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이며 정치가였던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이 쓴 ‘학문의 진보(1605)’에서 사람을 곤충으로 비유해서 한 얘기가 있다. 그는 이 세상에는 거미형의 사람, 개미형의 사람,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첫째로 거미형의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 거미줄을 쳐놓고 숨어서 호시탐탐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린다. 그것이 거미의 삶이다. 속임수가 있고, 타인의 실수를 먹이로 거두는 비열한 삶이다. 결국 거미는 일도 안하고 놀다가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베이컨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이기주의 인간’이라고 꼬집었다. 둘째로 개미형의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사람’, 즉 있으나마나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아,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그저 재산을 모으기만 한다. 그렇게 모은 재산은 결국 자식들에게 전해지고, 그 자식들은 어버이의 은혜를 모르는 무능한 인간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낭비하고 허랑방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경우가 많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단결심도 강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들끼리 잘 뭉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이컨은 개미와 같은 사람을 ‘개인주의 인간’이라고 지적했다. 세 번째로 베이컨은 꿀벌형의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꿀벌은 꽃밭으로만 날아다니며 꽃 속의 향기를 맡으면서 삶을 즐긴다. 그러면서도 꿀벌은 꿀을 만들어내 사회에 향기를 전한다. 매우 유효한 생산성이 있는 삶이다. 꿀벌은 조직력도 강하고 부지런하다. 열심히 꿀을 만들어 자기들도 먹지만 대부분 주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베이컨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이타주의 인간’이라고 말했다. 사회 곳곳에 이러한 꿀벌형의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서양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논시비(Non Sivi)’란 말이 있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논시비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고, 넓게는 국가와 세계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이다. 필립스아카데미는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다. 220년 동안 각계 지도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고등학교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학교 설립자의 건학이념이 바로 ‘not for self’다. ‘나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살라’는 말이다. 곧 꿀벌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사흘간 시끌벅적했던 축제가 끝나고, 축제 전부터 양산천을 지키던 코스모스만이 자리에 남아 있다.
최근 캠핑카가 국내에서 가족여행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캠핑카의 기본 철학은 과학에 바탕을 둔 편리성과 효율성이다. 먼저 캠핑카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주로 자동주행 충전장치와 배터리를 이용해 공급한다. 자동주행 충전장치는 주행 중 필요한 전력 외에 남는 전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메인 배터리는 충전기를 통해 보조 배터리와 연결되는데, 이는 주행 중 메인 배터리와 보조 배터리까지 충전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충전된 전기는 자동차의 시동을 끈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캠핑카의 지붕에는 태양열 전지판도 있어서 전력을 모아둘 수 있다. 캠핑카의 편리성과 효율성보다 중요한 것은 캠핑카의 안전이다. 캠핑카를 타고 갈 때 고속주행은 금물이다. 차체가 높은 탓에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무게도 2~4톤 가까이 되기 때문에 캠핑장 가는 길의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도 조심해야 한다. 또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나갈 때도 차체 높이를 확인하고, 화물차 전용 출구를 이용해야 하는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캠핑카는 구하기 힘든 수입부품이 많기 때문에 문고리나 창틀 등의 사용법을 잘못 알아 파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캠핑카 여행에서 항상 조심해야 할 부분은 모닥불 피우기. 분위기를 낸다고 아무 데서나 모닥불을 피우면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국립공원이나 훼손이 금지돼 있는 장소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가족 여행을 할 경우 아이들만 캠핑카에 남겨두면 안 된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부모가 없는 사이에 자동차 내부의 장치를 이것저것 만져 볼 수 있다. 캠핑카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캠핑장은 강원도 영월의 동강, 충남 태안군의 몽산포, 강원도 양양의 미천골처럼 강과 바다, 계곡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꼭 캠핑장에 갈 필요는 없다. 그저 달리다가 경치 좋은 곳에 멈추면 그곳이 곧 캠핑장이고, 나만의 별장이 되는 게 캠핑카의 진정한 매력이다. 캠핑카를 이용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전이고 안전이 바탕이 돼야만 즐거운 여행에 캠핑카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다음 순간의 행동에 대해서 내심 자기 마음을 일러주는데, 그것이 비관적·부정적이면 낙관적ㆍ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번엔 잘 될 거야”하는 식으로. 낙천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차츰 낙천가가 되어간다. 낙관주의는 자기의 노력에 따라 어떻게든 바꿀 수 있는 개인적 습성이란 것이 정설이다. 평소에 낙천적인 태도로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자기의 후천적인 성격을 낙천가로 바꾸는 노력만큼 건강한 자기 개조는 없다. 이처럼 성격을 꾸며대어도 자기를 위선자라고 생각할 일은 아니다. 최근의 뇌 연구도 이 사고방식을 지지하고 있다. 불쾌한 일을 언제까지나 생각하지 말 것. 그것이 자기를 고무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노벨 생리학ㆍ의학상 수상자인 신경 과학자 프랑시스ㆍ클릭 박사는 자기 책상에 이런 표어를 놓아두고 있다고 한다. “나는 늙도록 많은 문제를 보아 왔으나, 그 문제들은 거의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는, 조종사가 자기 책무를 알고 있으리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모든 일을 결정할 책임은 없다. 신용할 수 없다는 기분은 정신면의 건강상태가 준 것이다. 신경증 환자의 특성에는 낙천적 사고방식의 결여가 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불길하거나 위협이거나 하다. 다음은 자기 자신에게 일러주는 말에 조심할 것. 심리학자는 이것을 ‘셀프 토크’라고 하는데, 낙관주의를 관철시키는 경우의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는 다음 순간의 행동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내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관적·부정적인 말을 자기에게 하고 있다고 깨닫는다면 낙관적ㆍ긍정적인 말로 바꾸기는 가능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하도록 일러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엔 잘 될 거야”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처럼 자기에게 일러주는 훈련으로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전문 연구가들의 여러 해에 걸친 분류 실험 결과 확연한 수치로 나타나 있다. 예컨대 펜실베이나 대학의 마틴ㆍ셀리그만 교수의 실험을 들 수 있다. 낙관주의는 자신을 애정 어린 친구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낙천가는 “오늘은 잘 안됐지만 여러 가지 배웠으니 내일은 잘 되겠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비관주의를 극복하려면 언짢은 일을 당한 직후에는 되새기지 말자.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생각을 하도록. ‘1세기인’이 되고 싶거든 당장 오늘부터 자기를 낙관주의자가 되도록 바꿔야 한다.
문화라는 말이 범람한다. 웰빙문화, 레저문화, 몸짱문화 등등 온갖 신조어가 일상의 굽이굽이에서 툭툭 부딪힌다. 하기야 문화라는 것이 사람살이의 양식이고 의식인 바에야 문화 아닌 것이 있으랴만, 그렇게 일상의 편린에까지 덕지덕지 문화라는 말을 붙일 것까지야. 그런데 어떤 것에 ‘문화’라는 꼬리표가 붙고 나면, 그것이 마치 그 시대를 드러내는 징표이거나 그 사회구성원이라는 인식표 같아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그 문화에 동참하게 된다. 참 묘한 일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묘할 것도 없다. 우리가 문화라는 말에서 ‘보편적인’ 혹은 ‘공유하는’ 등의 의미를 읽어내는 바에야, 이런 저런 문화를 은근한 강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문화라는 말이 지닌 힘이므로. 하지만 과연 문화라는 말이 일상화된 만큼 우리의 삶도 문화적인가? 하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문화라는 말은 범람하는데, 도무지 문화결핍의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문화라는 말이 남발되는 배경을 보면, 이 말이 지닌 힘에 기대어 우리 안의 욕망을 부추기고, 그런 욕망이 사회적으로 전염되도록 하는 후기자본주의 사회 혹은 소비사회가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비대화시키면서 많은 사람들을 끊임없는 소비기아로 내몬다.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대중매체다. 특히 시청각을 동원해 대중의 오감을 자극하는 TV 프로그램은 대중들에게 최소한의 비판적 함의마저 망각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얼마 전 TV 방송사에서 방영중인 코미디프로그램 중에 ‘몸짱 만들기’라는 코너가 있었다. 이 코너는 단순히 웃음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개념들이 변이된 채 복합적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특히 비대한 몸을 가졌던 두 개그우먼이 운동을 통해 체중이 감량되는 모습을 매주 확인하게 해주는 장면은, 그저 생각 없이 따라 웃기에는 아무래도 껄끄러운 데가 있다. 운동을 해 건강을 유지하는 몸보다는 날씬한 몸을 부각시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지향하는 여성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가지려는 것은 모든 여성의 본능이며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대중매체 뒤에 숨은 상업주의가 문화라는 말로 포장돼 우리 호주머니를 털어낼 때, 그러면서 소비가 경제의 추동력이라고 외칠 때, 그것에 현혹되어 더러는 그러한 욕구에 맹목적으로 편승하는 덩달이들이 과도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집단 페르소나를 형성하고, 거기에 동조하지 못할 때 느끼는 소외감이 갈수록 심화돼 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문화는 분명 우리가 형성하는 문화다. 문화적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문화가 아니라, 우리 삶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가장 우선 돼야 할 것은 문화라는 말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비판의식이다. 상품으로서의 문화와 주체로서의 문화는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 설사 교차영역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를 말하는 그 각각의 의도와 목표는 다르다. 문화를 상품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단지 소비자로 전락시키면서 우리 생활을 식민화하고자 한다. 우리는 적어도 문화 소비처로 전락되는 몸, 그러한 삶의 면면을 ‘문화적 위기’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가시적이고 물량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나 그 실증적 사고로부터 초래되는 사회적 폐해를 개량하고 우리의 각박하고 척박한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문화를 거론해야 한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가 곧 우리의 삶이기 때문, 문화의 위기가 곧 삶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눈물로도 삭힐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때는 숲으로 가라 숲은 제 사연이 부풀 때마다 묵묵히 나무 한 그루 씩 심었을 거다 햇살이 콕콕 옆구리 살을 찌를 때에는 연초록 푸른 잎을 피워냈을 테고 늑골이 시린 날에는 넝쿨나무를 땅 속 깊이 박았을 거다 소리도 없이 안개비가 오는 날에는 한참을 외로움에 울었을 테고 저무는 밤에 오지 않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렸을 거다 너의 눈물로도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거든 저 숲으로 가라
이제 융합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음은 확실해졌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과 같이 일반인의 생활 속에 스며들고 있는 융합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생활에 변화를 준다. 아이폰이 가져다준 스마트폰의 세계와 앱스토어가 열어준 새로운 시장, 나아가 이들이 자극해 활발해진 수많은 새로운 시도들을 이제 우리는 매일 접하고 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마치 물과 기름을 섞는 것과 같은 측면도 있다. 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학문 영역이라는 뜻이라 할 만큼 과학은 논리적 사고에 기초한다. 그런데 예술은 감성이며, 느낌이며, 영감이다. 따라서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도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의미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어떠한 어려운 공식이나 이론도 직접적으로나 비유로써, 쉬운 말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처음에 곱셈을 어떻게 배웠을까? 곱셈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배웠을까? 곱셈이라는 산수법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왜 그것이 필요했고 왜 그것을 만들었을까? 모든 경우에 늘 의미를 짚을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 의미를 짚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경우도 있다. 과학도 하나의 내러티브(Narrative)로 봐야 할 것이다. 덧셈이나 뺄셈과 같이 쉬운 것도 처음 배울 때에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에 비춰 깊이 와 닿을 수 있게 배워야 한다. 그것이 쌓여서 복잡한 이론이나 공식도 마냥 문제만 풀기 위해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써, 그리고 이야기로 풀어갈 수 있게 돼야 한다. 융합 교육의 시작은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며, 아는 것이며, 이야기로 할 수 있는 것이 돼야 한다. 이렇게 소화된 과학은 예술을 만났을 때 엄청난 지적 발산을 야기하게 한다. 그리고 예술적 이야기를 담은 내러티브를 그에 꼭 맞는 과학적 방식으로 현실화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서 과학적 내러티브는 예술적 내러티브를 더욱 풍성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예술 교육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예술의 울타리에서, 또는 그 주변에서 해 왔던 생각을 배우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철학이나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과거에 있었던 사실만을 외우는 것만이 아닌, 그 시대 상황에서 그 선현은 왜 그런 생각을 했으며, 그것은 어떤 의미였는지와 같은 그런 인과관계가 있는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현재 자신의 생각이나 문제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과 창의력의 원천이다. 예술 교육에서는 바로 이런 의미에 기초한 인문학적 교육의 바탕 위에서 무형의 생각을 유형의 물건으로 또는 이미지로 만드는 일을 매우 치열하게 하게 된다. 치열해야 할 이유는 바로 예술적 결과물은 작가의 생각이 응집된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응집시키기 위해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 극도로 정제시켜야 한다. 수많은 생각의 조각을 가지고, 그것을 더욱 확산시키고, 연결하고, 수렴하는 등 반복해 하나의 결정체를 얻는 과정이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예술과 다르지 않다. 목적이나 소재가 다를 뿐이지 그 프로세스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디자인은 산업에 더욱 가까이 있으며 직접적으로 활용된다. 기업에 수많은 디자인 일이 있으며 아니, 있어야 하며 기업이나 상품의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줄 여지가 디자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디자인을 통해 없던 가치를 부여하고, 잠재된 가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에 대한 안목과 구현능력은 가치를 의미로써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다 의미로 얻은 과학적 지식과 그것을 다루고 현실화시키는 방법까지 더해지면 그것은 새로운 하나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에서 그 효과를 증진시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환경적 요건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의 활발한 만남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 새로운 생각이 터져 나오게 되는 계기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을 수 있는 좋은 사례일 것이다. 이렇게 과학과 예술이 융합하는 것은 지금과 같이 과학이 빠르게 발전해 가는 시대에 디자인이 더욱 유익한 즐거움으로 일반인의 생활에 스며들 수 있게 할 여건을 만들어 준다. 나아가, 융합 디자인이 사회 저변에 확산되면 기업 혁신이 일상화될 수 있다.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양산시 같은 새로운 산업의 패러다임을 도입해 도약할 시점에 있는 산업도시는 필연적으로 디자인 역량을 키워야 한다. 풍성한 내러티브가 활발히 유통되고 생각의 힘이 커 가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융합교육과 융합디자인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는 요즘과 같은 시점은 하나의 좋은 기회일 것이다. 양산시가 지난 수년간 추진해 온 디자인을 기업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높이 사면서 이러한 정책이 융합 디자인 교육의 저변확대와 더불어 더 강력히 추진돼 산업적 도약을 선도해 가기를 희망한다.
10월 4일, 드디어 2013 양산삽량문화축전이 개막했답니다. 낮에 밝을 때 남편이랑 둘이서 다녀오고 저녁엔 도영군까지 데리고 다녀왔어요. 가수들도 오고 불꽃축제도 해서 말이죠. 근데, 진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고요. 더원, 에일리, VIXX 등 대형가수들이 와서 그런지…. 사회자 말로는 5만명 정도가 이날 왔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양산천 둔치가 사람들로 꽉 차있어서 발디딜 곳이 없었답니다. 그래도 축제 덕에 더원의 사랑아도 듣고 에일리 유엔아이도 듣고 정말 좋았어요. 양산시민의 소망을 담아서 불을 켠 만개의 소망등입니다. 저녁에 가면 불이 켜져서 정말 예뻐요. 자기도 저녁에 반짝반짝 소망등이 예쁜지 신이 나서 돌아다니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혹시라도 아이 잃어버릴까봐 손 꼭 잡고 다녔네요. 양산천에는 분수 레이져 쇼를 하고 있었답니다. 분수 레이져쇼 잠깐 보는 사이 더원의 사랑아가 울려 퍼지더라고요. 사람들 그 소리 듣고 전부 100m 달리기하듯이 뛰어가는데 우리도 모르게 뛰어갔습니다. 아, 더원님 노래 진짜 잘하십니다! 에일리 노래까지 듣고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 보러 좋은 자리 잡고 기다렸답니다. 양산천 다리 위에서 불꽃이 터져서 정말 가까이서 터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제 눈 앞 까지 내려와서 너무 예뻤어요. 사진 찍는 기술도 없는데다가 이렇게 큰 규모의 불꽃놀이 가까이서 처음 보는 거라 사진이 제대로 나온 게 없네요. 불꽃이 터지는 내내 극도의 흥분 상태였어요. 요즘 각 지역축제들마다 불꽃놀이가 꼭 들어가는 것 같던데, 양산에서도 이렇게 큰 규모의 불꽃놀이가 열릴 줄 몰랐어요. 광안리 불꽃축제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게 한이었는데 그거 우리 동네 양산에서 다 풀었네요. 그것도 토요일까지 두 번이나 한다니! 금요일에는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해서 제대로 못 봐서 한 번 더 가서 볼까 생각 중이랍니다.
미국 어린아이들의 장래 희망 직업 1위가 소방관이라고 한다. 9.11사태에서 보듯 소방관들의 활약은 정의와 희생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미국 국민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영웅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대대로 소방관 근무를 지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임무에 대한 자긍심이 굉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면에는 그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심을 보내는 국민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소방관들의 임무가 단지 화재 진압에 그치지 않고 응급구조업무가 크게 늘어나면서 격무에 시달리는 만큼 사회에 대한 기여가 늘어나고 있다. 9월 한달 간 말벌집의 퇴치에 동원된 119구조대의 출동이 엄청난 횟수를 기록했다는 보도는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119구조대원이 그만큼 깊숙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사례다. 가을산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 요즘 강원도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 씩 등산객 조난사고로 구조대가 출동한다고 한다. 한 헬기 조종사의 말마따나 하루종일 공중에 떠 있어야 할 지경인 것이다. 격무로 치면 경찰관도 예외가 되지 못한다. 1급지로 승격한지 오래된 양산시지만 막상 치안수요를 해결하는 경찰관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그러다보니 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지구대 근무 시스템이 인력부족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민생치안에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긴 하더라도 주거밀집지역에 대한 순찰 확대와 우범지역 순찰 강화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치안과 소방, 응급구조 업무는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공공활동이다. 밤늦게 귀가하는 자녀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부모, 심야에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긴급구조가 필요한 경우, 화재의 초기 진압을 위한 비상출동 등 각종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설이 주거지역 인근에 설치, 운영돼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양산시나 경찰서, 소방서 등에서도 어려운 가운데 예산을 확보해 노후시설을 개선하고 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런데 막상 시민들의 님비현상으로 인해 암초에 부딪친다는 것은 너무나 이율배반적이다. 북부동 상가골목 안에 있는 중앙119안전센터가 노후된 시설과 협소한 진입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신기동으로 확장ㆍ이전하려고 하는데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몇 해 전 웅상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소방서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유지를 양산시가 매입한 뒤 소방서에 무상임대를 통해 새 건물을 지으려 설계까지 끝냈는데 주민들이 반대 현수막까지 붙이고 나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시로 발생하는 출동 사이렌 소음과 이면도로의 혼잡가능성으로 주거생활에 불편을 준다는 것이다. ‘필요는 하지만 내 집 근처에는 오지 말라’는 전형적인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양주파출소도 인근 주민들로부터 입지반대운동에 시달렸다. 신도시 아파트 밀집지역의 치안 수요 해소를 위해 신설됐지만 바로 그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야간이면 심심찮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붙잡혀 오거나 출동하는 순찰차 소음으로 수면을 방해받는다는 것이다. 119안전센터의 기피 이유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반응은 신도시 2단계 일부 아파트 입주민들의 불편 호소가 전파된 영향이 크다. 소방서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어진 아파트에서 심야시간대 출동 사이렌 소음에 시달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방서도 이런 주민 불편사항을 인정하고 사이렌 자제 등 필요한 대책을 내놓기까지 했다. 하지만 응급상황이 주문대로 편한 시간대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한밤중에 잠이 깨는 시민들의 짜증은 완전히 해소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불가피한 공익활동에 대한 이해와 수긍이 필요한 대목이다. 원동면이나 동면 일부 등 면지역에는 치안과 소방기관이 멀리 떨어져 있어 시간을 다투는 상황에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없어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음에 비추면, 도심의 이러한 님비현상은 정도가 지나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대의 문명생활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양보와 이해를 요구한다. 공공활동으로 인한 불편과 제약도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사회생활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화재나 응급구조, 범죄 발생시 신속한 출동을 바란다면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반대해서는 안된다.
신장은 혈액을 걸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불필요한 노폐물을 오줌으로 배설함과 동시에 신체에 필요한 것을 재흡수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 체내의 수분을 조정해 혈액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비타민D의 활성화를 도모한다. 여러 가지 호르몬을 분비해 혈압을 조절하고, 적혈구의 생산을 촉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신장은 뇌하수체 다음으로 가장 많은 호르몬을 분비해 혈압조절에 관련돼 있다. 신장의 기능이 떨어지면 비타민D의 활성화가 약해져 장에서의 칼슘흡수가 충분치 못해 뼈가 약해지게 된다. 신장의 사구체나 세뇨관에 이상이 생기면 혈액을 여과하는 기능이 마비되거나 여과된 혈액을 재흡수하는데 지장을 초래한다. 노폐물을 배설시키는 사구에 염증이 생긴 것을 신염이라고 하는데 이 같은 신염의 증상이 만성화, 장기화돼 신기능이 저하될 때 신부전증이 발생한다. 신부전증의 발병은 만성신염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선천적으로 신장이 약하거나 인체 저항력이 감퇴된 경우에도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만성신염이 지속되고 신장의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신부전이라고 한다. 신부전은 급성과 만성으로 구분되는데 원인, 병태, 진행속도는 다르지만 진행된 상태에서는 모두 요독증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성 신부전증은 수개월에서 수십년에 걸친 만성적 신질환 끝에 신장이 체액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요독증이 나타난다. 만성신부전증 환자는 질병과정이 꽤 진행될 때까지 염분 배설능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므로 사구체 여과율이 저하돼도 부종이나 고혈압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구체 여과율이 현저히 저하된 말기 신부전증이 되면 염분배설이 섭취량보다 저하돼 부종이 나타나게 된다. 심장에 병변이 발생되면 발에 먼저 부종이 나타나지만, 신장에 이상이 있으면 얼굴이나 눈꺼풀에 부종이 일어난다. 부종의 원인은 수분에 있고 부종이 일어나면 소변량은 감소된다. 정상사구체 여과율이 50% 이상에서는 체액의 항상성은 유지되고, 10~30%에서는 요독증상이 나타나고, 10% 이하일 때 방치하면 사망한다. 그러므로 사구체 여과율이 50% 이하가 되면 인공투석과 신장이식의 대상이 된다. 만성신부전이란 콩팥의 기능이 계속 나빠지는 질환이다. 급성신부전증의 발병빈도는 낮지만 발병하면 빠른 속도로 위중한 경과를 밟게 되며, 특히 소변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면 3~5일 만에 고질소혈증이 와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IMG2@ 수지침요법에서는 J23, I19에 다침을 하고 삼일체형에 따른 치방을 하는데 양실증과 음실증은 방광승방과 신정방을, 신실증은 방광정방과 신승방을 이용한다. 운기체형에 따라 수지음식요법을 병행하면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특상 황토서암뜸을 기본방과 K9, F4, F19, N18, E22에 하루에 2~3회, 1회에 10장 이상 떠주게 되면 눈에 띄게 증상이 조절되며, 체력소모가 큰 인공투석 환자가 특상 황토뜸을 뜨면 몸의 상태가 호전돼 스스로 소변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Q1. 40세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대상자인데 올해 받지 못하면 다음해에 받을 수 있나요? A1. 만 40세와 만 66세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생애전환기 건강진단은 성별ㆍ연령별 특성에 적합한 맞춤형 검진으로 반드시 해당연도에 실시해야 합니다. 다만 임신, 6개월 이상 장기 국외체류, 시설 수감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다음해에 수검이 가능합니다. Q2. 운전면허증 발급 시 신체검사를 별도로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 어떤 내용인가요? A2. 지난 8월부터 운전면허를 신규 취득 또는 갱신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최근 2년 내 시행한 건강검진결과내역(시력ㆍ청력)의 활용에 동의하면 건강검진 결과서를 제출하거나 별도로 신체검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국민건강보험 양산지사 1577-1000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노인의 인생도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쉬지 않고 흘러왔다. 자전거 쳇바퀴 굴러가듯 쉴 새 없이 굴러왔다. 이제는 잠시 쉬어갈 만 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보니 또다시 달려야만 할 것 같다.
한 소년이 ‘위대한 스승’을 만나기 위해 오랫동안 방황했다. 소년은 깊은 숲과 황량한 사막을 헤맸으나‘위대한 스승’을 찾지 못했다. 소년은 너무 지쳐서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아, 왜 그렇게 방황하고 있느냐?” 소년이 대답했다. “위대한 스승을 찾고 있습니다” 노인은 얼굴 가득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대한 스승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마. 지금 곧장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한 사람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올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위대한 스승’이란다” 소년은 ‘위대한 스승’을 빨리 만나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다. 소년이 대문을 두드리자 한 여인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나와 소년을 맞았다. 그 ‘위대한 스승'은 바로 소년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인 것이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의 최고 스승은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의 위대한 능력을 배웠다” 중국고사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원숭이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 데려가자 그 어미가 백 리 이상을 좇아왔다고 한다. 애달프게 따라오던 어미가 그만 죽었는데 조사를 해보았더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더라는 것이다. 꾀꼬리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놨더니 그 어미는 울지도 않은 채 얼마 안가 죽었다고 한다. 살펴보았더니 꾀꼬리 어미의 창자와 간장이 녹아 있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머니 낸시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나중에 링컨은 말했다. “통나무집 구석구석에 온통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깔려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은 ‘아들아, 항상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라’였다” 성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에 무릎 꿇고 방탕한 삶을 청산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18명의 자녀 하나하나를 마치 무남독녀처럼 귀하게 교육시켰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과학시간에 문제를 냈다. “이것은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다. M으로 시작하는 여섯 글자의 단어다. 모두 종이에 그것을 적어 내라” 정답은 ‘자석(Magnet)’이었다. 그런데 한 명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아이들이 적어낸 것은 ‘어머니(Mother)’였다. 어머니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반딧불처럼 작은 희망의 불빛만 있어도 참고 기다린다. 명절 때마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민족 대 이동을 이루는 것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머니의 힘 때문일 것이다. 명절이 되면 필자도 이미 고인이 된 어머니가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어디 나 뿐이겠는가?
진로는 한 개인이 일생 동안 일과 관련해 거쳐 가는 모든 경험을 의미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인생에서 거쳐 가게 될 인생의 행로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미래지향적인 표현입니다. 나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진로계획을 가지는 것은 내 삶에 있어서 중요한 하나의 지표입니다. Q. 고3인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성적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게 되는 게 현실인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 궁금합니다. A. 현실적인 성적도 고려해야 하지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고자 하는 모습이 멋집니다. 우리 삶에서 직업이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이 크기에 진로를 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성적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직업을 먼저 생각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직업과 관련된 학과를 정하고 성적에 맞춰 그 학과가 있는 대학을 선택하는 겁니다. 또한 내가 희망하는 직업이 꼭 대학 졸업이 필요한 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성적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 대학에서 배운 공부가 전혀 소용없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적성과 흥미를 고려해 진로를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가장 빠른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학과선택은 향후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과 연결이 되기도 하므로 직업을 먼저 선택하고 학과를 택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대학 진학이 직업을 갖는 것이라면 어떤 대학이냐 보다 내가 선택할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학과나 대학이 될 수 있는가가 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는 것은 다양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 평소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본인이 잘 알고 있어도 자신 있게 직업과 연결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둘째,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따져보고 글로 적어서 하나하나 체크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객관적인 자료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상담기관에 가서 진로검사 등을 통해 현재 자신의 진로유형을 점검하고 상담선생님과 그 유형에 속하는 직업을 살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셋째, 인터넷이나 도서 등을 통해 직업에 대한 다양하고 현실적인 정보를 찾아봐야 합니다. 넷째, 진로프로그램에 참여해 직접 진로교육을 받고 본인의 유형에 맞는 직업을 선택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해 봅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직업분야를 직접 찾아가서 자원봉사를 겸한 직업 체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더 뜻깊은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대한 꿈을 비전(Vision)이라고 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목적을 지향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되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분명하게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전은 우리 삶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주는 중요한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큰 꿈이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전 속에서 실패도 함께 경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열등감도 클 수 있다고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도전도 없고 실패도 없습니다. 자신의 소질을 파악하고 노력해 자신의 꿈을 찾아 가는 비저너리(Visionary)가 된다면 조개가 고통을 진주로 토해내듯 열등감도 자신만의 빛나는 진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뽀오얀 물안개에 그리움도 피어오르고 긴 그림자 만든 햇살 마시며 아련히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마음을 품는다. 한때는 바다안개 멀리 보며 수평선 넘어 용오름 오르고 바이킹의 마지막 불화살처럼 멀리멀리 타오르는 아쉬움의 세월을 뒤돌아본다. 흐름이 멈춘 강물의 물거울에 옛 그림자를 되비치며 정신 맑게 하는 차(茶) 한잔에 물안개 그리움 마신다.
봄이 여성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하고 천고마비의 계절 또는 등화가친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풍요와 여유를 말하기도 하며 여름 내내 책 한 권 읽을 수 없이 땀 흘리며 농사 짓다가 가을이 되면 자신을 정신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책상에 앉아 먼지 낀 책장을 넘기며 정신의 양식을 먹게 된다는 말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요, 철학의 계절이요, 어떤 의미에서 종교적인 계절이라 하겠다. 가을의 의미를 몇 가지로 나눠 생각해본다. 첫째, 가을은 고결한 기상을 인간에게 준다고 하겠다.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금수강산이란 봄이나 여름에도 해당될 터이지만 유달리 가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산과 들 그리고 하늘과 구름, 태양 등이 조화를 통해서 온통 원색의 색깔로 대한민국, 우리 조국은 아름다움이 마치 비단으로 수를 놓은 강산이라는 말이다. 애국가 3절만 보더라도 그렇다. ‘가을하늘 광활한데 /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 일편단심일세’라고 한 것은 가을 하늘의 고결한 기상을 우리 민족의 가슴에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고려청자가 바로 이 가을 하늘을 바라보던 어느 도공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한평생을 가을 하늘의 빛깔을 도자기에 심어 보고자 애를 태우며 심혈을 기울였으리라 생각해 본다. 또한 가을에 우리는 청결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높푸른 깨끗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우리도 저 하늘의 청렴결백을 배우게 하고 관용과 포용력 또한 위대한 기량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이 땅 위에 일어난 별스런 사건들이 마치 지구의 불륜을 대표해 일어난 것 같지만 그래도 가을 하늘, 맑은 그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더러운 모든 찌꺼기가 한꺼번에 씻겨가는 것 같다. 물질의 풍요 뒤에 숨겨 있는 온갖 부조리와 아비규환 같은 사건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보다가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맑고 푸르고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광대무변한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막혔던 숨통이 탁 터지는 느낌이 든다. 어디를 가도 꽉 막힌 것 같은 삶이 봇물 터지는 것은 가을이 베푼 은총이라 하겠다. 소련의 망명 작가인 솔제니친은 하버드 대학 강연을 통해서 ‘오늘 자유 우방에 속한 모든 나라들이 풍요를 누리는 이면에 죄악의 더러움이 편만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권모술수와 모략과 중상, 아부와 갈등, 미움과 시기 등등의 살벌한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국민 각자가 보다 정직해질 필요가 있고 플라톤의 도덕정치가 아니더라도 온갖 슬기를 모아 지혜로운 나라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정의가 구현되며 자유, 평등, 평화를 누리는 민주주의 근본정신에 기초한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어찌 비단 정치뿐이랴.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사회적 여건을 어떤 형태로든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맑은 마음들이 돼서 이 나라가 지상낙원은 비록 아니더라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됐으면 싶다. 둘째로 가을은 우리에게 결실의 기쁨을 준다. 눈물을 흘리며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을 흘리며 가꾸고 다듬어 가을에 거두어 거둠의 기쁨, 결실의 풍요를 즐기는 계절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들녘을 지나가 보라. 비록 가진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뿌듯한 기쁨이 넘치겠는가. 어릴 때 가을의 고향을 생각해보라.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황소를 앞세우며 방울소리 달랑대며 돌아오던 농부들의 실루엣을 생각해보라. 이처럼의 서정이 어디 있으며 이처럼의 순수한 마음이 어디 있겠는가! 셋째로 가을은 내일을 준비하는 슬기를 우리에게 준다. 가을을 ‘조락의 계절’이라고 해 가을에 지는 나뭇잎에서 인생의 한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고, 추풍낙엽이라든가 가을 아침의 안개 등은 모두 허무함을 나타내는 말로 계절의 정서를 표현했으며 그러면서 가을은 또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이어서 월동준비가 특히 강조됐다. 천자문의 배열이 가을 추(秋), 거둘 수(收), 겨울 동(冬), 감출 장(藏)으로 돼 있는 것도 그러한 생각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살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것 같다. 유년시절, 소년ㆍ소녀시절을 봄이라고 한다면 청년ㆍ장년시절은 여름이라 할 수 있고 중년은 가을, 노년은 겨울이라 부를 수 있다. 인생의 가을! 또 한 번 되돌아보는 계절이다. 가을에는 여러 가지 생각나는 것들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아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를 읊어 본다. ‘가을에는 /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비가 반갑다. 오랜 가뭄으로 해갈이 절실했던 대지 곳곳을 생명수처럼 적신다. 중부지방은 여름 내내 장마와 호우에 시달렸기 때문에 비소식이 마뜩찮겠지만 영남에서는, 특히 양산과 울산 등 동남지역에서의 가을비는 단비에 가깝다. 더구나 제법 큰 소리를 내며 굵은 빗줄기를 선사하면서 이미 심정적 해갈은 이룬 것 같다. 휴일 저녁 처마 끝에 매달린 물받이를 통해 수직낙하 하는 물기둥을 보면서, 마루에 앉아 낙숫물 소리를 감상하자면 옛 선비의 여유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마당에 펼쳐진 여름꽃들의 자태가 아직 남아있는데 한때 목말랐던 화초의 갈증까지 해소시켜주는 가을비가 고맙기만 하다. 이처럼 때맞춰 진행하는 자연현상은 인간의 메마른 감성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오히려 물질문명의 폐해를 심각하게 생각하여 정신적인 안정을 찾으려는 다양한 운동이 번져나고 있다. 여기에는 ‘느림의 미학’처럼 나노세계의 속도감을 벗어나 자연과 하나되려는 의식주 운동도 있고, 건강한 생활을 꿈꾸는 ‘웰빙’을 넘어서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웰다잉’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대 문명국에서 시민들의 욕구는 ‘좋은 집, 좋은 음식’을 희구하는데 멈추지 않고 맑은 공기, 깨끗한 거리, 조용한 숲과 물, 공해 없는 안전한 주거환경을 요구하는 이른바 기본권리를 희망하고 있다. 현대의 도시개발 방향이 물리적인 토목개발 방식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친자연적인 상생도시로 전환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다행히 양산시도 건강도시를 표방하면서 시민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부 도시개발정책의 진행을 보면 ‘살기 좋은 양산’ 건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가장 큰 문제로 대규모 공업단지조성사업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양산시에서 직접 추진하고 있는 것만 해도 얼마 전 준공된 산막공업단지를 비롯해 석계1산업단지가 승인되자마자 이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석계2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다. 웅상지역에서도 민간에서 진행 중인 산업단지가 덕계동에만 두 군데가 있고 용당산업단지가 기존 업체들의 주도로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주남동 영산대학교 앞에 대규모 산업단지 두 곳이 허가를 받으려고 준비 중이다. 건강도시, 웰빙도시, 살기 좋은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양산시가 이처럼 공업화를 병행하고 있는 것은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도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개발과 보존이 양립할 수 없듯 공업단지의 확대와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이 공존하기는 매우 어렵다 할 것이다. 따라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재검토하고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다. 양산도 마찬가지다. 영남알프스라고 칭할 만큼 아름답고 웅장한 산세가 특별하고 천성산 주변은 신성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은 대외적으로 관광자원이 되는 동시에 시민들에게는 허파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에서 시작된 수백만평의 평야가 신도시 조성으로 인해 시멘트를 덮어쓰게 됐지만 다행히 주변 삼림에서 주는 녹색효과로 인해 아직까지는 공해에서 다소 피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공단확대시책을 추진할 경우 이런 이점들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공단조성사업을 추진하더라도 그 입지의 선정에서부터 개발의 규모와 입주업종의 선별에 이르기까지 주거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시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여기에는 교육과 문화분야까지 포함한다. 첫째, 입지는 기존 공단 주변으로 국한해서 선택돼야 한다. 자연상태가 양호한 녹지에 공단이 들어서는 것은 피해야 한다. 둘째, 불가피한 추진이라 하더라도 주민의 건강을 해칠 만 한 업종은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첨단 무공해산업 유치만이 시민을 설득할 수 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 개발을 원한다면 시민생활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시민의 건강과 주거환경이 우선이라면 개발위주 정책을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중소도시의 번영모델을 찾아보면, 산업화나 개발보다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아름답고 쾌적한 문화도시가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정치인과 공직자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손수레 하나에 조용한 동네가 시끌벅적해진다. 너도 나도 손수레 위로 올라가 시골 바람을 맞는다.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손수레는 시원한 바람과 웃음소리를 머금고 있다.
추석 때 듣기 싫은 말 1위가 공개돼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644명을 대상으로 ‘추석 때 듣기 싫은 말’에 대해 설문한 결과, ‘친척 누구는 대기업 들어갔던데’(25.9%)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아직도 취업 못해서 놀고 있니?’(16.8%), ‘애인은 있니?’(7.3%)가 뒤따랐다. 추석 때 듣기 싫은 말 1위를 접한 네티즌은 “이런 말 들으면 명절 기분 싹 사라질 듯”, “추석 때 듣기 싫은 말, 올해도 그냥 집에 있어야지”, “추석 때 듣기 싫은 말, 구직자는 웁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여성 포털사이트 ‘이지데이’가 지난 2009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1천73명의 네티즌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부들은 남편들로부터 안심시키고 위로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부님들, 내 남편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는 말을 꼽았다. 이어 27%가 “당신이 최고야”, 26%가 “사랑해”라는 말을 꼽았다. 대체적으로 네티즌들은 이 모든 말을 듣기 원하지만 힘든 상황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감동하고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말이란 생각을 담는 그릇이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요, 뜻을 나타내는 음성적인 부호이다. 말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말속에는 얼이 담겨 있다. 뜻이 있고, 생각이 있고, 사상이 있다. 깊은 뜻이 있고 옳은 생각이 담긴 말은 살아 있는 말이다. 말은 곧 힘이다. 말속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말은 말을 하는 태도에 따라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 입에서 나오는 말. 진실성이 없고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두 번째, 머리로 생각하는 말.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는 경우다. 세 번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 우리에게 감동과 감명을 주고, 이 말에는 힘이 들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며, 생명력이 있고, 감격이 있다. 진실한 말이 인간을 움직이고 힘을 주는 것이다. 정열적인 말은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사랑의 말은 때로 눈시울을 적신다.위로의 말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용기의 말은 심장을 뛰게 한다. 지혜의 말은 밝은 빛을 주고, 참회의 말은 영혼에 감동을 준다. 무시의 말은 마음을 분노케 하며, 원망의 말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저주의 말은 복수의 마음이 일게 한다. 복잡한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서로의 격려와 칭찬, 긍정적인 말은 이 세상을 훨씬 밝게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다. 사랑은 기적을 낳고,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이웃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은 새로운 힘과 용기를 준다. 마크 트웨인은 “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어도 두 달은 살 수 있다”고 했다.
첨단 산업화 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작업환경은 각각의 환경에 적합한 다양한 조끼들을 양산해 냈다. 일의 능률을 높이면서 동시에 작업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온 조끼들은 이제 작업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작업자의 신체를 보호하는 조끼의 소재는 이제 실을 뛰어넘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 각광받는 신소재로는 ‘전단농화유체(STF)’라고 불리는 특수 물질이 있다. 실리카(이산화규소)를 원료로 만드는 이것은 평소에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하지만 충격을 받으면 그 순간 강하게 굳어진다. 제45회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열린 국제안전보건전시회에서 선보인 에어백 조끼 역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평상시에는 일반 조끼처럼 입다가 추락 시에는 마치 자동차의 에어백처럼 조끼에서 에어백이 튀어나오는 원리다. 이 조끼는 신체 중요 부분인 흉부를 보호해 생명을 지킨다는 것이 장점이다. 어느 보호복이나 마찬가지지만 조끼 역시 현장의 환경에 맞춰 적절히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철소나 유리 가공업체의 경우 높은 열로 인한 사고가 잦은 곳으로 방열조끼를 입어야 하고, 한겨울 야외 근무자나 영하의 온도에서 일하는 작업자의 경우에는 발열조끼를 입어 신체를 보호해야 한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과 함께 만들어지는 다양한 신소재들은 각 작업장의 환경에 걸맞은 특수성으로 나날이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 안전한 장비와 보호복으로 해마다 수많은 현장 근로자들이 부상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더욱 다양화된 소재와 기술 개발로 작업장의 근로자들이 안심하고 일에 매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