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한 마리가 텅 빈 나뭇가지 사이 속에 앉아 지저귀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집중한다. 날 보며 지저귀는 소리에 왠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 그 순간을 담아냈다.
갑오년 청마의 새해가 밝았다. 희망을 애기하는 청마의 해에 건강하고 활기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지난해 10월 우리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언론에 보도됐다. OECD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과 빈곤율 상승폭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8.6%(2011년 기준)로, OECD국가 노인 빈곤율 평균인 12.4%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노인층의 경제적 어려움은 OECD 34개국 중 행복지수 32위, 노인인구 자살율 1위라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10만명당 노인자살인구 72명). 현재 우리나라의 65세이상 인구는 전체인구의 12.2%(2013년)로, 베이비부머세대(1955~1963년생) 732만명이 노인세대로 합류하게 되는 2020년 이후에는, 노인 빈곤문제가 더욱 큰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제도는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제도는 18세 이상의 국민이면 소득수준에 따라 60세까지 보험료를 납부하고, 납입기간이 10년 이상일 때 매달 연금(노령연금)을 받는 제도이다. 물론 그 전이라도 장애를 입거나 사망하게 되면 역시 본인 또는 그 유족에게 연금(장애연금 또는 유족연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민연금의 짧은 역사로 인해, 시행 초 이미 가입연령을 초과하여 국민연금을 가입할 수 없었던 분들과, 가입했어도 가입기간이 짧아 충분한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분들은, 노후빈곤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노인분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7월 시행을 목표로 ‘기초연금’을 올려 지급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그간 ‘기초연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도 있었으나 65세이상 노인층 중 소득하위 70%를 지급대상으로 하는데에는 여야의 의견이 좁혀진 듯하다. 그러나 지급방법에 대해선 여야 의견대립이 아직도 첨예하다. 야당은 20만원씩 일률적으로 지급하자는 것이고, 여당은 미래세대의 조세부담 완화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이유로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떠한 방식이든 국민연금가입자가 기여한 몫에 대한 혜택에는 변함이 없다. 국고에서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약간의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기초연금액 20만원 전액을 못 받는다 해서 국민연금을 포기하는 것은 새우 잡으려다 고래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격이 될 것이다. 지금의 어르신들은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자녀를 위해 희생하다보니 정작 자신의 노후준비는 챙길 겨를이 없었던 세대이다. 이런 어르신들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라도 기초연금의 도입은 시급한 문제다. 따라서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여 여야가 불철주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며, 하루빨리 법안이 통과되어 어르신들은 물론 온 국민이 안심하고 더욱 풍요로운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Q1. 부양가족이 있어도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A1.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심신상태 등 요양 서비스 필요 정도에 따라 등급을 판정하므로 부양가족이나 경제력 등과 관계없이 65세 이상이거나 65세 미만이라도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는 신청할 수 있습니다. Q2.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경우 혜택을 받을 수 없나요? A2. 장기요양 인정신청 결과 등급 외(A, B, C형)로 판정받더라도 공단과 시ㆍ군ㆍ구 연계를 통해 노인돌봄서비스 등 지역사회의 노인관련 복지ㆍ예방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Q3. 건강보험가입자가 해외로 출ㆍ입국한 경우 공단에 신고를 해야 하나요? A3. 가입자가 1개월 이상 출국할 때는 급여정지 신고를, 귀국해서는 급여정지 해제신고를 공단에 해야 합니다. Q4. 해외에 출국하여 외국에 있는 동안 건강보험은 어떻게 처리되나요? A4. 지역가입자가 1개월 이상 해외 출국할 경우 급여정지로 보험료 산정에서 제외됩니다. 출국자는 출국 전ㆍ후에 출입국에 관한 입증서류를 공단지사에 제출해 신고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은 쉽게 늙어 감사 불감증에 걸리기 쉽다.오늘날 현대인의 질병 중에 만연해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감사 불감증이다. 감사를 모른다. 늘 불평과 원망을 하며 산다. 욕구 불만이 가득하다. 만족하지 못하는 소유욕의 노예가 돼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이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고 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라고 했다. 감사는 지금 내가 무엇을 얻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다. 앞으로 베풀어 주실 더 풍성한 은혜를 미리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감사가 임한다. 감사의 사람이라고 하면 최근 타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남아프리카의 흑인 인권 운동가인 넬슨 만델라는 백인 정부의 핍박을 받아서 44세에 징역을 받아 27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다. 젊음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살았으니 그 마음의 고통과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72세에 감옥에서 나와서 76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됐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는 날 사람들은 5년을 넘기지 못하거나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으나, 그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한 기자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5년만 감옥에 있어도 건강을 잃어버리는데 어떻게 27년 동안 감옥살이 하고도 이렇게 건강하십니까?” 그러자 만델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감옥에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늘, 땅, 물을 마시면서 심지어는 강제 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감옥 안에서 오랫동안 버티지 못했는데, 만델라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보냈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하늘을 바라보고 감사하고 혹독한 노동에도 감사하고 불평하지 않았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44년의 세월은 투사의 삶이었다면 감옥 속에서의 27년의 삶은 감사의 삶이요, 용서와 화해의 삶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인류에게 존경받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고 진정한 노벨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감사의 풍차가 돌아갈 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오고, 하늘의 축복이 임한다. 오늘의 감사는 행복의 보증수표다. 내가 지금 빈손일지라도 믿음으로 감사의 씨앗을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축복으로 채우실 것이다. 존 맥스웰은 “오늘은 어제 생각한 결과다. 내일은 우리가 오늘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키나 체중, 학력이나 집안 배경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의 크기와 내용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다. 설 명절을 맞아 다시 한 번 감사의 화두를 이어가자.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난 16일 윤영석 의원이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것은 6.4지방선거를 앞둔 지역 정가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짐작된다. 윤 의원은 지난 2012년 4월 19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의 영광을 안았지만 5개월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정치생명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2심에서 극적으로 무죄 선고를 이끌어냈고 이번 상고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윤 의원 본인에게도 명예회복의 징표로서 기쁜 소식이겠지만 지방선거를 4개월여 남긴 지역 정가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국회에서는 지방선거의 정당공천권을 둘러싸고 여야 간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애초에 대통령선거 때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도를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대선 이후 1년이 넘도록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계속되는 제도 개선 요구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여야가 정치개혁특위활동을 개시했지만 추진의지는 글쎄다. 최근 새누리당은 정당 공천 폐지의 위헌성을 거론하면서 사실상 공약을 파기하는 안을 내놓았다. 대도시 구의회의 폐지나 오픈 프라이머리, 상향식 공천 등의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에 안철수 의원까지 가세해 폐지 촉구에 나서면서 일촉즉발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당공천 폐지는 여야의 합의가 전제되는 만큼 불발탄이 될 전망이 높다. 6월 지방선거에서는 도지사와 도의원, 시장과 시의원, 그리고 교육감을 함께 뽑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사는 역시 시장선거다. 정당공천제도가 유지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선거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당과 무관하게 무소속만으로 대결을 펼친다면 상당히 많은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지명도에 앞선 기성 정치인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특히 현직 시장의 프리미엄은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역적 특성을 배경으로 한 색다른 시나리오도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9만 인구의 웅상지역에서 단일화 후보가 등장해 표몰이를 한다는 가설이 그것이다. 실제로 정당공천 폐지가 한창 거론될 당시 웅상지역에서는 새 인물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다. 반면 정당공천제가 유지될 경우 각 당의 공천결정단계에서 교통정리가 이루어져 그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지난 선거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정당공천의 후유증으로 탈당 출마하는 사례가 전혀 없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찌 됐든, 정당공천제 유지가 점쳐지는 이 시점에서 윤영석 의원의 무죄 확정 소식은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듯 하다. 국민경선이니 상향식 공천이니 하는 방법론에서부터 공천심사의 공정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하더라도 정당공천 과정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의 입김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과 시장의 역학관계는 상당히 유동적이다. 지방자치 초기 단계에서는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컸다. 고 오근섭 시장과 김양수 전 의원의 대결구도는 심각한 지역사회 분열양상까지 몰고 올 정도였다. 오 전 시장은 김양수 의원이 공천에서 자신을 배제하기 위해 서화로비사건을 촉발시켰다고 생각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에는 철저히 무시하는 행보를 거듭했다. 18대 총선에서 허범도 의원이 당선됐지만 오 시장과의 불화 속에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자리를 내놓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희태 의원만큼은 지역 출신이 아니면서도 개인적인 지명도와 중앙정치무대에서의 위상으로 유일하게 대접을 받았다. 시민으로서는 시장과 국회의원 간 불화나 갈등을 달갑게 생각할 리 없다. 똑같이 시 전역을 지역구로 당선된 인물이라 두 사람의 갈등은 곧 시민사회의 편 가르기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직까지 새누리당(과거의 한나라당 포함) 이외의 정당 후보자가 시장으로 당선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두 자리의 역할이 극명하게 다른 만큼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굳이 대립할 필요는 없다. 또 서로 우위를 내세우며 서열다툼을 할 이유도 없다. 정당공천제가 존속돼 국회의원의 기운이 상대적으로 세진다면 이런 역학관계에 있어서도 무언가 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필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장직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머지않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인 바,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지 이제 곧 가시화되지 않겠는가.
최근 중학교에 올라가는 딸을 둔 엄마 김하나(가명) 씨는 요즘 딸 때문에 고민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구부정하고 왠지 모르게 삐딱한 자세를 하던 딸이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것 같기 때문이다. 김 씨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로부터 척추가 휘어있는 ‘척추 측만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척추 측만증은 정면에서 보면 반듯하고 일자가 되어야할 척추가 C자 형태 또는, S자 형태로 틀어져있는 것을 말한다. 관련질병으로 퇴행성 척추장애, 척추병증, 노인성측추후만증 등이 있다. 이런 척추 측만증은 척추에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등과 허리 등의 통증을 유발하고 신경계통의 이상을 일으켜 특히 청소년기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높다. 증세가 심해지면 심장이나 폐 등의 내부 장기를 압박해 호흡에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자세가 틀어져있어 미관상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므로 측만증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측만증의 진단은 X선 검사를 통해 측만증의 유형과 치료 방향이 결정된다. X선 검사 결과 45도 이상일 경우 수술적인 치료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45도 미만일 경우 비수술적인 교정과 보조기, 운동치료를 병행해 치료하도록 한다. 측만증은 조금이라도 어릴 때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의 경우 성장하면서 더욱 틀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측만증은 특히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데 성장기의 여자아이(10~16세)인 경우 측만증에 대한 부모님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측만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기능성 측만과 비기능성 측만(구조성 측만)으로 나눌 수 있다. 기능성 측만은 척추자체의 문제보다는 다른 문제로 인해 척추가 휘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골반의 틀어짐이나 다리길이의 불균형, 잘못된 자세 등 척추 외적인 원인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고 결국 척추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잘못된 자세를 잡아주는 교정치료와 깔창, 운동 등으로 양호한 치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기능성 측만(구조성 측만)은 척추자체의 문제로 척추가 회전하면서 틀어지는 경우다. 대부분의 경우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특발성인 경우가 많다. 치료는 교정치료와 운동, 보조기 등을 병행하는데, 치료 목표는 측만증이 더 진행되지 않게 하는 것과 정도의 개선이다. <측만증 자가 진단> 1. 어깨 높이가 비대칭이다. 2. 허리를 굽혔을 때 한쪽 등이 더 튀어나온다. 3. 바르게 섰을 때 한쪽 갈비뼈가 더 튀어 나와있다. 4. 좌우 골반 높이가 틀리거나 다리 길이가 틀리다. 5. 자주 골반 허리 등이 아프다.
겨울철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때는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비롯해 저체온증, 동상 등 건강에 다양한 이상신호가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혹한의 날씨에 야외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근로자는 평소 건강에 무리가 생겼던 부분을 미리 체크할 필요가 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아 인지하기 어려운 고혈압은 18세 이상 성인의 수축기 혈압이 140mmHg 이상이거나 확장기 혈압이 90mmHg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겨울철에 고혈압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급격히 낮아지는 기온 때문이다. 기온이 1℃ 내려가면 혈압은 약 1.3mmHg 올라가게 된다. 결국 겨울철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게 되면 자칫 고혈압 환자에겐 좁아진 혈관이 터지거나 혈관의 벽에 손상이 생겨 동맥경화가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 규칙적으로 혈압측정을 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혈압은 수시로 변하므로 고혈압을 진단하려면 최소 2번 이상 혈압측정이 필요하며, 잠자기 전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 역시 고혈압을 예방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겨울철에는 아침 기온이 급하게 영하권으로 떨어졌을 때 아무런 준비 없이 외출하게 되면 심장질환 위험성은 매우 커진다. 심혈관질환 가운데 가장 위험한 ‘급성심근경색’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혈전’에 의해 막혀 심장세포가 죽는 병이다. 급성심근경색은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증상이 발생한 지 2시간이 지나면 심장 세포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죽기 시작하고, 결국 심장이 멈춰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10분 이상 지속되면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 급성심근경색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험요인 관리가 중요하다. 흡연,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등 교정 가능한 위험 인자들을 사전에 관리해야 한다. 또한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콜레스테롤이 많이 함유된 식단을 회피해 적절한 체중관리를 한다면 심근경색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수백 년 지난 사금파리에도 깨어져 날 세운 사연 있겠지 다시는 그릇이 될 수 없는 절망으로 잡초 속에 몸을 낮추거나 흙에 묻혀버린 전설이겠지만 신문지를 덮고 누운 지하철 노숙자의 손에도 들려 있을 법한 날이 선 사금파리는 그렇다고 더 이상 무디어질 수도 없는 불구 정말 날 세운 채 울며 뒹굴 게 아니라 스스로 울어 깨어날 수는 없는 것이냐 때깔 고운 사금파리 같은 것들.
가치론의 대표자인 R. B. 페리(Ralph Barton Perry)의 가치론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첫째는 물질적 가치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돈이 많으면 대접받고 돈이 없으면 천대를 받는다. 그리고 얼마나 소비하느냐? 가졌더라도 구두쇠라면 소용이 없다. 얼마나 돈을 쓰면서 사느냐? 이것이 사람의 가치이다. 그래서 물질로 인해서 우리 인간의 가치가 오르고 내리기도 한다. 두 번째는 신체적 가치이다. 건강하고 잘 먹고 튼튼하고 그리고 늠름하게 보일 때 가치가 있다. 세 번째는 정신적 가치, 심리적 가치이다. 얼마나 예술성이 있느냐? 아름다움을 갖췄느냐? 사람들의 마음에 얼마만큼 아름다운 마음을 줄 수 있느냐? 또 행복을 줄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이다. 네 번째 가치는 인격적 가치이다. 의미의 추구다. 그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사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지향하며 사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궁극적인 것에 대해 높은 것, 영원한 것을 지향하며 살 때에 그만큼 인생의 가치는 높아진다는 것이다. ‘캐리’라고 하는 영국의 한 재벌에게는 촉망받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조지(George)’이고 둘째 아들은 ‘윌리엄(William)’으로, 그들은 어려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란 훌륭한 청년들이었다. 그 중에 형인 조지는 영국의 명문인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정계로 뛰어들어 아버지의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가의 꿈을 이루어 나갔다. 얼마 안 있어 그는 영국 의회의 상원 의원으로서 그 명성을 영국 전역에 떨치게 됐다. 그리고 이어 그의 동생인 윌리엄 역시 형이 나온 옥스퍼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도 역시 머지않아 형처럼 유명하게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조용히 식사를 하던 윌리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족들에게 충격적인 발표를 하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 저는 이제 결정했어요. 저는 내일 인도로 떠나겠습니다. 인도에 가서 제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선교사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제발 저를 막지 말아 주십시오.” 윌리엄의 갑작스러운 이 발표에 가족들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 어쩔 줄 몰라 하던 가족들은 이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윌리엄의 아버지인 캐리는 불같이 화를 내고, 어머니는 울며불며 아들을 말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형 조지는 미친 짓이라고 일축하고는 윌리엄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결국 윌리엄은 자기의 뜻대로 인도로 향하는 배를 타고 말았다. 그리고 몇 세대가 지난 후, 영국의 백과사전에는 형인 조지 캐리에 대해 단 한 줄로 이렇게 적히게 됐다. ‘윌리엄 캐리의 형으로서 상원 의원을 지냄.’ 그러나 모든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말을 들어가며 인도로 떠났던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장장 두 페이지에 걸쳐서 선교사로서의 그의 위대한 생애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누가 더 가치 있는 삶인가?
2013년은 양산에 있어 역사적인 한해였다. 양산이라는 지명을 쓴지 600주년을 맞이했고 지난 4월 11일 시민의 오랜 염원이었던 시립박물관이 개관해 명실공히 역사문화도시로의 힘찬 발돋움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산의 역사문화에서 블랙홀처럼 남아 있던 것이 부부총 유물이었다. 부부총 유물은 단지 양산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불행한 우리나라의 과거와 아픈 역사를 그대로 짊어진 역사의 시계바늘 같은 것이다. 따라서 화려한 양산시립박물관의 개관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개관이 아닌 절반의 개관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5일, 부부총 유물이 1세기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부부총 전시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2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우수한 시설과 인력을 갖춘 박물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산의 유물은 고향에 보관되지 못하고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 등을 전전했다. 심지어 지역의 유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빛을 보지 못하고 어두운 수장고에 방치됐다. 일반적으로 지역 출토 유물이 지역에 보관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수임기관이 될 수 있다. 또한 국내외 특별전은 외부기관에서 유물을 임대해 전시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조건이 전시시설, 보관설비, 인력구성을 갖췄는가 하는 것이다. 양산시립박물관은 경남 지자체 건립 유일의 제1종 종합박물관으로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둘째는 오랜 시간 유물환수운동을 전개해 온 시민의 염원이었다. 지난 2011년 출범한 양산유물환수위원회는 그동안 여러 행사나 시민 활동을 통해 끊임없는 서명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결과 4만명의 시민이 동참해 폭발적인 관심을 이끄는 성과를 가져와 부부총 귀환 전시에 원동력이 됐으며 다른 시ㆍ군의 환수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 이 같은 관심으로 지난 10월 15일 개관 이후 올해 1월 12일까지 개최된 전시에 3만5천여명이 관람했다. 이는 하루 평균 약 500여명이 관람한 것으로 지자체 박물관 특별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황을 이뤘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성과는 불법 반출 1세기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최초로 국민들에게 선보인 점이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에 시립박물관의 개관을 계기로 역사문화도시로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빠른 시간 내 시민의 박물관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는 점과 상통한다. 이번전시는 협상부터 전시까지 지자체 박물관이 세계 5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도쿄국립박물관과 독자적 협의를 통해 이뤄낸 성과라는 점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번 전시의 반응은 언론보도를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전시개최 발표 이후 전시 마감까지 TV, 신문 등 총 80여건의 보도가 있었다. 이는 지난해 국내에서 진행된 모든 박물관 특별전 가운데 가장 많이 보도됐으며, 이를 통해 이번 전시에 맞춰진 관심의 정도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부부총 전시는 지방박물관의 전시를 뛰어넘어 전국 관심과 함께 양산이라는 도시브랜드를 알리는데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쌓은 양산시립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과의 선린 우호관계를 토대로 향후 미공개 유물에 대한 장기대여를 위한 초석을 구축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부부총 전시는 끝났다. 유물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고 박물관에 설치됐던 각종 사인몰도 철거됐다. 그러나 이번전시가 남긴 교훈과 과제는 결코 적지 않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서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부부총 유물을 양보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향후 유물 반환방식에 있어 ‘환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부부총 유물을 양산에 가져오기 위한 현실성 있는 대안과 방법이 요구된다. 이번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 유물은 부부총 출토유물의 1/3에 해당되는 68점에 불과해 부부총의 화려하고 웅장한 유물의 전모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향후 부부총의 모든 유물을 공개하는 대규모의 특별전, 혹은 일부분의 유물을 공개하는 별도의 테마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일본 측에 장기대여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 우선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3개월이라는 긴 전시기간과 언론과 박물관의 적극적인 홍보에도 예상 관람인원 5만명을 밑도는 관람객 숫자이다. 박물관에서 전시 종료 후 이번 전시의 관람객 분석을 실시했는데, 가족 혹은 개인의 관람이 많았고 반면 지역 내 초ㆍ중ㆍ고의 단체관람이 극히 적었다. 이는 최근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1세기만에 귀환한 지역의 귀중한 특별전임에도 학생의 관람이 적었던 점에서 향후 개선해야할 과제로 남았다. 부부총 전시를 통해 과거와 같은 역사와 아픔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단명하는 사람과 장수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흡연, 음주, 일하는 스타일, 사회적 지위, 경제 상황, 인간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조사한 끝에 의외의 진실이 밝혀졌다. 오랜 조사 끝에 마침내 밝혀낸 장수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친구의 수’였다고 한다. 즉, 친구의 수가 적을수록 쉽게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많고 그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건강한 삶을 유지했다. 친구란 환경이 좋던 나쁘던 늘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다. 친구란 문제가 생겼을 때 절로 상담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친구란 좋은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란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일도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다. 친구란 슬플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가진 사람이다. 친구란 갖고 있는 작은 물건이라도 즐겁게 나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런던 타임스가 ‘어떤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현상 모집한 일이 있었다. 이 현상 모집에서 3등으로 당선된 사람은 ‘내가 기쁜 마음을 가지고 만나면 기쁨이 배가 되고, 내가 고통스러울 때 만나면 고통이 반으로 감해지는 사람이 친구’라고 답했다. 2등은 ‘너무 괴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할 때, 그 말 없는 말을 이해해주는 사람, 1등은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버릴 때, 그 때 찾아와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월남 전쟁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우리 한국군대의 작전이 아주 불리하게 작용하면서 베트콩에게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명령에 따라 작전상 후퇴하고 있었는데, 한 병사가 후퇴하던 중에 총에 맞아 쓰러졌다. 다른 병사가 중대장에게 말했다. “중대장님, 총에 맞은 저 병사는 제 친구입니다. 제가 구출하러 가겠습니다”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데 총에 맞아 쓰러진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지옥 같은 전방으로 가겠다고 했다. 중대장이 말렸다. “안 돼, 그러다가는 너도 죽을 수 있다. 내가 망원경으로 보니 그 친구는 벌써 죽었어. 무모한 짓 하지 마라” 그럼에도 이 병사는 친구를 구출해야 한다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한참 만에 그 병사가 나타나는데, 온통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친구를 등에 업고 참호로 돌아왔다. 그러나 예상대로 친구는 이미 죽어있었다. 중대장이 말했다. “그것 봐라. 자네 친구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왜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고 그래. 하마터면 너도 죽을 뻔 했잖아?” 병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제 친구는 제가 등에 업고 이리로 올 때에 내 등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올 줄 알았다. 네가 반드시 올 줄 알았다. 너와 같은 친구가 있으니 정말 행복하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고 죽었습니다” 그 말에 중대원들은 숙연해졌다. 그 후 그 부대는 전우애로 뭉쳐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친구가 있어야 한다. ‘너 같은 친구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그런 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런 친구가 돼야 한다.
제가 자원봉사활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7월이었습니다. 처음 시작은 길가에 서 있는 바르게살기운동 기를 보면서 문득 저희 아버지가 새마을운동 지도자 생활을 하시던 게 생각 났고, 나도 양산 토박이니만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모임에 가입해서 활동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던 차에 바르게살기운동 동면위원회에 위원장으로 계시던 전세민 위원장님의 소개로 바르게살기운동과 함께 봉사자의 삶으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2011년 그 뜨거운 여름, 국토대청결운동에도 빠짐없이 나가고 자원봉사박람회에 참가해 선플봉사, 네일아트 체험봉사를 하면서 주는 즐거움이 받는 즐거움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바르게살기운동에서는 해마다 다문화 주부를 대상으로 사업을 합니다. 지난해에는 다문화 주부 한식 멘토링사업을 진행해 다문화 주부와 바르게살기 회원이 일대일 멘토, 멘티를 결성해 수업을 했습니다. 멘토링으로 언니, 동생의 인연을 맺어 사업이 끝난 지금도 서로의 생일과 가정 대소사를 챙기며 인연의 끈을 이어가는 다른 회원을 보고 ‘저런 것이 참 봉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다음에 다문화 사업이 추진되면 꼭 활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닿아 지난 6월 19~20일, 다문화 주부와 함께하는 전통예절학습당이 개강을 했고, 저는 멘토 15명 중 한 명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저는 여기서 지난해 한식 멘토링에 참여했던 실라니아 씨의 멘티가 됐습니다. 실라니아 씨는 필리핀 이주여성으로 결혼한 지 5년 된 주부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아들과 딸을 순산하고 막내가 돌이 다 돼 가는데 이번 전통예절학습당에서 돌 상 차리기를 배워서 아이에게 직접 돌 상을 차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옛날에 수명을 길게 하라고 돌잡이에 무명실을 올렸다고 하니까 눈이 둥그레지며, 그게 효과가 있느냐고 묻는 모습이 아이 같았습니다. 안 아프고 머리 좋게 자라게 하려면 뭐를 올려야 하냐고 물어보길래 빨간약과 영양제를 올리면 된다고 농담을 했더니 금방 눈치를 채고 “언니야~”라고 해서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돌잡이는 기원의 뜻이 아니라 그냥 재미로 미래를 점쳐보는 거라고 설명하며 의사를 상징하는 청진기, 머리 좋은 공학도를 뜻하는 마우스, 판사의 의사봉, 부자의 상징인 돈 등 여러 가지 올릴 거리를 얘기하니 진지하게 받아 적는 모습이 참 대견해 보였습니다. 수업 개강일이던 19일은 아침부터 비가 제법 왔습니다. 저는 아이를 안고 수업을 들으러 온 다문화 주부 14명이 너무 대견해 보이고 차량으로 교육장까지 바래다주고 가시는 신랑이나, 시댁 식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그런 시댁 식구들의 바람을 잘 아는지 강의시간 내내 웃음으로 강의를 들으며 집중하고 꼼꼼하게 메모하는 다문화 주부의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습니다. 다음날인 20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맑게 개었습니다. 이날은 다문화 주부와 양산시립박물관을 탐방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도 양산 사람이지만 양산시립박물관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어찌나 잘 돼 있고 문화해설사님도 열성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한국 사람인 저도 모르던 것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박물관을 관람하며 양산사람임을 뿌듯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서울 국립 박물관에도 양산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는 소식과 기증하신 양산시민의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노력봉사, 예절학습당에 바른 한복 복식법을 강의하신 토향재 정선량 원장은 재능봉사, 시립박물관에 귀한 가보가 될 수도 있는 유물을 기증하신 좋은 님은 물질봉사 등….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만큼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면 자원봉사 최강국인 미국을 따라잡을 날도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틀 동안 다문화 주부뿐만이 아니라 멘토의 자격으로 참석한 바르게살기운동 여성위원 15명도 많은 것을 함께 배우고 느낀 소중한 전통예절학습당이었습니다. 학습당 기간이 끝나고 저는 실라니아 씨에게 미리 준비해간 아이 양말을 살짝 손에 쥐여주며 “앞으로도 자주 연락할게. 내가 언니 해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순박한 눈망울에 물기가 어렸습니다. “언니… 감사해요” 저는 수줍게 답하는 실라니아 씨를 따뜻하게 안아줬습니다. 학습당이 끝나고 두 달 뒤, 실라니아씨는 막내 돌상을 제법 그럴듯하게 차려서 저에게 SNS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 사진에는 제가 사준 돌잡이 양말이 예쁘게 신겨 있더군요. 사람의 인연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또 이런 봉사의 기회와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주신 양산시 자원봉사단체협의회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척추의 추간판 탈출증, 즉 흔히 말하는 ‘디스크’라는 진단은 자주 들어봤겠지만 ‘척추 후관절 증후군’은 생소한 진단명일것이다. 인체의 척추는 앞에는 추간판이 있고 중간에는 척수 신경이, 뒤에는 척추를 지지해주는 척추 후관절이 있다. 후관절은 하나의 척추뼈가 다른 척추뼈와 연결되는 부위로, 척추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척추의 후관절과 그 주변조직이 퇴행성 변화나 이상으로 인해 허리나 엉덩이, 다리에 통증이 생기는 질환을 ‘후관절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질환은 허리 근육이 약한 여성에게 특히 많이 발생하나, 노화로 인해 추간판의 퇴행성 변화가 진행되면서 후관절에 부담을 많이 주는 경우에도 자주 나타난다. 주요 원인은 퇴행성 변화로 인해 추간판의 높이가 감소하고 척추체 사이가 좁아지면서 척추관절이 불안정해져 움직임이 과해질 때 발생한다. 여기에 변성이 생기면서 관절막이 파열되고, 관절염이 생기면서 후관절에 분포한 신경을 통해서 통증이 일어난다. 허리ㆍ목 디스크와 후관절 증후군이 다른 점은 저림증상의 유무다. 디스크의 경우에는 허리나 목의 통증과 함께 다리, 손등의 저림 증상이 동반되지만, 후관절 증후군의 경우에는 저림증상이 동반되지 않는다. 후관절증후군은 위치가 정확하게 느껴지지 않는 허리 부위의 통증과 함께 둔부와 대퇴부 뒤쪽까지 당기는 증상이 있어 마치 허리디스크와 비슷한 것 갖지만, 당기는 증상이 무릎 이하까지는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허리를 뒤로 젖혔을 때, 앉았다가 일어날 때 혹은 침상 등에서 자세를 돌리거나 비틀 때 통증이 나타난다. 병변 주변 부위를 누르면 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자고 난 뒤에 매우 아프다가 조금 움직이면 통증이 덜하다. 특히 추간판 탈출증을 수술한 이후에 다리의 저림증상은 좋아졌으나 허리나 목의 통증이 남아 있는 경우 후관절 증후군인 경우가 많다. 후관절증후군에 대한 진단은 주로 임상적인 소견으로 진단내릴 수 있다. 보조 진단방법으로 단순방사선 촬영술과 CT 등으로 후관절의 비후, 비대칭성, 다른 부위와의 차이, 심한 퇴행성 변화와 관절강의 소실 등 소견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특징적인 소견은 아니며 선천적으로 이 부위에 변화가 있는 환자에서 후관절 증후군에 해당하는 임상적 증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보통 심하지 않은 척추 후관절성 통증은 진통제 사용, 견인치료, 운동치료, 물리치료 등으로 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만성적인 통증이나 강도가 심한 통증에는 이런 치료가 효과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척추후관절의 병적상태로 인한 척추통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진단과 치료 목적으로 우선 통증이 있는 관절을 직접 치료하는 ‘후관절강 차단술’과 척추관절로 가는 신경가지를 치료하는 ‘내측가지신경 차단술’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후관절 증후군은 척추 방사선 촬영술이나 CT, MRI 검사로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면서 ‘근육이 뭉쳤다’거나 ‘인대가 늘어났다’는 정도의 설명만 듣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진단으로 물리치료와 약물요법을 시행하며 오히려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척추 후관절 증후군을 염두에 둔 치료를 하면 요통으로 인한 여러 가지 치료를 피할 수 있고 통증의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다.
Q1. 건강보험 본인부담 상한제가 개선된다는데 어떻게 바뀌나요? A1. 올해 1월 1일부터 개인별 소득수준에 따른 본인부담 상한액을 기존 3단계(200만원, 300만원, 400만원)에서 7단계(120만원~500만원)로 조정했습니다. 저소득층의 상한액은 낮추고 고소득층의 상한액은 상향 조정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의료비 부담이 더 줄어들게 됩니다. Q2. 올해부터 오래된 차량의 건강보험료가 경감된다는 말이 있는데 무슨 내용인가요? A2. 차령(車齡)이 12년 이상 15년 미만인 자동차에 대한 보험료를 40%에서 20%로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15년 이상 자동차는 보험료 부과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오래된 차량의 보험료 부담을 크게 완화했습니다. Q3. 건강보험으로 MRI가 적용되는 질환은 어떤 것들인가요? A3. MRI(자기공명영상진단)검사는 암, 뇌혈관질환, 척추질환 등 6개 질환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4대 중증질환 보장강화 계획에 의해서 올해 12월부터 선천성 심장질환, 각종 심근병증과 크론병에 보험급여가 확대됐습니다. Q4. 우리 아들이 군인인데 휴가 나와서 건강보험으로 병원 이용이 가능한지요? A4. 현역병과 전환복무자는 원칙적으로 건강보험 급여정지 대상입니다. 하지만 휴가 등의 사유로 외부 병ㆍ의원에서 진료를 받았을 때는 국방부 등과 진료비를 정산하기 때문에 병ㆍ의원 이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내 영혼의 밭에서 캐어 온 잡티 하나 없는 백토 한 짐으로 구워 내 그릇들이 어느 부잣집 서재에 놓이는 장식품이 될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느 집 저녁 밥상 위에 올라 오순도순 이야기꽃 속에 밥과 국이 한 그릇의 사랑으로 담겨 있는 사그릇 한 벌로 익었으면 한다. 내 영혼의 밭에서 캐어 온 붉디붉은 황토 한 달구지로 구워 낸 그릇들이 먼 훗날 박물관 전시실에 놓이는 골동품이 될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느 양지바른 장독대 한 구석을 잡아 옹기종기 햇살 속에 간장도 된장도 익히고 고추장도 익히는 크고 작은 옹기로 익었으면 한다.
새해가 되니까 좋은 것은 모든 걸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서다. 만나는 사람마다 새롭고 듣는 이야기마다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하다. 청마의 해라니, 말(馬) 만 하더라도 씩씩한 기상이 넘치는데 푸른 말이라. 신년 달력 첫 머리에 나오는 군마(群馬)의 기상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관운장의 적토마이건, 새옹지마의 준마건 그 위용이 대단한 것은 갈기가 흩날리는 외모 뿐 아니라 먼지를 일으키며 들판을 가로지르는 용맹이 뭇짐승들이 흉내내지 못할 위엄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갑오년, 일찍이 120년 전, 조선왕조가 기울어갈 당시 조정의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갑오경장이 있었다. 지금은 갑오개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비록 왕조 말 일본의 영향력을 등에 업은 개화파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강력하게 요구돼 온 사항들을 일부 수용한 것에 의의가 있다. 특히 사회개혁으로, 문벌제도와 반상(班常) 차별 등의 신분제 철폐, 죄인연좌법 폐지, 조혼 금지 및 과부 재가 허용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지난 수백년간의 봉건적 관습이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폐기된 것이다. 2014년 갑오년은 어떤 모습으로 역사에 남을까. 아무래도 이 부분은 올해 있을 지방선거에 초점이 맞춰져야 될 듯 싶다. 1995년 기초의회가 구성된 지 20년이 다 됐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아직도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우선 재정적 측면에서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두 번째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의 정치 역량과 사고방식이 아직 그 본래의 취지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제점은 국세의 지방화 비중을 높여 자치재정을 확충시키는 정부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외로 치더라도, 지방 정치인 스스로가 지방자치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지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다. 여섯 번째로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올해 6월 4일 실시된다. 자천타천으로 출사표를 던진 이들이 주변에서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방선거의 꽃인 기초지자체 즉, 시장(市長) 직에 출마하려는 이들은 이미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 현직 또는 전직 정치인들이다.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릴수록 처음부터 시장직에 도전하기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기는 쉽지 않은 형국이다. 물론 정당의 공천제도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참신함’을 포장한 새로운 인물이 출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도의원은 정당 공천제도가 불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 기여도가 높은 인물이 낙점되기 쉽다. 따라서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 바로 시의원이다. 시의원은 현재 국회의 정치개혁 방안 중에서 정당공천 폐지가 유력하게 추진되기도 하지만 특히 소선거구제도로 바뀔 가능성도 커 많은 정치신인들이 출마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역시의 구(區)의회가 존폐위기에 놓인 것과는 달리 시·군의회는 그 기능의 중요성이 더욱더 대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용인시나 경남 김해시처럼 경전철사업의 성패를 두고 추진 당시 의회 의원들의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한때 국민들 사이에서 무용론(無用論) 까지 흘러나왔던 기초의회가 선거에 앞서 지원자가 속출하는 등 인기가 급상승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수천만원의 연봉이 보장되고 지역의 각종 행사에 귀빈으로 대접받는 것을 넘어 전국적 포털사이트 인물란에 이름을 올릴 ‘가문의 영광’으로 인정될 만한 것이 무엇일까. 출마자 대부분이 말한다.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나서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노라고. 주민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도시 개발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역대 선거를 통해, 당선되기 전까지는 ‘시민의 머슴’으로 자처하다가도 뱃지를 달고 난 뒤에는 어느 새 시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들을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시민의 대변자 역할을 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는 그 중에서 잘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렇다고 지나간 흔적만 더듬지도 말고, 사람 됨됨이를 잘 살피고 공적인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면 된다. 그런 기준에 모자라는 인물이라면 진작부터 나서지 못하게 말릴 일이다.
2014년 갑오년 새해에는 청마(靑馬)의 역동성에 걸맞은 큰 과제들이 주어질 것이다. 지방정치의 물갈이를 위한 선거가 6월 초에 예정돼 있고 그 전에 문화원장과 노인회장도 다시 뽑게 된다. 상반기 내내 선거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의 경제활동도 활기를 찾아야 하고, 기업은 대내외적으로 산적한 현안들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지방자치 20년을 맞는 양산은 과연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은 진중하게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지방화시대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재정의 건전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숙고할 때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에 앞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덕목은 다음의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맨 먼저 올해 가장 필요한 것은 시민사회의 대화합이다. 그동안 수 차례의 지방선거로 인한 편 가르기의 폐해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돼 왔다. 정당 간 대립은 선거의 기본 틀이지만 중앙정치무대에서의 이념 대립을 지방정치에서조차 답습할 이유는 없다. 후보자 간 진영 대립의 갈등도 선거가 끝남과 동시에 용해(溶解)돼야 한다.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선거 때 뜻이 맞지 않았다 해서 반목을 계속한다면 지방자치의 의미는 퇴색하고 만다. 당선자는 자리에 앉는 즉시 반대편 사람들을 위무하고 그들의 이해를 얻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지역사회를 떠받치는 힘은 화합에서 나온다. 왕조의 성립 시 개국공신들에 대한 편애나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잘못으로 정치기반이 약해진 선례를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의 승자의 잔치가 일방적이어서는 안된다. 추진동력이 힘을 받으려면 엔진의 출력이 높아야 하듯 시정 발전을 꾀하려면 그것을 미는 힘이 강해야 하는 것이다. 내 편 네 편 가르다 보면 그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여성계의 간극(間隙)을 방치 내지는 조장한 시 당국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여성친화도시를 표방하면서도 두 개로 나뉘어진 여성지도자들의 반목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그 골이 깊어져 고착화 되기 전에 획기적인 화해의 단초를 제공해야 한다. 여성친화정책은 양성의 평등 이전에 여성계의 대동단결이 선행돼야 한다. 다음으로 도시의 정체성 확립이다. 양산시의 도시 브랜드는 어떤 것인가. 30년, 50년 후의 양산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고장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우선돼야 한다. 작금의 우리 지역을 돌아보자. ‘기업하기 좋은 도시’나 ‘교육과 문화의 도시’ 구호가 낯설지 않다. 그런가 하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관광 양산’이라는 구호도 귀에 익었다. 최근에는 ‘디자인 허브 도시’ 구호가 하나 더 늘었다. 도시의 미래상이 단순한 한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라는 법은 없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개념의 도시상이 세계적인 트랜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전의 양면이 함께 보여질 수 없고 개발과 보전의 정책이 공존할 수 없듯 산업도시와 전원도시를 양립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을 희생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발가능한 토지를 양껏 개발해 수익성을 높이고 경제적 효과를 제고하는데 치중하려면 쾌적한 주거환경을 가진 문화도시의 미련은 버려야 한다. 또 그만큼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반면에 자연환경의 가치를 보전하고 주거문화를 최대한 끌어올려 살기 좋은 전원도시를 만들려 한다면 무분별한 공단개발 등을 포기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도시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서는 시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시민의 중지를 모아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시민의 뜻을 모으는 작업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에서 우러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 다음 합의된 힘을 바탕으로 슬기롭게 추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도시의 미래가 어느 한 위정자에게 달려있진 않지만 잘못된 지도자를 뽑는다면 그만큼 도시 발전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겠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된 지금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개혁과 혁신을 외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고독은 늘 몇 번의 생채기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고요해지곤 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방향의 소인消印 같아서 막다른 골목이나 늪을 자주 만나 자취를 감춘 듯하다가도 불현 듯 찾아와서는 가시가 되어 목에 걸리곤 했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해독하기 어려운 문장이란 걸 내 안에 흐르는 강물이 몇 번이나 범람한 후에야 알게 되곤 했다
지난해 4월, 양산의 역사와 문화가 한층 발전해 나가는데 명실상부 교두보 역할을 할 유물 전시관이 개관했다. 개관 후 얼마 되지 않아 유물전시관 전시실을 찬찬히 관람한 후 양산에 이렇게 수많은 국ㆍ보물급 유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양산을 빛낸 인물, 양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집약적으로 알려주는 유물전시관이 ‘양산의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화의 장 유물전시관에 백년손님이 찾아왔다. 예부터 딸이 결혼하여 사위를 얻게 되면 귀한 대접을 한다 해 ‘백년손님’이라 한다. 이번에 유물전시관 특별전에 온 손님은 백 년 만에, 어쩌면 올 수 없을지도 몰랐던 고향을 찾아온 소중하고도 귀한 유물이다. 바로 일제가 강탈해간 북정동 고분군 부부총의 유물 68점이 유물전시관의 노력 끝에 대여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잠시 100일간의 나들이일 뿐이라 안타까운 심정이 크다. 파란 하늘이 드높던 시월의 어느 날, 특별전 전시관을 들어섰다. ‘사라진 흔적, 백년만의 귀환’이라는 부제를 보는 순간,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한 지난날의 아픔이 다가왔다. 부부총, 13일간의 기록 부분에는 당시의 발굴기를 생생하게 기록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를 찾고자 마구 파헤쳐졌던 우리 고분의 아픈 역사가 느껴졌다. 1천500년 전, 고분 속에 묻혔다가 백년 전 세상에 나온 양산의 보물을 한 점 한 점 만나봤다. 타국에 소장됐다가 대한해협을 건너왔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정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특별전을 찾았을 때는 관장님이 직접 단체 관람객에게 유물에 대해 해설을 하고 있었다. 해설을 들으며 유물을 감상하자니 전에 몰랐던 소중함과 간절함이 더 느껴졌다. 유물이 발굴된 위치로 추정하는 남녀 장신구의 고급스러움과 정교함이 아름답게 빛났다. 금동제 말안장꾸미개는 천오백년이나 된 유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보존 상태를 지니고 있었고, 진품이 오진 못 했지만 왕족의 것에 버금가는 금동관을 보노라면 분명 대단한 지위와 권력을 지녔던 사람의 무덤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토기와 청동제말방울 등 말장신구가 관람의 재미를 더했다. ‘전시관을 나서며’에 써놓은 우리 유물 환수에 대한 간절한 바람은 우리 시민의 애정과 열망이 있어야 이뤄질 것이다. 우리 것이던 귀중한 유물이 더는 손님이 아닌, 유물전시관 안방에 번듯하게 자리 잡아야하지 않을까. 한 편의 가슴 뭉클한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더 많은 사람이 특별전을 찾아 감동을 느꼈으면 한다.
올해는 우리 고장 양산의 명칭이 사용된 지 6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이에 부응해 고장의 숙원이던 유물전시관이 지난해 4월 북정동 성황산 기슭에 아담한 모습의 현대식 시설로 개관돼 시민을 맞이하고 있다. 그간의 발자취를 보면 숱한 진통 극복의 과정이 있었고, 관계자의 확고한 역사관과 전통문화의 계승 의지, 시민의 정성과 염원이 늘 함께했음을 볼 수 있어 정말 자랑스럽다. 다양한 전시유물에서 조상의 독특하고 우수한 문화유산을 조명해 볼 수 있었고, 위기의 조국을 위해 헌신한 분의 활동상은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평생교육을 위한 문화공간이 확보됐음에 감사하고 문화시민의 긍지를 제고해야 함은 물론, 이후의 문화재 애호와 시설활용, 영원히 보존 계승하는 일은 우리의 몫임을 명심해야겠다. 그리고 유물전시관 개관 원년과 함께 지난 10월 15일부터 특별기획전이 개최돼 ‘양산 부부총 특별전’이 성황리에 전시되고 있다. 양산 부부총은 사적 93호인 북정동 고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6세기경에 조성된 신라귀족의 부부 무덤으로 추정되며 인골과 순장자 그리고 섬세하고 뛰어난 금속과 토기 유물 등 부장품이 매장돼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그들이 주장한 임나일본부설, 즉 과거 한반도 남부 가야 땅을 약 200년간 지배한 적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발굴했으나 근거가 없었고 바로 반출돼 약 100년간 도쿄 박물관이 소장해 있던 중 이번에 관계자의 끈기 있는 노력 끝에 유물대여 협약 성사로 고향 땅을 다시 밟은 것이라고 한다. 부부총 유물은 안식처인 북정동 고분군을 뒤로 한 채 대한해협을 건넌지 한 세기 만에 귀환했으나 1월 12일까지 한시적인 전시여서 아쉬움이 앞선다. 영욕의 세월 동안 이국땅에서 얼마나 숨죽여 지내왔을까? 오늘의 귀환이 영원한 귀환이었으면, 그래서 3층 전시관에 안내된 이원수 선생님의 출생 마을인 북정과 이팝나무 꽃길이 조성된 ‘고향의 봄길’과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전시관 개관과 특별전을 맞아 우리는 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겠다. 바른 역사의식과 조상들의 혼이 깃든 유물에 대한 애정 없이는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국난의 위기 때 불법적 반출로 각처에 산재해 있는 유물이 오늘을 계기로 지속적으로 파악되고 환수되도록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자. 일시적인 귀환이 아닌 영구 귀환전시가 되도록 모두가 뜻을 모아 적극적인 행사 참여로 환수 당위성의 표현 의지를 보이고, 이 운동이 범국가적인 행사로 이어져 훌륭한 문화유산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계승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