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사무소 소재지인 내송마을을 찾았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노인회관 옆, 작은 구멍가게에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들러본다.
"자풀이를 하는 중인기라."
'자풀이?' 알고 봤더니 동석한 한 노인 분에게 이름 대신에 자(字)를 지어주고 그 뜻풀이를 하고 있는 중이란다.
'아하, 알겠다' 예전에는 이름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았던 관습이 있어 흔히 장가든 뒤에 본이름 대신으로 자(字)를 지어 불렀다 했지. 이를테면 공자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中尼)라 했던 것처럼…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이 영감의 이름이 김일붕인데 어른도 '일붕이' 아이도 '일붕이'하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오늘 이 영감의 자를 지었는 기라. 어질 양(良)에 소나무 송(松)자, '良松'이라고 지었지" 동면노인회 회장인 이복우(77세) 옹이 귀띔해 준다.
친구들로부터 '良松'이라는 자를 받은 김일붕어른은 태생이 옛 언양읍의 상북면 양덕마을인데 고향마을 양덕의 '양'자와 지금 살고 있는 내송의 '송'자를 따 '양송'이라 지었다 한다.
"인자 서로 '하게'하는 사이에는 그냥 '이보게, 양송'하고 부르면 되고 마을 젊은이들은 '양송 어른'이라고 부르면 되는 기라."
동면노인회 이 회장, 내송마을 노인회장 황보 익(77세) 옹, 총무 김재환(66세) 옹 등, 마을 어르신 예닐곱 분이 한데 어울려 소주잔 기울이며 예스런 멋을 즐기는 품새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르신들이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가며 마을의 유래와 유적들을 소개해 준다
■위치와 환경
내송은 동면의 중심부에 위치한 면소재지 마을로 금정산과 가모산의 정기를 받은 곳일 뿐 아니라 맑은 물과 청정한 공기가 머무는 자연이 살아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가모산에서 흘러내리는 산지골은 옛날부터 폭포와 골짜기 등으로 경치가 빼어나 선비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였다 한다. 지금도 그 당시 선비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를 읊으며 세상을 이야기 했던 '오수정(午睡亭)'이라는 정자의 흔적이 그대로 있다. 이 마을은 예부터 미곡생산(벼농사)을 주 산업으로 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앙골'이라는 곳에 '동사창(東社倉)'이라는 창고를 지어 미곡 등 곡식을 보관하기도 했다 한다. 최근에는 당근, 채소 등이 이 마을의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다. 일부 농가는 축산, 낙농업 또는 밤, 배나무 단지 조성으로 생겨나는 과일 출하 등으로 고소득을 많이 올리고 있다. 일부 주거지를 제외한 전지역이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여있다.
■마을의 유래, 변천 및 성촌
내송마을은 예로부터 마을 주변 곳곳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고 놀기 좋은 정자가 군데군데 있어 '송정(松亭)골'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골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송(內松)'이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성촌시기는 1500년대로 알려지고 있다. 약 450년 전 평해 黃씨, 인동 張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했고, 그 후 경주 李씨, 김해 金씨, 순흥 安씨, 함안 趙씨, 달성 徐씨 등이 입촌해 살아왔으며 지금은 많은 성씨가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
◁정전봉(停戰峯)
이 마을에서 '정전방우' 또는 '전지뱅이'로 불려지고 있는 '정전봉'은 임란 때 왜군들이 동래포를 통해 쳐들어 올 때, 들판에서 일을 하던 황장사가 농우(農牛)를 버린 채, 쟁기를 메고 지금의 양산시 경계선 암벽 뒤에 숨어 왜군이 돌아 나오는 쪽쪽 20m 아래 송정천(松亭川)에 던져 버렸다 함. 그때, 혼비백산한 왜장이 군사들에게 '앞으로 진군하되 지명이 송정곡(松亭谷)이라 하거든 무조건 멀리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내송 서북쪽 길가에 있었는데 길을 넓히면서 다 깨트려져 지금은 그 모습을 찾을 길 없다.
◁헐왕대(歇王臺)
가야국의 왕이 거동하다가 잠시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歇자는 쉴 헐자. 마을에서 서쪽 500m 지점의 들판에 있는 바위.
◁동사창(東社倉)
세금으로 받은 쌀을 보관하던 창고로 흔히 東倉으로 불리는 양산 곡창(穀倉)의 하나. 마을 '앙끌'에 있었다고 한다.
◁정진암(停陣岩)
마을에서 서쪽으로 1㎞ 떨어진 지점, 현재의 다방동과 경계하는 곳으로 임란 때 명나라 장수인 마귀(麻貴)가 이곳에서 왜군과 싸워 이김으로써 왜군의 진격이 멈췄다고 한다.
◁오수정(午睡亭)
마을에서 동쪽 계곡을 따라 약 1㎞올라가면 넓은 반석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위쪽 200m지점에 폭포가 있는 산수가 수려한 곳을 산자골이라 한다. 여기에 선조들이 정자를 지어 쉬면서 산수를 즐겼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정자를 午睡亭이라 부른다. 그 당시 바위에 새긴 午睡亭이란 글자가 아직도 남아있다.
◁양지재(養之齋)
경주 李씨들의 재실로 1993년 3월에 준공, 선조의 유덕을 받들고 후손에게 숭조정신(崇祖精神)을 심어주기 위한 도장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해마다 가을철에 시제를 올리고 있음.
◁영모재(永慕齋)
경주 金씨 48대손 김재복(金在福ㆍ종이품))공을 모신 재실. 매년 제향을 올린다.
◁양유하 공 불망비(梁有夏 公 不忘碑)
1731~1732년(영조 7~8년)에 큰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으나 조정의 예산부족으로 진휼청(賑恤廳ㆍ흉년이 들었을 때에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관아)에서 구제가 어려워지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면서 각처에 도적이 성행하였다. 이때 특히 양산과 동래가 타 지방에 비해 그 피해가 다섯 배나 많아 어려움에 처하자 양유하 공이 가산을 털어 양곡을 싣고 와 기아민을 구제하고 중(僧)들을 불러 모아 굶어 죽은 자의 시신을 묻어주고 혼백을 불러 제사를 지내 주었다. 공의 이러한 은혜를 길이 새겨 전하고자 1735년(영조 11년) 겨울에 양산과 동래에서 불망비를 세웠다.
동면이 언제 양산에 편제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면ㆍ리제가 정착되어 가던 조선 고종(高宗) 34년(1897년) 무렵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동면은 국도 7호선(부산-울산)과 부산시 상수도보호구역으로 흐르는 영천천(靈川川)을 기준으로 동쪽은 부산시 기장군 정관면, 철마면, 금정구 두구동과 이웃하며 북쪽으로는 국도 7호선이 중앙을 통과하는 웅상읍을 만나고 있다.
남쪽은 산세가 수려한 금정산을 사이에 두고 부산의 동래, 노포, 금곡동 등과 접해 있으며 서쪽은 신불산에서 낙동강 쪽으로 흐르는 농ㆍ공업용수의 원천이자 양산의 젖줄인 양산천을 경계로 물금읍과 허리를 맞대고 있다.
특히 동면은 최근 들어 신도시개발과 지하철(호포기지창)개통, 경부 및 구포~양산간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인 남양산 톨게이트 개통, 35호국도 확장 등으로 동ㆍ서교통의 요충지가 되었으며 산업경제의 축을 이루는 물금읍 증산 앞의 양산내륙컨테이너기지 등의 물류단지와 맞닿아있다.
동면의 동서거리는 11.5㎞, 남북거리는 12.5㎞이고 총면적은 56.47㎢로 대부분 산야지대와 구릉지로 형성돼 있다. '가산리' '개곡리' '금산리' '내송리' '법기리' '사송리' '석산리' '여락리' 등의 8개 법정리에 16개의 행정리, 30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따라서 쌀ㆍ보리 류 등 주곡작물의 생산은 적은 편이나 사료작물 재배, 젖소사육, 양봉 등이 성한데 특히 법기리 창기마을의 '창기미나리꽝'에서 출하되는 미나리가 서울 가락동농산물시장에서 명물로 대접받고 있어 창기주민의 큰 소득원이 되고 있다.
월하대종사의 입적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좌, 지인들을 통해 하나 둘 알려진 월하스님의 수행 일화가 사중(寺中)은 물론 일반 세인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행사실을 극구 숨겨
스님의 평소 성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 중 대표적인 것은 1992년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에 1억5천만원을 보시한 것. 당시 아무도 모르게 가명으로 나눔의 집 통장에 거액을 입금했는데 상좌들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언론에 알렸다가 오히려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는 일화는 스님의 기품을 엿보게 하는 대목.
○75세의 노구로 운전면허증 따
월하스님은 75세의 노구로 운전면허증을 직접 따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에 순례를 가 그곳 노인들이 손수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귀국한 월하스님은 귀국 직후 바로 운전학원에 등록, 첫 시험에 운전면허증을 따고는 가까운 지역에 갈 일이 있으면 손수 운전을 하고 다녔다.
○차별하지 않는 수행자의 모습 보여
스님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한번은 매우 추운 겨울날. 허름한 차림의 사람이 찾아오자 스님은 기꺼이 맞아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가 문 밖까지 배웅해 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여행사 사장이 이유를 묻자 "신도들이 있는 곳이면 내가 찾아가야하는데, 직접 산골까지 찾아와주니 어찌 배웅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대답했다. 스님은 이처럼 고위관직에 있는 사람이건, 거지 행색의 차림이건 똑같은 모습으로 대하고, 항상 문 앞까지 배웅했다. 차별하지 않는 수행자의 참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라 하겠다.
○언제나 솔선수범 했던 스님
스님은 '언제라도 할 일이라면 지금 하라' '지금 할 일이면 더 잘하라' '누가 할 일이면 내가 하라'는 신념으로 항상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였다. 출타 했다가 돌아오면 언제든지 풀을 메는 도구를 가지고 도량 구석구석을 손수 풀을 멨다. 봄이면 통도사 논에 가 손수 모심기를 하기도 했다고.
○사중의 물품을 몸처럼 아꼈던 스님
어느 날 소임자가 사중의 어떤 물건을 내어갈 일이 있었는데 스님은 "절집에는 물건이 들어와도 나가는 일은 없다"고 하면서 "시주물을 독 묻은 화살촉처럼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한다.
○권력자를 꾸짖었던 스님
스님이 종회의원을 하던 당시 전국 신도회장이던 이후락 씨가 "신도회장도 종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하자 "종회에 들어오려면 머리 깎고 들어오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아직도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위해 전 사재를 털어
통도사엔 일찍이 3만여 점의 국보급 보물이 있어 항상 보관에 신경을 쓰곤 했다. 그래서 월하스님의 원력으로 성보박물관 공사를 시작했는데, 평생 법문비와 거마비로 모았던 33억여 원을 아낌없이 박물관 짓는데 내 놓았다. 한 푼 두 푼 저금하던 스님이 은행에 가 그 돈을 찾아가자 놀란 직원이 "왜 저희 은행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월하스님이 "쓸 때가 있어 그래요" 했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직원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다.
통도사측은 11일 월하스님의 사리 수습장면 일부를 공개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된 사리수습에는 0.3~1cm크기의 사리 40~50과를 수습, 크기에 따라 3개의 그릇에 담아 정병전에 옮겨놓았다.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은 "첫 사리는 11일 새벽 5시께 첫 발견됐다"면서"당초 부처님의 진시사리를 모시고 있기때문에 사리비공개를 관례로 하고 있지만 문중회의를 거쳐 습골장면만 공개키로 했다"고 밝혔다.
통도사측은 "월하스님의 사리공개는 차후 문중의 회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노천 월하 대종사(老天 月下 大宗師)는 1915年 4月 25日 충남 부여군 군수리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老天은 법호(法號)이고 법명(法名)이 月下다. 속명(俗名)은 희중(喜重). 어릴 때부터 지혜와 자비가 몸에 익기 시작하여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로서의 자질을 보이다가 마침내 1933년 7월 20일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하여 차성환 화상을 계사로 첫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운수의 삶을 시작하였다.
어릴 적 고향 부여 집 근처의 고란사란 절에서 스님들을 보면서 스님들의 생활이 퍽 고상해 보이는데다가 '아무나 이런데 와서 사는 것도 아니고 어째서 이런데 와서 사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18살에 '나도 절에 가서 절 생활을 해봐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 출가의 계기였다고 한다. 이 때 속가 부모님이 올라와 세 번이나 끌려가는 경험을 했지만 끝내 출가의 결심을 막지는 못했다.
1940년 통도사에서 비구계(比丘戒)를 받고 당대의 고승 구하대선사(九河大禪師)를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되었다.
대종사의 수행방법은 일정한 교리 연구를 다 마치고 전적으로 선(禪) 수행에 들어가는 것을 이르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절차를 밟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대승의 깊고 묘한 교리를 듣고 단번에 깨닫는 것을 일컫는 돈오(頓悟)의 경지에 이르렀다.
대종사는 1940년 오대산 방한암선사 회중에서 몇 차례의 안거를 성만(盛滿)한 후 1944년 철원 심원사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하였다.
스님은 58년부터 80년까지 통도사 금강계단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으로 승니(僧尼ㆍ비구와 비구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를 배출해내며 종단의 종장(宗匠)을 키워내는데 힘을 보태 60여명의 수법제자와 손상좌 등 2백여 명의 스님을 길러내 승가교육의 거목으로, 통도사의 산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스님은 이밖에도 중앙종회의원(55년), 통도사 주지(56년), 중앙종회의장(60년), 동국대학교 이사장(75년)을 역임했고 조계종 원로의원(78년) 및 총무원장(79년), 종정(94년) 등 종단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며 조계종단의 정통성과 법통계승에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다.
84년 영축총림으로 지정된 통도사의 초대 방장으로 추대되면서 불교종찰의 수장이 되었으며 1994년 종단개혁 때 개혁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2001년 영축총림 방장으로 재추대되어 입적하는 그날까지 단 한번도 구도자의 길에서 어긋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어려운 현안이 있을 때마다 이사원융(理事圓融)으로 앞장서서 해결했다. 1954년 효봉, 청담, 인곡, 경산스님 등과 함께 '사찰정화수습대책위원회'에 참가해 전국사찰이 구도도장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불교정화운동을 전개하여 오늘의 조계종단이 자리 잡는데 산파역할을 했다. 이후 스님은 종단이 어려울 때마다 법등(法燈)의 역할을 자임했고 혜등(慧燈)의 맥을 잇는데 기여했다. 특히 종정(宗正) 당시인 98년 월주스님의 총무원장 3선반대 등 일명 '조계종 사태'로 조계종 종정과 영축총림 방장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스님은 당시 '종도들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98년 종단사태의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는 뜻을 표명, 남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의 잘못으로 돌렸다. 이런 일이 있고 난후에 2001년 영축총림 방장으로 재추대되기도 했다.
대종사는 80이 넘은 노구에도 손수 자신의 방청소와 빨래를 하며 새벽 3시 반 예불참여는 물론, 대중과 더불어 공양을 하였고 경내청소 등 운력(運力)에도 빠지지 않는 자오자증(自悟自證)하는 모범을 보였다. 또 항상 근엄하였으나 쓸모없는 권위를 버리고 노유와 어울리는 친화력을 가진 분이 바로 스님이었다. 오늘날 불지종가(佛之宗家)인 통도사의 가풍은 구하, 경봉, 벽안스님에 의해 이어져 다시 월하스님이 이를 전수받아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종사의 얼굴에는 번뇌의 어둠이 숨어있지 않았다. 늘 시골 할아버지 같은 지극한 자비심을 띄고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일게 했다.
통도사가 오늘날의 당우를 건립하여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것도 선사의 도움 덕분이 컸다 아니할 수 없다.
대종사는 2003년, 불기 2547년 12월 4일 09시 15분 영축총림 정변전에서 입적, 머나먼 연화세계로 떠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一物脫根塵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頭頭顯法身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莫論去與住
가고 머묾을 논하지 말라
處處盡吾家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자료제공 - 통도사 -
정리 - 전영준 기
제2회 양산시건축문화대상에 웅상읍보건지소 청사가 선정됐다.
양산시는 12월 9일 건축위원회를 열어 제2회 양산시건축문화대상 응모작에 대해 심사한 결과, 이같이 결정하고 우수상에는 물금역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장려상에는 어곡동 이상운씨의 단독주택이 뽑혔다.
양산시건축문화대상은 시가 아름다운 도시경관 조성에 기여하고 창의적인 건축계획과 견실시공이 돋보이는 우수 건축물을 발굴함으로써 아름답고 질 높은 건축물 건립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한 것. 입상되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자와 건축주에 대해 시상한다.
이번 대회 대상작인 웅상읍보건지소청사(건축주 양산시장)는 웅상읍 삼호리 764번지에 지어진 지상 2층 건축물로 솔건축사사무소 추영욱씨가 설계하고 호전종합건설 유주열씨가 시공했다. 또 우수상인 물금역사(건축주 철도청)는 종합건축사사무소 예진의 김보택씨가 설계하고 서광의 손천수씨가 시공했으며, 장려상인 이상운씨 주택은 해조건축사사무소 서귀자씨와 해조인테리어 서순자씨가 각각 설계와 시공을 맡았다. 이번 대회에는 주거용 3작품과 비주거용 10작품 등 모두 13개 작품이 출품됐다.
대상작 설계자와 시공자에게는 각각 상패와 함께 상금 3백만원과 1백만원이 지급되며, 우수상 설계자와 시공자에게는 상금 2백만원과 70만원씩이 상패와 함께 주어진다. 장려상 설계자와 시공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백만원·50만원씩이 시상된다. 또 건축주에게는 시상내용 표식동판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12월 31일 시 종무식 때 열린다.
(기사 제공 : 양산시 건축과)
지난 1일의 1차 투표에 이어 3일의 결선투표로 치러진 경남도교육감 선거와 관련, 창원지검 공안부(김종로 부장검사, 권구배 검사)가 당선자 고영진(56.진주중앙고 교장)씨를 지방교육자치에관한법률위반(사전선거운동)혐의로 불구속 기소, 정식 재판에 회부하자 재판결과와 교육감 재선거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 내용에 따르면 고 당선자는 8월 19일 함안군 군북면의 한 식당에서 함께 기소된 성 아무개(45ㆍ함안군 법수면)씨의 부인 전 아무개 씨가 불러 모은 함안지역 학교운영위원 5명을 소개받고 지지를 부탁한데 이어 같은 달 26일 조 아무개(43ㆍ여ㆍ창원시 팔용동)씨와 함께 창원시 봉곡동의 식당 2곳에서 창원 ㄴ여고 학교운영위원 3명 등 학부모 16명에게 각각 지지를 부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리고 같은 날 창원의 한 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이 운영하는 창원시 상남동 모 가게 개업식에 참석해 지지를 부탁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또 고 당선자 부인 이임선(진주국제대 교수)씨도 선거운동 기간인 11월 24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옆 한 횟집에서 ㅅ여고 소속 학교운영위원을 모아 놓고 남편의 지지를 호소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부인 이 교수와 ㅅ여고 동창회장인 강 아무개 씨는 당시 횟집에서 기호를 알려주면서 "1표를 10표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다가 도선관위 직원들에 의해 적발됐다. 도선관위는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창원지검에 고발조치했으며, 창원지검 진주지청에서 이 건에 대한 수사를 하고 있다. 고 당선자는 지난주 창원지검에 전격 소환돼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고 당선자는 오는 29일로 예정된 교육감 취임식 이후에도 교육감 직무수행에 일정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는 당선자 본인이 100만원 벌금형 이상, 또는 배우자가 징역형 이상의 최종 판결을 받으면 당선이 무효 처리된다. 이에 대해 양산시민인 박 아무개 씨는 "현행선거법이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향응 제공 등으로 표를 매수했다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는 마땅히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라는 의견을 내 놓았다.
양산지역 여성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인 '여성복지센터'가 10일 개관식을 가졌다.
여성들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와 취미, 문화 및 기술 습득의 공간으로 활용 예정인 여성복지센터는 앞으로 여성 능력 개발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여성복지센터는 지난 2001년 3월 부지 선정을 시작으로 12월 부지 매입 및 설계 용역에 들어가 2년여 만에 총사업비 22억원을 들여 개관을 하였다.
양현중 양산시 사회복지과장은 "양산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편안하며 친근함을 주어 온화하고 부드러움을 표현해 현대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이용에 편리하도록 설계하였으며, 장애자 및 노약자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말했다.
신희범 양산시장 권한대행은 식사를 통해서 여성들이 지역 살림을 살아야 한다며 여성의 역할이 절대 필요한 시기이니 만큼 이 장소를 중심으로 여성들의 봉사,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야 한다며 아름다운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이날 행사에는 양산시여성단체(양산시새마을부녀회, 적십자봉사회양산시지구협의회, 주부교실양산시지회, 주부클럽양산시지부, 한국부인회양산시지회, 양산시생활개선회, 재향군인여성회, 한국어린이육영회양산시지회, 양산시부녀의용소방대, 자유총연맹양산시부녀회)협의회 회원들과 지역 각계 인사 등 400여명이 참석하였다.
이날 개관식을 시작으로 여성복지센터는 여성취미활동 작품인 서예, 공예, 도자기 등을 전시하여 12일까지 3일 동안 작품전시회와 소비자정보전시회를 가졌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 "다양하고 효율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용 할 수 있고, 개개인의 기능 및 기술 습득 등 능력개발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여성들의 사회참여기회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올 마지막 추곡수매가 9일 상북 지소에서 있었다.
상북면 주민 50여명이 각자 배당된 물량들을 가지고 나와 농림부 국립농산품질관리원의 검사가 있었다.
정봉주(품질관리원)씨는 "지난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 일조량이 적고, 지난 9월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로 예년에 비해 15% 정도 감소한 작황과 품질의 상위 등급의 감소가 많다."고 말했다.
이날 참여한 김승(상북 외석)씨는 "해마다 등급도 까다로와 지고 있는데다 작황도 좋지 않다."라며 정부에서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반 판매보다는 정부의 추곡수매가가 높아 농민들은 많은 물량의 수매를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일의 결선투표로 판가름이 난 경남도 교육감선거가 사전선거운동 등의 부정시비로 얼룩져 경남도 교육계와 학부모사회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미 진흙탕 수렁이 된 정치판의 선거라면 모를까 지방 교육계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선거에서 조차 부정시비가 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재판의 결과에 따라서는 교육감선거를 다시 치러야 할지도 모르게 되었으니 경남도의 교육계나 학부모들에게는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로 남을 일이다.
따라서 축하와 덕담만이 오고가야 할 오는 29일의 취임식도 당선자나 축하객 모두에게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자리가 될 듯하다.
이에 대해 고영진 당선자는 혐의를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깔끔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나 사법기관 또한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명쾌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앞으로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사태를 미리 막는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교직을 성직이라고 부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하물며 교직자들의 수장으로서 전체 교육사회를 지휘하고 통솔해야 하는 자리임에랴…
그러함에도 이 자리를 두고 표심과의 추악한 거래를 했다면 이는 법의 심판 이전에 도덕적인 심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직까지는 혐의사실만 있고 법적 판단이 내려진 상황이 아니어서 섣부른 예단을 할 일은 아니지만, 선거운동 기간 전후를 통해 향응을 제공한 구체적 사실들이 입증된 터이라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당선자로서는 예사 망신이 아니다.
비록 사법적 판단이 당선자의 당선을 유지시켜주는 결과로 나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자리를 맡아 도 교육계를 이끌어나가기에는 이번 일이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번 선거의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당선자가 1차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지 못하고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데다, 전교조 후보가 선전한 상황이 고 당선자가 앞으로 경남교육을 이끌어 가는데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데다, 고 당선자가 지난 98년 보궐선거 이후 6년에 가까운 오랜 준비기간을 교육감선거를 위해 준비해 왔던 만큼 그 과정에서 '신세'를 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았을 것으로 보고 자칫 이 '신세'를 갚기 위한 행보를 보일까 우려하는 여론도 있는 터이라 경남교육 '고영진호'의 출항을 앞두고 이래저래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아무튼 관련 혐의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공정한 사법적 판단으로 사태의 빠른 해결을 이루어 냄으로써 경남교육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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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는 내년 역점시책으로 △행정서비스 향상과 주민참여 확대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복지사회 △활기차고 경쟁력 있는 지역경제 △지식정보 능력 배양 및 으뜸교육 육성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문화ㆍ체육 △꿈과 희망이 있는 도시기반 확충 △맑고 쾌적한 생활환경조성 등 7개 항목을 확정 발표했다. 12월 5일 개회된 제60회 시의회 제2차 정례회에서 신희범 양산시장권한대행은 2004년도 예산안 제출과 관련한 시정연설을 통해 "시정의 최고 이념은 시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시민 모두가 행복한 고장을 만드는데 시정의 역량을 모아 나가겠다"며 새해 시정운영 청사진을 제시했다.
신 시장권한대행은 이날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에는 문화관광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시립예술단 활성화, 이원수 기념사업, 박제상 유적지 정비사업 등을 본격화하고 문화와 체육 복지 등 복합기능을 갖춘 다기능 공간이 될 동경남문화복지센터 건립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또 복지부문 예산을 5% 증액한 2백1억원을 편성, 노인교통수당 및 경로연금 확대 지급 등 취약계층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생활쓰레기의 안정적인 반입과 침출수 유출에 따른 항구대책을 마련키 위해 유산쓰레기매립장 조성에 1백43억원을 투자하는 등 환경ㆍ녹지분야 사업도 확충키로 했다.
시의 2020년 장기발전방향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토지이용을 위해 현재 용역중인 양산신도시기본 및 관리계획에 대해 내년 중 주민의견 수렴을 거쳐 건설교통부의 승인을 얻을 계획이며, 부산지하철 2호선 양산선 연장사업도 조기 착수될 수 있도록 정부기관과의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내년 예산의 18%인 4백억원을 투입, 60여개소의 도시계획도로를 개설하고 도시교통정비기본 및 중기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경영 및 판로개척ㆍ정보화 지원을 위한 사이버지원센터를 구축하고 당근이나 감자 등 농산물을 이용한 건강기능식과 지역 특산미인 삽량주쌀을 이용한 전통주 개발에도 힘쓰기로 했다. 또 해외시장 개척 및 국제교류 증진을 위해 중국 등 국제도시와의 자매결연도 추진한다.
이외 상ㆍ하수도분야 및 교육ㆍ보건ㆍ재난관리 분야에 있어서도 시민의 편익증진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시책을 전개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시는 이 같은 사업의 추진을 위해 내년 예산 규모를 올해 당초예산 대비 6%를 감액한 2천8백10억원(일반회계 2천2백49억원, 특별회계 5백61억원)으로 편성, △환경녹지분야 6백31억원 △도시개발분야 3백50억원 △사회보장분야 2백1억원 △문화ㆍ관광분야 1백3억원씩을 각각 투입키로 했다.
신 시장권한대행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올해는 우리시가 도민체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시민의 자긍심과 자신감을 갖게 했으며, 부산대학교 제2캠퍼스 기공식도 열려 획기적인 지역발전을 기약하는 뜻 깊은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부산대가 양산시 물금읍에 들어설 열림캠퍼스(제2캠퍼스)부지매입 잔금마련이 어렵다며 한국토지공사에 상환기간 연장과 이자율인하 등 계약조건변경을 공식 요청해 비난을 사고 있다.
토공에 따르면 최근 부산대가 학교 재정상 오는 2005년부터 매년 68억원 가량의 부지대금을 갚는 것은 불가능해 부지조성비를 토공이 전액 부담하고 잔금 상환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토공과 부산대는 당초 계약 당시 380억원 가운데 잔금 342억원을 3년 거치 5년 분할 상환키로 계약했으나 공문에는 11년 거치 10년 분할상환으로 오는 2013년부터 10년간 20회 상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돼 있다.
이외 부지조성비 780억원에 대해서도 토공이 부산대에 직접 지원하거나 토공 부담으로 할 것과 상환 지연에 따른 이자율도 연 14.4%~18%대에서 국민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수준으로 적용해 줄 것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정부기관에 준하는 국립대학인 부산대학교가 캠퍼스이전 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하면서 재정마련 계획을 하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임 박총장이 무리하게 제2캠퍼스이전을 결정했지만 사업수행은 신임 김총장이 하게되면서 재정문제 등 여러 가지 난제들을 회피하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이같은 상환연장을 신청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양산신도시는 부산대 제2캠퍼스 이전과 맞물려 추진돼 상승효과가 있었지만 만약 부산대 이전이 백지화된다면 신도시 조성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쳐 사업자체가 3~4년 연장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이같은 부산대의 처사는 양산신도시 조성의 약점을 악용해 신임총장이 '백지화'운운하며 토공을 압박하고 있어 이는 특혜수준을 넘어 부산대 부지를 그저 삼키려는 비상식적인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부산대의 이같은 행동은 대학 시설내에 영리시설을 짓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산대가 추진중인 실버타운조성이 어렵게되자 이마저 허가 날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에대해 토공 관계자는 "국립인 부산대가 양산 신도시 조성에 부산대 열림캠퍼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악용해 이같은 파행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이미 계약한 매매계약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일단 검토는 해 보겠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입적한 영축총림 방장인 노천당 월하스님의 영결식이 10일 통도사 경내에서 5만여 명의 불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종단장으로 2시간동안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범하스님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은 조계종 전국 사찰에서 동시에 다섯 차례 타종을 하는 명종 의식과 삼귀의례, 영결법요, 월하스님의 행장소개 등으로 시작됐었다.
현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은 영결법어에서 "나고 죽음은 불멸의 법신을 이루는 근본이요, 열반은 생사를 빚어내는 바탕"이라고 추모했다.
도원 원로회의 의장의 추도사에 이어 문재인 민정수석이 대독한 노무현 대통령 조사에서는 "대종사께서 남기신 높은 법의 향기를 온 국민과 함께 기린다"며 "나라가 바르면 천심이 어질고 관리가 깨끗하면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대종사의 말을 인용하며 극락왕생을 빌었다. 각계 인사들의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이어진 이날 영결식에는 박관용 국회의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청와대 문재인 민정수석, 민주당 추미애 의원, 열린우리당 이태일 의장, 자민련 주양자 부총재, 나오연 한나라당의원, 김혁규 경남도지사등이 참석했으며 양산에서는 신희범 양산시장 권한대행과 박일배 양산시의회 의장, 최영봉 경찰서장이 참석해 추도했다.
영결식이 끝나고 월하스님의 법구를 모신 운구행렬은 스님의 법호를 적은 명정을 필두로 스님의 영정과 위패, 700여기의 만장 등 정변전에서 다비장까지 이르는 4km구간에 1만여 명의 스님과 신도들의 행렬이 이어져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다비식장에 도착한 법구는 1만여 명의 스님과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전, 법장스님 김혁규 경남도지사, 신희범 양산시장 권한대행, 월하 스님의 친족 등이 연화대에 불을 붙였다. 연화대에 불이 붙는 순간 다비장에 운집한 1만여 명의 신도들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월하스님의 극락왕생을 빌었으며 일부 신도들은 오열하기도 했다.
한편 입적하신 월하스님과 각별한 관계였던 석주스님(칠보사 조실)이 이번 장례식에서 호상소임을 맡아 우리나라 최고령(95) 호상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해졌다.
다비식은 11일 오전 습골 등의 절차를 거쳐 사리수습을 끝으로 마무리되었으며 통도사 측에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관계로 월하스님의 사리는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관련기사 3면)
세계평화초종교초국가연합 양산시위원회(위원장:김흥득)는 지난달 27일 대한노인회 양산지회 2층 대회의실에서 관내 기관단체장과 각계 지도자,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화유엔창설 양산시 보고대회`를 개최했다.
김흥득 위원장은 강연을 통해 "인류는 오랜 역사동안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평화이상세계를 갈망해 왔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각종 분쟁으로 인해 더 큰 불안과 절망 속에 휩싸여 있다"고 전제하고 "특히 인류평화를 주도해 나가야할 UN의 역할과 사명은 각종 국제분쟁 앞에 속수무책으로 이미 그 한계점에 도달했다"면서 "이러한 UN의 새로운 갱신과 변혁을 통한 항구적인 인류평화를 실현하고자 지난 10월 3일 미국 뉴욕에서 문선명 총재의 주창 하에 이와 같은 평화유엔(초종교초국가)을 창설하게 되었다는 대회취지를 설명했다.
조해일이란 작가를 접하게 된 것은 `75년 소설 `겨울여자`를 대하고부터 이다.
이후 독서신문을 통해 `아메리카`라는 소설이 대학생 권장도서목록에 올라 있어 책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하게 되어 여느 다른 작가의 책보다 애정을 갖게 되었다.
`아메리카`는 서울에서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에 갔다 와서 제대한 주인공 `나`가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생활을 하기위해 어느 미군부대 기지촌의 얄루크럽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무수한 젊은 여자의 삶을 관찰하는 얘기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도 (그들과 자신의 기본 성적욕구를 해결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그 여자들과 구별하여 파악하고 있던 그가 몇 가지 사건(기옥의 흑인병사에 의한 죽음, 기옥의 장례의식, 씀바귀회, 군표소동, 대홍수 등)을 그들과 함께 경험하면서 그 여자들과의 공동의식을 갖게되고 나아가 최소한의 생존에 대해서만은 동질성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경멸한 기지촌의 몸 파는 여인이 남이 아닌 우리 누이였으며, 나가 우리 모두의 슬픔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여인들 역시 나와 다른 생활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을 뿐 오히려 삶을 가장 치열하게 사는 생활인임을 알게 되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그 기지촌도 그 여인들 우리의 누이도 존재함에 오늘의 젊은이도 읽어 봄직한 소설이다.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圖)는 선비가 조랑말을 타고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문득 뒤돌아보는 그림이다.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길가 능수버들 가지 위에 노란 꾀꼬리 한 쌍이 앉아 있는 조그만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슴푸레 보이는 산도, 길가의 계곡도, 계곡을 따라 펼쳐진 길도, 길가의 능수버들 가지도 흘러내리고 그 길을 거슬리지 않고 내려오던 조랑말 탄 선비도 물 흐르듯 흘러 내려오다가 문득 말고삐를 당겨 세우며 뒤돌아본다. 마부도 엉거주춤 멈추어 선다.
무엇이 선비로 하여금 그 모든 흐름을 거슬러 뒤돌아보게 했을까. 가슴속으로 노랗게 부서져 내리는 꾀꼬리 선명한 노랫소리다. 꾀꼬리 소리를 이 보다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까.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 울음 울어 / 때로 울음 울어 /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을 들이고 /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 지리산하(下) /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 한 울음을 토해 내면 /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 알았다 // 지리산중(中) / 저 연연(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 비로소 한 소리 없는 江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 섬진강 섬진강 / 그 힘센 물줄기가 / 하동 쪽 남해를 흘러들어 / 남해군도(南海群島)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 지리산하(下)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 이 세석(細石) 철쭉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송수권 <지리산(智異山) 뻐꾹새>전문
지리산 첩첩 계곡 메아리로 넘어가고 넘어오는 여러 마리 뻐꾹새 울음소리가 실제는 한 마리 뻐꾹새가 한 울음 토해 내어 뒷산 봉우리가 받아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넘긴 소리였다는 것을 석 석 삼년(27년, 한 생애)을 다 보내고서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뻐꾹새 울음소리는 시인의 울음소리다. 시인의 울음소리이니 시다.
그 뻐꾹새 울음소리는 세석 철쭉꽃밭을 다 태우고 산봉우리들을 울려서 섬진강으로 흐른다. 섬진강은 하동 남해로 흘러들어 남해군도 여러 작은 섬들을 밀어 올린다. 이렇게 웅장한 뻐꾹새 울음소리 들어본 적 있는가. 시를 본 적 있는가.
시조시인이자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장인 양산여중 김보안 교장을 만나러 양산여중 교장실을 찾았다.
며칠 쌀쌀하던 날씨가 제법 겨울답더니 모처럼 포근하게 풀린 12월 초순의 화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이려니 싶었는데 웬걸? 짬짬이 이어지는 결재서류에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로 얘기를 잇기가 만만찮다.
크든 작든 한 조직의 머리가 된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쉰일곱. 하마 예순 고개가 저만치 보이겠다.
본향은 경남의 고성이라지만 대학은 경기대(국어국문학과)를 나오고 졸업 후에는 곧장 양산으로 내려와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니 고향 떠난 세월이 아득하겠다.
1970년 3월 1일자로 양산여중에 부임해 평교사에서 교장에 이르기까지 한곳에서만 33년의 세월을 보낸 진득함이 놀랍다. 더불어 고성사람 김보안의 양산살이도 그만큼이나 되니 이제 양산사람이 다 되었겠다 싶다.
시조시인 김보안, 그에게 문학은 무엇일까?
"영혼 달래기!"
영혼 달래기? 뜨악해 있는데 곧 다음 말이 이어진다.
"문학을 통해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삶을 살게 되지요."
그렇구나. 문학이 삶을 되돌아보는 도구로도 쓰이는 구나.
어린 때 한 때, 누구나 문학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가지듯이 그도 그렇게 어린시절 어슴푸레 문학을 꿈꾸었었단다. 다행이 글 쓰는 남다른 총기가 있어 대학을 국문과로 택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문단으로의 등단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에나 이루게 된다. 하기야 문학에 있어 등단이라는 과정이 무슨 그리 큰 대수이랴. 다만 시를 쓰면 시인이요, 소설을 쓰면 소설가이겠거늘…
그래도 1990년. `현대시조`에 시조 `대숲`이 당선되면서 비로소 시조시인 김보완의 문학활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으로 보아 등단이라는 과정을 마냥 허투로 볼 일만은 아닌가 보다.
90년, 양산지역의 문학인구 저변확대와 향토문화를 폭넓게 수용하며 발전시키자는 취지로 의기투합한 일단의 문인들이 양산을 뜨겁게 달군다.
저마다 개인 활동을 하던 이들과 `글뫼`와 `용마름`의 동인활동을 하던 이들이 한 멍석위에 앉으면서 `글뫼`와 `용마름`을 발전적으로 해체시키고 마침내 `양산문학회`로 통합한다.
그 뒤 93년 10월에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양산지부가 창립되고 일년 뒤인 94년 10월에 양산문인들의 발표공간인 `양산문학`이 창간되는데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바로 시조시인 김보안이었던 것이다.
연간인 `양산문학`은 지난해까지 제7집을 내고 지금 한창 8집 준비에 바쁘다. 이가 빠지지 않았더라면 올해로 10호가 나와야 했겠지만 이가 빠진 만큼 아픔도 적잖았으리라.
그런데 그는 왜 하필이면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 유독 시조를 택했을까?
"압축미!" 역시 선명한 대답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이잖아요?"
그렇다 싶다. 아는 바와 같이 시조는 고려중엽에 발생하여 고려말에 그 형태가 완성된 우리 민족 고유의 시장르이며 세계에 자랑할만한 유서 깊은 우리의 유일한 전통 문학이 아닌가.
시조는 처음에 양반계층의 노래로 출발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위로는 임금에서부터 아래로는 기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이 즐겨 부른 `국민문학`이라 할 것이다.
이 시조의 `시`가 `詩`가 아니라 `時`인 것으로 보더라도 그때그때의 흥에 겨워 일상생활에서 말하듯 자연스럽게 저절로 읊어졌던 문학양식일 터이니 김보안, 이 이가 시조시인이 된 까닭도 그런 예스런 우리 정서와 무관치 않겠다.
여기서 시조시인 김보안의 시조 한 수를 감상해 보자.
- 빗물은 강이 되고 -
한바탕 춤사위에 숨소리 굵은 대지
환정한 불면의 숨 출렁이는 잔을 들며
당신이
오는 이유를
젖을수록 압니다.
구성진 가락이며 신명나는 춤이다가
올 때부터 갈 곳 알아 슬픈 이별 숨기지만
일상의 때 묻은 사연
감아내는 울음이다.
무뎌진 몸부림도 돌아보면 바쁜 나날
피멍든 거친 영혼 하심으로 풀어놓고
물고기
비늘로 우는
울음 몇 점 듣고 간다.
어느새 바깥은 어둠살이 낀다. "재개발 공수표 같은 바람이 휘날린다"고 노래한 시조시인 김보안 교장의 시조 [산번지]를 가만히 읊조려 본다.
11월 28이 하북면 청수탕 지하에서 하북 탁구 회관 개관식이 열렸다.
`생활 체육 양산시 탁구 어머니회`와 `하북 탁구 동우회`가 준비한 이날 개관식에는 100여명의 탁구 관계자들과 축하객들이 참여해 개관식을 축하했다.
"어느 학교에서 내다버린 고무판을 동우회 회원과 어머니 회원들이 깨끗이 씻어 경기장 바닥에 깔았다"며 기쁘게 이야기하는 최해림(47) 동우회 회장과 성병연(40) 어머니회 회장은 "그동안 하북 탁구인들이 우체국 이나 농협의 빈 공간을 이용하는 등 많은 불편을 겪었는데 우리 힘으로 탁구 경기장을 갖게 되어 앞으로 탁구를 사랑하는 회원들과 활력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어 기쁘다"고 개관 소감을 밝혔다.
하북 탁구회관은 지하30여 평의 규모로 어머니회와 동호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데 탁구에 관심이 있는 하북민들의 많은 참여가 기대된다.
기경훈 기자
정부의 1회용품 사용 규제 위반 사업장에 대한 신고포상금제 실시에 따라 양산시도 내년 1월부터 1회용품 사용 규제 위반 사업장 신고 포상금제를 시행한다.
1회용품 사용 규제 위반 사업장 신고 포상금제는 1회용품을 사용하거나 무상 제공하는 사업장을 신고하면 위반 내용에 따라 3만~3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위반사업장에 대해서는 3백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자판기에서 1회용 컵을 무상으로 제공하는거나 33㎡ 미만의 소규모 판매업소의 1회용 봉투 무상제공에 대해서는 과태료는 부과하지 않고 포상금 지급대상에서도 제외한다.
포상금은 지급한도를 1인 월 1백만원 이내로 한정하며, 포상금을 받을 목적으로 부정ㆍ부당하게 신고할 경우 지급이 되지 않는다. 시 관계자는 "1회용품의 무분별한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1회용품을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할 경우엔 종이나 펄프 몰드 등으로 만든 천연재질의 용기나 분해성 합성수지재질 용기로 대체해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