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 지하철 타면 귀에는 이어폰 꽂고 스마트폰 하더라 나이 들은 사람들은 창을 베개삼아 눈감고 자더라 인자 알겠다 땅 두더지 빠르지 못하니 최 고속으로 목적지에 가려면 저 방법이 최고라는 체험과 경험으로 아는 것 자는 척 하여도 여기가 어디라는 것도 다 안다
양산은 어느새 허허벌판이 아파트 빌딩숲으로 채워졌고 전철로 한달음에 부산을 오갈 수 있게 됐다. 1996년에 양산시로 승격되면서 가속되는 도시화가 토속적인 양산고유의 향토음식들을 많이 사라져 가게 한 것은 아닌지? 양산은 높은 산과 넓은 들이 있고 양산천이 낙동강 하류로 흘러들어 가고 있어 다양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지리학적인 특성이 있다. 물금과 원동은 낙동강 주변의 내륙평야지역으로 옛날부터 농사를 지었으며 하천에는 물고기가 풍부해 농산물과 민물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했다.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가지산과 영축산과 같은 깊은 산이 있는 산간지역에는 산채, 묵과 버섯 등을 이용한 음식이 발달했다. 또한 1995년까지 양산군에 속해 있었던 기장지역에서는 바다에서 나는 신선한 수산물을 이용한 식생활이 주도적이며 멸치가 잡히는 계절에는 멸치축제가 열리고 있다. 양산의 음식 맛은 다른 경상도 지방과 마찬가지로 간이 짜고 매운 편이며, 간장이나 된장 또는 멸치젓갈로 간을 한다. 특히 음식의 비린내를 제거하고 맛을 내는데 초피나무 잎을 말린 제피를 많이 사용해 김치, 나물, 매운탕, 추어탕 등의 음식에 제피를 넣어 독특한 맛과 향을 낸다. 국, 동치미, 찌개 등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산나물이 많아 쌈을 즐겨먹는 편이다. 양산의 향토음식으로 알려진 것으로 제피를 첨가한 산채비빔밥, 해물국찜, 민물고기로 얼큰하게 끓인 어탕에 국수를 넣어서 먹는 어탕국수, 삶은 미꾸라지에 채소를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추어탕 등이 있다. 그리고 민물치어를 통째로 무채와 섞어 고추장에 비벼서 먹었던 원동의 깡치회는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봄철에 곤달비에 쌈을 싸서 먹는 물금의 웅어회도 유명했으나 낙동강 하구언이 생기면서 회기성 어류인 웅어가 돌아오지 않아 지금은 먹기 어렵다. 호포지역에 유명한 민물자라탕도 더 이상 자라가 잡히지 않아 현재 다른 곳에서 자라를 공급받아야 한다. 멸치나 조개를 우린 국물에 애호박을 넣고 끓인 애호박죽은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철 별미음식이다. 낙동강 지류에 위치해 있는 양산은 경상남도의 곡창지대 중의 하나인 울산평야에 속하는 지역으로 예부터 논농사가 발달했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모내기가 끝난 후 6∼7월경부터 논 고둥이 많아서 이 시기부터 고둥찜을 해먹었다. 양산지역의 우렁찜은 멸치장국에 고둥과 채소를 넣어 익혀서 만드는 요리로, 부재료로 채소, 쇠고기와 홍합 등을 사용하고 고춧가루를 넣어 깔끔하고 담백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동 닭백숙 요리는 방목해 키운 3개월 된 토종닭을 사용하며, 일반백숙, 한방백숙, 옻백숙 요리가 있다. 낙동강 하류의 물금과 원동지역에는 재첩이 채취됐다. 재첩의 주 생산지는 섬진강 하류에서 화개천으로 이어지는 하동과 낙동강하류에 있는 김해로, 현재에는 하동의 재첩이 잘 알려져 있으나 1960∼70년대에는 낙동강재첩이 더 유명했다. 집에서 쉽게 만들었던 주걱떡은 찹쌀로 지은 밥을 주걱으로 으깨 밥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일정한 크기로 떼어 팥고물을 묻혀 만들었으며, 일손이 바쁜 계절에 간식이나 주식 대용으로 먹었다. 매년 봄이면 원동에서는 매화축제가 열린다. 철길을 따라 피는 매화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희망과 설렘을 준다. 요즘 매실엑기스를 많이 담그지만 이곳의 매실고추장도 맛있고 먹으면 매화향이 몸에 퍼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양산지역의 단풍콩잎장아찌는 다른 지방과 달리 콩잎을 멸치젓갈 양념에 버무린 후 삭힌다. 하북면 지산리에서는 설날 구운 떡국을 먹었는데 예전에 서민들이 가래떡을 만들어 먹기 어려워 찹쌀과 멥쌀을 절반씩 섞은 가루를 익반죽하여 손바닥 크기로 동그랗게 만들어 약한 불에 구워 식힌 다음 얇게 썰어서 멸치장국에 넣어 떡국을 끓였다. 지금도 별미음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양산에는 통도사와 내원사를 중심으로 전해지는 사찰음식이 유명하다. 요즘 사찰음식이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사찰음식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사찰전문음식점도 생기고 있다. 대표적인 사찰음식으로 주식류로는 표고버섯밥, 떡류에는 세(細)편, 콩시루떡, 녹두찰편, 백설기, 인절미 등이 있고, 부식류로는 두릅무침, 가죽김치, 가죽생채, 가죽전, 가죽부각 등이 있다. 세편은 떡을 찐 후 투명해질 때까지 오래 찧어서 떡가래를 만들어 얇게 썬 뒤 차가운 꿀물에 띄워서 여름철에 먹는 떡으로 통도사의 대표적인 음식이며, 내원사의 가죽부각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통도사의 서운암에서는 약 300년을 이어온 약된장과 약간장 등의 전통 장을 담가 시판하고 있다. 서운암의 장 담금법은 무쇠 가마솥에 콩을 삶아서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글 때 천연 약수와 3년간 간수를 뺀 소금을 사용하며, 10여가지의 한약재를 첨가해 50년 이상 된 옹기에서 발효ㆍ숙성시킴으로써 된장의 색깔이 노랗고 냄새와 쓴맛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양산의 향토음식은 양산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오랫동안 만들어 온 음식이나 현재 식생활과 환경의 변화로 향토음식이 점점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슬로푸드 운동이 확산되고 있어 자연식, 로컬 푸드와 사찰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향토음식은 우리가 지켜야 할 문화이며 정신이다.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양산지역에 잊어져 가고 있는 향토음식으로 우리의 건강도 챙기고 고유의 식문화도 지켜야 할 것이다.
8월 1일자로 양산대학교가 교명을 동원과학기술대학교로 바꾸었다. 1991년 3월 개교한 양산대학교는 그 이름에서 보듯 우리지역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대학이다. 개교 당시 설립자가 작고한 오근섭 전 시장이었다. 오 전 시장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큰돈을 모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교육기관을 설립하는 뚝심을 보였다. 한때 사석에서 자신의 가방끈은 짧지만 대학 교수 임용장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니 한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시장선거에 출마해 몇 번의 실패를 딛고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또 재임 중에 부산대학교로부터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양산대학교는 설립 4년만인 1994년 동원개발그룹 소유자인 통영 출신 장복만 씨가 인수해 본격적인 전문교육기관으로 발전을 하게 된다. 장복만 이사장은 동원교육재단을 통해 이미 고향인 통영시 교육사업에 진출해 있었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통영제일고와 통영동중학교는 지난해 동원고등학교와 동원중학교로 각각 이름을 바꾸었다. 부동산개발과 건설업을 주축으로 금융, 교육, 문화사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는 동원개발그룹 장복만 대표의 아호(雅號)가 동원이다. 그는 경남지역 경제계에서 알아주는 재력가다. 두 학교의 신축이전에 즈음하여 500억원 가까운 사재를 희사한 장복만 이사장은 통영시로부터는 시민대상을, 경남도교육청으로부터는 경남교육상을 각각 수상했다. 장 이사장은 2009년 장남 장호익 씨를 양산대학교 총장으로 임명해 친정체제로 굳힌 후 적극적인 학교발전을 도모했다. 이번 교명 변경도 장호익 총장이 2011년 선포한 ‘비전2020’이라는 대학장기발전구상의 일환이라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덧붙여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 미래지향적 글로벌 대학으로 위상을 정립한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다. 학교측의 충실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양산대학교의 교명 변경 소식은 시민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안겨주고 있다. 23년 전 처음으로 대학이 설립되고, 이어서 영산대학교가 개교하면서 지금은 교육중심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시세(市勢)의 배경에는 양산대학교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이름을 내세운 대학교는 그 도시의 시민 긍지를 대변한다. 그런데 이제 그 교명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학교이름에 붙은 것은 시대적 추세로 인정할 만 하지만 양산이라는 지명이 학교재단 오너의 호로 바뀐 것에는 선뜻 수긍하기 힘든 일면이 있다. 특히 그 이유가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이라니 더욱 시민으로서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양산시를 움직이는 고위 공직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양산’이라는 도시 이름의 브랜드 가치가 크지 않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대학교 이름에 그 학교가 위치한 도시의 이름이 붙어있다 하여 발전한계가 위축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작위적이다. 오히려 양산을 표방한 학교가 발전을 거듭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면 학교는 물론 도시의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양산은 인접한 거대 도시 부산과 울산의 영향으로 다른 지방도시와는 다른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연대기능의 부족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시민운동의 토대나, 지역발전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것이 대학이다. 행정기관의 견제, 환경운동 전개, 나아가 미래의 비전을 위한 자문역할 등이 대학에서 담당할 분야다. 우리 지역에는 두 개의 대학이 있지만 이런 활동에서 구심점이 취약하기 때문에 진정한 도시발전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 교직원 대부분이 인근 대도시에 거주함으로써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나 향토애 등이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 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때 양산대학교의 교명 변경이 지역사회에 주는 상실감은 부인할 수 없다. 학교 내부에서도 교명 변경에 대한 반발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학의 오너가 내린 결정이니만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동원과기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비록 교명에서 ‘양산’은 빠졌지만 ‘양산’을 도외시한 발전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양산시 명곡동에 자리한 캠퍼스가 존재하는 한 지역과 함께 발전하는 인재양성기관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나의 십대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고등학교 시절. 마음 속의 고향 같은 곳이지만, 바쁜 생활에 졸업하고 한 번도 찾아가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곧 있으면 3년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 나름이가 학교에 가보고싶다고해서 우리는 4년 만에 찾아가보기로 결정했다. 12시까지 양산에 도착해야 해서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는데 울산에서 양산까지 한 시간밖에 안 걸린다. 분명히 고등학교 때는 진짜 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거리일 줄이야! 생각보다 빨리 나와 시간이 좀 남아서 시외버스터미널 앞 카페에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왠지 방학 보충 때 집에 잠시오곤 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그 때의 햇살, 2주일 만에 집에 오느라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오던 그 때. 학교에 딱 들어오는 순간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하나도 안변했다. 우리 학교는, 하나도 안 변한 채 여전히 푸르고 아름다웠다. 전국에서 가장 조경이 아름다운 학교 1위답게 여전히 정말 예쁜 우리 학교. 학교를 둘러보면서 아름다운 조경에도 물론 감탄했지만, 나는 오히려 복도나 3, 4층 사이의 테라스 계단을 보며, 마음이 울컥울컥했다. 왠지 자꾸만 그 장소에서의 17살의 내가 떠올라서 기분이 이상했다. 이번 모교방문의 목적은 ‘17살의 나를 찾기’였다. 그 당시 나는 어떤 고민을 했었고, 나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그때 내가 생각했던 지금의 나와, 정말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자연 속의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그때의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때 그 궁금증에 대해 나는 얼마나 해답을 찾았을까? 비록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이번 모교방문을 통해서 나는 ‘마음의 머리보다 훨씬 더 좋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라는 걸 느꼈다. 또한, 먼 훗날 만약 내 머리가 잊더라도 내 몸은, 내 마음은 그걸 잊지 않고 나에게 행복을 줄 수 있도록 마음에 좋은 감정과 기억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1917-1963)가 말하기를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4가지의 역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고 했다. 첫째는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둘째는 당신은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가? 셋째는 당신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았는가? 넷째는 당신은 무엇에 당신 자신을 헌신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케네디는 특히 용기 있는 삶을 강조했다. 유명한 코리텐 붐의 일화 가운데 옛 소련의 어떤 교회에서 신자들이 숨어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군인 2명이 총을 들고 들이닥쳤다. 그들은 총부리를 겨누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5분의 시간을 주겠다. 예수를 버리고 살고 싶은 사람은 5분 이내로 예배당을 나가라!” 이 말에 많은 신자가 밖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소수의 신자만 남아 무서운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용기와 믿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게 해달라고, 영광스러운 순교를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군인들이 들어와 예배당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더니 총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후 조용히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들이여, 우리 두 사람은 크리스천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소수의 참된 신자들과 함께 진정한 예배를 한 번이라도 드려보고 싶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다음 시대를 열어갈 위대한 역사의 주역입니다” 에드먼드 힐러리라는 한 영국 청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려고 했으나 그만 그 일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 산이여,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나의 힘도 능력도 자랄 것이다. 또 내가 구비한 장비도 더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오겠다. 기다려라. 나는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이 말을 한 에드먼드 힐러리는 10년 후인 1953년 5월 29일, 8천848m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재도전했고, 마침내 그 산을 정복해냈다. 측량기사 이름을 딴 에베레스트보다는 ‘세계의 어머니’라는 티베트어인 초모룽마(Chomolungma)가 더 어울리는 이 산에 인류가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이다. 도전 정신과 용기만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뤄갈 수 있다. 마음 속에서 용기가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도전하는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햇볕이 쨍쨍하던 한여름 낮, 워터파크에서는 우아하고 화려한 연꽃들의 자기자랑이 시작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분수가 만들어 낸 하얀 안개꽃에서 눈길을 뗄 수 없을 것 같다.
최근 우리나라 중부지방은 폭우로 고생하고 있고, 남부지방은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고온다습한 장마철과 여름을 맞아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재해에 다시 한 번 조심해야 하는 시점이다. 질식재해는 앞선 사례처럼 별다른 이상 징후 없이 발생하고 있어 산업계에서는 ‘소리 없는 살인자’로 통한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2002~2011년)간 산업현장에서 모두 241명이 질식재해를 당했고, 이 가운데 71%인 171명이 목숨을 잃었다. 계절별로는 사망자의 43%가 여름철인 6~8월에 집중됐다. 특히 여름철에는 고온다습한 기후로 밀폐 공간에서 미생물이 단시간에 번식하고, 늘어난 미생물이 산소를 소비하면서 유해가스를 방출해 노동자들의 질식 사망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질식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작업 장소는 맨홀로 지난 10년간 4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맨홀 다음으로는 오ㆍ폐수 처리시설(39명), 저장탱크와 화학설비(25명) 순으로 사망자가 많았다. 안전보건공단은 해마다 밀폐 공간에서의 질식재해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널리 팽배해 있는 ‘안전 불감증’과 ‘안전수칙 미준수’를 꼽았다. 공단은 3대 안전수칙으로 작업장 출입 전 산소량 확인과 유해가스 농도 기준 이하 여부 확인, 작업 전이나 작업 중 환기, 재해자 구조 때 호흡용 보호장비 착용 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6월부터 8월까지를 ‘질식사고 예방기간’으로 정하고 산소농도 측정기와 공기호흡기 등을 관련 업체에 무상으로 빌려준다. 장비 대여는 공단 홈페이지(ww w.kosha.or.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무더운 여름철이다 보니 계곡, 바다, 워터파크 등에 놀러 가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물놀이 후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내원하는 아이가 늘고 있다. 오늘은 이러한 물놀이 시 주의사항이나 아이의 건강을 위하는 몇 가지 방법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물놀이를 갈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전이다. 아이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환경에는 가지 않거나 못 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도가 센 바닷가나 비가 오고 있는 계곡, 깊이가 깊은 워터파크 시설 등에는 아이가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바닷가나 계곡의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준비운동을 해야 하며, 기온이 너무 낮은 물에는 들어가지 않거나 발만 담그는 정도로 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몸에 맞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바닷가나 냇가에 들어갈 때 맨발로 들어가는 것은 돌이나 유리조각 등에 의해 발에 상처가 나거나 파상풍에 걸릴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물놀이를 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는 일은 비교적 흔한 일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귀에 물이 들어간 상태로 손가락으로 후비거나 면봉으로 세게 후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 물은 저절로 빠져나오며, 나오지 않는다면 물이 들어간 쪽의 머리를 비스듬히 해 콩콩 뛰게 해 물이 나오게 하는 것이 좋다. 가렵다고 손톱으로 긁지 않아야 하며 가려움증이나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병원에 내원해야 한다. 수영장처럼 실내에 갇혀있는 물에서 놀다가 눈에 이물이 들어가거나 물에 의해 눈이 가려워진 경우에는 눈을 비비는 것보다는 눈을 깜빡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더 좋다. 감염성 결막염이나 알레르기성 결막염이 생겨서 가려움이 심하거나 눈곱이 많이 끼는 경우에는 가까운 병원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이나 바닷가에 캠핑하는 경우, 모기나 진드기 등에 물려서 부종, 가려움, 발진 등의 알레르기 증상이 생겨 내원하는 경우도 많은데, 벌레에 물리지 않도록 얇은 긴팔 옷을 입거나 벌레 퇴치용 소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벌레에 물려서 부종이 심하거나 가려움증이 심한 경우에는 환부를 시원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심한 경우는 병원을 내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더운 날씨에 물놀이를 너무 장시간 하면 몸의 면역성이 흔들려서 호흡기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감기나 기관지염도 잘 생길 수 있으므로 물놀이 후에는 잘 씻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간단한 방법이지만 중요한 몇 가지 실천사항들을 준수하여 즐거운 물놀이 뒤에 질병으로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존경하는 시장님. 전국이 장마의 피해로 안타까운 사연들을 매일 뉴스로 접하는 요즈음, 다행히 우리 양산은 수마로부터 축복받은 도시임을 자랑하며 장마 피해 없이 7월을 무사히 보내는 것 같습니다. 늘 환한 미소로 양산의 발전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분주하게 다니시며 애써주시는 시장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장님, 저는 상북면 석계리에 거주하는 주민입니다. 하북면에서 태어나서 생활하다가 결혼해서 20년 가까이 이곳 상북면에서 살아온 상하북 토박이입니다. 최근 상북면 석계리 지역에 공업단지 조성을 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의 큰 아이는 이곳에서 태어나 상북초등학교를 거쳐 양주중학교를 나왔고, 현재 작은 아이도 양주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학교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양산 관내의 어느 학교보다도 경관이 수려하고 공기가 맑아, 학생들이 쾌적한 학습환경 속에서 늘 밝고 건강하게 생활해 왔습니다. 그리고 주민들 대부분도 이곳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런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아이들이 유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데 큰 만족을 느끼고 있구요. 그런데 ‘석계2일반산업단지’라니요? 어곡초나 소토초의 사례를 익히 알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아무리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더라도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의 건강권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의 건강을 담보로 얻는 발전이 과연 얼마나 큰 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 깊이 숙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양주중 학부모, 교직원, 교육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지역경제 발전을 내세워 공단조성 계획을 추진하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됩니다. 일부에서는 경제적 고부가가치를 말하지만, 건강만큼 중요한 고부가가치는 없다고 여깁니다. 특히, 한창 자라야 할 아이들의 건강이야말로 미래의 경제력이고 고부가가치라는데도 이견이 없을 줄 압니다. 또한 이 지역 주민들이 저처럼 산업단지 개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민들의 전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이런 일방적인 개발에 부디 제동을 걸어주십시오. 시장님, 이곳에 들어설 기업들이 친환경 기업도 아니고, 고무나 플라스틱 같은 공해를 많이 유발하는 기업도 일부 들어선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생활권은 누가 지켜줄 수 있는지요? 벌써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으니 이사를 가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2013년 시정 보도에도 ‘사람 중심의 U-Eco 그린시티 구축사업’(친환경 녹색도시문화, 여성친화 도시문화, 전통시장 상권문화)과 연계해 시정책을 펼치겠다는 보도자료를 접했는데, 산업단지라니요? 시정에 역행하는 이런 무모한 계획을 중단시켜 주십시오. “건강도시 정책을 시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시정을 운영해 나가겠다”라는 시장님의 아름다운 구상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기사를 보니, 시청 관계자도 소토초나 어곡초의 상황처럼 ‘과거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고, 학부모나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은 계획을 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던데, 이 약속 꼭 지켜졌으면 합니다. 양산시 6대 역점 시책의 하나인 ‘대한민국 건강도시구현’에 걸맞는 시정을 원합니다. 이곳 양주중학교와 상북 지역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곳입니다.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위해서,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위해서라도 공허한 개발을 제발 멈출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나비떼 날아올랐다 그들의 비상은 아주 짧았다 환호성 지르며 마당을 선회하는 바람 위로 작약 만발한 화단 위로 쫘-악 흩어졌다 남새밭 푸성귀에 숨어들어 푸릇푸릇 물들었다 토란잎 위에서 또르르 굴러 어린 내 신발코에 내려앉았다 쨍쨍한 한낮 흙먼지 폴폴 날리는 고향집 마당에 세수한 물이나 걸레 빤 허드렛물 그릇 헹군 개숫물이 하루 몇 차례 반짝, 군무를 펼쳤다 * 옆으로 퍼지게 끼얹는 물
현대사회에서 기업가는 신상품 개발과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 신시장 개척 등 우리 사회의 발전과 국가의 경제적 성장을 위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변화를 탐구하고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를 기회로 이용하는 사람을 기업가로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기업가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사업기회를 찾아내 자신의 책임 하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기업가정신의 개념은 상황이나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업가들이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나 정신, 즉 새로운 사업에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을 부담하고,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가면서 기업을 성장시키려는 뚜렷한 의지를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장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기업가의 임무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생산방식과 새로운 상품개발을 기술혁신으로 규정하고, 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앞장서는 기업가를 혁신가로 봤다. 조동성은 기업가정신의 4대 요소로 도전적 위험감수 능력, 혁신력, 장기적 사고력, 국제화 의욕을 열거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변화를 주도한 많은 기업가들이 있지만, 필자는 상인집단이면서도 혁신을 통한 시대의 변화를 선도한 개성상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성상인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중심을 두고, 전국적 규모의 상업조직인 송방(松房)을 설치해 앞선 상술로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하나의 경제적 세력권을 이뤘던 우리 역사상 대표적 상인집단이다. 개성상인의 활동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됐으며, 당시의 개성은 정치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즉, 개성은 당시 국제무역항이었던 예성강 입구의 벽란도를 거점으로 외국사신에 의한 공무역(公貿易)과 외국상인에 의한 민간무역(私貿易)이 번창해 상업도시로서 발달했다. 개성상인의 상업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기업가정신은 도전정신과 합리성이다. 조선전기의 상업구조는 자유경쟁이 없는 시전중심의 상업체제였다. 이러한 때 개성상인은 시전상업보다는 전국의 시장을 무대로 한 상업 활동과 국제무역에 집중했다. 물론 서울의 시전상인처럼 금난전권을 소유한 시전을 경영한 상인들도 있었다. 개성상인은 행상단을 조직해 활동했고, 조선후기에는 차인(差人), 서사(書士), 수사환(首使喚), 사환(使喚) 등으로 구성되는 상업사용인 체제를 정립하기도 했다. 개성상인은 이러한 상업조직을 기반으로 해서 전국의 주요거점 지역에 송방(松房)을 설치해 당해 지역의 상품유통을 담당하게 했다. 두 번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들 수 있다. 개성상인은 우리민족 고유의 복식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置簿法)을 고안했으며, 신용에 기초한 금융거래기법인 시변제(市邊制)와 신용화폐의 일종인 환과 어음(於音)제도를 고안했다. 시변제는 자금의 대여자와 차용자가 중개인을 매개로 물적 담보 없이 신용을 바탕으로 대차관계를 맺는 제도를 말하며, 환과 어음제도는 동전운송의 비효율성과 원거리 운송의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한 신용화폐의 일종이다. 또한 개성상인은 국내 상업과 국제무역을 통해서 축적한 자본을 생산부문에 과감히 투자했는데, 이들의 생산부분에 대한 투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가 인삼재배업과 홍삼제조업이었다. 이들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광산을 채굴하는 잠채광업에 투자하는가 하면, 인삼의 확보를 위한 선대제적 경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세 번째는 국제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는 개성상인과 같은 민간상인(私商)들의 해외무역은 엄격히 금지됐고, 외국과의 교역은 명나라와의 조공무역, 일본과의 왜관무역 등 일종의 정부 주도 무역인 관무역(官貿易)에 한정됐다. 하지만 17세기 후반 이후 청나라 및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개성상인은 의주의 만상(灣商), 동래의 래상(萊商)과 함께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상인이 됐다. 또한 개성상인은 정부의 허가를 통해서 이뤄지는 공식적인 무역 이외의 비공식적 무역인 밀무역(密貿易)에도 적극적이었다. 개성상인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사상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삼포경영과 홍삼제조와 함께 국제무역에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남양유업의 밀어내기식 영업행태로 ‘갑을관계’가 우리 사회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갑을관계의 폐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특히 대기업가들의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앞서 언급한 개성상인의 기업가정신을 본받아 동반성장과 상생의 기업경영을 추구하고, 도전정신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갑을관계의 폐해를 해소하고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를 기대해본다.
선거철이 되면 회자되는 말이 있다. ‘양산시 인구의 20%도 안 되는 토박이들이 사실상 여론을 주도한다’. 매년 줄어들고 있다지만 이들이 지역에서 흔들리지 않는 파워를 과시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대대로 관연(官緣)과 부(富)로 집중되는 매카니즘이 자리하고 있다. 신흥산업도시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인 토호(土豪)는 도시의 발전과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 1차산업을 주로 영위하던 시기에는 지주계급이 사회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공단개발 등 산업화가 촉진되면서 다양한 지도층 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땅부자는 일부자’ 시대를 지나 재력이 지역사회를 움직이는 지도층의 기본 요건으로 떠올랐다. 1980년대 이후 신흥재벌이 등장한 배경이다. 부모의 재력을 바탕으로 사업가로 변신한 2세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또 하나의 리더그룹이 있다. 다양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탄생한 각종 관변단체와 사회봉사단체, 체육회 산하단체들이 그것이다. 토호세력이 대외적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간혹 성공한 외지인의 주류세계 진입 발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활동영역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소속 그룹의 파워를 키워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토박이가 아닌 사람들이 주류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업활동, 공직종사, 사업이주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양산에 정착한 사람들 중에는 주류사회 진입장벽이 높음을 절감하고 연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타 지방 출신이라면 지역에서 수십년을 살면서 활발한 사회활동을 펴더라도 주도적 리더그룹에 끼는 것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주류의 속앓이가 시작된다. 1980년대 이전에는 주류의 범주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고전적인 의미의 유지(有志)들이 큰목소리를 냈다. 유림의 후손, 세도가의 자제, 고위공직자 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이 가능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대로 단기간의 경제성장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면서 기존의 지도층 대신 새로운 토호를 만들어냈다. 뒤이어 민선 단체장시대가 열리면서 정점(頂点)이 만들어졌다. 누가 시장이 되느냐에 따라 부상하는 그룹이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민선 4기 이전 역대 시장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편성되는 가운데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민선 5기 나동연 시장이 취임일성으로 ‘삼불오행’을 내세우며 청렴한 공직자상 정립에 나섰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측근들의 전횡마저 불식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지방권력의 핵심이라 할 시장직 주변에서 소외되지 않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끈을 놓고 싶지 않을 터이다. 대체로 관연(官緣)과 부(富)는 서로 통하고 먹이사슬처럼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는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비주류는 신분 상승을 위한 방편으로 주류세계 진입을 꿈꾼다.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방패가 되어준다든지 총대를 메 준다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애절한 몸부림이거늘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지난달 양산시의 여성주간 행사를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비주류 콤플렉스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2년째 해소되지 않고 있는 여성단체협의회를 둘러싼 갈등과 반목은 수차례 시의회의 지적과 요구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이번 행사에서 뒤로 빠져있는 듯해 보이는 시 당국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행태는 실상을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겁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런 양상에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단체협의회의 의미를 망각한 회장선거가 근원이었다면, 회장이 된 사람의 리더십 부재가 드러났고, 기득권층에서는 이런 흐름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부족했다. 이후 여성단체들의 와해를 방관 내지는 부추긴 시 당국도 미필적 고의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난주 전국실업배구대회가 열린 체육관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저명한 관변단체 대표가 임석한 나 시장 앞에서 개막식에 시의원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듣기에도 민망한 언사를 쏟아내 주변의 빈축을 산 것이다. 발끈한 의원들이 모여 해당 단체장 직 사퇴를 요구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그또한 모양새가 우아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어쩌면 비주류가 되기 싫은 강박관념이 낳은 ‘충성도 과시’나 ‘줄 대기’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찰나에 지나쳐 버리는 KTX처럼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리고 마는 첨단화된 현실들. 세상과 대화를 소셜네트워크라는 거미줄과 그 사이에 흐르는 디지털 자막들을 품고 있는 자그마한 박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지하철 안의 젊은 풍경들. 50년을 넘게 살아 왔지만, 지금도 계속 적응하고 변하고,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다. 아닌 척 하지만 웃고 있는 가면 아래엔 흘러넘친 눈물이 가득하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 우리 나이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수업시간 로봇조립을 했다. 학생들과의 교감을 나누면서, 완성된 로봇은 이쪽저쪽을 가라고 하면 가고, 피해가라고 하면 피해 간다. 뒤를 돌아라 하면 돈다. 재미가 있다. 좀 더 복잡한 로봇은 사람의 생각대로 사람보다 더 많은 관절로 움직인다. 현대 첨단산업화 시대의 자동화와 산업화에 큰 일조를 하고 있다. 로봇에게는 멈춤이 없다. 고장이 나면 사용된 관절과 모터에 윤활기름을 치던지, 교체하면 된다. 그래서 로봇에게는 아픔이 없다. 로봇엔지니어가 바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오감을 느끼며 퍼지이론 등으로 스스로 학습능력에 의해 생각하고 표현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때 보았던 아톰과 같은 인간과 진정한 교감을 나누는 로봇은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로 눈물을 흘리는 로봇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빠른 첨단화에 지쳐간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휴일, 평소 옆에 두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꺼내 들지 못했던 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마음이 혼란하고 정체성을 잃은 채 방황할 때 지인들과 술로 풀곤 했지만, 술을 끊고 무언가 대신해야 될 무엇을 찾다보니 고대의 현인들이 남긴 책에서 안식을 구하려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태풍 속의 돛단배처럼 위태로운 마음에서 평정심과 감사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글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도 다스릴 수 있을 터이다. 노자의 가르침을 여기에 옮겨본다. ‘영원히 변함없는 도를 환영하면 도가 그대를 환영할 것이다. 덕을 환영하면 덕이 그대를 환영할 것이다. 잃음을 환영하면 잃음이 그대를 환영할 것이다. 믿음이 없다면 누구도 그대를 믿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마음의 고통을 막을 수 있다. 아름드리 나무도 작은 새싹이 자란 것이며 아홉층 누각도 한 무더기의 흙을 쌓아 올린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지나치면 실패할 수 있고 도를 넘으면 놓칠 수 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다. 도를 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는 하찮게 여겨지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욕심을 없애려는 욕심만 있고 귀하다고 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배우지 않음을 배우고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것으로 돌아간다. 만인과 만물을 돕고 자연과 자신의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만인과 만물과 하나가 되라. 마음이 산만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으로 돌아가면 내면의 조화를 찾게 되고, 내면의 조화를 찾으면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알면 영원히 변함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원히 변함없는 것을 알면 위대한 지혜에 도달한다.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큰 불행이다. 영원한 것을 알면 너그러워지고 너그러워지면 공평해진다. 공평해지면 왕처럼 된다. 왕처럼 되면 하늘처럼 된다. 하늘처럼 되면 도처럼 된다. 도처럼 되면 영원히 사는 것이다. 몸이 다하는 날까지 두려울 것이 없다. 도는 만물의 원천이고 선한 자의 보배이며 악한 자의 은신처이다. 거창한 말과 행동이 악한 자를 위해 이용될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왜 도를 중요하게 여겼겠는가. 도로써 구하면 얻고 죄가 있어도 이로써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이 도를 귀히 여기는 것이다. 말을 아껴라. 자연은 말을 아낀다. 대단히 강한 바람이나 세찬 비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연에서 왔다. 자연도 이처럼 이런 일을 오래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를 따르는 사람은 도와 하나가 되고, 덕을 따르는 사람은 덕과 하나가 되며, 잃음을 따르는 사람은 잃음과 하나가 된다. 자연은 생명에 무심하다. 만인과 만물을 대할 때 재물로 바친 하찮은 지푸라기처럼 다룬다. 누구에게도 무심하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의 바람통이다. 비어 있지만 다함이 없으며 움직일수록 많은 것을 내 놓는다.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린다. 중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는가. 그저 노자의 삶에 고개 숙이고 수긍할 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것도 특정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고루 재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타고난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 ‘모나리자’는 밀레의 ‘만종’과 함께 세계 미술사를 빛낸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한 그가 스케치한 비행기 모형도가 인류가 하늘을 나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의 천동설을 뒤집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불어 그는 인체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몰두한 의학자,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낸 발명가라고 할 수도 있다. 그가 스케치했던 자전거 모형도는 현대인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와 거의 비슷할 정도로 페달과 체인의 모양까지 갖추고 있고, 치밀하게 계산된 잠수함 설계도는 수많은 해양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런 다빈치도 어렸을 때는 고아라는 이유로 주위 사람들의 따돌림을 받는 소극적인 아이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싫어했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는 힘없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키웠던 할머니는 다빈치가 집을 나설 때마다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여줬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할머니는 너를 믿는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던 날까지 그 말을 단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인도 독립운동을 하던 네루는 1921년부터 1945년까지 무려 아홉 차례나 투옥됐다. 그가 옥중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내마저 투옥되는 아픔을 겪었다. “딸아, 나는 네가 한두 나라에 국한되는 편협한 역사를 배우지 말고 전 세계의 역사를 연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것은 그가 옥중에서 외동딸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였다. 그는 형무소에서 3년 동안 세계사에 관한 편지를 썼고, 이를 집대성한 것이 ‘세계사 편력’이다. 네루는 형무소에서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극복하고 동서양 역사를 균형 있게 바라볼 것을 강조했다. 이후 1947년 독립된 인도의 초대 총리가 돼 17년간 인도를 이끌었던 네루와 아버지의 정성 어린 편지를 읽고 자라 훗날 인도의 여자 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가 만든 역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거울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록 고아였지만 할머니가 격려와 용기를 주는 까닭에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 역시 투옥 중에도 아버지의 정성 어린 편지로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진정으로 인정해줌으로써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기억하자.
Q1. 장애인 활동지원 신청자격이 확대됐다던데 어떻게 확대됐나요? A1. 장애인 활동지원제도는 혼자서 일상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올해부터 기존 1급이 신청자격이었던 것을 2급으로 확대했고, 기본ㆍ추가급여 확대, 성인과 구분되던 장애아동의 급여를 성인과 같은 수준으로 늘리는 등 생활환경에 따른 추가급여 요건도 신설해 급여 혜택을 확대했습니다. 신청자격은 만 6세 이상 64세 이하의 등록 1ㆍ2급 장애인이며, 주소지 관할 읍ㆍ면ㆍ동주민센터 또는 국민연금공단지사에 신청하면 됩니다. Q2. 최근 언론에서 직장피부양자 연금소득이 4천만원이 초과되면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A2. 연금소득이 4천만원 초과하거나 근로ㆍ기타소득 합계액이 4천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피부양자에서 제외되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됩니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대상자들은 오는 8월부터 지역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남편의 문제점을 알고 고쳐보자는 얄팍한 생각에 가족의사소통캠프를 신청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2박 3일 일정이라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며 ‘1박 2일이면 충분할 텐데’하는 짜증 섞인 생각을 하고 아이들은 그저 놀러 가는 줄만 알고 모였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2박 3일 일정은 만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금ㆍ토ㆍ일 캠프 후 월요일이 큰아이 학교 시험이라 중간 중간 책 좀 보게 해야지 했던 엄마의 욕심은 캠프에 참여하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날 가족소개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프로그램이겠지’, ‘무료로 진행하는데 얼마나 좋겠어?’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 제가 너무 부끄러웠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고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가족캠프를 통해 생전 안 해 보던 게임도 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가족연극도 참 좋았습니다. 요리라곤 라면뿐이던 남편이 ‘아빠는 요리사’ 프로그램에서 아이와 스파게티와 유부초밥을 만드는 걸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회사일이 힘들다며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아빠들 이야기도 들으며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캠프의 모든 프로그램이 다 좋았지만 함께했던 다른 가족의 생활을 보며 우리 가족과 다른 점을 알고 반성하며 변화하게 된 것이 가장 좋았습니다. 처음에 엄마의 강요에 끌려 온 것 같던 아이, 프로그램 내내 싫은 표정이 역력하던 사춘기 아이가 마지막 날 웃으며 인사하고 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시큰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가족이 3일을 함께한 시간 때문인 것 같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다면 감동은 절반이었겠죠. 캠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가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알면서도 개인 또는 가족의 힘으로 치유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캠프를 제공해 주신 좋은 기회 덕분에 가족이 하나 됐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참여할 때는 긴가민가하고 반신반의로 참여했지만 남편도, 아이도 무척 좋아했고 함께 만들었던 가정헌법은 식탁 옆에 붙여놓고 계속 되새김질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족프로그램을 열어준 양산시에 감사드립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선생님들의 따스하고 자상한 인간미에 심신의 편안함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인위적인 가식이나 억지로 하는 진행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함, 그건 새로운 감동이었습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이 많은 일을 일일이 계획하시고 세심하게 챙겨주시면서 늘 웃는 낯으로 대하시는 걸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게 도움이 됐던 이곳 양산시청소년광장에서 저 또한 도움이 되고자 봉사를 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남편과 아이들도 좋다고 하더군요.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난소에 종양이 생기는 질병을 난소낭종이라 한다. 난소는 임신과 출산에 없어서는 안 될 난자를 생산하는 여성의 신체기관이다. 난소는 난자를 성숙시키고 성숙된 난자를 자궁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물혹’으로 일컬어지는 난소낭종은 양성질환으로 난소낭포성종양, 난소낭포라고도 한다. 그 유형에 따라 비종양성 낭종(기능성낭종)과 종양성낭종으로 나뉜다. 난소낭종의 크기가 작을 때는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으나, 크기가 커지면서 복강내를 점유하게 되면 극심한 하복통을 일으킨다. 그래서 하복부의 뻐근함, 하복통, 복부팽만, 복부압박증상, 급성복통, 소화불량, 질 출혈, 월경 이상 등이 초래된다. 심할 경우에는 난소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난소는 수정에 필요한 난자를 통해 배출하는 곳이므로 특히 난소 이상은 여성들의 불임을 일으킬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또 악성난소종양은 난소암으로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난소종양은 저절로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크기가 클 경우에는 수술을 요하기도 한다. 난소낭종의 원인은 임신과 관련된 난소에서 발생하는 질병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배란과정에서 장애가 생겨 난소난종이 발생하게 된다. 첫째로 신체 내 수분대사가 원활하지 못해서다. 수분대사가 활발하지 않으면 체내에 물이 고이게 되는데 이 고인 물을 ‘담음’이라고 한다. 흔히 난소낭종을 물혹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이 담음 때문이다. 둘째로는 여성의 신체가 차가워져서 발생된다. 신체가 냉해지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노폐물이 쌓인다. 이렇게 되면 난소낭종뿐만 아니라 자궁근종 등 여타 다른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세번째 원인은 불규칙적인 생활습관과 과로로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과로를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과도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 된다. 마지막으로 여성이 30대 중반이 되면 배란기능이 조금씩 떨어진다. 배란이 잘 되지 않으면 황체 또한 형성되지 않게 되고, 황체가 생산되지 않으면 난소와 자궁이 너무 커져 버려 이것이 난소난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수지침요법에서는 기본방과 B1~7, B18, I38, L4, I2, F6, K9에 자극을 주고 서암뜸을 하루에 2~3회, 1회에 5장 이상을 떠준다. 특히 운기체형에 따라 수지음식을 먹게 되면 자연적으로 장부조절이 되어 매우 효과적이다. 양실증은 비장과 폐를, 신실증은 심장과 비장을 보하는 수지음식을 장기간 먹게 되면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시켜 부인과 질환은 물론이고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 준다.
오후 늦은 시간, 워터파크에 선선한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진다.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잠시 걸음을 멈부고 청아한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역사 편찬의 기초자료인 사초는 후대의 평가를 좌우하는 귀중한 문건이므로 보존의 중요성이 남다르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2007년 정상회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지 않음이 확인됨에 따라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에서 출발한 여야의 대치가 정부 공식기록인 사초의 폐기 논란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가 건국해 철종에 이르기까지 472년 동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이다. 실록 편찬시 이용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올라오는 각종 문서를 연대별로 정리한 자료와 함께 직전 왕 재위 시의 사관(史官)들이 작성해둔 사초를 모태로 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전임 사관들은 품계는 비록 낮았지만 항상 궁중에 들어가 입시(入侍)해 임금의 언행을 비롯해 신하와 함께 국사를 논의, 처리하는 것을 보고들은 대로 직필하여 사초를 작성했다. 조선시대의 사법(史法)이 매우 엄했기 때문에 사관은 사실을 직필할 수 있었다. 간혹 왕이나 상관에 의해 사초에 대한 비밀엄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사화(士禍)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강직하게 의무를 다한 사관들이 있었기에 후세에 지난날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록물의 역사는 현대 정치와 행정에서도 답습돼야 한다. 또한 대통령과 정부에 국한돼서는 안된다.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각급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사업과 지역개발정책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추진과정이 투명하게 기록되고 보존돼야 함은 사필귀정이다. 경전철사업의 무리한 추진으로 막대한 재정 손실을 안겨준 지자체에 대해 시민단체 등에서 그 책임을 물으려 해도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는 ‘남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시대에 시장의 권한은 막강할 수 밖에 없고, 시의회 의원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한해 6천억원 이상의 예산을 운용하는 양산시로서는 예산 낭비를 예방하는 문제와 함께 국책사업의 추진과 도시계획의 입안, 특혜나 탈법의 소지가 있는 인ㆍ허가 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책임행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후에 책임 소재를 확실히 가릴 수 있도록 상세한 추진과정의 기록 보존이 필요하다 하겠다. 최근 시의회를 중심으로, 부산도시철도 1호선 노포~북정선 연장사업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경제타당성의 근거가 되는 수요 예측이 부풀려져 있다는 것과 ‘상권의 대도시 빨대 효과’와 ‘시 외곽지역 교통의 불편 초래’라는 역기능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지자체의 실패사례에서 얻는 교훈도 있는 만큼 대형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주요 인물의 언행이 기록되고 보존돼 책임소재를 가리는 자료로 활용돼야 함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 밖에도 진행과정이 투명하게 관리돼야 하는 사안은 얼마든지 있다. LH공사의 사송보금자리주택지구의 용도변경 시도 과정에서의 양산시와의 교감 여부도 밝혀져야 한다. 디자인센터 건립에 제공된 공유재산의 처리와 인ㆍ허가에 관련된 공직자들의 판단과 행정처리 과정도 기록이 남아 있어야 차후 문제 발생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석계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양주중학교 환경문제는 공단개발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가까운 장래에 발생할 학습권 침해와 공해로부터의 안전장치 부족으로 인한 이전 요구를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입안 단계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있는지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록은 어떻게 관리돼야 하는가. 조선시대처럼 사관이 따라다니면서 기록할 수도 없고, 공청회나 주민설명회처럼 일회성 모임의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핵심은 의회의 기능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논란이 예상되는 사업이나 정책, 인ㆍ허가에 대해 시정질문이나 사무감사, 또는 상임위 활동을 통해 관계자들을 불러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자리를 만들어라는 것이다. 의회의 회의는 모두 공개될 뿐 아니라 속기록을 통해 보관되는 것이니만큼 후일 특정 사안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는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양산시의 관료 조직은 물론 선출직 정치인들의 공적(公的) 행위는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그 책임이 막중할 때에는 구상권(求償權)까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의 남용이나 무책임한 방종을 막을 수 있다.
TV의 모 개그프로그램을 보면 한 개그맨이 자신의 작은 키를 한탄하며 방청객을 웃긴다. 외모도 아주 잘생겼고 몸도 좋고 유머도 넘치지만 오직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설움을 받는 애환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외모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요즘 사회에서 작은 키는 마이너스 요소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키 1cm당 150달러의 연봉의 차이가 난다는 결과도 있다. 이제는 우리 아이에 대해 ‘언젠가는 크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대신 우리 아이의 중요한 경쟁력인 키에 대해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1970년대 남성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많이 성장했고 80~90년대에는 중학교 2ㆍ3학년, 최근에는 중학교 1학년 때 가장 많이 큰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이처럼 아이는 점점 성장주기가 빨라지고 있지만 부모들은 과거 자신의 경험에 비춰 ‘나이 들면 키 크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먹거리로 인한 비만이나 환경호르몬 등으로 인해 성조숙증은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어 키가 큰 아이라도 안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성장의 중요한 요소로는 잠, 영양, 운동, 유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근 들어 가장 문제되는 요소로는 체형이 있다. 실제로 잠도 잘 자고 영양상태도 좋고 부모의 키도 크지만 자녀는 키가 작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아이는 대부분 거북목이거나 등이 구부정하거나 다리가 휘어있는 등 체형의 문제로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소나무라도 남산 위의 소나무는 몇 백년 된 노송이라도 굽어있어 실제 크기는 작고, 숲속의 소나무는 쭉쭉 뻗어있어 몇십년밖에 안됐지만 웬만한 건물보다 높은 이치다. 체형이 틀어져 구부정하게 되면 자신감도 없어 보여서 아이의 심리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잠을 잘 때도 옆으로 누워 자거나 뒤척이게 돼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할수도 있다. 이런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목, 허리가 아프고 약골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체형교정으로 틀어진 체형을 바로잡는다. 목, 허리, 골반부터 손목, 발목, 무릎 등 성장판이 있는 곳을 손으로 자극해 교정하면 성장을 효과적으로 촉진하고 구부정한 체형이 펴져 숨은 키까지 키울 수 있다. 또 거북목이나 휜다리측만증 같은 증상 역시 교정돼 외형적으로 자신감이 생길뿐만 아니라 목, 허리가 아픈 증상도 같이 치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