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 씨
밤 까다 쌍둥이 밤을 본다 칼끝으로 떼어 내려다, 아뜩한 것 손끝에 잡혀 그만 멈추고 만다 쌍둥이로 태어난 어머니 형제 밤 평생 한 몸처럼 사시고 반쪽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코 풀지 않았던 그 한 몸 몇 해 전 이모님 세상 떠나시고 지상에 남은 반쪽의 몸으로 어머니 굽은 등 더욱 굽어지며 해마다 햇밤을 땅에 묻으셨다 겨울 지나 이듬해 이월, 이모님 제삿날 땅속 묵은 밤 꺼내 성긴 눈발 맞으시며 밤길 더듬어 가시던 어머니 한 쪽이 빈 외톨밤 못 견디게 살닿고 싶은 그곳 어머니 조용히 따라 가셨으니
귀는 왜 두 개일까? 귀가 단순히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면 한쪽만 있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평형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귀엔 달팽이관과 세반고리관, 이석으로 구성된 평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이 있다. 양쪽 귀에 있는 전정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한쪽으로 쏠리거나 빙빙 도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석증이라 불리는 병은 이석이라는 돌가루가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옆에 붙어 있는 세반고리관으로 들어갔을 때 생긴다. 가만히 있을 때는 어지럽지 않다가 고개를 돌리거나 움직일 때 빙 돌 듯이 어지럽다면 이석증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석은 주로 머리에 충격을 받았을 때 떨어진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잘 나타나며 오랫동안 치과 치료를 받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운전한 후에도 발생한다. 잘 때 한쪽으로 누워 자도 이석증 위험이 있다. 귀는 온갖 소음에 노출돼 있다. 가까이서 들었을 때 대화 60dB, 코 고는 소리 85dB, 자동차 경적 110dB, 록 콘서트나 제트엔진 120dB, 총소리나 폭죽은 140dB이다. 인간은 90dB 이상에서 8시간 노출됐을 때나 140dB 이상에 노출되는 즉시 청력에 손상을 입는다. 요즘 많은 사람이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큰소리로 음악을 듣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소음이나 중이염은 귀울림(이명)을 낳기도 한다. 귀울림은 주로 귀에서 음파를 전기신호로 바꾸는 달팽이관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달팽이관은 장기간의 소음에 노출돼 가장 많이 상한다. 따라서 귀울림은 청력이 저하되는 난청을 경고하는 ‘사이렌’이라고 할 수 있다. 난청은 가는귀가 먹었다는 정도에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완전 농(聾)까지 광범위하다. 난청을 막으려면 과도한 소음에 오래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경우 자주 빼 귀를 쉬도록한다. 장년층은 고혈압 조절과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커피나 콜라, 담배를 삼가며 되도록 짜게 먹지 말아야 한다. 스트렙토마이신이나 겐타마이신 등을 장기간 맞으면 청력이 떨어질 수 있으므로 항생제를 맞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며칠 전 매일같이 지각하는 녀석들이 있어 야단을 쳤더니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도리어 대들 듯이 불손한 태도를 보이고 무성의한 대답을 하는 바람에 큰소리로 야단을 치느라 온종일 목이 아팠다. 학기 초에는 단단히 야단을 쳐서 지각하는 버릇을 고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벌로 청소를 시키고 상담도 한다고 했지만, 효과는 그때뿐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 효과가 나타나려면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해서 지도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아침 자습시간과 조회시간까지 등교하지 않으면 수업이나 여러 업무에 시달려 그 지각대장 녀석들을 불러 볼 여유가 생기지 않아 지도할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종례시간에 만나면 제대로 지도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교실에 가면 녀석들은 이미 달아나 허탕만 치고 만다. 매일 지각대장 녀석들과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녀석들과 허물없이 터놓고 대화하기가 어려웠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녀석들의 부모님께 전화해서 도움을 부탁하고 한 명씩 불러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특별하지도 않았다. 일찍 못 일어나서, 아르바이트를 늦게까지 해서, 게임을 하다 늦게 자서, 피곤해서, 학교 오기 싫어서란다. 어떡하면 지각을 안 하겠는지 물어보니 모두 등교 시간을 늦춰 주면 1교시 전에는 오겠다고 한다. 공통으로 하는 말이라 이해는 하지만 학교에서 정한 등교 시간을 가급적 지키고 늦을 때는 반드시 연락하라고 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고 말았다. 그 이후로 지각대장 녀석들은 1교시 수업 전에는 꼭 등교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꾸준하지 못했다. 지각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음의 문제가 더 심하다. 시간별로 준비해야 할 교과서나 필기구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수업시간은 공부와 상관없이 잠을 자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다 못해 화가 나 “도대체 왜 이렇게 됐냐?”고 소리치며 물었더니 이구동성으로 “그래도 샘 시간에는 늦지 않고 들어오잖아요”란다. 순간 머릿속에서 상반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엄격하지 않아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적당히 시간만 보내는 요령을 익힌 게 아닌가 하는 것과 그래도 선생님과는 조금이라도 잘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움에 대한 열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 머리까지 나다가도 한편으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공부하는 이유를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하는 것만으로 지나치게 강조해 아이들을 찌들게 하고 말았다는 자조에서다. 딱딱한 교과서 지식에만 빠져들지 말고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경험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보다 삶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학교란 다닐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란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지식교육보다 풍성한 인문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삶에 대해 경험하도록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매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교과서에서 살짝 벗어나 여유를 가지며 삶의 경험을 아이들과 많이 나누는 일이 어쩌면 공부보다 삶이 힘든 아이들을 새로워지게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도 잠시 잊은 채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당선자 주변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지만, 낙선자는 아쉬움과 회한으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거리는 온통 당선과 낙선 사례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당선자 것에는 여유와 자부심이 묻어났고 낙선자 답례에서는 재기의 다짐이 드러나기도 했다. ‘많이 부족했습니다’라는 글귀에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자책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변함없이 시민 곁에 있겠습니다’라는 구호 뒤에는 다음 선거를 기약하는 의지가 엿보이는가 하면 ‘낙선에 울지 않고 성원에 웁니다’라는 애교 섞인 낙선인사도 눈에 띄었다. 모두 48명이 후보로 등록해 시장과 도ㆍ시의원, 비례대표 시의원 등 22명이 당선의 영광을 안았으니 2.2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선증을 받아든 것이다. 첫 영광을 안은 이도 여럿 나왔다. 승자만이 기억되는 것이 비단 선거에서만은 아닐 테지만, 낙선한 26명의 사연이 저마다 구구절절할 것임은 분명하다. 공천과정에서 일찌감치 본선 탈락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패자는 말이 없다지만 낙선한 각 진영의 사정이 다 똑같을 수는 없다할 것이다. 정당 공천이 주는 긍정 또는 부정적 이미지가 이유가 될 수도 있고, 한 정당이지만 기호 순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경우도 있다. 동정에 호소한 표심, 낙후된 지역에 대한 표 쏠림 현상도 있고, 방심해 무너진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 경우처럼 단 9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 안타까운 사례는 없었으니 ‘석패(惜敗)’라고 표현할 대결은 없다고 봐야 하겠다. 이제 7월이 되면 민선 6기 집행부와 제6대 시의회가 개원하게 된다. 시장은 연임됐지만 의회에서는 반 이상 현역 의원이 짐을 꾸려야 한다. 4년 간 공인 생활을 접고 사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쉬움과 미련을 접고 평소 모습을 되찾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4년 뒤 그들 모습을 다시 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으로 볼 때 다음 선거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선거는 마약’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도 있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말이 아닐까. 소신과 의지가 분명하고 배경과 조건도 충분하다면 한 번의 실패로 완전 단념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인물의 공통점은 향토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적인 이타심이 남다르며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선거 패배를 자신의 부덕(不德)이나 상대적 저평가의 결과로 인식하지 않고 잘못된 선거프레임이나 시스템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법적으로 피선거권을 제한받지 않는 다음에야 어느 선거에 누가 나오든 안 될 바가 없다. 또한, 지역사회에 대한 남다른 소명의식을 가진 인물이 지방정치에 매진하는 것이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오히려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지역사회 한 축을 이뤄가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낙선했다고 해서 지방자치에 대한 관심을 잃은 채 자신의 생업에 천착해 살아가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피력할 기회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로 선출된 많은 정치인 중 도지사와 시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치인은 의회 의원이다. 자치단체의 장인 도지사와 시장은 도민 혹은 시민을 위해 직접 행정을 펴 나가는 자리지만 나머지는 모두 이를 견제하는 국민의 대리인 격이다. 당선자만이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현실정치의 장에 발을 내딛지 못한 사람도 충분히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바탕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수차례 선거를 치르면서 시민 앞에서 사자후를 뽐내던 인물이 막상 낙선된 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철저히 개인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모습을 봐왔다. 그러면서도 또 4년 뒤에는 다시 나타나 자신만이 지역발전을 가져올 사람이라고 지지를 부탁하는 장면을 지켜보곤 했다. 이제 우리 지방자치도 20년이 됐다. 성숙한 시민의식 만큼이나 건전한 정치인이 지역 살림을 맏아 나가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자치 역량을 키우고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비판세력을 육성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하는 자를 시민은 잊지 않는다. 선거에서 패배한 그들도 지역의 소중한 자산이다. 언젠가 그들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격려하자.
무상(無常)은 무상(無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것이 영원한 가르침이다’ 영원하지 않는 가변적인 존재가 어찌 무상(無相)이 될 수 있을까? 자, 그러면 무상(無相)이란 무엇인가? 살펴보자. 일찍이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위대한 승리자의 표상인 차크라바르틴(전륜성왕, 轉輪聖王)이자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徧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으로 거듭나 붓다 이전의 붓다, 과거 삼세의 스승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인간해방을 선언했다. 그 사자후를 발하기 전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깊은 번뇌에 빠졌다. “이 가르침은 실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 누가 이와 같은 가르침을 믿고 이해해 수행한단 말인가?” 그의 길고 긴 장탄식이 이 진리의 문에 들어서는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극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무상은 절대평등을 예고한다. 삼라만상, 근대 한국 선종의 종장인 경봉대선사가 그 깨달음의 일성(一聲)에 ‘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다(두두물물, 頭頭物物)’고 말한 그 온갖 것, 삼라만상 하나하나 모두 성품이 티끌 하나 변치 않는 온전히 균일한 평등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티끌 하나 변치 않는 믿음을 낼 자가 누구인가?’하고 철인(哲人)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지혜와 복덕을 겸비한 제자 수보리(須菩提)조차도 “세존이시여! 제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닦아온 복과 지혜로는 알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물론 겸양의 미덕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기라성 같은 뛰어난 제자, 사라불, 목건련, 부루나미다라니자, 마하가섭 등 상수제자의 고백이 모두 일치하는 걸 보면 딱히 그렇지 않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겠다. 영축산 기사굴에 고요함과 적멸의 광휘로움에 휩싸여있는 500명의 아라한이 있었다. 그리고 황금빛 몸매, 다정한 눈빛, 범천(梵天)의 수려한 용모로 허리를 바로세우고 말없이 앉아있는 한 사람. 그는 바로 아득한 과거세에 연등 부처님으로부터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라고 수기(授記)받은 고오타마 싯다르타였다. 더 이상 세상의 그 무엇으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물을 벗어난 바람이자 현존하는 전설이 된 그는 이 모임의 스승이었다.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 이 거룩한 모임은 현묘해 설명이 불가능하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서서 말없는 자애로움으로 심금을 울리는 법문에 귀 기울인다면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가르침이 이와 같으니 듣는 자나 법을 베푸는 자가 차별이 없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것은 무상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거니와 동방의 해 뜨는 나라, 솔롱고스 곧 무지개나라의 옛 선사도 ‘상 가운데 부처가 없고 부처는 상이 없다(상중무불 불중무상, 相中無佛 佛中無相)’했으니 자고로 선사의 후예들, 그 솜씨가 이러했다. 그 후 이 열정에 가득 찬 선사는 아무도 없는 바위에서 좌선하다 열반에 들었다. 몇 날 며칠이 지나 겨우 발견됐는데 이는 신선의 경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몸으로 무상의 실체를 보여준 선사의 이름은 법안화상이다. 드러내지 않고 드러낼 것이다. 말하지 않고 말 할 것이다. 이는 선가의 보배로운 지침인데 옛 부처도 그러했다. 헛된 명리, 탐욕, 기만 따위는 무상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바람을 베는 것과 같다. 현자에게는 모욕도 칭찬도 다 부질없는 유희일 뿐이다.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제행무상, 諸行無常) 나고 없어지는 것조차 없으면(생멸멸이, 生滅滅已) 그때 고요하고 즐거우리라!(적멸위락, 寂滅爲樂)” 이 사자후를 잉태한 실체는 바로 무상이다.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온 정신으로 사무쳐 체득해야 무상에 이를 수 있다. 곧 존재의 실체 없음을 알아야 무아(無我)가 된다.
어수룩 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란 소설은 1926년부터 무려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이다. 그 당시에는 무명의 작가에 지나지 않았던 마거릿 미첼(Margaret Mitchell, 1900~1949)이 쓴 소설로, 이 작품은 황폐한 시대를 힘차게 살아간 남부 여성의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193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첼은 단번에 세계적인 문필가가 됐다. 미첼이 스물여섯이던 해 그는 다리를 다쳐 5년 동안이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둬야 했다. 미첼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취미삼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점차 소설에 몰입하기 시작하면서 십년이나 걸려 마침내 1천37면이나 되는 대하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두툼한 원고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소설을 출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무명작가의 소설을 선뜻 받아줄 출판사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렇게 7 년의 세월이 무심하게 흘렀고 원고는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닳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한 지방신문에 ‘뉴욕에서 제일 큰 출판사 사장이 애틀랜타를 방문했다가 기차로 되돌아간다’는 짤막한 기사를 봤다. 미첼은 자신의 원고를 들고 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그가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맥밀런 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은 기차에 올라타려던 중이었다. 미첼은 큰 소리로 그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사장님, 제가 쓴 소설입니다. 꼭 한번 읽어주세요” 레이슨 사장은 마지못해 원고뭉치를 들고 기차에 올랐지만 그는 원고 뭉치를 선반 위에 올려놓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미첼은 기차역을 빠져나가 우체국으로 달려가 레이슨 사장에게 전보를 쳤다. 얼마 후 기차 차장을 통해 한 통의 전보가 레이슨 사장에게 전달됐다. “저의 원고를 한 번만 읽어주세요” 그러나 그는 원고뭉치를 한 번 흘깃 쳐다볼 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얼마 후 똑같은 내용의 전보가 다시 배달됐지만 그는 원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세 번째 전보가 배달됐다. 그제서야 그는 미첼의 끈질김에 혀를 내두르며 원고뭉치를 집어 들었다. 원고를 읽으면서 그는 소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 승객들이 짐을 챙기는 동안에도 그는 원고를 놓지 않고 있었다. 레이슨 사장은 회사로 돌아와 곧 출판을 지시했다. 그렇게 출간된 소설이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다. 이 소설은 27개 국어로 번역됐고 1천600만 부가 판매됐다. 한 여인의 지칠 줄 모르는 10년의 집념이 한 편의 소설에 집중됐고 7년이라는 긴 세월이 한 편의 소설의 출판을 위해 필요했다. 모든 성공 뒤에 남모르는 인내가 들어가 있음을 알지 못하고는 성공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유충으로 오랜 기간을 기다린다. ‘매미탑’이라는 북아메리카에 사는 매미는 유충기간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별명이 17년 매미이다. 단지 15일에서 한 달을 위해서 인내하며 기다린다. 기다림은 성숙이다. 에머슨(Emerson)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타인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10분 더 포기하지 않고 오래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헨리 뉴웬(Henri Nouwen)은 ‘인내는 기다림의 어머니다’라고 했다.
민선 6기를 담당할 지역 일꾼을 뽑는 6.4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관심을 모았던 시장 선거에서는 현직 나동연 시장이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출마해 새정치민주연합 김일권 후보를 상당한 격차로 따돌리고 연임에 성공했다. 도의원 선거에서도 세 선거구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이변없이 안정된 득표를 기록하며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시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4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면서 비례대표 의원까지 모두 5명을 시의회에 진출시키는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시의회 의원은 말 그대로 시 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민의 대리인이다. 전국적으로 기초의회 기능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함으로써 정치개혁 논의에서 폐지까지 거론되기도 했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예산 집행을 감시하고 도시 발전 정책을 검증하는 시의회 역할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우리 양산의 경우 다양한 분야에서 시정을 감시할 시민단체가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시의회의 임무는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다섯 번의 시의회가 시민 기대에 부응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런 점은 원 구성의 정당 분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제5대 시의회는 개원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8명,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1명, 무소속 5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무소속 의원 대부분이 사실상 한나라당 성향이었고 실제로 나중에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결과적으로 야당은 2명에 불과했다. 시정에 대한 견제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제5대 의회 전반기 의장에 김종대 의원이 선출되면서 나동연 시장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지만 후반기에 의장이 바뀌면서 상황도 바뀌고 말았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보면 시의원 선거에서 양산시민이 얼마나 고심의 선택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전통적인 보수 여당 강세지역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최근들어 야당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6개 선거구에서 모두 1명씩 현역 의원이 낙선했다. 시민이 지난 시의회 활동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결과다. 새누리당 박정문, 최영호, 이용식(나중에 탈당), 황윤영 의원과 통합진보당 심경숙(역시 나중에 탈당), 무소속 서진부 의원이 그들이다. 당선자 통계로 보면 6개 선거구에 모두 14명의 후보를 낸 새누리당에서는 6명의 후보가 낙선했다. 그 자리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4명, 무소속이 2명 진출하게 됐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는다 해서 100% 당선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는 지난호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중선거구제도의 효과이기도 하다. 한 정당에서 다수 후보를 냈을 때 표가 적절하게 분산되지 않는 한 모두 당선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비단 그런 현상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무소속과 야당의 경쟁에서 야당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시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보여준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올해 처음으로 대부분 시의원 선거구에 공천자를 냈다.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뒤처진 상ㆍ하북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 선거구에서 모두 후보를 등록시켜 그 가운데 4명이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당선률 80%의 대약진이었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37.45%를 득표해 1명을 당선시킨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두 5명의 시의원을 의회에 진출시켰다. 이로써 제6대 시의회는 새누리당 9명, 새정치민주연합 5명, 무소속 2명 등 모두 16명의 의원으로 새로 출범하게 됐다. 무소속 2명도 과거 정치 성향으로 볼 때 새누리당에 가까운 인물로 볼 수 있지만, 박말태, 이종희 당선자 모두 공천 탈락의 아픔을 경험했던 터라 무조건 새누리당의 협력자가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활동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겠다. 어찌 됐든 16명 중 9명은 과반수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예전만큼 일방적인 힘의 우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정 독주에 대한 견제를 바라는 표심이 반영된 것으로 새로 의회에 진출한 야당 의원 활동 여하에 따라서 나동연 시장의 시정 추진에 얼마나 제동이 걸릴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양산 유권자는 나동연 시장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긴 했지만 잘못 꾸려가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활기찬 직장여성인 강아무개(28) 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싶지만 유독 통통한 ‘저주 받은 하체’ 때문에 선뜻 입기가 꺼려진다. 특히 바캉스 시즌을 앞두고 수영복과 여름 옷을 사러 가지만 튼실한 하체 때문에 거울 앞에서 유독 자신감을 잃게 된다. 요즘 하의 실종 패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짧은 치마와 바지가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많은 여성이 굵고 통통한 엉덩이와 다리인 하체비만 때문에 고민이 많다. 하체비만은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에 집중적으로 살이 많은 경우를 말하는데, 남성에게는 거의 없는 반면 여성 상당수가 하체비만으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체비만은 살이 찌면 하체부터 찌고 살이 빠질 때는 하체가 가장 나중에 빠져서 단순히 식이요법이나 다이어트를 하는 것만으로는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하체비만은 지방형, 부종형, 골격형, 근육형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여성호르몬 영향이다. 그래서 젊은 가임기 여성일수록 하체비만이 두드러진다. 할머니 중에 상체비만인 할머니는 많아도 하체비만인 할머니는 없는 이유이다. 특히 요즘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섭취하다보니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데 이런 환경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제노에스트로겐 즉, 가성 여성 호르몬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체비만을 촉진한다. 둘째는 골반 틀어짐이다. 골반이 틀어지게 되면 고관절과 하체 관절이 내회전하게 돼 아랫배가 나오고 엉덩이가 크고 처지게 된다. 특히나 엉덩이 다리뼈 부위가 튀어 나오게 되면서 다리도 짧아 보이게 되고 다리가 휘거나(O다리) 두꺼워지는 형태로 가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건강에도 이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목, 어깨가 아픈 경우가 많다. 또 잠을 똑바로 못자고 옆으로 자거나 침대에서 자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체비만은 유독 우리나라 여성들이 심한 편인데 그 이유는 방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골반 틀어짐이 잘 생기기 때문이다. 하체비만 치료는 골반을 교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뼈를 교정하는 추나 치료와 근육을 풀어주는 근막 이완 요법과 약침 요법, 골반 교정 운동 등을 통해 골반을 교정한다. 동시에 체질별 맞춤 다이어트 한약 치료를 통해 하체비만을 치료한다.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인스턴트 등을 자주 먹는 식습관을 고치고 평소에 바닥에 앉지 말고 의자나 소파에 앉아 생활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또 골반을 강화하는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하체비만에서 탈출할 수 있다.
▶국민연금 적용제외란 무엇인가요? 적용제외는 ‘수급권 적용제외’가 아닌 ‘당연가입대상 적용제외’를 의미합니다. 국민연금은 만18세 이상 60세 미만 국내거주자를 의무가입 대상으로 합니다.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경우를 ‘적용제외’라고 하는데 국민연금이나 타 공적연금(공무원연금 등) 가입자의 무소득 배우자일 경우, 27세 미만 소득이 없는 학생이나 군인 등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위에 해당하더라도 추후 소득활동을 하게 되면 사업장가입자, 지역가입자로 당연히 가입됩니다. 추후 가입자의 국민연금 납부이력은 개인 명의로 지속 관리됩니다. 따라서 모든 납부이력은 계속 연계되며 본인 연금수급연령에 도달해 보험료 납입기간이 10년 이상이면 매월 평생 연금으로, 10년 미만이면 소정의 이자와 함께 일시금으로 지급되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은 국민 각자가 연금에 가입해 자신이 납부한 연금 보험료를 기반으로 혜택을 받는 것이므로 국민연금 가입 중이 아닌 경우에는 혜택에 제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장애연금은 국민연금 가입 중에 발생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입은 장애로 소득활동에 지장을 줘 지급하는 것으로 ‘가입 중’이라는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적용제외’ 중에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장애는 장애연금 지급대상이 아닙니다. 유족연금은 ‘적용제외’ 기간 중 사망하더라도 연금보험료 납부기간이 10년 이상이면 법 제73조에 따른 유족에게 지급되며 연금보험료 납부기간이 10년 미만이면 가입 중 초진일 또는 가입자 자격을 상실한 후 1년 이내의 초진일로부터 2년 이내에 사망한 경우, 법 제73조에 따라 유족에게 지급됩니다. 참고로 적용제외 대상인 분도 본인이 원하면 ‘임의가입’을 통해 국민연금에 가입해 연금 보험료를 납부할 수 있습니다. 임의가입 역시 국민연금 ‘가입 중’의 상태로 보고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6.4 지방선거는 자식 때문에 울고 웃는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장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가 당선됐다. 반면 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민이 미개’라는 글을 써 구설에 올랐던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발언 때문에 선거 내내 비난을 면치 못하다 결국 낙선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초반 선두를 달리던 고승덕 후보가 낙선하고, 3위에 머물던 조희연 후보가 당선했다. 고 후보는 선거운동 막판에 전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이 ‘자녀 버린 내 아버지, 교육감 자격 없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린 뒤 지지율이 급락했다. 고 후보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딸과의 카카오톡을 공개하는 등 해명에 나섰지만 여론은 이미 싸늘했다. 반면 조 후보는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아버지는 양복도 없다’는 글이 네티즌의 입소문을 타고 퍼지며 판세를 뒤집었다. 조 후보 아들은 “20년 넘게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지켜온 바로는 교육감이 돼 부정을 저지르거나 사사로이 돈을 좇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개표 후 각 후보 캠프마다 ‘자식 때문에’라는 환호와 탄식이 흘러나왔다. 결국 자식이 대신 치른 선거, 승자는 ‘자식 뜻대로’라는 말이 돌았다. 위대한 독립 운동가로 손꼽히는 백범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의 성장 배경에서 손꼽는 공통점은 부모가 자녀에게 애국 교육을 철저히 했다는 것이다. 특히 조마리아 여사는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조 여사가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쓴 편지 중 감동적인 사연이 우리 마음을 적시고 있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는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이렇듯 조 여사는 1910년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인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려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뒤 조 여사는 편지와 함께 명주 수의를 보냈고,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그 수의를 입은 채 형 집행을 당하고 만다. 자식의 죽음을 앞두고, 자식에게 대한의 남아답게 용감히 죽음을 맞으라고 사형대의 수의를 지어주며 편지를 쓰는 어머니가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조마리아 여사는 무엇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강한 어머니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지도층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앞으로 자녀에게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경봉대종사는 불교계에 큰 발자국을 남긴 큰 스님이다. 경봉 큰 스님의 삶의 궤적을 통해 대종사가 추구한 달마, 즉 진리의 말씀을 어떻게 구현하고 실현했는지 연재한다. 글쓴이는 시인이기도 한 통도사 극락암 일송 스님이다. 첫 회로 경봉스님의 연대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스님의 속명은 용국(鏞國), 법명은 정석(靖錫), 시호는 원광(圓光), 경봉은 법호(法號)다. 1892년 4월 9일 : 경남 밀양군 부내면 계수동(서부리) 출생. 아버지 김영규(金榮奎) 광주 김씨. 어머니는 안동 권씨. 1905년(14세) : 밀양군 서부리 죽하재 강달수 선생 문하에서 <사서삼경>을 마침. 1906년(15세) : 8월 4일 모친상을 당함.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나고 죽는 것이 없는 진리를 탐구하고자 함. 1907년(16세) : 6월 9일 양산 통도사 성해화상을 은사로 삭발 득도함. 10월 30일 청호화상(淸湖和尙)으로부터 사미계(沙彌戒)를 받음. 1911년(20세) : 4월 8일 해담화상으로부터 비구계(比丘戒)와 보살계(菩薩戒)를 받음. 1912~1914년(21세~23세) : 통도사불교 전문 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서 <화엄경>을 배움. 1915년(24세) : 통도사를 떠나 양산 내원사 혜월화상을 참방. 해인사 퇴설당, 금강산 마하연, 석왕사 내원선원에서 선(禪)을 수행. 1919년(28세) : 양산 내원사 주지. 1925년(34세) : 통도사양로만일 염불회 창설. 1927년(36세) :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21일 동안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를 개설해 용맹정진하던 중, 12월 13일 오전 2시 30분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활연히 대오(大悟, 크게 깨닫다). 1932년(41세) : 1월 31일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 1935년(44세) : 9월 19일 대본산 통도사 주지. 1942년(54세) : 10월 3일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 1946년(55세) : 12월 불교혁신총연맹본부 위원장. 1949년(58세) : 대본산 통도사 주지. 1950년(59세) : 밀양 무봉선원에서 수년동안 주석. 1953년(62세) : 2월 30일 좌선중 심불방광처(心佛放光處)를 체득. 1953년(62세) : 11월 3일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祖室)로 추대됨. 이후 30년을 극락암에 주석하며 선원 대중과 후학을 지도. 1969년(78세) : 특별수도정진처 아란야 창건. 1982년(91세) : 7월 17일 (음력 윤 5월 27일) 미질을 보이던중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묻는 시자에게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빗장을 만져보거라”는 말씀을 남기고 열반에 드심. 오후 4시 25분. 세수 91세. 법랍(法臘) 75세. 1985년 : 6월 26일 통도사 일부문 밖에 탑과 비를 세움. 저서 법어집 <법해法海>, <속법해續法海> 한시집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 <선문묵일점 禪門墨一點> 서간집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일지 <삼소굴일지三笑窟日誌>
‘소소심’을 아시나요? 소소심은 소화기와 소화전, 심폐소생술, 이 3가지 ‘소’ 자만 따서 ‘소소심’이라 칭한다. 올해 소방방재청은 ‘소소심’ 익히기 대국민 캠페인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워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소화기 사용법과 심폐소생술은 그동안 많은 홍보와 교육을 진행한 결과 국민 대부분 낯설지 않을 정도로 습득됐다.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화전도 사용법을 홍보해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 보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자 ‘소소심’ 익히기 대국민 홍보를 확대ㆍ시행하게 됐다. 얼마 전, 부산 화명동 아파트 화재로 일가족 4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아파트 베란다 쪽에 설치된 이웃집으로 피난할 수 있는 경량칸막이로 된 벽을 파괴할 수 있는 여력만 있어도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몰라서 운명을 달리 했다는 것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이제는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내가 다니는 회사에 설치된 소방 관련 시설만이라도 활용할 수 있어야겠다. ‘소화전을 사용해 본 적이 있나요?’라고 시민에게 물어보니 누구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거 겁이 나서 어떻게 사용해요?’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사용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첫 번째, 소화전함 문을 연다. 두 번째, 소방호스를 빼고 노즐을 잡는다. 세 번째, 호스와 연결된 밸브를 연다. 네 번째, 물이 나오면 불을 향해 쏜다. 아주 작은 불은 소화기로 끌 수 있지만 불이 조금 크다면 소화전을 사용해서 끄면 효과적이다. 양산소방서는 올해 시민 1만여명을 대상으로 ‘소소심’ 홍보와 교육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며, 홍보와 교육을 통해 재난으로부터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만 있다면 우리 소방은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미국에 ‘유로 마드리아’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의학과를 다니며 미인대회까지 나갈 정도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인기 있는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남자는 호텔 옆 구석진 조그만 사무실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가진 것도 없고 대학도 아직 졸업 못 하고 몸도 바짝 마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프러포즈를 받고 “도대체 당신 같은 남자가 나를 어떻게 보고 프러포즈하느냐?”며 화를 냈다. 거절당한 이 남자는 40세가 되기 전에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됐다. 그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였다. 반면에 빌 게이츠의 부인이 될 뻔했던 그 여자는 어느 요트업자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에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세계 최고 부자의 아내가 될 수 있었지만,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 1위에 항상 오르는 여성으로 지구촌 곳곳에 다니면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선재단을 운영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며 이는 결단의 순간이 항상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결심은 때론 사소하게 시작했지만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수도 있고 개인적인 삶은 물론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인생이 우연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이끌어온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우리 앞에는 여러 가지 다른 길들이 놓여 있고, 우리는 그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선택의 몫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것이다. 에릭 프롬은 그의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결심과 선택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두려워 선택의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현대인의 비겁함을 질타했다. 선택의 역사가 미래와 변화를 이끌어낸다. 무엇을,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변화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변화를 바라는 자는 선택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도 변화해야 할 것이다. 책임감 있는 선택이 그래서 필요하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장밋빛 공약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뜬구름 같은 논리로 표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어떤 정책을 결정하고 선택하는지는 정당의 자유이며 권리다. 그런데 그 결과에 수반된 무거운 책임감을 절감하면서 하는 말인지를 묻고 싶다. 유권자 역시 선택의 권리를 즐기기보다 결과의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선택과 결심의 자유는 멋진 것이다. 그러나 책임은 그보다 수백, 수천 배 더 무거운 것이다. 우리가 오늘 하는 선택으로 우리의 내일이 결정된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현재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내일의 책임은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후보자 명함에서 할 수 있는 것 QR코드에 후보자 홈페이지를 링크해 선거공약 등 선거운동 내용을 볼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며 정당ㆍ후보자 선거대책기구에 상근하는 사람이 자신의 명함에 정당 로고, 정당 명칭, 선거대책기구에서 직위를 게재해 의례적인 방법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후보자 명함에서 할 수 없는 것 선거사무장ㆍ선거연락소장ㆍ선거사무원이 단독으로 선거구민에게 후보자 선거운동용 명함을 배부할 수 없다. 다만, 선거사무장ㆍ선거연락소장ㆍ선거사무원이 후보자와 함께 다니거나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사람 중에서 지정된 1명이 되는 경우 선거운동용 명함을 배부할 수 있다. 또 선거구 내 아파트 계단에 후보자의 성명이 표시된 명함을 살포해서는 안 된다.(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12. 8. 9. 선고 2012고합245) 선거 벽보에서 할 수 있는 것 후보자 학력이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경우 선거 벽보나 선거공보에 ‘방송통신대학교 재학 중’이라고 기재할 수 있다. 대학교를 졸업한 자가 선거 벽보에 학력을 기재하지 않거나 대학교 학력은 기재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학력만을 기재할 수도 있다. 선거 벽보ㆍ선거 공보에 명예졸업 사실을 수학기간과 함께 쓸 수 있으며 학교 이름이 바뀐 경우 졸업 또는 수료 당시 학교명을 표기하고 현재 학교명을 괄호 안에 함께 적을 수 있다. 선거 벽보 등 경력란에 명예박사, 명예교수, 객원교수 등을 게재할 수 있고 당선무효판결 이전 의원직 보유기간을 경력으로 기재해도 된다. 선거 벽보에 게재하는 후보자 사진 배경으로 새가 비상하는 사진을 쓸 수 있으며 선거 벽보에 자신에게 기표한 투표용지 모형을 게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선거 벽보에 기타 홍보에 필요한 사항으로 후보자 뒷모습이나 기호를 표시하는 손가락 사진을 게재할 수 있으며 선거 벽보에 후보자 본인만 찍힌 다른 사진 2장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거 벽보에서 할 수 없는 것 선거 벽보에 후보자가 어린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할 수 없으며 군중이 운집한 배경사진을 쓸 수 없다. 또 정규학교를 수학한 이력이 있음에도 학력 또는 경력에 ‘독학’으로 게재해서는 안 된다.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선거 벽보에 경력으로 게재할 수 없다. 그러나 외국에서 취득한 변호사 자격을 사실 그대로 게재하는 것은 가능하다. 또 선거 벽보 학력란에 폐교된 학교의 학적부를 관리하는 학교명을 학력으로 게재해서는 안 된다.(대법원 199 7. 6. 13. 선고 97도652) 선거 공보에서 할 수 있는 것 선관위가 공고한 후보자의 병역사항, 재산세, 소득세 납부실적, 전과기록을 선거공보에 사실대로 비교해 올릴 수 있다. 무소속후보자가 자신의 선거공보에 과거 정당활동 경력과 함께 활동했던 동료와의 활동사진, 악수하는 사진 등도 사용할 수 있다. 선거공보에 다른 사람의 사진을 게재할 수 있으며 점자가 혼용된 선거공보를 제작해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선거 공보에서 할 수 없는 것 공보에 다른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 사진과 선전에 이르는 문구를 게재할 수 없다. 선거공보에 유사학력인 ‘○○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창회 부회장’이라 쓸 수 없으며(부산지방법원 2000. 9. 22. 선고 2000고합544) 선거공보를 가정집 우편함에 투입하거나 선거구민에게 임의로 배부해서는 안 된다.(서울고등법원 1995. 12. 29. 선고 95노2832)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동사무소에 기탁한 사실이 없음에도 선거공보에 ‘매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동사무소에 기탁했다’는 허위사실을 게재할 수 없으며(대법원 1999. 2. 24. 선고 98도4388) 후보자정보공개자료란에 배우자의 체납내용을 사실과 다르게 기재해서는 안 된다.(부산지방법원동부지원 2006. 8. 4. 선고 2006고합72) 후보자정보공개자료의 전과기록란에 일부 죄명과 그 형, 확정일자를 기재하지 않거나 형은 기재했으나 죄명과 확정일자를 기재하지 않은 행위는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은 예가 있다.(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2006. 9. 21. 선고 2006고합36) 선거 공약서에서 할 수 있는 것 후보자가 이메일을 이용해 선거운동정보를 발송하면서 선거공약서를 함께 발송하는 것과 선거공약서를 게재한 면에 공약추진 계획 등을 설명하기 위해 관련 사진을 부수적으로 올릴 수 있다. 선거 공약서에서 할 수 없는 것 선거공약서에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에 관한 내용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
지금 쓰는 이 글을 독자가 읽을 때면 아마 지방선거 투표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이미 개표 결과를 받아들고 희비가 엇갈리는 시간이기도 하겠다. 우리 선거시스템은 최근 획기적으로 발전해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신속하고 정확한 투ㆍ개표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자개표가 본격화된 후 당선자 결정까지 시간이 크게 단축됐고, 올해는 사전투표제까지 시행돼 유권자 투표 참여 기회를 늘이고 있다. 투ㆍ개표에 며칠씩 소요되고 심지어는 한 달 이상 걸리는 나라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생소하기만 하다. 공식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자치 여섯 번째 출범을 상징하고 있다. 지방자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뒤 처음으로 제정한 제헌헌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 1948년 7월 17일 제정한 최초 헌법에 의해 지방자치법이 만들어진 것은 1949년 7월이었다. 당시에는 서울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시ㆍ읍ㆍ면장은 지방의회에서 간접선거로 뽑도록 했다. 주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것은 특별시와 도의원, 시ㆍ읍ㆍ면의회 의원이었다. 최초로 지방선거를 시행한 것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이었다. 이후 1956년, 1960년 두 차례 지방선거를 치른 다음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지방의회가 해산하면서 30년 이상 중앙집권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이 공포됐는데 거기에는 대통령직선제와 함께 지방자치제 부활이 포함됐다. 1990년 12월 15일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1991년 3월 시군구의회 의원선거가 맨 먼저 시행됐고, 6월에는 도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계속 연기되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6월 27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마침내 부활했다. 1991년 시행된 양산군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양산읍 지부용, 상북면 안종길, 물금면 장성진, 웅상면 김진만 등 14명의 군의원이 선출됐다. 도의원 선거에서는 최순장, 박봉수 씨가 각각 선출됐다.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도ㆍ시의원 등 4대 선거를 동시에 실시했다. 하지만 이때 기초의회 의원에 대해서는 정당 공천을 하지 않았다. 제1회 지방선거에서 시장에는 무소속 손유섭 후보가 당시 민자당 안종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나중에 시장에 오른 오근섭 씨를 비롯해 웅상 이부건, 동면 김종대, 원동면 하영철 씨 등 14명이 당선돼 군의회를 구성했다. 1996년 양산은 시로 승격됐고 최초 민선 시장을 뽑는 선거는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치러진 1998년 선거에서 치열한 각축을 벌인 끝에 무소속 안종길 후보가 26.5% 득표로 시장에 당선됐다. 2위는 25.4%를 획득한 오근섭, 23.6%의 주철주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18.4%를 얻은 손유섭 후보가 뒤를 이었다. 2002년 선거에서도 안종길 당시 시장이 47%의 득표로 오근섭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2004년 안종길 시장의 자격상실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절치부심하던 오근섭 씨가 당선돼 시장직에 올랐다. 오 시장은 2년 뒤 제4회 지방선거에서 우여곡절 끝에 재선했지만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돼 떠났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시장 후보 공천 번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이목을 끌었다. 조문관 후보가 공천자로 확정됐다가 나동연 후보의 이의신청으로 새로 여론조사가 실시돼 공천자가 나 후보로 바뀌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조문관 씨는 올해에도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하며 나동연 시장과 재대결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거꾸로 조 후보가 당 여론조사가 조작됐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 후보는 2010년 선거에서 맞붙은 김일권 전 시의회 의장과 여ㆍ야 당의 간판을 걸고 다시 대결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는 1995년 다시 시행된 이후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며 진화하고 있다.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제도 시비, 지자체 단체장의 토착비리 만연, 지방의회 의원 유급화와 폐지 논란 등 선거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20년이 채 안된 지방자치,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향한 길은 멀기만 하다. 하지만 풀뿌리민주주의의 길로서 반드시 바로잡아가야 할 목표인 것 만큼은 틀림없다. 오는 4일 새로 뽑힐 인물의 참신한 의지를 기대해 본다.
올해로 고교 평준화 도입 40년을 맞았다. 고교 평준화라고 하면 해묵은 이야기 같아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산도 고교 평준화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구가 30만에 이르고 그에 따른 학교도 많이 생긴 시점에서 교육의 미래를 위해 생각해볼 문제 중 하나가 고교 입시제도라면 고교 평준화에 대한 논의를 해보는 것은 적절하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고교 평준화에 대한 논의는 제도에 대한 탐구가 전제돼야 한다. 그동안 교육 관련 제도나 정책을 실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너무 성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통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충분히 깊이 있는 이해가 이뤄진 상황에서 정책 실현을 노력해야 하는데, 교육의 당위성만을 주장해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으로 현장에 바로 적용해 정책이 뿌리내리기 어렵게 만드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또 정책의 본질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나 논의를 생략한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해 주체가 돼야 할 구성원이 오히려 방관자로 전락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자신이 선 자리에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판단해 모두를 위한 방향을 상실한 채 찬성과 반대만을 위한 갈등과 다툼으로만 비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고교 평준화에 대한 논의도 제도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깊이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산지역 고교 평준화 탐구는 지금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적기라는 여러 가지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해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중학교에서는 첩보작전을 하듯이 어떤 고등학교가 입학 정원이 모자랄지 파악해 원서를 내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는 입학 정원 미달이 되지 않게 하려고 또는 성적이 좋은 학생을 끌어오기 위해 학교 설명회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나 학부모, 학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고교 서열화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대단하다. 새로 생긴 학교일수록 서열 제일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성적이 양극화된 학생들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학교 안 교육 상황은 손을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악화돼 있다. 학생들은 서열이 제일 낮은 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로 패배감에 젖게 되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학교 밖 시선도 곱지 않다. 동료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절대다수가 부정적 영향을 받아 학교는 매일 홍역을 앓는다. 문제의 원인이 학교에만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학교를 바라보는 지역사회 시선도 문제가 있다. 고교 서열화로 인한 낙인효과가 그대로 나타나 학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양산지역 신설학교에만 세 번째 근무하면서 느끼는 고교 서열화의 병폐는 심각했다. 교육 문제를 개인 문제로만 한정해서 보지 않고, 교육에서 희망을 찾기를 바라고, 교복이 달라 학생이 차별받지 않고, 성적으로만 사람을 평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고교 평준화에 대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
손은 14개 손가락뼈와 5개 손바닥뼈, 그리고 8개 손목뼈 등 무려 27개 뼈로 구성돼 있다. 전체 206개인 사람 뼈 가운데 25% 이상이 양손에 몰려 있는 셈이다. 양손에는 뼈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수많은 힘줄과 인대가 있다. 그런데 이 힘줄과 인대를 과다하게 사용하면 염증이 생기고 부으면서 다양한 질환에 노출된다. 대표적 증상이 손목터널증후군이다. 손끝으로 가는 신경이 손목에서 눌려 저림이나 마비 증상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손목에는 약 3㎝ 길이의 수근관이라는 터널이 있다. 그 속에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인대와 손가락이나 손바닥 감각을 담당하는 정중신경이 지나간다. 그런데 이 터널이 나이가 들거나 휴대전화나 컴퓨터 키보드 사용처럼 손목을 반복해서 많이 쓰게 되면 인대가 두꺼워지고 수근관이 좁아져 정중신경을 압박해 손이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또 오랜 세월 가사를 해온 가정주부나 바이올린 연주가, 이발사, 미용사, 운전사, 화가, 조각가 등 손목을 많이 사용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 심한 경우 글씨를 쓰거나 전화 받기, 수저질, 단추 잠그기 등 섬세한 동작을 하기 어려워져 기본적인 일상생활까지 지장 받게 되고, 손가락이 영구 마비될 수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손목을 보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손목이 구부려진 상태로 장시간 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특히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손목과 키보드 높이를 비슷하게 맞춰 손목에 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손목을 자주 쉬게 하고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며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손 저림 증상을 내버려둘 경우 신경막 조직이 변성돼 손가락 감각이 무뎌지기 쉽다.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도 손목 보호대를 1~2주 정도 착용하거나 소염제를 복용해도 도움이 된다.
스무 살 베트남댁 돌떡 챙겨 나선다 대문마다 무지개를 하나씩 배달하고 깊은 눈 깜빡거리며 연신 고개 숙인다 거목도 처음에는 어리고 약했다고 친정엄마 검은 손이 쥐어 주신 호이센 아리랑 언덕에 폈다 뿌리 곧게 내린다 아린 손 여린 가슴 입 가득 젖 물린다 울멍줄멍 언덕에도 내비치는 햇살 있어 들은 귀 옹차게 열고 무지개를 걸고 있다 *호이센 : 베트남 국화인 연꽃을 이르는 말, 베트남 여자 이름에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