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김하나(가명) 씨는 대한민국 여성이면 누구나 선망하는 섹시한 S라인을 꿈꾸며 다이어트에 도전했다. 식단을 조절하고 열심히 운동해 원하는 몸무게까지 살을 뺐건만 이게 웬 일? 아랫배는 여전히 볼록하고 엉덩이살은 처져있고 종아리는 튼실하기만 하다. 거기다 등살과 팔뚝살은 여전히 넓고 두툼하다. 예전의 다이어트는 단순히 사이즈만 생각했다. 즉 몸무게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우선시돼 식이조절과 유산소 운동 등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은 라인의 시대다. 같은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단순히 몸무게의 감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라인을 생각하는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S라인은 단순히 운동과 식이조절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체형을 살펴봐야만 한다. 평소 구부정한 자세인 사람은 특히나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예쁜 몸매를 가지기 어렵다. 골반이 앞으로 틀어지면 아랫배가 나오는데 이 경우 살을 빼기 위해 각종 시술과 운동을 해보지만 잘 빠지질 않는다. 골반이 직접 아랫배를 밀고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다 골반이 틀어지며 허리뼈까지 같이 끌고 앞으로 나가기 때문에 척추가 구부정해지면서 배가 더욱 나오게 된다. 쉽게 이해하자면 8세 이전 어린이를 생각하면 된다. 8세 이전 어린이는 아무리 마른 아이라도 배가 나와 있다. 어렸을 때는 골반이 앞으로 쏠려 구부정해지면서 배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골반이 틀어진 경우 엉덩이살(일명 새들백)은 처지게 되고 종아리는 틀어져서 굵어보이게 된다. 거기다 골반이 틀어지면 구부정한 자세가 돼 등이 굽어져 등살이 생기게 된다. 이런 경우 살도 잘빠지지도 않지만 대부분 목이 아프거나 요통을 호소하며 바닥에서 똑바로 누워 자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자거나 침대에서만 자야하는 경우가 많다. 아랫뱃살, 엉덩이살, 종아리살, 등살이 잘 빠지지 않고 고민이라면 우선적으로 골반의 틀어짐을 의심해보고 다이어트와 함께 필수적으로 체형교정 치료가 들어가야 한다. 구부정한 자세를 바르게 펴는 것만으로도 같은 몸무게라도 외형상 상당한 S라인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이런 사람은 대부분 목이 뻐근하거나 허리가 아픈 증상이 많은데 체형교정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함께 치료가 되기 때문에 상당히 만족도가 높다. 체형교정 다이어트는 우선 틀어진 골반 등을 체형교정 추나 요법과 침치료, 약침 치료 등으로 바르게 교정하고 개개인에 따라 다이어트 맞춤한약 등을 복용해 식욕을 조절하며 체지방을 빼게 된다. 그리고 맞춤 운동 처방과 잘못된 습관의 교정으로 체형이 틀어지는 것을 막고 평상시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건강하고 아름답게 라인까지 생각하는 다이어트가 가능해진다.
천성산 오르다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났다. 어느 쪽으로도 쉽게 가지 못해 주춤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남쪽으로 난 길을 돌아서 가라고 일러 줬다. 그것이 내 시의 길을 안내해 준 영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에 들어오게 된 동기이다. 영산대학교와 나는 아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차들이 질주하는 현실 속의 길은 늘 무거워 잘 펴지지 않는 삶처럼 뻗어 나갈 힘에 겨웠지만, 그 길은 천성산 끝자락에 깊이 안겨있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새벽 안개와 한 몸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도전의 과제로 생각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앙선이 없는 좁고 굽은 길이지만 그 길은 사유가 있고 풍광이 있는 마음이 들어 설 수 있는 길이었다. 새 길을 걷는 초입은 늘 가슴이 두근거렸고 마음은 봄꿈을 꾸는 것처럼 신열에 들뜨게 했다. 길의 끝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거라 믿어 왔지만 그러나 그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길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탁발을 하고 좌선에 든 노승처럼 길은 꿈쩍도 않고 앉아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 어둠속 미지의 꿈속에서 꾸었던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산을 오르다 등이 굽은 산등성이에서 쉬고 있는데 산사 경내의 풍경 소리가 정적을 깬다. 그것이 내 몸속의 정적을 깨는 소리였다. ‘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사람들은 제각각 길을 간다. 과학자는 과학자의 길을, 의사는 의사의 길을 살아간다. 사람이 왔다가는 한 생애에 대해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했는데, 나의 길에 대해 골똘해졌다. 천성산은 내 안의 길이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험준한 길일지라도 결코 돌아오고 싶지 않다. 누가 남쪽으로 난 길을 돌아서 가라고 일러 줬을 때, 내 운명의 길은 이미 산문에 들어 다시 돌아 나오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시 쓰기는 도착이 아니다. 우리는 몸으로 맨발로 가야한다. 자아를 떠나야 한다. 시 쓰기를 위해 얼마나 멀리 도착해야 하는가? 멀리 방황하며 지치고 기쁨을 느껴야 하는가? 밤의 길이만큼 걸어야 한다. 자신의 밤만큼 어둠을 향해 자신을 통과해서 걸어가는 것만큼’. helenec 의 말을 되새기곤 한다. 음악인은 음악이 궁극적인 도전 과제이듯, 가슴 뛰는 삶은 결코 통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좇는 일일 것이다. 성공이나 도착이 없는 길 일지라도 그에 대한 도전 정신이 나를 살게 하기에 걸어도 끝없는 그 길을 사람들은 가려고 한다, 어떤 때는 길이 길을 가로 막는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길이 버티고 서서 나에게는 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저리쳐 돌아보면 제 자리 걸음 속에 갇힌 내 모습에 흠칫 놀라곤 한다. 세상을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연에 대해서 그 우연으로 인해 필연적인 ‘시’ 쓰기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을 잘 선택하여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만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 떠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길을 안내 해준 스승이 있었다. 배움의 길에 ‘큰 스승’이 있듯 영산대학교는 내 ‘시’의 길을 찾아준 큰 스승이다. 잊혀져 있던 기억 한 컷이 마치 길의 한 토막처럼 시간의 공백을 뚫고 솟아오른다. 오래 잊고 있던 그 기억 상실이 되살아나, 내 안에 길 떠나기를 작심한, 글쓰기는 내 안에 길 찾기인 셈이다.
저녁 노을 한 조각이 길 위에 떠있고 가는지 섰는지 수레바퀴 돌 때 마다 고무신 두 짝에 업힌 가을 더디게 익어간다 볏짚 타는 냄새 해를 찾아 산을 넘고 까마귀 발 밑에 어둠 내리면 노란 행복으로 엮인 웃음소리에 간장독이 출렁인다 달빛에 골목은 더 푸르고 감나무에 걸린 하루 슬며시 지붕 위에 내려앉으면 아침이 그리운 가을 쏟아지는 별 바람으로 불어낸다
올해는 유난히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처럼 무더위의 기세가 꺾일 줄을 모르는 폭염 속에, 우리 양산에는 파도보다 시원한 낭보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양산의 시골중학교인 원동중학교 야구부가 제43회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엄청난 기적이다. 원동중학교는 1969년 양산중학교 원동분교로 시작해, 41회 졸업생 2천643명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이다. 그런데 출산율 저하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서 3년 전에는 전교생이 20명으로 줄어들었고, 그 이듬해는 16명까지 줄어들어 폐교 위기로 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학교측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학교를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묘안을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체육교사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허구연 MBC SPORTS+ 해설위원이 보고 원동중 교장을 적극 설득해서 야구 전문학교로 만들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선수들은 야구 명문학교들이 외면했던 만년 후보들로 구성됐다. 또한 시골학교이다 보니 환경도 아주 열악했다. 그동안 선수들은 돈이 없어 야구공을 테이프로 감아 연습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회 출전마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창단 2년 만에 전국대회 제패라는 영광의 월계관을 쓴 것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런운 일인가! 양산에 살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진다. 현재, 원동중학교 전교생은 51명뿐이다. 그 중 야구선수는 20명이라고 한다. 이 극소수의 시골학교 학생들이 전국 제패라는 영화 같은 기적을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의 탁월한 식견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농촌은 인구감소의 영향으로 날로 피폐화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인구는 줄고 노인들만 사는 생기 없는 곳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학교 역시 폐교라는 위기까지 봉착해있어 교육의 혜택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다. 이런 사실을 안 허 위원은 원동중학교에 야구전문학교를 권했고 그 후에도 그는 원동중학교를 찾아 헌신적으로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신종세 감독이다. 신 감독은 부산 대동중에서 20년 동안 감독을 맡아 이대호(오릭스) 선수를 발굴했고, ‘야구 불모지’ 제주도로 건너가 리틀야구팀을 창단, 지도했으며 그 후 부산공고 감독을 맡은 훌륭한 지도자이다. 이 풍부한 경험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통해 용기를 심어줬기 때문에 오늘의 아름다운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세 번째는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것이다. 학생선수라도 학업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운동이라는 학교의 투철한 교육방침과 그것에 대한 학생들의 실천이다. 신 감독은 학교의 교육방침에 따라 학업을 우선시했고 개인기보다 기본기에 충실했으며 강도 높은 동계훈련으로 체력을 강화시켰다고 한다. 학생선수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별이 뜰 때까지 운동장에 남아 훈련을 했다고 한다. 네 번째는 관ㆍ학ㆍ민의 혼연일치라고 볼 수 있다. 양산시와 양산교육청 그리고 지역민의 헌신적인 노력이 이 아름다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나는 양산 원동중학교 야구부의 엄청난 기적을 통해 ‘기적’의 개념을 되돌아보게 됐다. 흔히 기적은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연한 기적은 존재하지 않고 약속된 기적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약속된 기적의 뒤에는 훌륭한 지도자의 헌신적인 리더십이 뒤따른다. 누구나 불가능이라고 했던 것을 현실로 일구어낸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심어준 숨은 일꾼들의 덕분이다. 산과 들만 있는 황량한 시골마을에 야구전문학교라는 기발한 생각과 그것을 실천에 옮긴 허구연 위원, 학생들과 한 몸이 돼 불철주야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신용세 감독, 그리고 원동중학교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들, 양산시와 양산시 교육지원청, 지역민들이 숨은 공로자이다. 나는 20년 넘게 양산에 살면서 이만큼 큰 자부심을 가져본 것은 처음이다. 왜냐하면, 이 젊은 건아들이 우리에게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다들 어렵다고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어렵고 험난한 삶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유리알보다 영롱한 희망의 빛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 영롱한 빛을 통해 삶의 가치를 되찾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으리라 확신한다. 다시 한 번 원동중학교 야구부 젊은 건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들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이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이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통도사, 그 안에 있는 암자 중에 ‘비로암’을 다녀왔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게 조금 부끄럽게 느껴진다. 양산에 15년 이상을 살면서 통도사를 수십번은 다녀왔고 비로암도 10번 이상은 갔다 왔는데 이 암자의 이름이 비로암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비로암의 입구 전경이다.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비로암 입구에도 당연 ‘탱화’가 있었는데 난 어릴 때부터 저 ‘탱화’가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여전히 친근하게 느껴지는 탱화. 비로암 내부의 처마 끝에 달린 풍경. 하늘은 참 맑고 푸르고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참 예뻐서 한 컷 찍어봤다. 약한 바람에 살짝 흔들렸는데 비로암에서 본 풍경은 다른 어떤 곳에서 봤던 풍경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비로암 내부에 있는 석가탑. 비로암에 갔을 때가 지난 5월로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있어서 등이 많이 달려있었다. 등이 탑을 조금 가리고 있었지만 가려진 석가탑도 가린 등도 함께 어우러져 더 예뻐 보였던 것 같다. 절에 가면 꼭 하는 일.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 마시는 일이다. 왜 절에서 마시는 물은 더 달고 맛있게 느껴지는 것일까? 시원한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비로암은 통도사 대웅전을 훨씬 지나 뒤에 있는 산길로 차로 5분 이상을 더 들어가야 있는 곳이다. 공기 좋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던 암자. 나는 절에 가면 어떤 바람을 두고 오는 것은 아니다. 있다면 가족, 친지들의 건강, 내가 지금까지 내 삶을 어떻게 살아왔나,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나 등. 내가 살아온 시간을 조용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어 흥겨운 교회보다는 조용한 절을 좋아한다. 절에서 느꼈던 차분함으로 소중한 오늘 하루도 차분하게, 알차게,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1년 이상 논란이 계속돼 온 디자인센터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양산시는 지난달 14일 물금읍 가촌리 7호 근린공원 내에 한국디자인진흥원 부설 디자인센터 건립을 허가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6천311㎡ 규모다. 지난해 7월 건축부지의 무상제공 동의안이 시의회를 통과하면서 소수 의원들의 반발을 샀던 것이 발단이 됐다. 상정 당시 전문위원의 검토의견상 법규위반 소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공익사업이라는 명분에 묻혀버렸다. 도시공원법상 공원시설에 ‘전시장’이 포함돼 있지만 디자인센터 건물을 전시장으로 볼 수 없다는 문제와 함께 공유재산상에 영구시설물 축조를 금지하고 있는 법규정도 거론됐다. 하지만 시는 모든 논란을 무시하고 당초 계획대로 건축허가를 단행했다. 시의회는 애당초 공유재산으로 볼 수 있는 공원부지(현재는 LH 소유지만 신도시 준공과 함께 양산시로 귀속될 재산임)를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데 동의를 한 마당에 뒤늦게 적법성을 따지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일부 의원들이 도시공원법과 건축법 등을 내세우며 위법 개연성을 따지고 나왔지만 이미 ‘인감 찍어준 마당에 뒤늦게 딴지 거는’ 모양이 돼 강한 태클이 되지 못했다. 양산시는 이미 시장의 추진 방침이 확고한 터라 참모진들이 거역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물론 시장이 결심을 굳히기 전에 참모들로부터 법 적용문제도 보고를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시장의 고집만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장의 태도는 ‘법의 긍정적인 해석으로 가능하다’는 입장이었고, 실무자들로서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폭주기관차가 돼버린 것이다. 여기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정책적 판단’이다. 법상 맞지는 않지만 ‘시민을 위한 공익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난주 시의회 특별위원회에서 나왔다. 담당 과장과 국장은 의원들의 법규 위반 지적에 대해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법에 맞게 처리한 것이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하면서 정책적 판단임을 강조한 것은 공직자 스스로 법 적용에 무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날개가 꺾여버린 의원들이 허가부서 책임자에게 앞으로 발생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용의가 있냐고 물었지만 그렇게 하겠다는 공직자의 답변만큼이나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고 말았다. 2년 가까이 끌어온 사업이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디자인센터가 무엇인지, 어디에, 왜 들어서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또 허가가 됐다해서 직접 시민에게 피해가 돌아가거나 손실을 입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생업에 바쁜 시민들이 시와 의회 간의 대치에 관심을 기울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적하고, 시민단체가 공개적으로 위법성을 제기하고, 시의원이 나서 허가해주면 안된다고 역설할 때는 이유가 있다. 지방정부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법을 집행하는 곳이다. 법을 집행한다는 것은 인ㆍ허가와 규제, 단속 등 모든 행위를 망라한다. 작게는 노점상과 주차위반 단속에서부터 크게는 공단조성허가에 이르기까지 관련 법규에 따른 행정행위를 한다는 말이다. 최근 북정공업지역 내에 공장허가 신청이 들어와 불승인했다가 소송까지 가서 결국 승인해 준 전례가 있다. 이렇듯 법에 맞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도 번복되는 것처럼 법에 맞지 않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디자인센터가 들어설 땅은 도시공원법상 근린공원이다. 도시공원은 ‘시민의 건강,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이 지정목적이다. 따라서 법상 허용된 공원시설이 아니면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 수영장이나 헬스장 등 주민편익시설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에게 유익한, 그래서 공익적이라 볼 수 있는 시설도 공원 지정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면 설치할 수 없다. 이번에 양산시에서 교부한 허가서에 따르면, 관련부서 협의 결과 관련법상 적합하여 건축법 제11조 등 규정에 의거 허가했다고 한다. 이것은 잘못됐다. 시가 스스로 공원시설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도시공원법에 의해 처리돼야 한다. 행정기관의 권한 남용으로 인한 손실은 예산의 낭비나 시민 부담의 증가 등 금전적 측면으로만 계산해서는 안된다. 시민에게 공정한 법의 잣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연건평 1천900평에 달하는 웅장한 건물이 들어서고 난 뒤에는 설령 감사원에서 위법을 지적받더라도 회복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가 예전에 어르신들이나 대학생들에게 사회복지 관련 강의할 적에 종종 하던 재미난 말이 있다. 예순이 넘은 어느 여자 분이 여고 동창회장으로부터 받은 편지의 인사말 중 일부란다. “세상 살아보니, 공부 잘 하는 ×이 얼굴 예쁜 ×한테 못 당하고, 얼굴 예쁜 ×이 시집 잘 간 ×한테 못 당하고, 시집 잘 간 ×이 돈 많은 ×한테 못 당하고, 돈 많은 ×이 건강한 ×한테 못 당하더라. 친구들아 건강이 최고더라, 건강해라” 이 말에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와 의미를 콕콕 담아내는 표현이라며 메모하시는 분도 있었다. 살아 갈수록 ‘몸과 마음의 건강’이 제일 소중함을 깨달았음 일게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나와 가족들은 살면서 다양한 질병에 걸리고, 그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 사회적인 고통을 겪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가 잘 돼있다 하나, 아직도 주위에 암 등 중증질환에 걸리면 보험이 되지 않는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각종 검사비와 재료비 등으로 수천만원에 이르는 목돈이 들어가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병마와 싸우는 힘든 터널을 걸으며 환자와 가족들은 미리 건강관리를 잘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건강관리는 몸이 건강할 때, 질병의 전조가 미미하게 느껴질 때 재테크하듯이 노력과 투자를 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건강검진을 꼭 챙겨 받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양질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해 실천하고, 적당한 운동과 다양한 건강프로그램에도 참가하는 생활이 행복증진과 건강재테크의 기본이다. 우리나라가 질병으로 인한 국민의 육체적,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건강보험제도를 실시한지 어느덧 36년이 됐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다. 급속한 인구고령화와 저출산, 환경과 식생활습관의 변화 등으로 노인성질환, 만성질환은 급증해 국민의료비는 2001년 33조원에서 2011년 91조원으로 10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노인의료비는 3조원에서 15조원으로 5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률은 60%대 초반이고, 아픈 분과 어르신을 부양해야 할 생산가능 인구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인생사, 세상사는 개인의 선택과 조직의 선택이 맞물려 돌아간다. 개인은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건강보험공단, 지자체 보건소 등 지역사회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건강지원서비스와 예방교육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질병정보와 예방지식을 습득해 실천해야 할 것이다.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욱 그래야 한다. 국가차원에서도 다양한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마련해 국민이 손쉽고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기존의 질병치료 중심에서 질병의 사전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하도록 하고 국민의 건강보장을 위해 꼭 필요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가까운 건강보험공단 지사나 보건소에 문의하면 많은 건강관련 프로그램들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평소에 외양간 관리를 잘해 ‘건강’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잃기 전에 잘 관리하는 게 개인의 행복과 재테크의 기본이다.
2학기 개학을 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 간다. 수능 이후의 오후 수업을 미리 당겨서 보강하느라 8월 6일에 개학을 했으니 말이다. 요즘 고3 학생을 데리고 수업을 하자니 마음이 적잖이 심란하다. 적게는 3~4명에서 많아야 10명 정도가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엎드려 자거나 다른 과목 공부를 하고, 때로는 대학 입시자료를 챙기며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은 대개 2학기 내신은 고사하고, 수능 최저 등급조차 필요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능 최저 등급이 필요하더라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탐구과목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 요즘 같은 때는 국, 영, 수 과목도 먹다 남긴 사이다병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수업을 듣지 않는다고 학생만 탓하기도 어렵다. 그네들도 공부를 잘 해서 선생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수업 시간에 자거나 딴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를 애써 듣다가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고, 그 순간부터 느끼는 열패감이나 무력감을 감추기 위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딴 짓을 하는 방법을 선택했으리라. 그것 말고는 50분이라는 긴 수업 시간의 반복을 견뎌낼 별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결국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다수의 학생이 무기력해지는 지금의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구조를 바꿀 것인가? 최근에 얻은 대답은 바로 기본소득에 있다. 기본소득은 거칠게 말하자면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기본적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개인 통장으로 입금해 주는 걸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개인별 조세 부담률이 25% 정도인데, 이를 복지국가의 수준인 50%까지 올리면 1인당 월 50만원 정도 지급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간단하게 내 경우를 예로 든다면, 작년에 150만원 정도 세금을 냈는데 이를 갑절로 올려 300만원의 세금을 내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기본 소득은 연 600만원 정도가 된다는 얘기다. 150만원을 더 내고 600만원을 받으면 연 450만원의 이득이 생기는 셈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95% 정도의 사람이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아진다고 하니 대부분의 국민이 혜택을 보는 셈이 된다. 더구나 기본소득은 무상급식이나 무상 보육료, 기초노령연금(원래 공약보다 많이 후퇴하긴 했지만) 등의 형태로 이미 우리 삶에서 어느 정도 현실화돼 있다. 기본소득은 이를 좀더 확장하자는 것인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개인마다 일정한 금액을 기본 소득으로 받으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4인 가족 기준으로 월 200만원의 기본소득이 생기면 일단 적어도 밥 굶을 일은 없어진다. 무엇을 하든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므로 사람들은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꿈꿔왔던 삶의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 학생들이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대학 입시에 올인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해 낼 수 있다. 공부만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가진 다양한 능력이 모두 존중되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에 대해 궁금한 점은 <녹색평론> 131호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인문이란 사람이 걸어온 시간의 결을 말한다. 사람의 무늬, 시간의 무늬, 삶의 결은 결국 경험과 함께 형성된다. 다시말해 인문이란 일상 속에 형성되는 것이며, 일상이란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해 나아가는 내 모습이다. 사람의 지문이 모두 다르듯이 사람의 결 또한 같을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동일률적인 명제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문학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의 우리는 선인들이 남긴 문장 속에서 이치를 구하고, 선인들이 걸어온 역사를 통해 미래를 통찰하며 그러한 가운데 나를 성찰하는 인문 활동을 실천할 뿐이다. 가을 운동회, 운동장을 덮은 만국기처럼 여기저기서 인문학을 말한다. 효율성이라는 가치에 밀려버린 인문학에 대한 호명은 잊혀진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인 듯해 반갑고 또 반가운 일이다. 삶에 대한 가치 발견, 미래지향적 사고, 창의적 상상력을 통한 경쟁력 확보, 인간 본질에 대한 접근과 관계의 회복, 사회의 건강한 정신성 회복…. 인문학에 대한 수사가 늘어나는 것만큼 세인의 관심도 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치 갈등의 혼돈, 그 한 가운데서 사람은 사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그 실마리를 장자를 통해 풀어보자. ‘남해의 임금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渾沌)이라 한다. 숙과 홀이 때마침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으므로,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논의해 말하기를, “사람은 모두 7규(七竅: 일곱 개의 구멍 즉 눈, 귀, 입, 코)가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에게만 없으므로 시험 삼아 구멍을 뚫자”고 했다.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 장자(莊子)의 내편(內篇) 중 응제왕(應帝王)’ 혼돈의 죽음 이후 우리가 놓여있는 감각적인 삶의 연속 가운데 남겨진 것은 결국 욕망과 갈등이었다. 감성과 이성의 경계에서 사유의 힘을 놓아버린 우리에게 다가오는 본질에 대한 고민은 분명 사이의 발견이다. 그러나 그 발견이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도록 힘을 얻기 위해서는 지속성이 필요하다. 순간의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성의 바탕 위에 지속성을 추구할 때 삶의 길도 유장하게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찌 물 뿐이라. 흐르는 것이 어찌 시간 뿐이랴. 시간을 너머 공간을 너머 흐르는 것이 또한 신(神)아닌가. 상이한 시간과 공간 속에 상이한 삶의 양상으로 우리는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어찌 다툼이 없으랴. 그러나 다툼이 분쟁으로 이어질 때 그 속에 살아가는 인문의 본질도 황폐해진다. 이를 두고 공자는 ‘논어’의 ‘옹야’편에서 서로 상반된 것들이 어울려 조화를 추구하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했다. 이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 속에 진정한 인문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빈빈(彬彬)은 갈등과 대립을 너머 화합과 소통으로 가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모두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어떤 형태로든 ‘사이’ 와 ‘틈’이 존재 한다.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소립자들도 각자 사이에서 관계를 형성한다. 인문학을 논하면서 인간관계의 현실을 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관계는 분명하기보다 미묘하다. 사람 사이의 이치가 윤리라면, 관계를 성찰하는 데도 분명함의 윤리학보다 미묘함의 윤리학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문이 아닌가. 그런 까닭으로 인문학은 인간의 역사와 그 나이를 같이 한다. 따라서 현학적인 관념으로 만국기를 날릴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일상에서의 호흡을 실천해야 한다. 호흡을 멈추면 생명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정론을 위해 달려온 양산시민신문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 한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양산시민신문은 지역의 사회의 특성을 파악해 시민과 호흡하는 길을 걸어 왔다. 지금까지 도약의 10년이었다면, 앞으로 번영의 100년을 기원한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외로움’ 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 나라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1위 아일랜드, 2위 싱가포르, 3위 뉴질랜드 순이었다. 놀랍게도 이 나라들은 전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GNP, 지적수준, 사회보장제도 등…. 환경적으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이다. 외로움은 결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불우한 환경의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왕 알렉산더에게도, 홀로 있던 디오게네스에게도, 즐거워 보이는 코미디언에게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나라들이 외로움지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을까? 그것은 바로 소유의 만족이나 아름다운 환경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이나 영원한 영적 안위만이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 시켜주는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친구가 없고 홀로 있으며 의지할 곳 없는 느낌의 상태’로 정의한다. 외로움은 여러 모양을 하고 찾아온다. 때때로 내적 공허함, 텅 빈 느낌 같기도 하고 혹은 사무치는 쓸쓸한 느낌, 불명확한 만족에 대한 깊은 갈망 같기도 하다. 외로움을 고독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독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인 반면 외로움은 원하지 않아도, 싫어도 찾아온다. 고독은 물리적인 것이며 외로움은 심리적인 것이다. 외로움은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이지만 고독은 건설적이고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 외로움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술로, 어떤 사람은 향락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지만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더 깊은 외로움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수학자 파스칼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세상적인 쾌락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로 채울 수 없다. 그럴 경우 오히려 실망과 불만족과 허무만이 남게 된다. 오직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끝없이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실 때에만 진실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찬 기운과 함께 고독과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영혼을 살찌우는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게 하고 정신과 마음을 살찌우는 독서의 계절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나의 깊은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다른 외로운 사람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일이다.
Q1. 스케일링(치석제거)을 하려고 하는데 건강보험을 적용 받을 수 있나요? A1. 지난 7월부터 만 20세 이상자가 추가적인 처치가 필요 없는 치석 제거(스케일링) 시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연 1회에 한해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으므로 치과 방문 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Q2.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거나 약을 지을 때 건강보험증을 꼭 가져가야 하나요? A2. 그렇습니다. 건강보험증의 양도 또는 대여, 그 밖의 부정한 사용을 방지하고, 진료 받기 전에 건강보험 가입자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진료받을 때 본인의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명서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2년 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방사능이 갑상선암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갑상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갑상선은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해 인체 내 모든 기관의 기능을 적절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분비되는 호르몬 양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기능 항진증이나 기능 저하증 등의 질환이 나타나게 된다. 갑상선은 목 앞쪽으로 튀어나온 물렁뼈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 몸 중에 가장 큰 내분비 기관이다. 이는 요오드를 이용해 갑상선호르몬을 생성한다. 이곳이 부분적으로 커져서 생기는 병을 갑상선 결절이라고 한다. 전 인구의 5% 내외에서 발견되는 매우 흔한 질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갑상선 결절은 양성이며 암인 경우는 전체 갑상선 결절의 5%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갑상선암은 지난 2009년부터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암이 됐고, 발병률 2위인 위암과의 차이도 더 커지고 있다. 갑상선암을 제외한 암은 연평균 환자 증가율이 3.3%인데 반해 갑상선암의 경우 25%에 이른다. 특히, 여성에서 갑상선암은 같은 기간 동안 두드러지는 증가세를 보이는데 2004년부터는 유방암을 제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차이로 발생률 1위를 지키고 있다. 갑상선암은 초기증상이 없어서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자각증세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미 갑상선암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하는데, 갑상선 부위에 뭔가 있는 이물감이 느껴진다면 그중 20% 정도가 갑상선암으로 판정된다. 따라서 갑상선암을 조기발견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갑상선암의 가족력을 알아야 하고, 두경부 방사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더 어린 나이에 전문가와 상의해 검사를 하는 것이 좋다. 갑상선암의 고위험군이 아닌 여성은 30세부터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하고, 40세 이상에서는 정기적으로 할 것을 권장한다. 결절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를 감별하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초음파 유도 하에 미세침 흡인세포 검사를 해야 한다. 양성 결절로 진단된 경우에는 6~12개월 뒤 초음파 검사를 해 결절의 변화가 있는지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양성 종양인 경우 대부분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지 않으나, 압박 증상이 있거나 미용 상의 목적이 있을 때는 외과적으로 절제술을 받을 수 있고 최근에는 고주파 열치료법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갑상선 결절이 악성종양일 경우에는 수술이 원칙이고 필요한 경우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추가한다. 갑상선호르몬을 매일 복용해야 하며 주기적으로 촉진, 초음파검사, 방사성 동위원소검사, CT 등을 받아야 한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완치가 가능하고 예후도 좋아 전이가 되도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정기검진 상 발견되는 대부분의 갑상선암은 크기가 작은 유두암이며 1㎝ 이하인 경우엔 미소유두암으로 불린다. 이 암은 ‘저위험군’으로 분류돼 수술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으나 최근 림프절을 통한 전이나 심할 경우 혈관을 통한 원격전이가 발생할 수 있는 증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어 가능하면 1cm 미만 결절이라도 예방으로 제거해 주는 것을 추천한다.
네가 설익은 걸음 떼어놓던 날 우린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덩치 큰 외압에 굽실거리진 않을는지 정의로운 펜이 될 수 있을는지 갓 태어난 언론이 가야할 길은 모질고 험난하다는 걸 우린 잘 알기에 말발이 센 신문으로 자라길 기도했었다 큰 바위와 가시밭길에 넘어지면서도 때론 갈채를 보내는 박수에 힘을 내며 10년 지령(紙齡)을 쌓고 쌓으며 꿋꿋하게 잘 자라주어 정말 고맙다 이제 지난 십 년을 돌아 봐야 할 때다 혹여 조금 컸다는 오만함에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콤한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양지쪽만 기웃거리지는 않았는지 분별없이 휘두른 너의 펜에 상처받아 눈물 흘린 이웃은 없었는지 축축하고 어두운 골목에서 손 내미는 눈길을 외면한 적 없었는지 상식보다 힘을 믿는 사람들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는지 펜은 항상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정의로운 일에 심장이 뛰어야 한다 권력에 빌붙어 아부하는 펜은 머지않아 녹슬어 부러져버린다 빈부의 골바람은 깊어지고 이기주의와 이념의 반목으로 분열된 이 땅 사람들은 말로 병들고 말로 낫는다 냉정한 비판과 견제로 썩은 뿌리를 잘라내고 양산시민 모두가 행복하도록 균형 잡힌 길을 시민신문이 내야한다 백년 후에도 당당한 언론이 돼야한다.
견리사의(見利思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로 정당하게 얻은 부가 아니면 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논어 현문편’에 나온다.
우리 신문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옴부즈맨 코너가 ‘지면평가위원회’다. 옴부즈맨 제도는 200년 전 스웨덴에서 의회의 행정권에 대한 견제 목적으로 시작됐다. 잘못된 행정 처리나 정책에 대해 해당 기관의 해명을 요구하고 직접 조사한 결과를 외부에 공표하는 활동으로 올바른 국정 운영과 국민 권익 보호의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 제도가 언론에 접목돼 독자의 불만을 수렴, 인용하고 시정하는 제도로 발전했다. 양산시민신문은 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기사 외에도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정기적인 외부기고자의 칼럼과 의견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의 목소리도 발언대나 독자기고를 통해 여과없이 게재하고 있다. 또한 2달마다 한 번씩 열리는 지면평가회의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평가위원들이 기간 내 발행된 우리 신문의 기사나 편집, 광고 등 모든 분야에서 때묻지 않은 비판과 지적을 쏟아내는 자리다. 위원들만의 회의로 진행되지만 특별히 편집국장이 임석해 질문에 답하거나 지적사항에 대한 시정 결과를 보고하기도 한다. 위원들은 제각기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시민들로서 각계의 다양한 요구와 건의를 전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편집주체로서 참석한 자리지만 가시방석일 때가 많다. ‘OO자문위원회’처럼 공치사나 늘어놓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위원들의 비판과 지적사항 중 뼈 아픈 주문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비판의 펜 끝이 무디다는 지적이다. 지역사회를 주도하는 기관 즉, 시(市)나 의회, 치안과 교육 등 자치행정의 구성요소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경우 심층취재를 통해 위법 부당성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느슨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지역신문의 한계는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언론사 경영과 편집권 독립이라는 절대명제를 준수하면서 취재객체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부분이나 협소한 시장에서 장기간 활동해 온 기자들의 매너리즘에 대한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에서 시민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관 주도로 밀어붙일 때 사계 전문가 집단과 함께 원천적인 평가와 대안 제시에 부족했던 점도 솔직하게 인정한다. 시민단체의 토양이 척박하다는 변명은 적절하지 못하다. 정치권의 이기주의에 편승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총선과 지방선거 등 정치 성수기에 지역의 현안과 시민정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정치인들 위주로 여론을 조성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 자신만이 적임자라고 큰소리를 치다가도 막상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민 앞에서 사라지고 마는 정치꾼들의 행태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부끄럽지만 부인할 수 없다.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편 가르기도 모자라 끊임없이 지역사회를 분열시키는 패거리정치의 병폐를 진중하게 보도하지 못한 과오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언론의 사명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자성(自省)을 해본다. 따뜻한 이웃의 삶을 조명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변명으로 이해를 구한다. 최근 공공저널리즘의 일환으로 지역사회의 낮은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시민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강화하고 있는데 정치, 사회기사에 식상한 독자들의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기자들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음을 알려드린다. 원동중학교 야구부의 성공 스토리가 전국에 회자되면서, 지역에 고교 야구부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는 독자들도 많았다. 그래서 협동심과 형제애로 똘똘 뭉친 야구선수들이 3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전학을 가야만 하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언론이 제 몫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회의 어떤 특정한 이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책 마련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제는 언론의 공공적 사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고, 전문가 그룹의 애향심을 촉구하는 구심점이 언론을 통해 결집돼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지면평가위원회의 공식 견해와 지적은 우리 신문의 토양을 건강하게 만드는 거름과 같은 것이다. 어렵고 열악한 지역언론 환경 속에서도 10년을 커왔고 또 앞으로 100년을 지향하는 양산시민신문은 그런 목소리를 가슴에 깊이 새겨들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을 마라마지 않는다.
작은 나무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메시지로 꽃을 피웠다. 누구는 친구와의 아름다운 우정을, 누구는 애인과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달아놓는다.
한국교회의 근간을 세우며 이 땅에 뼈를 묻고 잠든 선교사의 묘지공원인 양화진에 가면 조선에 와서 25세의 젊은 나이로 8개월 만에 생을 마감한 여선교사 루비 켄드릭의 묘비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만일 내게 천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치리라”는 비문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1905년 캔자스 여자 성경 전문학교를 졸업한 루비 켄드릭은 1907년 텍사스 엡윗 청년회의 후원으로 조선 땅을 밟았다. 그러나 선교를 위해 한국어를 배우던 중 급성맹장염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지만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죽어 가는 순간에도 앞으로 텍사스 청년이 10명, 20명, 50명씩 조선으로 오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녀의 유언은 20명의 엡윗 청년회 회원이 선교사로 결단하는 동기가 됐다. 다음은 그녀가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 내용 가운데 일부다.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이 활짝 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곳은 주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주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서너 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본부에서는 철수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는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과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밤은 유난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으로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겠죠? 저는 이곳에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돼 이 땅에 묻히게 됐을 때, 조선 땅에는 많은 꽃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제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지는 조선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처럼 130년의 짧은 기간에 일어난 기독교의 경이로운 성장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을 위해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는 갸륵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아 피부진료에서 흔한 질문 중 하나는 ‘아토피에요?’라는 질문이다. 알레르기 질환이 점점 늘어나면서 아토피에 대한 관심도 함께 증가하는 것 같다. TV를 포함한 많은 매체에서 심각한 피부병변의 사례를 드는 것도 이에 대한 걱정을 증가시킨다. 아토피는 ‘비정상’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부터 파생된 단어로, ‘아토피 피부염’이 더 옳은 표현이다. 아토피 피부염은 알레르기 질환 중 하나로, 만성적 경과를 보이고 가려움을 주증상으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한다. 특징적인 모습은 붉은 끼와 더불어 태선화라는 코끼리 가죽 피부 같은 탄력 없는 피부인데, 가려움으로 긁은 흔적도 대부분 함께 보인다. 환자의 절반 정도는 생후 1년 이내 증상이 발생하고, 나머지 30%도 5세 이내에 진단된다. 국내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 약 10년 전에는 12.9%가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었고, 2010년에는 35.6%로 나왔다. 시골보다는 도시에 사는 경우 아토피 질환의 유병률이 높은 것을 볼 때 환경적인 요인이 아토피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 유전적인 요소도 크다. 부모 중 한 명이 아토피 피부염일 경우 자녀가 아토피일 확률은 2~3배, 부모 두 명 모두 아토피 피부염일 경우는 3~6배로 알려져 있다. 환경, 유전적 요인 외에 면역학적 연관성과 피부 보호 장벽의 이상 등의 요인 때문에 중증으로 앓는 아토피 피부염은 난치병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아기 동안 경증의 경우 40~60%는 5세 이후 자연스러운 회복을 보인다고 한다.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는 여러 요인 때문에 한 가지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스테로이드 연고의 사용이다. 스테로이드는 양날의 칼처럼 장단점이 함께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사용은 금기다. 특히 부드러운 소아피부는 더욱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강도에 따라 5단계 혹은 7단계로 구분하며, 구분에 의해 아토피 피부염 부위에 바른다. 또 다른 치료관리방법은 자극을 피하는 것이다. 손톱으로 긁는 것도 물리적 자극으로 가려움과 염증을 크게 하며, 기후의 건조함도 탄력을 잃은 피부를 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루 1~2회의 샤워를 해 피부를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때 약산성의 보습비누를 사용해 피지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피부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샤워 후 3분 이내에 보습제를 바르고 이후 보습제를 재사용해야 한다. 때로는 아토피 피부염은 농가진과 같은 피부감염이 동반될 수 있어 항생제를 복용하기도 하며, 가려움을 낮추기 위해 경구 복용약도 효과를 볼 수 있다. 중등도 이상의 아토피 피부염을 가진 환자나 보호자는 심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긁어서 피와 진물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은 의사의 상담진료를 받아 올바른 치료를 받길 권한다.
모 라디오 신청곡 프로그램에서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를 들려주면서 넌센스 퀴즈를 냈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 서로 자존심이 강해서, 부끄러워서 고백을 못해서라는 등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정답은 이름 때문이었다. 둘 다 ‘갑’이었기 때문이었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세태가 세태인지라 무심코 웃을 수 만은 없었다. 드라마 모래시계 프로듀서였던 김종학 씨가 자살했다. 유명을 달리한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지만 그의 안타까운 죽음 이면에는 방송국과 외주 제작사간의 부당한 ‘갑을 관행’이 있었다고 한다. 연초부터 시작된 금년의 화두는 갑을관계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갑을의 관계가 조정은 커녕 대립 양상만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주말, 남편이 조선소 하청업체에 근무한다던 30대 후반의 여성 내방객. 조선 경기 악화로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됐는데 모아 둔 돈은 넉넉치 않고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노사분규로 양산지역 공단도 심각한 고용 불안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분쟁으로 조업 단축 내지 중단 상황으로 자칫 실직까지 내몰리는 하청업체 직원 입장에서 노측의 요구는 별세계의 일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자녀에 대한 기술교육 지원비로만 천만원 지급요구. 꿈같은 이야기다. 명리학에 등라계갑(藤蘿繫甲)이라는 말이 있다. 등은 넝쿨나무를 말하고 갑은 큰나무를 의미한다. 사주에서는 나무를 음양으로 나누어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아름드리 소나무(갑목)와 같은 형상이며 다른 하나는 넝쿨식물과 같은 유약한 나무(을목)다. 소나무와 같이 곧게 자라는 식물은 홀로 존재할 수있지만 을목은 소나무와 같이 기댈 곳이 있어야 높이 타고 오를 수 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의지 할 수 있을 때 생기가 나고 살 맛이 난다. 을목의 사주를 타고 난 사람은 갑목을 만나야 일이 풀린다. 허나 요즘 사회현상은 되려 을이 갑을 만나면 비참한 종말 뿐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느 시대인들 황금만능시대가 아닌 때가 없었지만 확실히 요즘은 ‘돈이 입을 열면 모든 것은 입을 다무는, 닥치고 돈’의 시대다. 돈 앞에서 의리도, 상식도, 체면도, 예의도 없다. ‘웬수같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논리를 좇아 나보다 열악한 사람의 등에 빨대를 꽂아야 살아 남는다는 극단적 사고가 판을 친다. 심지어 자녀에게도 세습시키는 시대다. “선생님. ‘갑’으로 태어나는 사주가 원래부터 따로 있습니까” 언젠가 동네 술집에서 합석한 작업복의 남자 분이 내 명함을 보더니 다짜고짜 물어왔다. 고래들 싸움에 등이 터지는 불쌍한 새우, “내 평생 을이라도 한 번 돼 봤으면 원이 없겠다”며 쓴 소주를 목구멍으로 털어넣던 그 사람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이며 정신적인 가치만이 나와 가정의 미래를 지킨다”는 내 말이 제대로 들렸으랴. 내 자신도 어느새 마음의 언덕이 아닌 눈에 보이는 언덕(갑)에만 등을 비비려는 소(을)가 돼버렸는데.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다문화’의 뜻은 많을 다(多)자에 문화(文化)라는 말이 붙어서 ‘여러 나라의 생활양식’이라는 뜻이다. 다문화 사회란 이민자, 문화교류 등의 확산으로 인해 문화ㆍ인종ㆍ사회가 다양해지는 현상을 말하며, 한 국가나 한 사회 속에 다른 인종ㆍ민족ㆍ계급 등 여러 집단이 지닌 문화가 함께 존재하는 사회를 말한다.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수가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150만명이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결혼하는 부부 열 쌍 중 한 쌍은 국제결혼일 정도로 다문화 가정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다문화 청소년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7년 뒤인 2020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학생의 20%에 달할 전망이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우리나라가 다문화 사회로 진입 이후 다문화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선진 시민사회로 더욱 성숙하게 발전하기 위해 다문화 가족을 우리사회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문화적 이해 및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 할 수 있다. 평생학습사회에서 말하는 다문화 교육은 기대들이다. 이 기대들의 힘은 자기개조력의 힘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기대들의 힘인 것이다. 평생학습에서 말하는 다문화 교육은 나와 타자의 문화를 경험하고, 필요하고 부족한 부분을 익히며, 그 안에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힘이며, 자기문화와 다른 사른 사람들과 의식소통을 통한 나눔을 기대하는 힘인 것이다. 평생교육의 교육자본화의 관점에서 보면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다문화 가정의 인력 역시 양질의 인력자원으로 간주하게 된다. 평생교육에서는 단순히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우리 사회에 적응시키고 일을 부여하기 위한 교육으로 다문화 교육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극대화하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양질의 인력자원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다문화 교육의 원리로 인식한다. 또한 그들의 문화 속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발견해 관여적으로 연구하고, 우리가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사회를 좀 더 다양화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기대들로 간주함이 새로운 다문화 교육이 추구해야 하는 목적이자 목표인 것이다. 평생학습사회에서 다문화 교육을 효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간 및 관계적으로는 새로운 기관과 공간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시설들, 예를 들면 지역별 평생학습관이나 평생학습센터, 각종 학교, 지방자치단체의 교육시설 등을 우리들과 그들이 함께 어울려 사용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관계적 통합을 위해서는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적 정책이 필수 요건이 된다. 활동적으로는 그들과 우리 모두가 서로 Win-Win으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의 보급과 아울러, 다문화 가정의 유아 및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들과 인적자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공간과 관계, 활동의 교육자본들이 통합적으로 운영이 되어, 그들과 우리가 하나로 모아져 전체의 이익을 위한 시너지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평생학습사회에서 다문화 교육은 미래 우리 사회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한 시너지이자 에너지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