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눈에는 늘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중3 딸애가 엄지손톱 길게 길러 손톱 끝에 딸랑딸랑 반짝이는 반지 끼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당장 손톱 깍지 못하겠느냐고 호통치려는데 언젠가 부산 사는 어느 시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예고에 과 수석으로 들어간 아들 녀석이 학교 갈 때 왼쪽 귀를 가리는 것이 이상해서 남편이 불러 살펴봤더니 귀 위 머리카락을 밀어 비둘기 한 마리 새겨두었더라고 했다. 실랑이 끝에 결국 아들은 가출을 하고 기말고사 시험에서 전과목 백지를 내어 처벌을 받더니 마침내 공부를 놓쳐 외국 유학을 갔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집에서 왕따가 되었다고 했다.
축구 시합하다 밟혀 엄지발톱이 빠지고 보니 모든 신경이 엄지발톱에만 갔다. 멀쩡할 때는 모르다가 어디든 한 번 고장이 나고 보면 고장 난 한 곳이 나머지 전부만큼이나 소중하다. 그 한 곳 때문에 나머지 전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애먹이는 녀석 하나 없는 반 맡아서야 무슨 담임하는 맛이 나겠나." 큰소리 쳤었는데 요즘 애먹이는 녀석들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고등학생이면 알 것 다 안다. 다 알면서도 애먹이는 녀석들 끊임없이 애먹인다. 그 녀석들 한둘 때문에 반 안의 다른 서른 서너 명의 아이들 신경 쓸 틈 없다.
붙잡아 두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 퇴학시켜 다른 아이들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멀쩡한 아이들도 담임 관심 받을 권리 있는데. 자퇴서 받아둔 것 이제 정말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다시 읽어보는 것이 있다.
땡감은 마음껏 떫어 벌레가 없고 / 밤은 가시로 싸서 속살 지킨다 // 세상일이 모다 떫 어 툴툴대는 놈 / 촘촘한 가시로 찔러대는 놈 / 제 속 다 익도록 기다려 보자 // 밤은 떫은 보늬까지 벗겨 먹지만 / 도토리 떫은 맛 다 우려내면 / 도토리묵맛 얻을 수 없다 // 떨감은 익혀내어 홍시로 먹고 / 깎아 말려 곶감으로 먹지만 / 석류는 단맛 속에 신맛 남겨야 석류 // 어른 되어 어찌 단맛만 보랴
졸시 「가을에」전문
그렇다. 어른이 되어 어찌 단맛만 보겠는가.
그저 춤이 좋아서 춤을 추고 있다는 춤꾼.
한국무용협회 양산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는 무용가 이지은 씨를 만나봤다.
"아마도 우리 집안은 '끼'있는 집안이었던가 봐요. 할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도 '끼'가 많으신 분이었거든요. 마을에서 잔치라도 벌어지면 아버지가 장구를 치시며 흥을 돋우셨는데 그러면 마을 어른들이 장구의 줄에 주렁주렁 돈을 매다는 것을 보고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의 신명을 보면서 자란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한다.
물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물금초)와 중학교(동아 제2중ㆍ물금동아중 전신), 고등학교(양산여종ㆍ양산여고 전신)를 줄곧 양산에서 다니며 양산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자영 풍광 속에서 무용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가꾸어 나간다.
당시만 해도 양산에는 이렇다할만한 무용학원이 없었던 시절. 어린 '지은'은 멀리 부산까지 무용수업을 다니게 된다.
부산역 부근에 있던 학원까지 가자면 물금역에서 부산진역이 종착지인 경부선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진역에 내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부산역까지 가야하는 길고도 먼 길이었다.
어린 소녀에게는 그 길을 오가는 것이 여간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니었으련만 그래도 꿈 많은 소녀 '지은'에게는 부산으로 무용수업을 받으러 다니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거운 일이었다.
'춤이 그저 좋았으니까…'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당시 그녀의 소꿉동무들 중에는 무용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부산으로 떠나야 하는 그녀로서는 학교친구든 동네친구든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없었고 혼자 무용을 한다고 나다니는 그녀와 놀아주려고 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늘 외롭고 쓸쓸했던 소녀 이지은-
그랬기에 그녀는 더욱 더 무용에 땀을 쏟았는지 모를 일이다. 외로웠던 만큼 어린 가슴은 무용가를 향한 열정으로 마냥 불타올랐으리라…
"무용이 친구였지요. 틈나는 대로 공연장을 찾아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춤판이 펼쳐지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무용에만 몰두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그때까지 배웠던 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다듬게 된다. 91년에 부산여전(부산여대 전신)을 졸업하고 다시 진주에 있는 국립 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를 거치는 과정에서 그녀의 춤 인생도 한층 완숙해 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태어난 땅인 양산을 떠나지 않고 양산 향토문화의 텃밭을 지키고 있는 그녀에게 때로는 고향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
"돌아보면 모두가 아는 분들입니다. 자연히 주위의 눈치를 안 살필 수가 없지요. 뭔가 좀 나서보고 싶어도 공연히 주변에서 뭐라고 할까 싶어 두렵고…"
그랬으리라. 누구네 집 딸이라는 것도 부담이 되었을 테고, 다 아는 안면에 자칫 '난체'하는 것으로 비칠까 염려되기도 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공연도 고향무대를 놔두고 짐짓 부산, 울산, 진주 등지에서 펼치게 된다. 그래서 무용가 이지은의 이름 석자는 안(양산)에서 보다는 바깥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바깥으로만 나돌 수는 없는 일, 그녀가 정작 한 사람의 무용가로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곳은 고향이다.
"내년인 2004년은 제가 안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해가 될 겁니다. 이제는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좀 당당해 지려고 합니다."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 나이도 어느새 삼십 중반고개를 넘어 서른여섯. 어릴 때부터 익힌 그녀의 춤 인생도 하마 삼십년에 다다랐으니 이제 무엇을 한들 누가 탓하랴.
그런데다 무용협회 양산지부의 지도자 자리도 맡았으니 지역의 춤꾼들을 한데 아우르고 엮는 데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협회에 등록된 회원이 열다섯 분 정도 됩니다. 내년 계획으로 한 차례의 정기공연과 3개 분야를 한 무대에서 펼치는 페스티벌 등을 우선 구상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회원들과 함께 의논 중입니다. 2004년의 컨셉을 '찾아가는 무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산의 춤을 부산, 울산 등의 인근지역에 널리 알리려고 합니다."
향토의 춤꾼, 이지은에게 춤은 무엇일까?
"우리네 삶 자체가 움직입니다. 움직임이 다듬어지면 그것이 곧 춤이 되고 춤이 승화되면 예술이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네 삶의 모든 움직임이 춤의 바탕이라는 말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밥을 지으면서도 몸을 흔든단다. 다시 말해 춤을 추면서 밥을 짓는다는 말이겠다. 춤을 출수록 자꾸만 춤이 더 좋아진다는 그녀는 천생 춤꾼의 팔자를 타고났나 보다. 아래로 아들, 딸 하나씩을 두었다는데 아홉 살 바기 아들도 춤을 좋아하여 춤을 배우고 있다니 일찍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온 '끼'의 대물림이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없다.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의 남부시장 들머리에 '이지은 무용학원'을 열어 놓고 있는 향토 무용가 이지은- 오랫동안 무르익어 온 그녀의 2004년 춤 세계가 자못 기대된다.
영산대학교와 사단법인 부산영상위원회가 부산지역의 영화학도 및 영화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영상산업 인프라 구축에 발벗고 나섰다.
두 단체는 오는 12월 13일(토) 11시 영산대학교 부산캠퍼스 영산관 2층 회의실에서 영산대 부구욱 총장과 부산영상위원회 박광수 운영위원장은 부산영화영상산업의 성장과 대학의 영화영상교육의 내실을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한다.
협약내용에 따르면 영산대는 부산영상위원회가 지원하는 영화촬영에 영화영상학부 학생들의 전공에 따라 로케이션 현장에 실습수업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또 해운대 영화촬영 스튜디오 촬영도 수업과 연계하여 실내촬영을 비롯하여 프로덕션 디자인(세트 디자인)과 미술, 스튜디오 조명, 특수효과 등 여러 가지 전문적인 제작기술을 배울 수 있는 현장 교육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이외에 시나리오에 적합한 공간을 찾아내는 훈련을 통해 영화공부를 하는 『로케이션 지원 참여프로그램』을 정규교과로 만들 예정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부산영상위원회가 만들 "로케이션 디렉토리"제작에 필요한 사진과 동영상 제작에 영화영상학부 사진영상과 영화제작 전공학생들이 참여, 영산대와 부산영상위원회는 운영인력 등 현장 전문인력의 재교육을 위해 교육과정 및 교재의 공동개발에도 함께 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국내 대학중 유일하게 『영화제작전공』을 개설한 영산대와 부산 영상제작 지원센터인 부산영상위원회가 공동으로 지역의 영화영상인력 양성, 기술개발 등 영화영상산업 기반구축을 위해 나선 의미있는 산학협력체제이다.
기경훈기자
hun@ysnews.co.kr
검도는 전투의 수단으로 성립되고 발전된 것이라고 하며, 지금에 와서는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검도의 중요한 요소가 예절과 수도하는 마음가짐,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인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무도(武道)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듯 하다.
검도 연합회가 토요일마다 모여 운동을 하고 있다는 중앙검도장(북부동)을 찾아 류진열 관장을 만났다. 검도연합회 회장 박은서씨 소개로 만난 류진열 관장은 양산에서 터를 잡은 것이 10년, 검도를 한 것은 40년이 되었다고 한다. 류관장을 통해 검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검도연합회에 대해?
― 올해로 양산에 검도연합회가 생긴지는 3년이 되었다. 박은서(양산대학 교수)회장을 주축으로 5개 지회가 운영되고 있다. 상북, 하북, 물금, 웅상 덕계, 양산 이렇게 다섯 개 지회로 180명 동호인들이 있다. 양산생활체육 검도연합회에서는 대학생 이상 성인들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중앙검도장에 모여 운동을 하고 있다.
12월 14일 일요일에는 웅상중학교 체육관에서 웅상지회(김영준 지회장) '웅상지역 지회장 배 검도대회'를 개최한다. 처음으로 행하는 이번 대회에서는 부산, 울산 지역 검도인들도 초청하여 경기를 하는데 약 250명 가량이 참가할 예정이다.
△ 검도의 매력?
―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체력 증진과 정신 건강에 검도가 좋다. 학생들에게는 인격 수양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동호인들이 모여 하는 운동들은 친목 도모도 할 수 있어 좋다.
뭐니 뭐니 해도 검도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수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운동은 오래 동안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연세가 80이 넘어서도 활동하는 분도 있으며, 일본에서는 90이 넘은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당면 과제?
― 어느 운동이든지 언제나 장소가 문제다. 실내 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실내 체육관이 오픈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관리 차원에서 보면 실내 체육관을 오픈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지금 시점에서는 실내 체육관이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실내 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사설 검도장에서 모여 운동을 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
― 경상남도 검도 대회를 양산에서 개최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잡지 못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경남 검도 대회를 양산에서 개최하기를 원한다.
이 영화는 글라디에이터 이후 다시 제기한 '리들리 스콧'감독과 엄청난 규모의 영화를 주로 제작하는 '제리 브룩하이머'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끝없는 기아사태에 의해서 수많은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하자 UN은 그들 지역에 구호식량을 지원 하게 된다.
그러나 소말리아의 악독한 민병대장 '아이디드'에 의해서 구호식량이 착취당하며 이를 무기화하고 내전과 기아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1993년 10월, 미군의 최정예 부대는 '아이디드'를 납치를 명령받고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로 투입된다.
당초 이 작전의 예상 소요시간은 약 1시간으로 예상했으나, 미군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한 '아이디드'의 수 천명병력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되고, 미군의 블랙호크기 2대가 추락하게 되면서 작전은 점점 꼬이게 된다.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은 작전이 하루를 넘기게 되고 '납치'가 목적이었던 미군은 '생존'과 '탈출'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지옥과도 같은 전투를 벌이게 된다는 것이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슈퍼비트 디럭스 에디션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맞게 기존의 일반판과 다르게 DTS사운드 및 엄청난 양의 스페셜 피쳐를 가지고 있다. 스페셜 피쳐를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엄청난 양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3번 디스크에 포함되어 있는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는 반드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적 배경이 된 그 당시 사항을 잘 설명하고 있으며, 되도록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디스크에 들어 있는 PBS의 다큐멘터리와 비교해서 보면 더욱 알 수 있을 것이다. PBS 다큐멘터리도 나쁘지는 않지만, 공영방송의 특성 때문인지 미국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보너스로 OST가 들어있는데, DVD를 위해 따로 제작된 것은 아니고 기존에 직수입 된 것으로 그대로 포함되어 있어 가치가 있다.
가만히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미군이 지금 이라크에서 처해있는 사항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을 믿고 자유라는 이름아래 오만하게 행동하다가 자기 자신들은 물론 많은 현지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모습과 상황이 모가디슈전투나 지금의 이라크의 상황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그리고 결코 그들은 모가디슈 때의 소말리아인이나 이라크인들에게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미국인들은 이라크 전쟁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궁금하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또다시 고치려고 하지 않는 그들에게는 계속해서 이러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화 면 : Anamorphic Widescreen 2.35:1
●오디오 : 영어 Dolby Digital 5.1 Surround / DTS 5.1 Surround
●자막 : 영어 / 한국어 / 스페인어
●지역코드 : 3 ●등 급 : 15세 이상
●제작사 : 콜럼비아
●디스크 : 3 장 + OST 1장
●스페셜 피쳐 : 7시간 분량의 메이킹 필름 / 스토리보드 / 홍보영상물 / 미션 타임라인 / 포스터 컨셉아트 모음 / Q&A 포럼 / 블랙호크침투 장면 멀티앵글 분석 / 히스토리 채널 ㆍ PBS의 다큐멘터리 / 뮤직비디오 / 예고편 등등...
김정용 시민기자
이태리 로마에서 한 10여년 살았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그 경험들 중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고, 다시 생각해봐도 새록새록 정겨움이 묻어나는 일들도 있다. 성악을 전공한 필자로서는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가 많을수록 즐거움은 더하게 된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외각에 위치한, 노인들을 전문치료하는 곳에서 노래했을 때다.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당연히 시큰둥했었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노래를 부를 순서를 기다리면서 내심 놀라게 된 것은 앞 순서의 소프라노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어떤 개인 날"이라는 아리아를 부르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앉아있는 할머니가 따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사 하나 놓치지 않고…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모든 순서가 끝났을 때, 휠체어 탄 노인이든, 부축 받은 노인이든, 모두 기쁘게 우릴 반겨 주었고, 얼굴 크고 머리색 까만 이방인인 나에게도 빠짐없이 악수와 입맞춤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 했었다.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오래토록 사람들의 삶 속에 배여 있었으면 인생의 막다른 길에 있는 노인의 입에서 오페라 아리아가 흘러나올 수 있을까. 중ㆍ고등학교시절 수업시간에 들었던 '문화의 나라'니 '예술의 도시'니 하는 말들을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물론 그 외도 많은 것들이 있지만…
바야흐로 양산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넓은 들판에 국립대학의 캠퍼스가 들어서고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지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양산시민의 이름으로 생활하고 있고 그렇게 불리는 것에 자긍심을 가질 만도 하리라.
작년에는 문화회관이 개관되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시 간의 발전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많은 예술 활동들이 문화회관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다 보면 양산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 있는 것도 발전ㆍ계승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 도시를 자랑할 때 여러 가지 자랑거리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문화유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도시를 여행해 보더라도 그 도시를 자랑하는 것은 박물관과 오페라극장, 그리고 유적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양산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변화하는 가운데 "예술이 살아 있는 도시 양산" 으로 발전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멋있는 시민이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될 것 같은데…
지난 12월 4일 오전 10시부터 양산 실내체육관 앞 광장에서 유아ㆍ유치원생들을 대상으로 '119소방 활동 현장 체험장'이 실시되었다. 양산소방서 임상규 서장 외 60명과 양산의용소방대(여성)대장 외 17명과 양산 관내 코끼리 유치원 외 22개소의 유아, 유치원생 및 학원생 등 약 1741명이 모인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날 행사는 3부로 나누어져 이루어졌는데, 1부 '119 어린이 소방퀴즈왕 선발대회'에서는 OX 문제 풀이를 통한 소방상식을 알려 최종 선발된 4명의 어린이에게 상품(손목시계)을 증정하였다. 2부에서는 시범 및 현장체험이 이루어졌다. 긴급구조 119안전사고 예방 관련 사진전시, 특수 소방장비시범 (고가 사다리차, 굴 절차 외 특수장비), 119구조대 인명구조시범, 방수시범, 초순간진화기 시범, 화염 속 방열복 통과, 유압장비 및 동력절단기, 에어매트 시범, 어린이 현장체험 등이 있었다. 3부에서는 차량탑승 체험 및 사진 촬영이 있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소방 캐릭터(6개)를 활용하여 볼거리와 흥미를 제공하고 구조, 구급, 화재사진 전시 및 각종체험을 통한 각종 사고 및 화재예방 홍보를 실시하였다.
어린이 불장난 방지 차원에서도 이번 행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서 화재 위험성을 알리고 아이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지난 12월 10일 양산시 원동면 당곡마을 용당 나루에 자리 잡은 '가야진사'에서는 '용산 안녕 기원제'가 열렸다.
이 기원제는 대구, 부산간 고속도가 인해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소재 용산마을 뒷산인 용산(해발 49m)의 허리를 통과하는 것으로 설계돼 신라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온 마을의 수호신이 용산의 허리가 잘리게 되자 용산을 위해 용산안녕기원제를 지냈다.
용산은 양산과 김해주민들에게는 가장 신성시 되는 지역으로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곳이며 경남도 민속자료 제 7호와 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곳이다.
'용산보존대책추진위원회'(위원장 이탁희)는 그 동안 용산의 정기와 정통문화 보존을 위해 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청와대는 물론 건설교통부, 경남도 등 관련 부처를 방문해 제출하는 등 노선변경을 요구해 왔으나 11월 노선변경이 철회 되지 않고 대우건설에서 보상금을 내주자 용산보존대책추진위는 "비록 우리의 힘으로 마을의 수호신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 명맥만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며 보조금전액(3000만원)을 사단법인 설립에 사용하기로 하고 이를 계기로 이날 '용산 안녕 기원제'를 지내게 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원동 부녀회원'들이 펼친 잡신을 부르는 부정굿을 시작으로 시작되었으며, 집례관의 집전 하에 용신제를 올린 후 제관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배에 희생돈을 싣고 용소로 출발하여 제를 지냈다.
사당이 있는 용당 나루는 신라가 가야(伽倻)를 정벌할 때 왕래하던 곳으로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올려 장병의 무운장구와 풍년기원제 및 기우제등을 지냈던 유서 깊은 곳으로 사당은 신라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이 일대를 전초기지로 삼을 때부터 널리 알려져 내려왔다.
기경훈기자
hun@ysnews.co.kr
아침저녁으로 몸에 와 닿는 찬 기운에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움츠려지며 따끈한 차 한 잔이 그리워진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자연적으로 우리의 활동량은 줄어들고 자칫 운동 부족으로 이어져 체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추위도 이길 수 있고 체력증진에도 도움이 되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한방약차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약차의 종류와 효능
◇ 쌍화차: 심신이 허약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며 원기 회복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차이다 몸과 마음이 피로하거나 힘든 일을 하고 난 후에 혹은 초기 감기에도 마시면 몸이 가벼워 진다 (재료:작약,당귀,천궁,숙지황,황귀,계피,감초)
◇ 구기자차: 신경쇠약, 자양강장, 고혈압, 피로회복에 좋으며 오랫동안 복용하면 잔병을 막아준다. 살짝 볶은 뒤 달인다.
◇ 두충차: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해주며 기억력 감퇴와 심장병에 효험이 있고 습관성유산, 만성요통에도 좋다. 약간 누렇게 볶은 뒤 약한 불에 달인다.
◇ 당귀차: 몸이 찬 사람이 당귀차를 마시면 혈액순환을 잘 시켜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효능이 있다. 당귀는 여성을 위한 약초라 할 만큼 각종 부인병에 효과가 좋으며 피부에도 좋다. 또 맛과 향이 일품이라서 차로서는 제격이라 하겠다.
◇ 복분자차: 산에서 나는 나무딸기를 복분자라 하는데 맛이 달면서 약간 시고 성질은 따뜻한 편이다. 눈의 피로, 음위증, 잔뇨감, 잠잘 때 식은땀, 요통 등에 좋다. 남자는 정력을 보강하고 여자는 자궁을 튼튼하게 하여 임신에 도움을 준다.
◇ 의이인(율무)차: 여성에 특히 좋은 차로서 혈액순환을 촉진 시키고 이뇨 작용을 하여 습과 수종을 없애며 지방질을 분해하므로 비만여성의 다이어트에 좋다.
또한 소화불량, 관절통, 신경통에 유용하며 피로회복 및 기미, 주근깨, 여드름에 효과적이며 각기병, 근육경련에도 좋다.
◇ 오미자차: 다섯 가지 맛을 가졌다 해서 오미자라 불리는데 그중 에서도 신맛이 가장 강하여 수렴작용이 뛰어나다 기침, 가래 등 기관지에 좋으며 신허 로 인한 몽정에 좋고 식은땀을 그치게 한다.
◆ 달이는 법
한약 달이듯 정성껏 달이며 대체로 처음에는 센 불로 달이다가 물이 끓으면 약한 불로 은근히 오래 달인다.
또 약차도 기호음료 이므로 효능도 중요 하지만 향기와 맛이 좋아야 즐겨 마실 수 있다. 따라서 기호에 따라 계피나 생강 감초 대추 등을 함께 달이거나 꿀이나 설탕 등의 감미료를 적당히 사용해도 좋다.
◆ 마시는 법
약차는 분위기에 따라 그때마다 마실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약효를 기대 한다면 지속적으로 꾸준히 마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많이 달여 큰 용기에 보관하고 조금씩 데워 마시는 것도 좋다.
이와 같이 하여 매일 약초 차 한 잔씩을 마신다면 피로도 풀고 체력도 증진 시킬 수 있으니 올 겨울은 항시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수원대학교 경상대학 박성만 학장 역시 양산이 낳은 양산인이다. 굳이 한 대학의 학장이라는 직함을 말하지 않더라도 일찍이 학문의 세계에 들어서 남다른 입지를 세운 이 양산사람을 우리는 자랑스럽다 아니 할 수 없다. 당시의 읍내 중부동에서 태어나 유년기는 주로 삼동의 외할머니댁에서 자랐다는 그의 유년시절을 들어본다.
"그 집터는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마당 앞 대나무 밭, 미나리꽝, 한 그루의 단감나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죽순, 참새, 미꾸라지, 홍시 등의 말을 되새기면 자연스레 고향의 외가댁 그 옛터가 머리 속에 그려지지요. 안채에는 부산으로 통근하는 누나와 나, 그리고 할머니, 바깥 채 옆방은 사글세 사는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집밖으로 한걸음만 나가면 큰 냇가에 이르고 곧 춘추원이었습니다. 냇가에서의 물놀이, 고기잡이, 뒷동산의 당산나무, 그리고 조그만 사찰, 뒷골, 법기수원지, 효충리 복숭아밭, 내원사, 통도사, 석남사…"
비록 몸은 양산을 떠나 있어도 마음은 늘 고향의 산천에 머문다. 그러면서 또 줄줄이 친구들의 이름도 떠올린다.
"옥출이, 외숙이, 정필이, 현복이, 정미, 동호, 영일이, 이택이, 승호, 성기, 동우, 춘발이, 윤한이…"
지금도 크게 사정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 양산의 교육여건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으니 소년 성만은 초등학교(양산초)와 중학교(양산중)만 양산서 나오고 고등학교부터 대처생활을 시작한다.
명문 부산고등학교 - 물금역에서 기차를 타고 구포를 거쳐 부산의 초량역에 내려 학교까지 가는 긴 통학코스를 오가면서 그는 이미 고향을 떠날 차비를 차리고 있었던지 모를 일이다. 곧 이어진 서울에서의 대학(성균관대 상대)생활, 대학재학 중의 공인회계사시험 합격, 군복무(육군통합회계장교), 공인회계사 개업, 미국 유학(애리조나 주립대 회계학 석사), 부산의 해양대학 강단을 거쳐 수원대학 경상대학장에 이르는 동안 그의 몸은 줄곧 고향을 떠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몸이 떨어져 있는 만큼 마음은 오히려 더 짙게 고향의 향수에 젖는 것은 왜일까?
1990년에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 학장은 '재무회계의 기초(1988년)', '재무회계(2000년)', '회계감사요해(2001년)' 등의 저서를 집필했고, 한국공인회계사회 회계감사감리위원, 수원시, 화성시, 화성상공회소 등의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앞으로 집필활동에 더 많은 공력을 들이고 사회봉사활동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계획이란다. 가족은 부인과 1남 2녀의 자녀.
중학교 동기들과 두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부부동반모임을 갖고, 운동을 좋아해 향우회 골프모임에도 빠지지 않는데 주로 모이는 멤버는 모임의 회장인 김기수 전 검찰총장, 총무 김성현, 최태상 교장, 배재욱 변호사들이라고.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그 골프모임에서 타향살이의 양산사람들은 저마다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랜단다.
"양산이 도시화 되면서 옛 자취와 향내는 점점 사라져 가고 공단과 도로와 건물이 자연을 삼키고 있겠지요. 고속전철이 천성산을 뚫고 내원사를 가로 지른다하니 이 또한 자연 환경이 파괴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적어도 상북 위로는 자연이 보전되어야 할 터인데… 양적 측면의 경제적 부보다는 삶의 질이 향상되는 방향에서 양산의 발전이 계획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절제와 검소한 생활 방식을 지키는 생활을 이녁의 인생관으로 삼고 오늘의 여기까지 온 박성만 학장. 고향의 풀뿌리 지역신문에 대한 애정과 기대도 각별하다.
"지역신문이 살아나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꽃피게 될 것이고,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뿌리 내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고향의 지역정론지를 표방하는 '양산시민신문'의 번성과 발전을 기대하고 또한 지역사회에서 열심히 노력하시는 시민 여러분의 행운과 건승을 빕니다.
항상 보광고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양산시 김상걸 시의회의원님을 만났다.
▶시의회의원으로서 본교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까닭은?
보광고의 발전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서울 강남이 왜 유명합니까? 좋은 고등학교가 많기 때문 아니겠어요? 보광고의 발전은 곧 지역사회 발전에 엄청난 인센티브가 될 것입니다.
▶보광고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좋은 방안이 있다면?
보광고가 지역사회 발전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학교에 지대한 성원과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매년 학교 축제인 '영축제'를 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로 확대 발전시키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보광고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 자신의 고등학교 때를 되돌아보면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학교 교육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평범한 말이지만 소중한 학창시절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일부 학생들이 요즘 학교생활에 태만하면서 기성문화의 나쁜 점에만 편성하려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꼭 공부만 잘하라는 말이 아니라, 학교생활에 충실하여 사회에 나가 활동할 때 적응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라는 말입니다.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나 자신을 가꾸어 나간다면 보광 학생들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며 보광고의 미래와 우리 지역사회의 미래도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최경인 학생기자
지난 12월 1일, 보광고에서는 2004학년도 학생회 회장과 부회장을 뽑았다. 회장 후보로 2학년 박상욱과 최경인, 부회장 후보로 1학년 김달효와 한경민이 나서 11월 29일, 전교생을 대상으로 체육관에서 모교 발전과 변혁을 내세우며 치열한 선거 유세를 했다. 그 결과 최경인이 초반 예상을 뒤엎고 보광고 개교이래 첫 '여학생 학생회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다. 한경민은 1학년 부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의 이변이라고 불리는 여학생 최경인의 회장 당선은 사실 까닭 있는 이변이었다. 최경인은 평소 지도력 있는 여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선거 공약 내용이나 유세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다.
학생회를 진정한 학생 자치로 이끌어 학생들의 소망과 의견을 반영할 구체적 방안을 보여 주는 등 학생들이 가장 바라는 것들을 정확하게 집어 제시했으며 선거 유세에서 자칫 지루해서 듣지 않을 수 있는 연설을, 보조하는 친구들과 적절한 소도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유권자인 학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던 것이다.
"정치인들처럼 학생회장 출마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공약대로 앞장서서 실천ㆍ헌신하는 학생회가 되고,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 당국에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학생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변화의 바람을 맞은 2004학년도 학생회가 기존의 틀을 벗어나 행동하고 헌신하는 학생회가 되어 보광의 발전과 변혁을 주도하는 하나의 바탕을 이루기를 학생들은 선거가 끝난 다음 더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고 있다.
최은화 학생기자
문화의 불모지였던 양산에서 다양한 음악활동을 통해 양산을 예향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우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해서 보광관악합주부를 창단한 것이 1989년이었다. 그 후 보광관악합주부는 '끼' 있는 학생들의 아름다운 화음과 감성으로 여덟 차례의 정기 연주회, 세 차례의 경남도 교육청 초청 마산 MBC홀에서의 '푸른 희망 관현악' 초청 연주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아시안 게임과 도민체전 개막식 행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여 그 행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 왔다.
게다가 관악합주부원들은 음악 연주를 통해 쌓아온 집중력으로 학업성적도 우수해서 자신의 특기와 적성을 살리고 개발하여 음악 전공자 100%가 음대진학을 해오고 있다. 그 결과
로 경남도학예대회 합주부문에서 3년 연속 우승의 영예를 안았고, 관악부원 중 최민재와 안창우는 전국 관악 콩쿨 트럼본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등 연주실력을 전국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보광 관악합주부원들은 음악에 끼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끼를 마음껏 펼치며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스스로의 연주력을 키워 특기와 적성에 맞는 사회 진출의 길까지 열고 있는 보광의 얼굴이다.
김지윤 학생기자
등교시간,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BBC의 밝고 가벼운 음악 방송이 교정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21년 전통의 보광고등학교 방송부 BBC는 정서순화 및 인성교육 배양을 위해 노력하는 동아리로서 현재 배영태 방송 담당 선생님과 1학년 5명, 2학년 5명, 3학년 6명의 구성원들이 엔지니어, 작가, 그리고 아나운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매일 등교시간, 점심시간에 음악 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BBC는 특히 월요일에는 '이야기 속의 메아리'라는 자체 제작방송을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BBC는 학교 행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행사인 '하북면민의 날'이나 '삽량문화제' 등에서 방송기계장치를 설치하고 상황중계 등을 맡아 하고 있다. 그리고 2002년, 2003년의 '양산청소년문화제'에서는 영상물을 직접 제작?편집하여 양산 청소년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활발한 교내외 활동을 통해 교내는 물론 지역사회에도 봉사하는 BBC의 역할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다.
조소현 학생기자
바쁠 때는 아침도 못 먹고 와서 점심 곱빼기로 먹고 저녁도 먹는 우리 학교 급식소는 1999년에 면적 645.25㎥, 좌석 수 324석 규모에 최신 시설을 갖추고 영양사, 조리사, 조리종사원 10여 명으로 출발했다. 급식소 직원 중 조리 종사원 10여 명은 모두 우리 학교 학생들의 어머니들이다.
저녁을 먹은 후 인터뷰를 위해 급식소를 찾았더니 모두 뒷정리에 바빴다. 몇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편집부(이하 편) :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젠가요?
급식소 아주머니(이하 급) : 학생들이 반찬을 남기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단다.
편 : 그 동안 일하면서 재미있었던 일은 없나요? 에피소드 같은 거.
급 : 짜장면이 메뉴였던 날 여러 학생들이 두 번 세 번씩 먹는 바람에 늦게 온 학생들이 먹을 짜장면이 모자라 급하게 국수를 마련해서 점심을 때운 적이 있어.
편 : 직장이 학교 급식소라 좋은 점은?
급 : 아들, 딸을 비롯해서 여러 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거지. 일하면서 힘들 때도 있는데 그땐 내 자식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든 것 다 잊기도 해.
편 : 예뻐 보이는 학생은 어떤 학생인가요?
급 : 식판을 깨끗이 비우고 숟가락 젓가락도 예쁘게 놓고 뭐 그런 학생들이야. 인사 잘 하는 학생들도 예쁘지.
편 : 설문조사를 해보았는데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갈비탕이 1위를 차지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급 : 갈비탕은 뼈를 고아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학생들이 맛있게 먹어준다니까 정말 기분이 좋구나.
편 :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급 : 앞으로 더욱 맛있게 남기지 말고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약 먹고 나서 약봉지를 컵에 넣지 않도록. 건강하게 공부 열심히 하는 보광인이 되었으면 해.
힘든 것, 박봉인 것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내 아들, 딸이 먹는 음식 만드는 일이라고 정성껏 밥 짓는 우리들의 어머니, 급식소 아주머니들. 우리들은 이 밥 퍼 아줌마들 덕분에 오늘도 영양가 높고 맛좋은 어머니 손맛의 점심, 저녁을 따뜻하게 먹는다. 사랑을 먹는다.
이수빈 학생기자
○우리 학교는 <농ㆍ어촌 대학 특례 입학> 대상 학교다
현재 대학입학 전형에서 농ㆍ어촌 특별전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양산 관내 학교는 보광고등학교와 웅상읍 소재 고등학교 뿐이다.
○농ㆍ어촌 특별 전형이란?
학습 환경이 불리한 농ㆍ어촌 지역(읍ㆍ면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들의 대학 입학을 위해 마련된 특별전형이다. 입학 정원의 3%를 정원 외로 선발하며 학부정원의 모집단위별 최대 10%까지 모집하고 있다.
읍ㆍ면 지역에 소재하는 고등학교 중 특수목적고(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체육고)는 해당되지 않는다. 2002년부터 서울대도 농ㆍ어촌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우리학교 선배들의 진학 사례로 볼 때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진학한 경우 20-60점 정도의 혜택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울ㆍ경기지역, 부산, 대구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양산시내 학교를 농ㆍ어촌 특별전형지역에서 제외함에 따라 우리학교 학생들의 서울ㆍ경기지역 및 부산, 대구 지역대학 진학이 더 쉬워졌다.
허은혜 학생기자
1990년부터 입어오던 전통의 보광 교복이 바뀌게 돼 2004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새 교복을 입는다.
새 교복의 색상은 남녀 모두 세련된 검은색으로 했다. 여학생은 치마와 바지를 같이 준비하게 하고 남학생의 경우 조끼를 입을 수 있게 하여 환절기나 겨울철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했다. 품위 있는 검정 색상에 세련되고 깔끔한 디자인의 새 교복을 본 많은 재학생들이 부러움 섞인 시샘의 말들을 했다.
"보광의 역사를 새롭게 쓸 2004학년도 신입생들이 부럽다." 한경민 학생기자
새 아침을 위한 노래 - 권기현 교장 -
새로운 아침이 열린다
목마름과 기다림의 시간을 넘어
이제 세상 앞에
낡은 몸을 털고 모두 한마음으로 깨어나
새아침을 맞자.
25년을 기다려 성숙한
<독수리>의 날개는 의지의 깃발,
신선한 감각으로 꿈을 펼친다.
지난 밤 어두운 꿈길을 돌아 나와
어제의 빈자리에 가득 차는
영광의 빛이여!
타오르는 햇살을 받아 영축산의 품은 더욱 뜨겁다.
하북 벌판의 아지랭이 기운 속에 돋아나는
지축을 울리던 함성의 메아리를 듣는가?
야성이 살아 숨쉬는 대지에
<느티나무>의 번영과, 숙명과
<장미>의 열정을 사랑하며
한 때 망설이며, 포기했던 기억을 지우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자.
모두의 고향이 되어 돌아오고 싶은
영축산 산자락만큼이나 넉넉한 보광이라는 이름이여!
변화의 물결에 온몸을 적시며
전통의 바람으로 내일을 안아 주자.
예의와 순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제 지혜와 용기가 함께 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약속을 다듬으며
열린 길을 따라 선구자는 소망의 목적지를 향하여
이미 출발했다.
젊은 날의 믿음과 소중한 꿈을 공유하는 한
아무 것도 두려울 것 없다.
이 얼마나 결연한 새아침의 기도인가.
<독수리> : 보광고를 상징하는 새
<느티나무> : 보광고를 상징하는 나무
<장미> : 보광고를 상징하는 꽃
영축산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천년 고찰 통도사가 있는 하북면 순지리에 위치한 보광 고등학교는 향토 출신 사업가 고 '남계 신달수'님이 '인재를 육성하여 선진 한국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설립한 학교이다. 그 동안 졸업생이 7,000명에 이르며 그들은 각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광고는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이지만 22개 학급, 735명의 남녀 학생, 권기현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47명의 선생님들이 '활기찬 젊음! 힘찬 전진! 웅비하는 보광!'을 구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여 97% 이상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명문 사학이다. 특히 대학 입학 시 농어촌 특별전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학교로서 금년에는 12월 8일 현재, 수시 모집에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에 21명 등 총 141명이 합격했다.
보광고는 쾌적한 학습 환경 조성을 위해 컴퓨터실, 모둠학습실, 어학실을 LCD프로젝트, 대형 스크린 등 첨단 기자재로 완비했고, 음악실과 관현악합주연습실은 완벽한 방음시설을 갖추었으며, 체육관과 공연장 시설을 갖춘 다목적 교실인 남계회관을 건립하여 예체능교육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남계회관 1층의 급식소는 타 시도에서도 견학을 오는 최신시설로 완비하여 학생들에게 위생적이면서도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이 지닌 다양한 끼를 꺾지 않아 마음껏 발산, 발전시킬 수 있도록 특별활동이나 동아리 활동도 장려하고 있다. 문학, 축구, 농구 등 12개의 동아리와 검도부, 영화감상부 등 34개의 특별활동 부서를 편성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다양한 특기, 적성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소풍, 체육대회, 수련회 등에서 마음껏 자신의 끼를 발산하게 하며 특히 5월에 열리는 학교 축제인 '영축제'에서는 전교생이 한마음이 되어 축제 문화를 즐기게 하고 있다.
날로 인정이 황폐해지는 사회 속에서 '예절' '약속' '질서' '시간' '명예'를 5대 지키기 운동으로 전개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지(智) 덕(德) 체(體)가 조화로운 전인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영축산의 푸르고 곧은 기상과 품성을 보고 배우며 남녀 학생이 함께 소중한 젊음을 가꾸어 가는 즐겁고, 머무르고 싶은, 꿈이 있는 학교가 바로 보광고등학교이다.
홍지연 학생기자
◁가산리 마애여래입상[架山里磨崖如來立像]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북쪽 금정산맥(金井山脈)의 주봉에서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화강암 절벽 위에 새겨진, 높이 12m, 폭 2.5m의 거대한 마애불이다.
머리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둥글게 솟아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네모진 형태이고 활 모양의 눈썹과 살짝 감은 눈, 망울이 큰 코등이 토속적인 인상을 준다. 어깨가 벌어져서 신체가 건장해 보이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얕게 새겨져 있다.
암벽 주변에 축대와 토기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예전에 근처에 사찰이 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모습이 토속적이고 지방색이 짙으며, 얕은 선각으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법기리도요지[法基里陶窯地]
사적 100호. 오래 전부터 근처에 있는 창기마을의 이름을 붙인 '창기사발'을 만들던 가마터로 알려진 곳이며, 조선 중기인 16~17세기경 지방에서 사용하던 백자를 만들던 곳이다. 마을 뒷산의 기슭에서 산 윗부분까지에 걸쳐 가마터가 여러 곳이 남아있는데, 사람들의 주거공간과 무덤들이 들어서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가산리도요지[架山里陶窯地]
도기념물 196호. 조선시대의 관요(官窯:고려?조선 시대에, 관아에서 운영하던 사기 가마)로 추정되며 1970년대에도 옹기를 굽는 현장이 남아 있었다. 마을 지명 또한 아직도 옹기골로 불려지고 있다.
◁호포성지(狐浦城址)
시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호포성지라 전해오며 철로에 접한 소구릉상에 있는 중형의 석축성이었으나 일제 때 전부 파괴 멸실되었다.
◁이수생 묘(李秀生 墓)
조선 순조 10년(1810년) 임진왜란 때 경주, 언양 경계에서 적병과 접전하여 전공을 세웠고 다음해 영천에서 적을 쫓다가 팔공산에 이르러 크게 이겼으며 화왕산에서는 곽재우(郭再祐) 막하에서 적군을 대파하였다. 후에 조정에서는 종삼품훈련원첨정(從三品訓練院僉正)을 제수하였다.
◁은동굴(銀銅窟)
신라 내물왕(奈勿王) 때에 은, 동을 캐낸 곳으로 굴의 내부에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와 샘이 있어 임진왜란 때에는 산 아래 동네 6성(李, 許, 鄭, 裵, 孫, 余氏) 가족들의 피난처였다고 한다. <사진있음, 동면지 p520>
◁금호사(琴湖祠)
조선 순조 10년(1810년)에 임진왜란 공신이었던 이계생(李季生)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연안 이씨 문중에서 사당을 지었는데 훼손되고 가묘(家廟)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