리들이 지겨웠다는 그는 철이 들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깨달았다. 이 외곬의 도예가 한사람의 지순한 열정은 마침내 이녁의 네 아들들을 모두 도예가로 만들었다.
그가 대학과 대학원(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대학강단에 서기도 했던 것은 외도가 아니다.
단순한 기능인이 아닌, 마음으로 그릇을 빚고 거기에 혼과 얼을 담는 도예가가 되기 위해서는 드넓은 세상에 나가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지평을 한껏 넓혀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도자기를 섭렵하기 위해 바깥나들이도 수월찮게 했다.
특히 일본에서의 활약은 눈부시다. 1989년부터 일본 동경동급미술화랑(東京東急美術畵廊)에서 도예 개인전을 매년 개최하고 있고, 89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일본 공영방송 NHK 초대전, 매일방송 초대전을 <신정희ㆍ신한균 부자전>으로 가졌는데 이들 초대전은 일본 각 지역의 최고 화랑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한 조건이었다고.
1990년부터 한국 사발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일본에 건너 가 일본의 국보가 된 진주사발(井戶茶碗)을 살펴보고 우리 옛 조상들의 숨결이 어려 있는 우리 사발들을 일본 박물관 진열장 안에서 꺼내 직접 손으로 만져 보는 등 2003년 현재 일본에 있는 우리 사발 명품 125점을 확인하는 활동을 펼쳤다.
1993년에는 한국공예대전 ‘동상’을 수상하고 1996년에는 함경도 회령유약을 국내 최초로 재현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는 과정에 2001년 일본 NHK에서 신한균 작도(作陶)과정을 일본전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한국 사발이야기’를 집필 중인데 이는 일본 도예계의 요청에 따라 일본어로도 번역될 것이란다.
"전승도예는 한국인의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한국인의 정서를 가득 담은 예술이기에 전승도예의 내면에는 한국인의 얼이 스며져 있고 보이지 않는 따뜻한 숨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숨결과 얼은 전승도예의 앞날에 끊이지 않고 흘러가야 할 것입니다.”
단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쓰여 지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도예가 신한균의 도자기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가까이 두고 사용하면서 사용자가 그 도자기의 참맛을 느끼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초등학교 취학직전 1년아(만5세아)에 대하여 평생 1회에 한하여 무상 교육비를 지원한다.(단, 취학 적령아로 사정에 의하여 초등학교 취학 연기 신청한 취원아는 지원대상에 포함.)
법정 저소득층과 보건복지부 기준 기타 저소득층 자녀의 유치원비(입학금 및 수업료) 전액을 지원한다.
해당 지원자는 유치원에서 학부모의 동의 및 신청서를 받아 읍ㆍ면ㆍ동사무소에 증명서 발급 신청을 일괄적으로 하고, 복지대상자 통합조사표(확인) 원본은 지역교육청으로 제출, 사본은 유치원에 보관한다.
제출 서류에는 법정저소득층은 관련 증명서 1부(수급자증명서, 모부자가정증명서 등)과 기타 저소득층은 학비지원대상 신청서 1부를 제출해야만 한다.
대상자 확인 및 선정에는 법정 저소득층은 증명서만으로 가능하고, 기타 저소득층은 읍ㆍ면ㆍ동사무소에서 조사ㆍ확인을 받아 지역교육청에 원본을 제출하면 된다.
문의 : 388-0807
양산교육청 관리담당
박미해기자
한밤중에 무릎이나 엉덩이, 넓적다리가 아프다고 우는 아이를 들쳐 업고 응급실로 들이닥치는 부모가 많다. 아이가 마구 아프다며 칭얼대기 때문에 부모는 혹시 소아마비가 아닐까 걱정을 하지만 진찰을 해보면 이들 중 대부분은 성장통인 경우가 많다.
성장기 어린이들 중 10∼20%가 경험한다는 성장통은 4∼10세 아이들이 양쪽 정강이 또는 허벅지가 아픈 것을 말한다. 때로는 팔이 아파 고통 받는 아이도 있다. 주로 4∼7세의 여자 어린이에게 많이 발생하며 대부분 양쪽 무릎이나 다리가 대칭적으로 똑같이 아픈 것이 특징이다. 한쪽만 아픈 경우는 별로 없고, 통증은 대개 저녁에 발생하며 쉬거나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이 없어진다.
이러한 과정은 거의 매일 반복되며 활동적인 아이들에게 더 흔하다. 또한 한동안 통증이 없다가 재발하는 경우도 많다. 성장통은 특별히 병이라고 볼 수는 없고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사라진다. 성장통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성장하면서 뼈를 싸고 있는 골막이 늘어나 주위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또 어떤 학자는 뼈가 빠른 속도로 자라는 데 비해 근육은 더디게 자라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때문에 일종의 근육통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으며 스트레스도 발병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어떻든 성장통은 성장과정 중에 겪는 통증의 하나로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없어지므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성장통으로 괴로워하면 가벼운 마사지나 따뜻한 수건 찜질, 혹은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좋아질 수 있다.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심한 경우에는 어린이용 진통제를 이용해 가라앉힐 수 있다. 성장통은 후유증이 없으며 어떤 아이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자기가 간밤에 통증을 느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심한 운동은 피해야 하고, 인스턴트나 가공 식품은 가급적 먹이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단백질(근육), 칼슘(골격 형성), 아연(세포성장 및 재생, 집중력 향상),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에너지 대사 및 신체 기능 활성화) 등이 충분히 들어간 음식을 섭취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레 성장통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엉덩이 관절(고관절)에 물이 차고 염증이 생기는 '일과성 고관절염', 넓적다리 뼈(대퇴골) 머리부분에 피가 통하지 않아 뼈가 썩는 ‘유년기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칼슘, 인 같은 무기질 대사에 이상이 생겨 뼈가 약해지는 ‘대사성 질환’ 등도 성장통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밖에 골절, 구획증후군, 구루병, 소아류머티즘, 혈우병, 골수염, 근염, 종양 등도 초기증상이 성장통과 유사하다.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의 통증이 그냥 놔두어도 되는 성장통인지, 조기에 치료해야 하는 질환인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열이 나면서 팔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할 경우, 외상 후 아프거나 관절을 잘 못 움직일 경우, 다리를 절거나 관절이 부어 있는 경우, 피부색이 변해 있는 경우, 통증이 낮에도 나타나고 몇 시간씩 지속되거나 간헐적이라도 몇 개월 넘게 지속될 경우에는 병원에 가서 반드시 정밀검진을 받아야 한다
유난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많이 내리는 달입니다.
11월은 창조 밭에서 아이들과 집짓기 수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겨울철에 맞는 여러형태의 집들 중 폭2미터, 길이3미터의 땅을 1미터 깊이로 파고 그 위를 뼈대로 완성하고 천이나 비닐로 지붕을 엮고 실내는 푹신한 짚이나 낙엽으로 바닥을 깔고 더욱 추운날을 대비하여 땅속 집안에 작은 연통을 세우고 불을 피울 수 있는 벽난로도 만드는 것이지요.
일단 땅에 금을 긋고 삽으로 땅파기 시작. 서로 땅을 파려고 달려드는 아이들과 조를 짜고 1시간 가량 땅을 파보았으나 깊이는 20센티 정도. 1학년이지만 씩씩거리며 제법 삽질을 합니다. 2시간 가량 삽질을 하고 3학년들 차례. 밑으로 갈수록 돌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땅파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던 중 겨울잠을 자려고 바위 밑에 있던 개구리 한 마리 발견. 다행히 상처는 나지 않았습니다. 잠에서 덜 깬 개구리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고,
“우와 야가 와 여기에 있노?” “자는 갑다.” “다시 묻어라.” “아이다 물에 넣어라.”...
결국 상처 안 나게 두 손안에 넣고 조금 떨어진 구석바위 밑으로 옮겨놓고 삽질을 재촉하였습니다. 나중에 가보니 개구리는 다른 보금자리로 간 듯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종일 우리의 친구들이 판 땅이 30센티를 넘지는 못했지만 올 겨울 집을 짓는다는 첫 삽은 뜬 셈입니다. 땅속 친구도 만나 보았고, 땅만 가지고 하루종일 논 하루였습니다.
겨울이 가기 전까지 시간 나는 대로 집을 지으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만의 집을 완성할 부푼 꿈을 키웁니다.
교동에 있는 협성아파트의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인근의 독거노인들과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모시고 점심을 대접하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연말연시에 소외된 이웃의 독거노인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려고 준비했다는 부녀회 김필강(45)회장은 3개월에 한번 지급되는 독거 노인위탁금 15만원에 쓰레기를 분리해서 폐품과 폐지을 모아 마련한 돈과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이날 행사를 준비했다며 어르신들이 자신을 이제 딸이라 부른다며 기뻐했다.
"지난달에는 40여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언양의 온천욕도 다녀왔다."며 신병식(마을이장)씨는 이를 칭찬하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박영석(72)씨는 "이웃간의 유대와 친목을 확인할 수 있어 즐겁다."며 기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 부녀회는 내년에도 바자회 등 수익사업을 열어 지역 어르신들에게 더 많은 행사를 열어 드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경훈기자
17일 양산시청 대회의실에서 양산청년회의소 창립 24주년 기념식 및 전역식이 회장단 이ㆍ취임식을 겸해 열렸다.
올해 회장을 맡은 이강희 회장은 이임사에서 "'역동하는 청년, 변화하는 양산'이라는 슬로건으로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개인의 역량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말했으며 2004년도 양산청년회의소 홍순경회장은 취임사에서 “단합된 힘은 개척과 도전의 미래를 활짝 열어 줄 것이며 스스로 가슴을 열고 보람차고 밝은 미래를 향하여 한걸음씩 힘차게 나가자”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양산지역 고등학생에 대한 장학금 수여식도 함께 있었다.
경훈기자
해마다 성탄절기가 되면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이곳저곳으로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꿈 많은 아이들에게 고운 추억 하나를 심어주는 일이려니 싶어 그 며칠 동안은 열일 다 제쳐두고 오직 산타클로스 노릇에만 신명을 낸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들여다보며 신산한 삶에 시달린 내 고달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덤으로 얻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산타할아버지 노릇을 한 지도 어느새 스무 해가 훌쩍 넘었나보다.
세월이 흐른 만큼 가지가지 아름답고 소중한 사연들이 소복하게 쌓였다. 그 중에서도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
한 15, 6년쯤 되었을까? 그 해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 때 나는 산타클로스가 되어 크게 소문내지 않고 가까운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알았는지 어느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약속한 24일,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불교의 사찰에서 경영하는 유치원이었다. 사찰의 주지이자 유치원 원장인 스님이 산타클로스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니… 불교 유치원에서도…."
내가 뒷말을 채 맺기도 전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들에게 고운 꿈을 심어주는 일인데 기독교면 어떻고 또 불교면 어떻습니까?"
다시 쳐다 본 스님의 가슴이 유난히 넓어 보였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자투리 시간에 스님과 몇 마디 따뜻한 얘기가 오갔다.
“나의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지요. 좋은 것은 남의 것이라도 존중해야지요.”
그래서 그 날 밤 그곳에서의 두 서너 시간은 참으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세상살이가 이만큼이라도 견딜만한 것은 넉넉한 마음을 지닌 좋은 이웃들 덕분이려니 하는 좋은 생각 하나를 얻은 그 날, 그 밤은 정말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전영준 편집인
지난 17일 원동면 사무실에서는 수재의연금 전달식이 있었다.
다소 늦은 수재의연금 전달식이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어린 여학생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이 학교 학생회에서는 원동지역 수해 주민을 돕자는 학생회 결의에 따라 최종 1백 71만 1천5백원을 모금해 학교 내 태풍 피해자들에게 우선 61만 5천원을 전달하고 나머지 110만원으로 이날 원동면에서 전달식을 가졌다.
처음 학생들은 자체회의에서 성금을 언론사나 방송국에 기탁하기보다는 낙과 농가의 과실을 구매, 구입 낙과를 경로당에 기탁하는 것으로 계획했으나 구입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직접 원동지역 피해 농가에 성금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
이날 전달식에는 양산여중의 이보령(학생회장), 설지선(부회장), 조근혜(총무)학생과 류성춘, 이성훈 선생님이 참석했다.
“우리 학생들이 너무 기특하지 않느냐”며 시종 따뜻한 눈길을 주고 있는 류성춘 학생부장 선생님의 말속에는 제자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듯 하다.
1942년생. 하마 인생 60고개를 넘어 선 이 양산 양반이 태어난 곳은 원동면 화제리 지나마을, 당시 다섯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조그마한 산골마을이란다.
교육부 고등교육실장을 끝으로 오랜 공직생활을 접고 지금은 또 다시 평생교육사업에 노익장을 불태우고 있는 신진기 이사장을 만나 본다.
“나의 유년시절은 참으로 암울한 시기였어요. 채 만 여섯 살이 안 된 때인 194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는데 3학년 때 6.25전쟁이 발발 하였고 전쟁 직후 내가 다니던 화제초등학교는 공비들이 불을 질러 불에 다 타버렸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은 피란살이를 하던 물금의 물금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의 가슴 아린 추억들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그러나 어린 ‘진기’가 겪은 유년의 아픔은 나중에 그를 큰 그릇으로 만드는 쓴 약이었다. 고등학교까지를 향리에서 보내고 소년 ‘진기’는 마침내 부산이라는 큰물로 나간다. 1964년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66년 7월, 육군 중위(ROTC 2기)로 제대한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사법고시에 두 번이나 도전 하였으나 실패한다.
그러던 끝에 1968년도에 4급 공무원시험(지금의 7급 공채)에 합격하면서 청년 신진기의 삶은 비로소 새로운 지평을 연다. 총무처 사무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감사과장과 총무과장, 문교부 과장 등을 거쳐 1991년부터 2년간 부산대학교사무국장을 지내고 그 후 문교부 산업교육정책관, 평생교육국장 등 주요 부서를 맡아 교육정책실무책임자로서의 열정을 다 바친 끝에 1998년도에는 일반직 공무원의 최고직위인 1급 관리관으로 승진하여 교육부 고등교육 실장으로 재직하다가 그해 5월에 퇴직한다.
공직생활 중인 1989년에 프랑스 국립행정대학원을 수료했고 1994년에는 국방대학원을 졸업했다. 해외연수 및 시찰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 벨기에, 헝가리, 중국, 일본 대만, 홍콩,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를 둘러보기도 했다.
30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1998년부터는 재단법인 한국교과서연구원 원장, 한성대학교 재단이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내고 서울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을 맡고 있는 가운데 2002년 7월에는 사단법인 한국평생교육평가원을 설립하여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공직생활 30여년 중 공교육분야에서 주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평생교육분야의 연구와 개발을 통하여 학습사회 실현에 기여할까 합니다. 21세기는 개인의 개성과 창조력이 요구되는 정보화 사회로 새로운 지식을 익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으면 세계화 시대에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국민들에게 보다 많은 자기 능력 개발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아울러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고장 양산을 위해서도 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갈 각오입니다.”
형제들은 대부분 양산과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특히 바로 밑의 동생이 선산을 지키면서 농사를 지어 매년 일년 먹을 쌀이며 잡곡 등을 보내 주고 있어 지금까지도 이녁이 태어난 곳에서 농사지은 곡식으로 밥을 먹게 해주는 동생 내외가 고맙기 이를 데 없단다.
가족으로는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양산의 몇 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70년대 초 서울로 옮겨 1998년 까지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199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한 후 현재가사를 돌보고 있는 부인 김우자(58세) 씨와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해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외아들 종혁,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며느리가 있다고.
고대국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유서 깊은 고장에 한강 이남에서 가장 우수한 부산대학교 제 2캠퍼스가 옮겨 오게 되니 바야흐로 양산이 교육과 문화의 고장으로 크게 발돋움 할 것으로 믿는다는 신 이사장은 양산을 자연과 환경이 보존되는 쾌적한 고장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본보에 당부하는 말로 “우리고장 양산이 교육과 문화도시로 발돋움 하는데 앞장서서 일해 주는 한편 부정적인 기사보다는 시민생활의 문화 창달과 긍정적인 소식을 많이 취급해 줌으로써 양산시민의 진정한 눈과 귀가 되어 달라”고 주문한다.
1982년에 녹조근정훈장을 받았고 1989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처음, 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는 무슨 내용으로 쓸까 망설였습니다. 글을 쓸 소재를 찾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저의 생활의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양산중학교에서 성적은 하위권의 학생이었고, 이른바 소문난 문제아였습니다. 지금은 어린 시절의 방황이라 생각하지만, 그때는 어린 나이에 술도 먹었었고 담배도 피는 등 나쁜 짓이라고는 다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에게는 가방을 매고 학원을 늦게 마치고 집으로 가는 학생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양산남부고등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학급의 반장이라는 것까지 해보았습니다. 반장이라는 책임감을 무기로 처음 해보는 공부였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반장에게 물어오는 학우들의 과제, 이런 과제들을 확실하게 대답해주는 반장.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많이 노력 했습니다.
지금은 달라진 내 모습에 한번씩 깜짝 놀랄 때도 있습니다. 어느 샌가 책상에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철들은 건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제는 가방을 매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늦게 가는 학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부고에서 보낸 1년 동안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해주신 분들은 저희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신 남부고등학교 선생님들 이십니다.
세상에는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가르치시는 선생님들.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들.
이런 선생님들이 남부고등학교에 있으시기에 남부고가 살아있습니다.
아직은 시작이라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흡연문제, 학업성적 등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문제를 과장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외부의 시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갓 옮겨 심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도록 주위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부고등학교 학생들은 패기와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많은 일들에서 벗어나 모든 것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과 격려입니다.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새가 될 것입니다.
윤보석(1학년 5반)학생기자
“청원제”는 양산남부고등학교의 축제 이름입니다. 언제나 푸른 곳이라는 뜻의 “청원제”. 이름만큼이나 학생답고 즐거운 축제를 즐겼습니다. 11월 7일과 8일 양일에 걸쳐 이루어진 “청원제”는 비록 한 학년 밖에 없었지만 다른 학교에 못지않게 화려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축제의 첫 시작을 알린 풍물공연과 각반의 끼를 발견할 수 있는 반별 장기자랑, 그 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각 동아리의 무대, 힘차보였던 태권도와 합기도 시범, 감미로운 플롯, 피아노, 재즈피아노 연주 등은 정말 같은 학교 친구이지만 알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외부에서 시간을 내어 와 주신 양산고의 “소나기 밴드”와 대구 카톨릭 대학의 재즈댄스 공연은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들이었기 때문에 매우 색다른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 사회자와 동아리, 반별 장기자랑을 병행하여 바쁘긴 했지만 준비하는 동안 평소 그냥 그저 그렇게 지내왔던 친구들과 더욱 친해졌고 하고 싶었던 역할을 스스로 노력하여 해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저는 코스프레 동아리인 "ECDYSIS"의 일원으로 패션쇼에 나가기 위해 매일매일 옷도 수선하고 화장도 해보고 포즈에 대해서도 고민해보며 큰 무대는 아니었지만 나의 작은 꿈을 이룬 것 같아 무대를 내려온 뒤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7일의 마지막을 장식한 클라이막스!! 역시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할 수 있었던 “양산남부가요제” 수업시간에 절대로 들을 수 없던 선생님들의 노래솜씨, 정말 지금까지 어떻게 감추고 계셨는지 너무너무 훌륭한 노래솜씨에 많은 학생들이 쓰러질 뻔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7일 강당 무대 위를 벗어난 후부터 8일까지 연장된 먹거리 장터와 바자회. 그리고 8일부터 시작된 축제의 또 다른 묘미 '전시마당', 1년간 우리 친구들이 미술시간에 만든 작품들을 전시한 교내미술전시회와 양초, 잎맥 등을 만들어서 판매한 과학 실험전시 그리고 친구들의 재치가 돋보이는 “남부고”삼행시와 자신의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 시화전. 새 학교의 장점을 살린 영상물 상영, 그리고 코스프레 패션쇼를 한 학생들이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준 코스프레 전시..안타깝게도 사진을 찍어가신 분은 얼마 안계셨지만 그래도 다음에는 더욱 많은 분들이 찾아주실 거라고 믿으며 사진을 찍어가 주신 분들에 감사하며 짧은 듯 하면서도 긴 시간인 이틀이 지나갔습니다.
아직 많은 분들이 알지 못해 이 즐거운 시간들을 더욱 많은 분들과 보내지 못한 사실이 안타깝지만 시간이 흘러 양산 남부고등학교가 유명해지면 더 많은 분들이 저희 친구들과 함께 “청원제”라는 즐거운 축제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예지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