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내리쬐는 자전거 길에서 청소년들은 진정한 자신을 만났다. 2013 양산시청소년국토대장정 ‘낙동강 700리길, 청소년의 도전과 희망 라이딩’에 참여한 23명의 대원이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문화와 역사가 숨 쉬는 생명의 젖줄인 낙동강 상류 안동댐에서 낙동강 하구둑까지 389km에 달하는 자전거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양산시와 양산시청소년회관이 주최ㆍ주관한 이번 행사는 자연에서 도전의식을 함양하고 진취적 기상을 기르며, 함께 참가한 친구들과 야영캠핑 등 다양한 야외수련활동을 하며 협동심과 이타심을 키우기 위해 열렸다. 이번 원정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1차 서류전형과 2차 예비라이딩을 통한 체력테스트로 선발됐다. 안전한 자전거 종주와 야영캠프활동을 위해 자전거전문가, 청소년지도사, 자원봉사자 등 총 7명이 원정에 함께했다. 대원들은 하루 평균 100km의 자전거 길을 달리며 낙동강변의 자연과 역사를 만끽했다. 이번 원정 동안 지속된 폭염과 게릴라성 폭우 등 좋지 않은 날씨로 모두가 고생했지만 낙오하는 이 없이 모두가 자전거 원정을 완주했다. 청소년회관 정우진 운영팀장은 “더운 날씨 때문에 함께 한 친구들과 스텝들이 고생했지만 함께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며 자신을 이기는 법을 알았다”며 “이번 원정으로 멋진 추억을 갖게 된 우리 청소년들이 앞으로도 모든 일을 잘 헤쳐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08년 1기 원정대를 시작으로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한 ‘양산시청소년국토대장정’은 매년 여름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이 우리 국토의 곳곳을 직접 다녀봄으로써 도전정신을 함양하고 대자연 속에서 애국심과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수련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양산시는 앞으로 청소년들의 건전한 여가활동 장려와 다양한 수련기회 제공을 위해 청소년국토대장정 낙동강 대종주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1969년 개교한 원동중은 한때 학생수가 400여명에 이를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여느 시골학교와 마찬가지로 원동중 역시 매년 학생 수가 줄더니 급기야 전교생이 30여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직면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양산시 야구협회에서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야구부 창단이 그것이었다. 원동중은 이후 야구특성화 학교를 표방하며 학생수를 배 이상 늘려 기사회생했다. 야구가 폐교 위기의 학교를 전국의 야구 명문중학교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 사이 전교생도 52명으로 늘어났다. 이런 성과로 원동중은 19일 교육부가 주관하고 한국농촌교육 연구센터에서 주최한 ‘2013 농어촌 전원학교 우수사례 학교’에 선정됐다. 이규용 교장은 “야구가 전체 학생들의 자신감은 물론 학교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바꿔놓았다”며 “이 같은 성과는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지역사회의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한편 원동중 야구부는 최근의 성과를 지역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원동을 야구메카로 만들어 지역 활성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 이를 위해 신종세 감독은 무엇보다 원동면에 야구장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야구장만 들어선다면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야구를 즐기고자 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을 것”이라며 “원동중을 중심으로 원동면이 야구의 메카로 자리 잡는다면 지역 활성화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동중의 기적이 원동지역의 기적으로 나타나는 그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제43회 대통령기 중학야구대회 우승! 마지막회 극적인 동점타에 이은 결승타. 감격의 순간이었다. 모두 함께 그라운드로 나가 부둥켜안고 울었다. 터질듯한 환호성이 부산 구덕운동장을 가득 매웠다. 우승 목걸이를 건네받는 순간 처음 야구를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8월 1일자로 양산대학교가 교명을 동원과학기술대학교로 바꾸었다. 1991년 3월 개교한 양산대학교는 그 이름에서 보듯 우리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대학이다. 개교 당시 설립자가 작고한 오근섭 전 시장이었다. 오 전 시장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큰돈을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뚝심을 보였다. 한때 사석에서 자신의 가방끈은 짧지만 대학 교수 임용장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니 한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시장선거에 출마해 몇 번의 실패를 딛고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또 재임 중에 부산대학교로부터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양산대학교는 설립 4년만인 1994년 동원개발그룹 소유자인 통영 출신 장복만 씨가 인수해 본격적인 전문교육기관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장복만 이사장은 동원교육재단을 통해 이미 고향인 통영시 교육사업에 진출해 있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통영제일고와 통영동중학교는 지난해 동원고등학교와 동원중학교로 각각 이름을 바꾸었다. 부동산개발과 건설업을 주축으로 금융, 교육, 문화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는 동원개발그룹 장복만 대표의 아호(雅號)가 동원이다. 그는 경남지역 경제계에서 알아주는 재력가다. 두 학교의 신축이전에 즈음하여 500억원 가까운 사재를 희사한 장복만 이사장은 통영시로부터는 시민대상을, 경남도교육청으로부터는 경남교육상을 각각 수상했다. 장 이사장은 2009년 장남 장호익 씨를 양산대학교 총장으로 임명해 친정체제로 굳힌 후 적극적인 학교발전을 도모했다. 이번 교명 변경도 장호익 총장이 2011년 선포한 ‘비전2020’이라는 대학장기발전구상의 일환이라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덧붙여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 미래지향적 글로벌 대학으로 위상을 정립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학교측의 충실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양산대학교의 교명 변경 소식은 시민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안겨주고 있다. 23년 전 처음으로 대학이 설립되고, 이어서 영산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지금은 교육중심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시세(市勢)의 배경에는 양산대학교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름을 내세운 대학교는 그 도시의 시민 긍지를 대변한다. 그런데 이제 그 교명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학교이름에 붙은 것은 시대적 추세로 인정할 만 하지만 양산이라는 지명이 학교재단 오너의 호로 바뀐 것에는 선뜻 수긍하기 힘든 일면이 있다. 특히 그 이유가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이라니 더욱 시민으로서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양산시를 움직이는 고위 공직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양산’이라는 도시 이름의 브랜드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대학교 이름에 그 학교가 위치한 도시의 이름이 붙어있다 하여 발전한계가 위축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작위적이다. 오히려 양산을 표방한 학교가 발전을 거듭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면 학교는 물론 도시의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양산은 인접한 거대 도시 부산과 울산의 영향으로 다른 지방도시와는 다른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연대기능의 부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시민운동의 토대나, 지역발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것이 대학이다. 행정기관의 견제, 환경운동 전개, 나아가 미래의 비전을 위한 자문역할 등이 대학에서 담당할 분야다. 우리 지역에는 두 개의 대학이 있지만 이런 활동에서 구심점이 취약하기 때문에 진정한 도시발전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 교직원 대부분이 인근 대도시에 거주함으로써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나 향토애 등이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때 양산대학교의 교명 변경이 지역사회에 주는 상실감은 부인할 수 없다. 학교 내부에서도 교명 변경에 대한 반발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학의 오너가 내린 결정이니만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동원과기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비록 교명에서 ‘양산’은 빠졌지만 ‘양산’을 도외시한 발전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양산시 명곡동에 자리한 캠퍼스가 존재하는 한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인재양성기관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낙동강 녹조가 확산하면서 식수원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양산시가 물금취수장과 원동취수장의 수질은 현재까지 양호한 상태라고 밝혔다. 양산시에 따르면 물금ㆍ원동취수장의 클로로필-a(녹조농도) 시료채취 결과 지난 5일 채취에서 물금취수장 14.2ppb, 원동취수장 10.1ppb로 조사됐으며, 7일 채취에서도 물금 22.5ppb, 원동 10.6ppb로 나타났다. 양산시는 이러한 조류농도는 환경부의 수질예보 및 대응조치에 관한 규정의 4단계 중 가장 낮은 ‘관심’ 단계 기준 이내로, 수돗물 생산과 수질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산시는 강수량 부족과 25℃가 넘는 고수온 현상이 지속되면서 녹조현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안전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정수처리 대응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산시는 취수구 주변 조류방지막 설치(사진)를 지난 10일 모두 마무리했으며, 수질 유지를 위한 약품을 확보해 조류 수질상황에 따라 분말활성탄과 고응집제(PAC)를 투입하는 등 탄력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또한 수질검사 주기를 강화하는 한편, 상ㆍ하류 구간 취ㆍ정수장, 유관기관과 비상연락체계를 정비하고, 수질계측기 등 수질경보시스템을 점검할 계획이다. 양산시 관계자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보가 설치된 지역과 달리 양산지역은 예전과 비교해 자연환경에 변화가 거의 없어 녹조 피해가 적은 것으로 분석된다”며 “수심 2.5m 아랫부분의 물을 취수하기 때문에 수돗물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양산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이희종)이 대운산자연휴양림에 대한 양산시민 우선 예약제를 시행한다. 양산시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숙박시설의 40%를 우선 예약할 수 있게 한 것. 우선 예약제는 매월 1일부터 3일까지 양산시민이 예약하면 4일 오전 10시 숙박시설의 40% 이내를 추첨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숙소는 4일 오후 1시 이후부터 양산시민을 포함한 타 지역 이용희망자가 선착순으로 신청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1일부터 10월 예약분에 대한 양산시민 우선 예약이 가능하다. 우선 예약한 시민은 숙박 당일 예약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확인한 뒤 이용할 수 있으며, 양산시민이 아닐 경우 예약 취소와 함께 30%의 환불 수수료를 내야 한다.
재건축 중인 양산도서관 운영권을 두고 시끄럽다. 양산시 소유의 도서관을 양산교육지원청에서 수탁운영하고 있는데, 새롭게 체결하는 협약내용이 문제가 됐다. 건물소유주인 시가 언제든 도서관 운영권을 가져 올 수 있도록 협약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공공기관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양산도서관은 지난 1992년 국비 2억원, 군비 8억원의 예산을 들여 군립양산북부도서관으로 개관했다. 당시 양산군은 운영관리권을 양산교육청에 이관했고, 21년간 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다 2010년 건물에 대한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아 재건축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에 시비와 국비 45억원을 들여 도서관을 신축하고 인테리어, 집기 구입 등 6억원의 예산은 교육청이 부담키로 했다. 하지만 재건축 이후 관리운영에 관한 협약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양산시와 양산교육지원청 간 신경전이 벌어졌다. 시 “건물소유주, 언제든 운영권 회수” 교육청 “대응투자 가능, 논의가 없어” 양산시는 추후 양산도서관 관리운영권을 가져올 목적으로 ‘양산시 도서관 정책변화가 있을 경우 운영관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요지의 문구를 협약서에 넣었다. 이는 양산시가 양산지역 전체 도서관을 통합관리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계획한 것으로, 협약서대로라면 언제든지 양산시가 요청하면 교육청은 도서관을 비워줘야 한다. 하지만 교육청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세입자의 입장에서 도서관을 운영하라는 것은 공공기관 간 협약이라고 볼 수 없다며 ‘추후 상호 논의한다’는 문구로 바꾸기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양산시는 “경남도 내에서 토지와 건물 모두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도서관을 지은 경우는 양산이 유일하다”며 “이는 도교육청이 유독 양산지역에 대한 교육투자에 인색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도교육청은 양산도서관이 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하루빨리 양산신도시에 새로운 도서관을 신축하는 계획을 세워 양산지역 도서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청은 교육투자에 인색하다는 시의 주장은 억측이라고 토로했다. 양산도서관 재건축을 계획할 당시 대응투자에 대한 논의 한번 없이 시가 단독으로 추진해 놓고 이제와 투자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양산교육지원청은 “경남도 내 공공도서관을 이전하거나 재건축할 때 지자체와 교육청이 대응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일반적인 일로,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이미 6곳의 도서관이 대응투자 방식으로 신축됐다”며 “하지만 시는 운영권을 가져갈 계획으로 처음부터 교육청을 배제한 채 재건축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양산시와 양산교육지원청 간 이같은 운영권 다툼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양산지역 공공도서관 면적과 장서가 경남도 평균의 절반에 그쳐 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시점에서 도서관 운영권을 놓고 두 기관이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 시는 제2의 공교육 장으로서 공공도서관의 역할과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 논리로 건물소유권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교육청 역시 도서관 운영정책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처럼 지자체가 당연히 도서관 운영권을 교육청에 줘야 한다는 안일한 사고를 해서는 안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양산시가 한ㆍ미 FTA 발효에 따라 한우 농가를 대상으로 피해보전직불금과 폐업지원금 지급신청을 접수한다. 양산시는 지난 29일 “한ㆍ미 FTA 발효에 따라 가격하락 피해를 입은 한우 농가를 대상으로 피해보전직불금과 폐업지원금 지급신청을 접수한다”고 밝히고 대상 농가는 오는 9월 21일까지 각 읍ㆍ면사무소나 동주민센터로 신청해 줄 것을 당부했다. 피해보전직불제 신청대상은 한ㆍ미 FTA 협정 발효일 이전부터 한우를 사육한 농가로 2012년 3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한우를 도축ㆍ출하했거나 같은 기간 10개월령 이전 송아지를 최초 출하한 실적이 있는 농가에 한해서다. 지급 단가는 한우는 마리당 1만3천545원, 송아지는 5만7천343원이다. 지원한도는 개인 3천500만원 법인 5천만원이다. 한우 사육 농가가 경영이 어려워 폐업하는 경우 현금을 지원하는 폐업지원제는 한우를 2두 이상 사육하고 있는 농가를 대상으로 한다. 단, 축산경쟁력 제고사업을 지원 받은 후 사후관리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농가는 지원 신청을 할 수 없다. 지원 단가는 한우 수소의 경우 마리당 81만1천800원, 암소 90만720원이다. 양산시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어려운 시기에 해당 농가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부동산 투기와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거래된 아파트 단지에 대해 매매ㆍ전월세 실거래가를 공개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아파트실거래가 정보공개사이트(http://rt.molit.go.kr)를 통해 매월 15~20일 사이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23~28일 사이 전월세 실거래가를 공개하고 있으며 공개된 자료는 기준가액보다 상당히 낮게 신고한 가격은 분석ㆍ공개 대상에서 제외해 자료의 신뢰성을 더하고 있다. 국토해양부 아파트실거래가 정보공개사이트를 참고해 재구성한 아파트 매매ㆍ전월세 실거래가 정보는 건축물 대장을 기본으로 전용면적(㎡)을 표시했으며, 공개일 전월 거래내역 가운데 최고액(상한가)과 최저액(하한가)을 표시했으며, 자세한 정보 전달을 위해 거래된 내역의 층수를 별도로 표기했다. 또한 공개달의 전체 거래건수를 표시해 아파트 거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신고된 전월 거래내역이 없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가장 최근에 신고된 최고거래가를 별도로 표시했다.
경남신용보증재단 양산지점(이하 양산지점)의 보증공급실적이 해마다 증가하고, 그 효과 또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양산지점은 지난 2011년 518개 지역 업체에 93억원을 보증공급 하고, 지난해에는 992개 업체에 190억원을 보증해 보증 규모가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도 6월말 현재 1천62개 업체에 200억원을 보증해 이미 지난해 1년 보증공급규모를 뛰어 넘었다. 사업성은 있으나 담보 부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소상공인의 자금지원을 돕는 보증기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보증규모증가는 그만큼 지역경제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올해는 처음으로 양산시와 연계해 8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육성자금 제도를 시행, 소상공인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양산지점은 소상공인 육성자금은 자금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고 판단, 지속적인 자금마련을 추진할 계획이다. 양산지점은 이런 효과를 바탕으로 올해 총 보증목표금액을 2천40개 업체 403억원 수준으로 결정,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신용보증재단을 통한 보증 지원은 소상공인들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경남신용보증재단이 보증지원을 받은 업체 1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용보증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는 대답이 11%, ‘다소 증가했다’는 대답이 58%를 차지하는 등 응답자의 69%가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나의 십대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고등학교 시절. 마음 속의 고향 같은 곳이지만, 바쁜 생활에 졸업하고 한 번도 찾아가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곧 있으면 3년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나름이가 학교에 가보고싶다고해서 우리는 4년 만에 찾아가보기로 결정했다. 12시까지 양산에 도착해야 해서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는데 울산에서 양산까지 한 시간밖에 안 걸린다. 분명히 고등학교 때는 진짜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일 줄이야! 생각보다 빨리 나와 시간이 좀 남아서 시외버스터미널 앞 카페에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왠지 방학 보충 때 집에 잠시오곤 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 때의 햇살, 2주일 만에 집에 오느라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오던 그 때. 학교에 딱 들어오는 순간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하나도 안변했다. 우리 학교는, 하나도 안 변한 채 여전히 푸르고 아름다웠다. 전국에서 가장 조경이 아름다운 학교 1위답게 여전히 정말 예쁜 우리 학교. 학교를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조경에도 물론 감탄했지만, 나는 오히려 복도나 3, 4층 사이의 테라스 계단을 보며, 마음이 울컥울컥했다. 왠지 자꾸만 그 장소에서의 17살의 내가 떠올라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 모교방문의 목적은 ‘17살의 나를 찾기’였다. 그 당시 나는 어떤 고민을 했었고,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그때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나와, 정말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자연 속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때 그 궁금증에 대해 나는 얼마나 해답을 찾았을까? 비록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이번 모교방문을 통해서 나는 ‘마음의 머리보다 훨씬 더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라는 걸 느꼈다. 또한, 먼 훗날 만약 내 머리가 잊더라도 내 몸은, 내 마음은 그걸 잊지 않고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마음에 좋은 감정과 기억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1917-1963)가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4가지의 역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고 했다. 첫째는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둘째는 당신은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가? 셋째는 당신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았는가? 넷째는 당신은 무엇에 당신 자신을 헌신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케네디는 특히 용기 있는 삶을 강조했다. 유명한 코리텐 붐의 일화 가운데 옛 소련의 어떤 교회에서 신자들이 숨어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군인 2명이 총을 들고 들이닥쳤다. 그들은 총부리를 겨누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5분의 시간을 주겠다. 예수를 버리고 살고 싶은 사람은 5분 이내로 예배당을 나가라!” 이 말에 많은 신자가 밖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소수의 신자만 남아 무서운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게 해달라고, 영광스러운 순교를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군인들이 들어와 예배당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더니 총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후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소수의 참된 신자들과 함께 진정한 예배를 한 번이라도 드려보고 싶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다음 시대를 열어갈 위대한 역사의 주역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한 영국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려고 했으나 그만 그 일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나의 힘도 능력도 자랄 것이다. 또 내가 구비한 장비도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려라. 나는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이 말을 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8천848m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재도전했고, 마침내 그 산을 정복해냈다. 측량기사 이름을 딴 에베레스트보다는 ‘세계의 어머니’라는 티베트어인 초모룽마(Chomolungma)가 더 어울리는 이 산에 인류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이다. 도전 정신과 용기만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뤄갈 수 있다. 마음 속에서 용기가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도전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햇볕이 쨍쨍하던 한여름 낮, 워터파크에서는 우아하고 화려한 연꽃들의 자기자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분수가 만들어 낸 하얀 안개꽃에서 눈길을 뗄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폭우로 고생하고 있고, 남부지방은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고온다습한 장마철과 여름을 맞아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재해에 다시 한 번 조심해야 하는 시점이다. 질식재해는 앞선 사례처럼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발생하고 있어 산업계에서는 ‘소리 없는 살인자’로 통한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2002~2011년)간 산업현장에서 모두 241명이 질식재해를 당했고, 이 가운데 71%인 171명이 목숨을 잃었다. 계절별로는 사망자의 43%가 여름철인 6~8월에 집중됐다. 특히 여름철에는 고온다습한 기후로 밀폐 공간에서 미생물이 단시간에 번식하고, 늘어난 미생물이 산소를 소비하면서 유해가스를 방출해 노동자들의 질식 사망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질식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작업 장소는 맨홀로 지난 10년간 4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맨홀 다음으로는 오ㆍ폐수 처리시설(39명), 저장탱크와 화학설비(25명) 순으로 사망자가 많았다. 안전보건공단은 해마다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재해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널리 팽배해 있는 ‘안전 불감증’과 ‘안전수칙 미준수’를 꼽았다. 공단은 3대 안전수칙으로 작업장 출입 전 산소량 확인과 유해가스 농도 기준 이하 여부 확인, 작업 전이나 작업 중 환기, 재해자 구조 때 호흡용 보호장비 착용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6월부터 8월까지를 ‘질식사고 예방기간’으로 정하고 산소농도 측정기와 공기호흡기 등을 관련 업체에 무상으로 빌려준다. 장비 대여는 공단 홈페이지(ww w.kosha.or.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무더운 여름철이다 보니 계곡, 바다, 워터파크 등에 놀러 가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물놀이 후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내원하는 아이가 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물놀이 시 주의사항이나 아이의 건강을 위하는 몇 가지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물놀이를 갈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전이다. 아이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환경에는 가지 않거나 못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도가 센 바닷가나 비가 오고 있는 계곡, 깊이가 깊은 워터파크 시설 등에는 아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바닷가나 계곡의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준비운동을 해야 하며, 기온이 너무 낮은 물에는 들어가지 않거나 발만 담그는 정도로 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몸에 맞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바닷가나 냇가에 들어갈 때 맨발로 들어가는 것은 돌이나 유리조각 등에 의해 발에 상처가 나거나 파상풍에 걸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물놀이를 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귀에 물이 들어간 상태로 손가락으로 후비거나 면봉으로 세게 후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물은 저절로 빠져나오며, 나오지 않는다면 물이 들어간 쪽의 머리를 비스듬히 해 콩콩 뛰게 해 물이 나오게 하는 것이 좋다. 가렵다고 손톱으로 긁지 않아야 하며 가려움증이나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병원에 내원해야 한다. 수영장처럼 실내에 갇혀있는 물에서 놀다가 눈에 이물이 들어가거나 물에 의해 눈이 가려워진 경우에는 눈을 비비는 것보다는 눈을 깜빡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더 좋다. 감염성 결막염이나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생겨서 가려움이 심하거나 눈곱이 많이 끼는 경우에는 가까운 병원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이나 바닷가에 캠핑하는 경우, 모기나 진드기 등에 물려서 부종, 가려움, 발진 등의 알레르기 증상이 생겨 내원하는 경우도 많은데, 벌레에 물리지 않도록 얇은 긴팔 옷을 입거나 벌레 퇴치용 소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벌레에 물려서 부종이 심하거나 가려움증이 심한 경우에는 환부를 시원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병원을 내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더운 날씨에 물놀이를 너무 장시간 하면 몸의 면역성이 흔들려서 호흡기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감기나 기관지염도 잘 생길 수 있으므로 물놀이 후에는 잘 씻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간단한 방법이지만 중요한 몇 가지 실천사항들을 준수하여 즐거운 물놀이 뒤에 질병으로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존경하는 시장님. 전국이 장마의 피해로 안타까운 사연들을 매일 뉴스로 접하는 요즈음, 다행히 우리 양산은 수마로부터 축복받은 도시임을 자랑하며 장마 피해 없이 7월을 무사히 보내는 것 같습니다. 늘 환한 미소로 양산의 발전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분주하게 다니시며 애써주시는 시장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장님, 저는 상북면 석계리에 거주하는 주민입니다. 하북면에서 태어나서 생활하다가 결혼해서 20년 가까이 이곳 상북면에서 살아온 상하북 토박이입니다. 최근 상북면 석계리 지역에 공업단지 조성을 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큰 아이는 이곳에서 태어나 상북초등학교를 거쳐 양주중학교를 나왔고, 현재 작은 아이도 양주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학교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양산 관내의 어느 학교보다도 경관이 수려하고 공기가 맑아, 학생들이 쾌적한 학습환경 속에서 늘 밝고 건강하게 생활해 왔습니다. 그리고 주민들 대부분도 이곳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런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아이들이 유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데 큰 만족을 느끼고 있구요. 그런데 ‘석계2일반산업단지’라니요? 어곡초나 소토초의 사례를 익히 알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아무리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더라도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의 건강권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의 건강을 담보로 얻는 발전이 과연 얼마나 큰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 깊이 숙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양주중 학부모, 교직원, 교육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지역경제 발전을 내세워 공단조성 계획을 추진하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됩니다. 일부에서는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말하지만, 건강만큼 중요한 고부가가치는 없다고 여깁니다. 특히, 한창 자라야 할 아이들의 건강이야말로 미래의 경제력이고 고부가가치라는데도 이견이 없을 줄 압니다. 또한 이 지역 주민들이 저처럼 산업단지 개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민들의 전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이런 일방적인 개발에 부디 제동을 걸어주십시오. 시장님, 이곳에 들어설 기업들이 친환경 기업도 아니고, 고무나 플라스틱 같은 공해를 많이 유발하는 기업도 일부 들어선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생활권은 누가 지켜줄 수 있는지요? 벌써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으니 이사를 가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2013년 시정 보도에도 ‘사람 중심의 U-Eco 그린시티 구축사업’(친환경 녹색도시문화, 여성친화 도시문화, 전통시장 상권문화)과 연계해 시정책을 펼치겠다는 보도자료를 접했는데, 산업단지라니요? 시정에 역행하는 이런 무모한 계획을 중단시켜 주십시오. “건강도시 정책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시정을 운영해 나가겠다”라는 시장님의 아름다운 구상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기사를 보니, 시청 관계자도 소토초나 어곡초의 상황처럼 ‘과거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 학부모나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은 계획을 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던데, 이 약속 꼭 지켜졌으면 합니다. 양산시 6대 역점 시책의 하나인 ‘대한민국 건강도시구현’에 걸맞는 시정을 원합니다. 이곳 양주중학교와 상북 지역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곳입니다.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위해서,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위해서라도 공허한 개발을 제발 멈출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나비떼 날아올랐다 그들의 비상은 아주 짧았다 환호성 지르며 마당을 선회하는 바람 위로 작약 만발한 화단 위로 쫘-악 흩어졌다 남새밭 푸성귀에 숨어들어 푸릇푸릇 물들었다 토란잎 위에서 또르르 굴러 어린 내 신발코에 내려앉았다 쨍쨍한 한낮 흙먼지 폴폴 날리는 고향집 마당에 세수한 물이나 걸레 빤 허드렛물 그릇 헹군 개숫물이 하루 몇 차례 반짝, 군무를 펼쳤다 * 옆으로 퍼지게 끼얹는 물
현대사회에서 기업가는 신상품 개발과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 신시장 개척 등 우리 사회의 발전과 국가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변화를 탐구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기회로 이용하는 사람을 기업가로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기업가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사업기회를 찾아내 자신의 책임 하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기업가정신의 개념은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업가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나 정신, 즉 새로운 사업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하고,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가면서 기업을 성장시키려는 뚜렷한 의지를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업가의 임무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생산방식과 새로운 상품개발을 기술혁신으로 규정하고, 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앞장서는 기업가를 혁신가로 봤다. 조동성은 기업가정신의 4대 요소로 도전적 위험감수 능력, 혁신력, 장기적 사고력, 국제화 의욕을 열거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많은 기업가들이 있지만, 필자는 상인집단이면서도 혁신을 통한 시대의 변화를 선도한 개성상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성상인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중심을 두고, 전국적 규모의 상업조직인 송방(松房)을 설치해 앞선 상술로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하나의 경제적 세력권을 이뤘던 우리 역사상 대표적 상인집단이다. 개성상인의 활동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됐으며, 당시의 개성은 정치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즉, 개성은 당시 국제무역항이었던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를 거점으로 외국사신에 의한 공무역(公貿易)과 외국상인에 의한 민간무역(私貿易)이 번창해 상업도시로서 발달했다. 개성상인의 상업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기업가정신은 도전정신과 합리성이다. 조선전기의 상업구조는 자유경쟁이 없는 시전중심의 상업체제였다. 이러한 때 개성상인은 시전상업보다는 전국의 시장을 무대로 한 상업 활동과 국제무역에 집중했다. 물론 서울의 시전상인처럼 금난전권을 소유한 시전을 경영한 상인들도 있었다. 개성상인은 행상단을 조직해 활동했고, 조선후기에는 차인(差人), 서사(書士), 수사환(首使喚), 사환(使喚) 등으로 구성되는 상업사용인 체제를 정립하기도 했다. 개성상인은 이러한 상업조직을 기반으로 해서 전국의 주요거점 지역에 송방(松房)을 설치해 당해 지역의 상품유통을 담당하게 했다. 두 번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들 수 있다. 개성상인은 우리민족 고유의 복식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을 고안했으며, 신용에 기초한 금융거래기법인 시변제(市邊制)와 신용화폐의 일종인 환과 어음(於音)제도를 고안했다. 시변제는 자금의 대여자와 차용자가 중개인을 매개로 물적 담보 없이 신용을 바탕으로 대차관계를 맺는 제도를 말하며, 환과 어음제도는 동전운송의 비효율성과 원거리 운송의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한 신용화폐의 일종이다. 또한 개성상인은 국내 상업과 국제무역을 통해서 축적한 자본을 생산부문에 과감히 투자했는데, 이들의 생산부분에 대한 투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가 인삼재배업과 홍삼제조업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광산을 채굴하는 잠채광업에 투자하는가 하면, 인삼의 확보를 위한 선대제적 경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국제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개성상인과 같은 민간상인(私商)들의 해외무역은 엄격히 금지됐고, 외국과의 교역은 명나라와의 조공무역, 일본과의 왜관무역 등 일종의 정부 주도 무역인 관무역(官貿易)에 한정됐다. 하지만 17세기 후반 이후 청나라 및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개성상인은 의주의 만상(灣商), 동래의 래상(萊商)과 함께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상인이 됐다. 또한 개성상인은 정부의 허가를 통해서 이뤄지는 공식적인 무역 이외의 비공식적 무역인 밀무역(密貿易)에도 적극적이었다. 개성상인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사상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삼포경영과 홍삼제조와 함께 국제무역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식 영업행태로 ‘갑을관계’가 우리 사회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갑을관계의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특히 대기업가들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앞서 언급한 개성상인의 기업가정신을 본받아 동반성장과 상생의 기업경영을 추구하고, 도전정신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갑을관계의 폐해를 해소하고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를 기대해본다.
삼랑진에서 낙동강 하류는 예부터 황산강으로 불리었다. 강 너머 김해 상동을 연결하던 나루가 있어 황산진(黃山津)으로 알려진 물금은 신라 때부터 자연촌락을 이루고 살았다. 지금의 서부리 690번지 일원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황산역(黃山驛)은 신라 소지왕 9년(487년) 우역제가 실시된 이래 수해로 훼손된 1857년까지 1천400년 동안 경상도 16개 산하 역을 관할하는 국가통치의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곳이다. 황산역 터에서 낙동강을 끼고 계속 올라가면 삼랑진과의 경계인 작원관에 이른다. 이 길은 영남대로의 일부분인데 화제로 가는 길은 절벽 아래에 선반을 달 듯 나무로 난간을 만들어 통로로 이용했기에 잔도(棧道)라고 불렸다. 양산시에서는 ‘황산베랑길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이 구간을 낙동강변 자전거길로 조성했다. 원동면과 함께 서면으로 불리다가 상서면으로 분리된 물금은 1936년 물금면으로 개칭됐다. 198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교리, 유산리, 어곡리를 당시 양산읍에 떼어 준 물금은 1996년 양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읍으로 승격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지금은 화려한 신도시로 변한 그곳엔 모두가 탐내는 곡창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자주 물에 잠겨 메기들이 침만 흘려도 물에 잠긴다고 해 ‘메기들’이라는 슬픈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1900년대 들어 대대적인 경지정리를 통해 양산의 대표적인 농경지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양산읍내에서 물금으로 가는 길목엔 종고개가 있었다. 지금의 범어리와 가촌리 경계 부근인 종고개는 메기들 방향으로 길게 뻗어내린 청룡등이라는 야산을 끼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조선시대 메기들에 관한 민중의 역사가 담긴 비석이 발견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1864년 조선 고종 때 일이다. 습지에 가까운 불모의 땅에 매년 과다한 농지세가 부과되자 이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관아에 탄원했지만 해결되지 않자 직접 한양으로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면세를 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다. 다행히 이를 받아들인 호위영 대장 정원용이 관할 군수와 관찰사에게 상세한 조사를 지시해 검토한 연후, ‘메기들에 대하여 영구히 면세하라’는 영을 내리게 된다. 양산향토사연구회가 주민의 제보를 받고 청룡등에서 발견해 복원한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는 바로 이러한 공직자들의 은공을 잊지 못해 메기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공덕비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물금역이 개설되자 물금리 일대는 군 소재지보다 더 번성하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가 준공된 1970년대 이전, 특히 1950~60년대 부산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철도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중ㆍ고등학교를 부산으로 유학 갈 수 있었던 것도 물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제로 넘어가는 고개에는 철광석을 캐는 물금광산이 있었다. 지금의 물금취수장 쪽으로 내려가는 토교 아래 산비탈에 자리한 광산은 1960년대 초에 개발돼 연간 10만톤가량의 철광석을 생산하며 명성을 날렸지만 1980년대 들어 폐광되고 지금은 레미콘 공장이 들어서 있다. 광산 인근에는 신라 문장가 고운 최치원 선생이 절경을 노래했던 임경대(臨境臺)가 있던 곳이다. 지금도 해가 질 무렵 이곳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 그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물금의 옛 영화가 쇠락하게 된 것은 물금역의 기능이 줄어든 것과 궤를 함께한다. 도로교통이 양산읍내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역전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물금리 4개 마을은 기존취락지 보호라는 명분 아래 신도시 조성사업에서도 제외돼 낙후된 원도심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한다. 시에서는 정주권사업 등을 통해 자체 발전을 꾀하고 있지만 한번 밀려난 관심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물금 주민들의 애환은 지난 정부에서의 4대강 사업으로 증산 앞 하천부지의 농경지를 잃게 되면서 더욱 시름이 깊어졌다. 낙동강 하류의 치수사업으로 홍수도 거의 없어졌는데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그저 일손을 놓게 돼 아쉽기만 하고 이것은 나중에 채소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