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투자에서 실패한 사례는 ‘법을 몰라서 당한 경우’보다는 ‘기업 경영상의 실수나 미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도측 파트너와의 문제는 그 분야 전문가와 수시로 협의하여 문제가 커지기 전에 문서화 해놓거나 관련 증빙을 챙겨두는 등 미리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함으로써 문제를 키우고 사후에 대처할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곤란한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천성산의 지명은 옛날에는 원적산(圓寂山)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언제부터인가 천성산으로 불렀고 제2 금강산이라고도 한다. 또 제일 높은 산봉우리를 원효산(元曉山)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원적산, 천성산, 원효산은 지명은 달라도 모두 같은 산이고 불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19세기 초까지만 하여도 육류요리처럼 하나의 요리로 취급되었으나 그 이후 점차 의미가 축소되어 오늘날에는 주요리를 먹기 전에 가볍게 섭취하는 코스의 요리로 변화 되었다. 수프(Soup)란 단어의 어원은 중세 프랑스에서 빵을 의미하였으며 그 당시 사람들은 국물, 와인, 소스 등을 수프라고 하는 빵에 넣어 먹었다고 한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여강고성(麗江古城)을 둘러보고, 옥룡설산(玉龍雪山) 트레킹을 즐기려고 리장으로 내려갔다. 리장에 도착하자마자 중국 최초의 유네스코지정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여강고성의 야경을 직접 보고 싶어 나갔다. 한마디로 불야성을 이룬다. 여기서 성공한 한국여성이 경영하는 벚꽃마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들으며 미로같은 길을 쉬었다가 걷기를 반복하고, 두리번거리며 고성의 골목길 투어를 맘껏 즐겼다.
인도인은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 많은 작은 문제를 일부러 제기한다. 너무 많은 중요치 않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다 보면 혼란스러워지고 지치게 된다. 이점 또한 인도인들이 노리고 있는 점이다. 되지도 않는 많은 문제를 제기하여 우리측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중요한 쟁점을 대충 넘어가려고 한다.
우불산은 삼호동 산 2-3번지 일원에 있다. 서창동에서 북쪽으로 약 1km 쯤에 있는 산인데 높이는 해발 209m 밖에 안 되는 야산이다. 삼한시대에 이곳의 지명이 우화(于火)였는데 우화의 화(火)자의 뜻이 불과 같으므로 불이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하여 우불(于弗)이 되고 산 이름도 우불산(于弗山)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신라 경덕왕 때에는 우화현을 우풍현(于風縣)으로 고쳐 불렀고 이 우불산 아래에 우풍현청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현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우불(于弗), 우화(于火), 우풍(于風)은 모두 같은 지명이다. 아무튼 우불산은 삼한시대 초기 때부터 지금까지 불리어져 오고 있는 매우 유서깊고 영험이 있는 신령한 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푸른 잎사귀마다 윤기가 도는 이른 아침. 현충일 추념식 행사에 참석하고자 녹음이 우거진 춘추공원의 숲길을 오른다. 공원의 숲은 맑고 청아한 산새의 노래로 깨어나고,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 향기는 싱그러운 아침을 준비한다. 서로 부둥켜안은 듯 기대어 서 있는 소나무 잔가지에 내리는 햇살, 춘추공원의 유월은 신록의 향연이 한창이다. 춘추공원의 현충탑까지 오르려면 두 갈래의 길이 있다. 보훈 가족의 염원을 담아 건립된 직선의 계단 길과 숲속으로부터 이어지는 숲길이 있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윈난성(云南省. 중국 남서부에 있는 성, 베트남, 미얀마 등과 접경하고 있다)에서 차를 싣고 진사강(金沙江)을 따라 티벳으로 가던 마방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옛길이 차마고도다.
인도인은 정보 수집만을 위해서 협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도인과 수출입 또는 합작투자 등의 협상을 할 때는 정말 수출입이나 합작투자를 위해서 협상을 하려는 것인지 시장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협상을 하려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신기동 산성은 신기동 산 20번지와 호계동 산 112번지에 걸쳐 있는데 해발 330.6m 높이의 정상부에 데뫼식 석축으로 만들어진 성이다. 성내 면적은 15만7천74㎡이고, 지금의 행정구역이 양산시 신기동에 속해 있기 때문에 신기동 산성이라 하며, 1963년 사적 제97호로 지정되었다. 옛날에는 양산읍 소재지에서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산성이라고도 불렀다. 1530년 조선 중종 때 발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양산군조에 보면 성황산(城隍山)은 ‘군청으로부터 동북쪽 5리에 있으며 진산이다’ (在郡東北五理鎭山)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산 이름이 옛날부터 성황산이라 하였고 따라서 산성의 이름도 성황산성(城隍山城)이라고 했다. 또 같은 책 양산군 성곽조에 성황산성의 “석축의 둘레는 4천368척이고 높이는 6척이며, 우물이 6개가 있고, 못이 2개가 있으며, 군수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石築周四千三百六十八尺高六尺內有井六之二有軍倉)라고 하여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신기동 산성이면서, 성황산성이라고도 하며 북산성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달라도 모두 같은 산성(山城)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뉴마하라자 - 인도경제의 새로운 지배자 인도어로 ‘마하’(maha)는 크다ㆍ위대하다는 뜻이며 ‘라자’(raja)는 왕 혹은 지배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뉴마하라자는 새로운 왕, 새로운 지배자라는 의미로 현재 인도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제계의 대그룹 총수를 지칭한다. 1997년의 인도의 10대 그룹은 1위 타타 그룹(TATA-뭄바이)부터 시작하여 비를라 그룹(B.K./K.M. Birla-뭄바이, 캘커타), 릴라이언스 그룹(Reliance-뭄바이), 알피지 그룹(RPG-캘커타), 타파르 그룹(L.M. Thapar-델리), 스픽/맥 그룹(SPIC/MAC-첸나이), 바자즈 그룹(Bajaj-뿌네), M&M 그룹(뭄바이), 비를라 그룹(G.P./C.K. Birla-델리,캘커타), 에스코트 그룹(Escorts-델리)의 순서다. 1999년부터 정보통신분야의 인포시스, 사티얌, 위프로, NIIT, HCL, 펜타미디어 등이 급성장하였고, 2008년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글로벌 1천개 기업에 들어간 인도기업 14개를 보면 이동통신기업 바르티에어텔,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즈가 이름을 올렸고,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 ICICI뱅크, HDFC의 3개 은행이 등장했다. 주요 기업의 흥망사는 산업변천 과정 및 지리적 위치와도 관련 있다. 60년대에는 캘커타 일대의 쥬트산업이 몰락하였으며, 70년대에는 뭄바이, 아메다바드를 무대로 활동하던 구자라티 상인들 즉, 섬유귀족으로 불리던 기업들이 사라졌다. 80년대에는 델리를 근거로 한 주요 기업들이 쇠퇴했다. 이는 내륙 한복판에 위치한 델리보다 항구도시 뭄바이가 상대적으로 급속히 성장함으로써 전반적인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델리와 뭄바이 상인은 많은 부문에서 경쟁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뭄바이와 델리의 격차가 커졌다. 항구를 낀 뭄바이 기업들에게 정보에서 뒤쳐진 델리 기업들은 산업발전에 따른 물동량 증가마저 신속히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보와 물류의 중요성을 보여준 예다. 1939년의 50대 기업 중에서 1997년 50대 기업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7개로서 모두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중서부 지역 기업들이다. 150년 동안이나 인도 경제를 이끌고 있는 타타 그룹, 현재 재계순위 2위인 비를라 그룹, 19위의 마파트랄 그룹, 22위의 와디아 그룹(Wadia), 랄바이 그룹(Lalbhai), 스리람 그룹(SIEL), 비노드도시 그룹(Vinod Doshi) 등이 그들이다. 이러한 그룹의 대부분이 교역을 주업으로 하는 상인 계층에서 시작하여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되는 것이 인도 경제의 주요 특징이다. 인도경제 장악한 패밀리 비즈니스 인도 기업과 사업을 하려는 우리 기업인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개념이다. 패밀리 비즈니스란 기업경영에 있어서 패밀리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여기서의 패밀리는 가족이 아니라 같은 업종의 사람들끼리 단합한 정서적 조합과 같은 것이다. 인도 잡지 비즈니스투데이에 의하면 1947년 독립당시 인도 기업은 거의 대부분 18개 비즈니스 패밀리의 소유였으며 50년이 지난 1997년에는 상위 500대 기업 중 461개를 비즈니스 패밀리가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카스트의 4개 계층은 승려 계층인 브라만, 전사 계층인 크샤트리아(샤트리아, 챠트리아), 상인 계층인 바이샤, 노예 계층인 수드라로 나누어지는데 비즈니스 패밀리는 상인 계층인 바이샤(바니아)에 속한다. 인도 비즈니스 패밀리의 주요 특징은 개인의 목적보다는 패밀리의 공동목적을 우선한다는 데 있다. 또한 패밀리의 명예는 같은 비라다리 내에서 얼마나 좋은 배우자를 맞이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러한 전통은 커뮤니티 구성원간의 동질성을 강화시키고 그들의 상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즈니스 패밀리는 상인 카스트(trading caste)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인도 인구의 약 2%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6%라고 주장하는 문헌도 있다. 일반적으로 상층 카스트의 엘리트들과 농부 같은 중간 카스트들은 상인 카스트를 아주 무시한다. 그러나 상인 카스트들은 같은 커뮤니티 내의 봉급생활자를 하찮게 취급한다. 따라서 같은 커뮤니티내의 형제나 친척의 기업에서 봉급생활을 하는 멤버에게는 자신의 사업을 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늘어나는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패밀리 비지니스 기업이 확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북부동산성은 양산시 북부동 산 4-2번지와 산 4-6번지에 있는데 해발 287.8m의 높이로 산 정상으로부터 9부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테뫼식 산성은 봉우리들을 둘러쌓아 성을 축조한 것으로 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수평으로 하여 둘러싼 형태다. 성내의 면적은 205,785㎡로 되어 있다. 지금의 행정구역이 북부동에 속해있어 북부동산성이라 하는데 이 산성은 1963년 사적 98호로 지정되었다. 옛날에는 양산읍 소재지의 동쪽에 있는 산이라고 하여 동산(東山)이라 하였고 따라서 성(城) 이름을 부를 때 ‘동산성’이라고도 불렀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권22 양산군 고적 조에 “고산성(古山城)은 군 동쪽 3리에 있는데 석축으로 쌓았다” 라는 기록이 있어 그 고산성이 이 북부동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니까 북부동산성,동산성, 고산성 모두 같은 지명이다.
과거 자료를 보면 ‘고려도감’, ‘세종실록’과 ‘중종실록’, 손암 정약전이 저술한 최초의 해양생물서인 ‘자산어보’ 등에서 건어물에 관한 기록이 있다. 최대, 최초의 건어물 재래시장은 1957년 개장한 서울 오장동에 자리잡은 서울중부시장이며 부산 자갈치건어물시장, 경남 통영건어물시장, 포항 죽도건어물시장, 전남 순창어시장, 인천 소래포구어시장 등이 성업 중에 있다.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트레킹 루트로는 쿰부지역의 에베레스트 트레킹과 랑탕ㆍ코사인쿤도 트레킹,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꼽는다 이번 렌죠패스를 넘어 고쿄피크 트레킹을 나선 사람들은 필자를 포함해 모두 8명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니 기상이 별로다. 아니나 다를까, 루클라에 5천여명의 트레커들이 카트만두를 오가는 히말라야 국내선 비행기 결항으로 인해 발이 묶여있다고 한다. 우리들 역시 루클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제 때 탈 수 없었다. 그래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유적지 킬티푸르와 보드 나트을 다녀왔다. 라마불교 성지 보드 나트 (Boudha Nath)는 왕으로부터 물소 한 마리와 고기로 덮을 수 있는 땅을 약속받은 노파가 고기를 얇게 썰어 넓은 땅을 얻었고, 그 자리에 사원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인도기업과 거래 시 DA(외상) 조건 수출을 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오’ 다. 인도 기업인들은 외국기업과 교역을 할 때 상대가 받아들이든 말든 우선 DA 거래를 제안해 본다. 무역에 있어서 웬만큼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첫 거래가 DA 조건인 경우는 드물다. 서로의 신용이 쌓일 때까지는 L/C 조건으로 거래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인도 기업 쪽이 DA 조건을 요구한다. 우리 기업들은 별 의심없이 조건에 응한다. 바로 이때부터가 인도 기업과의 거래가 회사의 골치 덩어리로 등장하는 시점이다. 인도기업들의 전형적인 DA거래 사기 방법을 살펴보자. 인도인은 처음에 소액을 주문하면서 DA 조건을 요청한다. 그러면 우리 기업인은 소액이니까 새로운 시장 개척하는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이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L/C로 거래를 해보고 나서 생각해 보자고 한다.
읍성은 지금의 행정단위인 읍(邑)의 성이 아니고, 양산고을 전체의 중심도시에 있는 성을 말한다. 양산읍성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다. 서기 463년 신라 자비왕 6년에 ‘왜인이 삽량성을 침범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삽량성이 양산읍성의 최초라고 짐작이 된다. 그렇다고 보면 양산읍성은 지금부터 약 1천600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긴 꼬치에 꽂아 간장에 꾹 찍어먹던 커다란 ‘오뎅’과 조그만 바가지로 떠먹던 오뎅 국물 맛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예전에는 황토색의 사각이나 긴 원통형의 어묵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지금은 재료, 모양과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는 어묵요리도 많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오뎅이란 말이 우리말인지 일본어인지, 그리고 우리 음식인지 일본음식인지 정확하게 잘 알지 못하면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호에는 어묵과 오뎅의 차이, 우리나라와 일본의 어묵 역사와 어묵요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부알프스를 대표하는 것이 몽블랑산군이라면 중부알프스를 대표하는 것은 마터호른이라 하겠다. 마터호른은 프랑스어로 몽세르뱅이라부르고, 이태리에서는 몬테체르비노라고 부른다. 꿈의 봉우리 마터호른은 1865년 7월, 25세의 젊은 알피니스트 에드워드 윔퍼에게 정상을 허락한다. 그러나 하강 중 4명의 대원이 추락사하면서 마터호른은 비극을 남기고 알프스황금기는 막을 내린다. 이 사건으로 사회적문제가 발생되어 초등자 윔퍼는 사고경위서를 제출하는 등 법정에서 심한 여론재판을 받았다. 불멸의 초등기록을 세웠지만 박수는 커녕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알프스라는 무대에서 퇴장하고 만다. 그 이후로 알프스는 등반보다는 관광의 대상지로 통속화되었다. 그럼에도 선구자인 윔퍼는 새로운 등반대상지를 찾아 나서는데 남은 삶을 보낼 무대를 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돌린다. 방랑자가 된 것이다. 40세가 되던 해에 남미 에쿠아도르에 있는 짐보라초(6천310m)산을 초등했다. 그리곤 <안데스 등반기>를 집필하여 영국 지리학회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오랜 기간을 거쳐 알피니스트로서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잘 모르는 인도인 바이어로부터 우리 상품에 관심 있다는 메일이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바이어를 만난 기분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에 답변한다. 세일즈를 하는 입장에서 이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도와의 거래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우리 기업인들이 인도 바이어로부터 받아보는 문서를 보면 대부분이 “우리는 사업다변화를 위하여(diversification)…”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금방 구입할 것처럼 접근한다. 또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업이나 품목을 제시하면 무엇이든 관심 있다고 하며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답한다. 이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인도인들은 항상 자기사업 아이템을 찾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려고 집적거려 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박제상은 서기 362년에 삽양주(歃良州) 수두리(首頭里) (지금의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서 태어났다. 385년에 어사대부 간관(御使大夫 諫官), 388년에 종은대부 이찬(宗殷大夫 伊湌)의 벼슬에 올랐다가 395년 공의 나이 34세에 삽양주(歃良州)의 간(干)이 되었다. 공의 호는 관설당(觀雪堂)이고, 돌아가신 뒤에 붙여진 이름이 충열(忠烈)이다. 대아찬(大阿湌)이란 벼슬이 추증되었으며 단양군(丹陽君. 지금의 寧海)으로 봉해져서 영해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공의 유족으로는 금교 김씨 부인과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박문량으로 ‘방아타령’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다.